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제물로 바쳐진 사람' 국내 최초 발견...근거는?

[취재N팩트] '제물로 바쳐진 사람' 국내 최초 발견...근거는?

2017.05.17. 오후 1:22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성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건축물이 튼튼해진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인주(人柱) 설화라고 하는데요.

이 설화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신라 시대 때 실제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국내에서는 처음이라고 하는데 현장을 다녀온 취재기자 연결해서 자세한 내용 들어보겠습니다. 이윤재 기자!

먼저 궁금한 게, 이렇게 제물로 바쳐진 인골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설명 좀 해주시죠.

[기자]
신라 5세기를 전후로 쌓기 시작한 월성에서 발견된 건데요.

경주 월성의 서쪽, 문이 있던 자리 아래쪽에서 키 166cm의 인골 한 구와 키 159cm인 인골 한 구 등 모두 2구가 확인됐습니다.

키가 큰 인골은 시선이 하늘을 향하고, 작은 인골의 시선은 옆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부부가 아니냐는 추정도 나오지만, 아직 여기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키가 큰 인골은 남성으로 확인됐는데, 키가 작은 인골은 현재까지 성별이 확인되지 않아 부부라고 단정하기는 이른 상항입니다.

앵커가 말씀하신 것처럼 성을 쌓을 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성이 튼튼해진다고 믿고 인골 두 구를 성 문 아래쪽에 묻은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 건축물을 지으면서 사람을 제물로 바친 사례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앵커]
그럼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사례가 없나요?

[기자]
고대 중국, 그러니까 기원전 천 600년에서 천 년 사이에 이런 풍습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중국 상나라 때 이야기인데, 당시에는 성벽을 쌓거나 다리를 지을 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흔했고, 실제로 발굴된 사례도 서른 건 이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지만, 중국만큼 성행하지는 않았고 특히 인골이 밝혀진 사례는 드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이 인골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건가요?

[기자]
몇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먼저 위치인데요.

성을 쌓으려면 먼저 바닥을 잘 다지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기반 공사인데요.

기반 공사를 하고, 그 위에 성질이 서로 다른 흙을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성을 완성하는데요.

이 인골은 1차로 기반공사를 한 땅 위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종류의 흙이 차례로 쌓여 있었고요.

그러니까 축성을 시작한 이후 일부러 사람을 넣었다는 점은 분명히 확인되는 겁니다.

또 인골의 방향이 성을 쌓을 때 배치한 돌의 방향과 나란했습니다.

인골을 위한 별도의 구덩이나 장례 도구 등이 없었다는 점도 제물로 바쳐졌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시키는 대목입니다.

[앵커]
주변에서 또 다른 유물이 나온 건 없나요?

[기자]
성의 바깥쪽 해자에서 목간과 토우, 동물 뼈, 식물 씨앗 같은 다양한 유물이 확인됐습니다.

대부분 성을 축조한 5~6세기 전후의 유물들인데요.

이 중에서 특히 목간과 토우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목간이 무엇인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한 나무판이나 조각을 목간이라고 부릅니다.

목간 중에 하나에서는 이두, 그러니까 우리말을 한자의 음과 뜻으로 풀어쓴 글자가 확인됐습니다.

지금까지 이두는 통일신라 시대 설총이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보다 1~200년 정도 전에 이두를 썼다는 것이 증명된 겁니다.

또 여러 점의 토우도 발견됐는데요.

이슬람 전통 복장인 터번을 두르고 또 긴 셔츠 모양인 카프탄을 입은 토우도 있었습니다.

이 토우 역시 6세기 전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당시 신라 사람들이 실크로드나 중국 등을 통해서 서역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유물입니다.

[앵커]
인골이나 토우, 목간 등이 밝혀진 것이 역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도 가치가 클 것 같은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기자]
인골이 출토된 것은 말로만 전해지는 설화가 사실로 확인됐다는 점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인데요.

이 인골 연구를 통해서 지금의 경주, 당시의 신라 사람들의 생활상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DNA나 콜라겐 성분 등 다양한 분석을 하면 당시 체질적 특성이나 질병·건강 상태, 유전적 특성 등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목간을 통해서는 당시의 통치 구조 등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된 목간 중에 하나에서는 관직을 의미하는 한문과 노동을 의미하는 글이 확인됐는데, 이를 보면 당시 왕이 진행하는 사업에 지방민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발견된 목간과 거기에 담긴 글귀를 분석하면 신라의 생활상과 통치 구조 등을 다양하게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앵커]
동물 뼈나 식물 씨앗 등은 어떻습니까?

[기자]
동·식물의 유체는 중요하지 않게 여기기도 하는데요.

이 역시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특히 이번에 '곰'뼈도 발견됐는데요.

당시 경주 지역에는 곰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곰을 어떻게, 무슨 이유로 신라의 도읍인 경주까지 가져왔는지를 밝히면 대외적인 신라의 영향력 등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월성 발굴은 이제 15~20% 정도 진행됐는데요.

앞으로 발굴이 완전히 이뤄지면 또 어떤 유물이 나올지, 어떤 역사적 사실이 밝혀질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이윤재 [lyj1025@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