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과 행복했던 일주일..."수고하셨습니다, 이세돌 9단"

바둑과 행복했던 일주일..."수고하셨습니다, 이세돌 9단"

2016.03.15. 오후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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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 프로 바둑 기사 (지난 8일) : 조금 긴장해야 할 거 같고요. 5대 0까지는 아닐 확률이 더 높을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데미스 허사비스 / 구글 딥마인드 대표·알파고 개발자 (지난 8일) : 판후이와 대국 이후 5개월 동안 알파고 성능개선 많이 했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과 어떤 식으로 경기할지 두고 봐야 한다.]

인간과 기계가 펼친 세기의 바둑 대결.

보신 것처럼, 처음 대국을 시작 전 이세돌 9단은 어느 때보다도 신중함을 보였고, 구글 딥마인드 대표인 허사비스는 알파고가 예전보다 강해졌음을 시사했습니다.

지난 9일 시작해 오늘로 끝나게 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2002년 월드컵 때 만큼이나 국민들은 하나가 됐고 대한민국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행복하고 설레었던, 때론 실망하고 가슴 졸였던 일주일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지난 9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첫 대결이 시작된 날입니다.

대국을 앞두고 길게 늘어선 취재진.

한·중·일은 물론,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 건너온 기자들로 대국장은 두 시간 전부터 이미 전쟁터였습니다.

이세돌 9단이 등장하자, 열기는 정점을 찍었습니다.

말끔하게 면도를 한 이세돌 9단은 담담한 표정으로 비공개 대국장에 들어섰습니다.

총선이 얼마남지 않은 정치인들도 이날만큼은 이세돌 9단을 응원하러 출동했는데요.

[김종인 / 더불어민주당 대표 : 사람의 머리로 하는 게 기계가 움직이는 것보다 잘돼야 하는데….]

대국 첫 날, 인터넷 속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생중계 채널이 접속자 폭주로 마비될 정도로 온라인 세상의 대세도 '세기의 대결'이었습니다.

첫 번째 대국.

알파고는 예상보다 강했습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의 창의적인 수에도 반응하지 않고 철저하게 승률이 높은 수를 찾아갔습니다.

끝내, 이세돌 9단은 대국 시작 3시간 30분, 186수 만에 돌을 던졌습니다.

충격적인 첫 패배를 당한 이세돌 9단과 구글팀의 희비는 조금 엇갈렸습니다.

[이세돌 / 프로기사(9단) : 사실 진다고 생각 안 했는데 이렇게 져서 너무 놀랐고, 오늘은 포석이 너무 실패했기 때문에 그런 점만 (보완)하면 앞으로 저에게 승산 있지 않나 생각하고요. 제 느낌을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제 5대 5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실버 /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팀장 : 탐색망을 사용하고 정책망 좁히는 능력에서 알파고가 보유한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하는 좋은 대국이었습니다. 우리 팀이 이뤄낸 업적에 큰 자부심 갖게 됐습니다.]

1국의 패배 이후 이세돌 9단은 두 번째 대결에서 설욕을 위해 신중 또 신중했습니다.

장기전을 작정한 듯 안정적인 수 싸움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알파고는 보란 듯이 날카로운 수를 던지며 이세돌 9단과 해설자들을 당황시킵니다.

[유창혁 / 프로 기사(9단) : 지금은 이세돌 9단은 평범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알파고가 독특한 수를 계속 두고 있습니다.]

[김효정·이희성 / 프로 기사·바둑TV 해설진 : 지금까지 본 수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수 같은데요. 프로의 감각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수가 나왔습니다.]

알파고의 변칙적인 승부수에 이세돌 9단은 제한시간 2시간을 모두 사용하며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알파고의 기묘한 수에 중후반 이후 또다시 전세가 역전됐습니다,

두 번째 대국, 이세돌 9단은 대국 시작 4시간 26분, 211수 만에 돌을 던졌습니다.

[이세돌 / 프로 기사(9단) : 오늘 바둑은 내용상으로 보면 정말 완패였고, 초반부터 한순간도 제가 앞섰다는 느낌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토요일에 벌어진 세 번째 대국도 쉽지 않았습니다.

2연패 이후 초반을 승부처로 꼽은 이세돌 9단은 전략대로 거칠게 알파고를 흔들었습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의 공격에 침착하게 맞대응했습니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보다 무려 40분 먼저 초읽기에 몰렸고 마지막까지 결사 항전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수세를 뒤집지 못했고 대국 시작 4시간 12분, 176수 만에 또 돌을 거뒀습니다.

연이어 3연패를 당한 이세돌 9단, 이번 대국의 승리를 일단 알파고에게 내줘야 했습니다.

[이세돌 / 프로 기사 (지난 12일) : 여러 가지 기대 많이 하셨을 텐데 이렇게 무력한 모습 보여서 죄송하고요. 이세돌이 패배한 거지 인간이 패배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대국상황이 이쯤 되자, 한 마음으로 이세돌 9단을 응원을 했던 사람들도 알파고의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며 인공지능의 발전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세돌 9단에 대해서는 "컴퓨터 1,200대 수준의 알파고와 싸워서 이긴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다. 최선을 다했다"라며 그를 위로했습니다.

그렇게 인공지능에게 모두 승리를 내줄 것 같았던 대결은 네 번째에서 대반전을 맞게 됩니다.

승리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은 이세돌 9단은 덤덤하게 네 번째 대결을 시작했습니다.

알파고는 이번에도 폭넓은 포석을 토대로 이세돌 9단을 중반까지 수세로 몰아넣었는데요.

그런데, 알파고의 87수부터 판세가 뒤바뀌기 시작합니다.

이세돌 9단의 중앙 묘수 이후 알파고는 우변과 좌하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를 잇달아 두며 실수하기 시작한 겁니다.

대국 시작 4시간 44분, 180수, 인공지능 알파고가 마침내 돌을 던졌습니다. 'alphago resigns'.

이세돌 9단은 대국 이후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보였습니다.

[이세돌 / 프로기사(9단) : 이렇게 3연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까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전의 무엇과 앞으로도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정말 값어치로 매길 수 없는 승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세돌 9단의 네 번째 대국 승리에 시민들은 마치 자신이 이긴 것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대국 종반 이세돌 9단이 승기를 잡자 식사도 멈추고 대국을 지켜보다 마침내 첫 승리가 확정되자 절로 박수가 나오는 모습인데요.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인간이 이대로 완전히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거둔 더욱 값진 승리였습니다.

[홍성길 / 경남 창원시 진동면 : 오다가 고향 가는 길에 뉴스로 봐서 진짜 기쁩니다. 온 국민이 다 기뻐할 겁니다. 인간의 승리로 진짜 기쁩니다.]

[유진 / 서울 시흥동 : 이세돌 씨가 3게임을 하시면서 알파고에 대해 좀 파악도 하시고 그래서 이기지 않았나 싶어서 앞으로 하나 남은 거죠? 그것도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결이었던 오늘, 아쉽게도 알파고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결과를 떠나서,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는 평소에는 많이 접하지 못했던 바둑이라는 스포츠에 대해서 알게 됐고 이세돌이라는 아주 도전적인 바둑고수를 알게 됐는데요.

진화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기계가 인간을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둑으로 물들었던 대한민국의 일주일.

이세돌 9단에게, 그리고 알파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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