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 출범·서울올림픽 유치...5공 체육의 명암

프로스포츠 출범·서울올림픽 유치...5공 체육의 명암

2021.11.24. 오전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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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총칼로 권력을 잡은 故 전두환 씨는 국민의 눈을 돌리려,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출범시켰고,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이른바 '3S 정책'을 펼쳤습니다.

조은지 기자입니다.

[기자]

[대한뉴스 제1378호 / 1982년 4월 2일 :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진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직업야구가 시작됐습니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이 거창한 슬로건 아래 5공화국 초기인 1982년, 프로야구가 첫발을 뗐습니다.

[대한뉴스 제1378호 / 1982년 4월 2일 : 이날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의 MBC 청룡과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와의 첫 경기에 앞서 시구를 했습니다.]

3만 구름 관중이 동원된 개막전에, 기업 구단에 세제 혜택을 안기는 특급 대우까지, 야구는 단숨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듬해 프로축구까지 출범했고, 프로씨름에 농구대잔치까지, 5공은 잇달아 스포츠로 판을 벌였습니다.

스포츠와 스크린, 성, 이른바 3S, 우민화 정책으로, 국민의 눈을 정치 대신 다른 분야로 돌리려고 했던 겁니다.

그 정점은 88 서울올림픽.

재벌 기업과 국가 권력이 총동원된 가운데, 서울은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올림픽을 유치하는 '바덴바덴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대통령 축전을 보내는 문화도 전두환 씨 재임 기간 시작됐습니다.

[故 노태우 /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 서울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선언합니다.]

초대 체육부 장관이자 직선제 첫 대통령인 노태우 씨가 역사적인 개회선언을 했지만, 정작 전두환 씨는 축제에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 동서독이 모두 참석한 동서 화합의 무대는,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5공화국에서 스포츠는, 권력 정통성 논란을 잠재우고, 군부의 폭압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올림픽 유치와 프로스포츠 출범 등 엘리트 스포츠의 황금기였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YTN 조은지입니다.

YTN 조은지 (zone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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