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재평가 받은 '부마항쟁'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재평가 받은 '부마항쟁'

2019.10.14. 오전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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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제정으로 재평가받은 ’부마항쟁’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유신 반대 시위 일어나
부마항쟁, 박정희 군사정권 끝내는 도화선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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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는 유신정권을 반대하는 민중들의 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40년 만에 올해 '부마 민주항쟁'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오태인 기자입니다.

[기자]
1979년 10월 16일.

당시 부산대에서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투쟁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함성은 순식간에 부산 도심으로 퍼졌습니다.

이틀 뒤인 18일에는 마산까지 번지면서 수많은 민중이 함께했습니다.

유신 시대, 최초이자 최대의 시민항쟁이었습니다.

[박봉환 / 부마 민주항쟁 당시 경남대 학생 : 우리가 교문을 열어달라 당연히 요구했고 하지만 교문은 열리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교문을 타고 오르기도 했고 뭐 끌어내리기도 했고. 거기서부터 어쩌면 격렬함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죠.]

부마항쟁으로 집권층 사이에 해결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고, 이 갈등은 10·26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을 끝내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된 겁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 항쟁이었지만, 그동안 역사적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3·15의거와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과 달리 국가기념일 제정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최갑순 / 부마 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 : 역사적인 사실 자체가 거의 묻혀있었죠. 그 이유는 유신정권이 붕괴가 됐지만 군사정권은 전두환을 통해서 그대로 유지가 되었고 그 전두환을 통해서 광주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역사에 가려져 잊혔던 부마항쟁이 40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면서 민주화에 이바지한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게 된 겁니다.

[송기인 신부 /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 우리는 하나씩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거든요. 늦었다는 것에 매몰돼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나가느냐 여기에 노력해야죠.]

부마항쟁이 재평가를 받으면서 진실도 밝혀지고 관련자들의 명예도 회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기념일로 처음 열리는 올해 기념식은 마산항쟁이 시작되었던 경남대학교에서 오는 16일 개최됩니다.

YTN 오태인[otaei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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