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의 거장 송창식 “내가 얼마만큼 못하는지는 늘 알죠”

한국 대중가요의 거장 송창식 “내가 얼마만큼 못하는지는 늘 알죠”

2025.10.05. 오전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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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 대중가요에서 최고의 가수를 꼽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떠올리시나요?

저마다 기준과 취향이 달라 여러 가수의 이름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모두가 인정하는 가수는 있습니다.

바로 송창식이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는 영원한 가객 송창식을 박순표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해방 이후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인천에서 조부모 손에 자란 송창식에게 음악은 처음부터 사치였습니다.

그러나 재능만큼은 남달랐습니다.

[가수 송창식 :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만 되면 벌써 음계로 노래를 하거든요. 우리 때는 그게 없었어요. 근데 이제 책에 콩나물 대가리에다가 음계 이름을 써서 놓은 책들이 많았어요. 도미솔 도미솔 요렇게 미솔솔 미솔솔 라라라라라 요렇게 써놓은 콩나물 대가리 위에 써놓은 책(?)들이 많았어요. 가사로 그걸 하지 않고 그걸 따라서 하다 보니까 음계의 체계가 잡힌 거죠]

혼자 음악을 배운 송창식은 중학교 선생님 손에 이끌려 우연히 나간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서울예고로 진학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학교를 중퇴하고 운명처럼 쎄시봉을 만납니다.

"그대 영원할 줄 알았네. 그 여름 바닷가 행복했던 모래성"

[가수 송창식 : 예고를 중퇴하면서 그 음악을 하긴 해야겠는데 할 방법이 없고 말하자면 좀 마음이 다급하잖아요 그러다가 쎄시봉이라는 데를 그냥 어쩌다 가게 된 거예요. 어쩌다 가서 노래를 했는데 거기 있는 쎄시봉 주인 아저씨가 쎄시봉이라는 이름을 걸고 그룹을 한번 만들어봐라 그럼 우리가 밥은 먹여줄게]

윤형주와 만나 1968년 트윈폴리오로 데뷔했고 다시 솔로로 활동하면서 가요 무대를 평정합니다.

[고래사냥], [피리 부는 사나이], [한 번쯤] [상아의 노래], [내 나라 내 겨레] 등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명곡으로 70년대 대표 가수에 자리합니다.

[가수 송창식 : 팝송 하던 그런 음악 실력 가지고는 내가 가수라고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빨리 탈피했었어요 저는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 정식으로 한국가요를 한 거죠. 근데 그걸 먼저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하던 가요의 형식으로 할 수는 없었고 /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없던 다른 전혀 다른 형태의 대중가요를, 노래를 만들어서 하기 시작한 거죠.]

국악을 접목 시킨 [가나다라], [참새의 하루], [담배 가게 아가씨] 등으로 송창식은 80년대 이미 '레전드' 반열에 올라섭니다.

밑바탕에는 음악에 대한 겸손함이 깔려 있습니다.

[가수 송창식 : 잘하는 게 아니다라는 걸 늘 저변에 깔려 있었어. 왜냐하면 그동안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교육받고 그런 거를 난 못 받았으니까 내가 이게 잘하는 건 분명히 아니다 내가 얼 만큼 못 하는가를 늘 인지하고 있었다는 거죠.]

1987년 이후 공식적인 신곡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송창식의 노래는 수많은 후배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후배들에게 송창식의 부탁은 단 하나입니다.

[가수 송창식 : 포기하지 말라는 거죠 어느 나이가 되면 그전에 자기가 가장 전성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안될 때가 있다고요. 어느 순간에 그때 안되는 걸 치우면 또 새롭게 잘되는 게 생기는데 절대로 포기만 안 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스스로한테는 큰 성공이 있을 거라고요. 포기만 안 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하면서 내일은 더 노래가 잘 될 거라고 믿는다는 송창식.

왜 송창식이 최고의 가수이고 작곡가인지 음악에 대한 자세를 통해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YTN 박순표입니다


촬영기자:진형욱 이수연
영상편집:진형욱


YTN 박순표 (sunny@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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