20여 년 전 친구들과 서울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시간 흘러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 돼
과거의 나와 한 약속 지키려고 서울행 열차 예매
시간 흘러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 돼
과거의 나와 한 약속 지키려고 서울행 열차 예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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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사는 40대 이 모 씨는 내일(22일) 회사 일을 마치는 대로 서울행 KTX에 오르기로 했다. 원래 집이 서울이라 그리 오랜만의 길도 아니 건만 서울 가는 길이 이리 설렜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남편과 10살 된 딸이 말려서 잠시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미래와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커 서둘러 기차표를 예매했다.
2022년 2월 22일 22시 22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대학생이던 이 씨와 친구 2명, 이렇게 3명이 종로 서울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시각이다. 술을 먹다 즉흥적으로 의기투합한 거지만,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어찌 보면 정말 올까 했던 20여 년 뒤가 이리도 후딱 다가올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루가 멀다고 만나던 친구 사이었지만 졸업을 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서로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만 갔다. 휴대전화 번호 '01N'이 '010'으로 통합하면서 결국에는 전화번호마저 남지 않는 사이가 됐다.
물론 '지인찬스'를 동원해 알려고만 한다면야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 연락처를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이 씨는 미리 연락을 해보고 가야 하나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뭔가 그때의 순수했던 약속을 더럽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결국, 이 씨는 아무 연락작업도 없이, 약속한 시각에 맞춰 서울극장 정문 앞에 가기로 했다. 명물 소리를 듣던 극장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지난해 문을 닫아 버렸다.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 해도 오후 10시가 넘어 술 한 잔 기울일 수 없고, 커피숍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잔 할 수가 없게 됐다. 무엇보다도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들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그래도 이 씨는 기쁜 마음으로 기차에 오를 것이다. 인생에 결코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미래를 꿈꾸던 청년의 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런 약속을 한 사람이 어디 이 씨와 그 친구들뿐이겠는가?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종로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또 어딘가에서 꼭 만나자고 약속한 모든 이들이게 알린다.
2022년 2월 22일 22시 22분이 다가온다!
YTN 이문석 (mslee2@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2022년 2월 22일 22시 22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대학생이던 이 씨와 친구 2명, 이렇게 3명이 종로 서울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 시각이다. 술을 먹다 즉흥적으로 의기투합한 거지만,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어찌 보면 정말 올까 했던 20여 년 뒤가 이리도 후딱 다가올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루가 멀다고 만나던 친구 사이었지만 졸업을 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서로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만 갔다. 휴대전화 번호 '01N'이 '010'으로 통합하면서 결국에는 전화번호마저 남지 않는 사이가 됐다.
물론 '지인찬스'를 동원해 알려고만 한다면야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 연락처를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이 씨는 미리 연락을 해보고 가야 하나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뭔가 그때의 순수했던 약속을 더럽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결국, 이 씨는 아무 연락작업도 없이, 약속한 시각에 맞춰 서울극장 정문 앞에 가기로 했다. 명물 소리를 듣던 극장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지난해 문을 닫아 버렸다.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 해도 오후 10시가 넘어 술 한 잔 기울일 수 없고, 커피숍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잔 할 수가 없게 됐다. 무엇보다도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들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그래도 이 씨는 기쁜 마음으로 기차에 오를 것이다. 인생에 결코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미래를 꿈꾸던 청년의 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런 약속을 한 사람이 어디 이 씨와 그 친구들뿐이겠는가?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종로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또 어딘가에서 꼭 만나자고 약속한 모든 이들이게 알린다.
2022년 2월 22일 22시 22분이 다가온다!
YTN 이문석 (mslee2@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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