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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팝은 이제 한류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80년대 여성 댄스 가수로 출발해 홍콩과 일본 등 해외에서 활동하며 원조 한류스타로 평가받는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데뷔 40년을 맞는 김완선입니다.
최근에도 신곡을 내고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데요, 가수 김완선의 음악 인생을 박순표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왠지 춤이 좋았고 음악이 좋았습니다.
가수 매니저이자 제작자였던 이모의 손에 이끌려 처음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16살의 나이에 첫 앨범을 냅니다.
현대 댄스음악의 시작이라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평가와 함께 당시로써는 30만 장이라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습니다.
[가수 김완선 : 그때는 길거리에서 이제 리어카 (리어카라고 하죠) 길보드 차트 뭐 이런 게 있어 가지고 그렇게 좀 카피된 테이프이나 앨범들이 많이 팔렸던 시기라 정확하게 계산이 잘 안되던 때죠. 그래도 신인가수 첫 집으로 그 정도가 집계가 됐다면 엄청나게 많이 팔린 거죠.]
2집 [리듬 속의 그 춤을]은 김완선을 '댄스 퀸'으로 만들었습니다.
록의 대부 신중현이 처음 현대적인 댄스음악을 만들었고 30년이 더 지나 평창 동계올림픽에 쓰일 정도로 시대를 앞선 명곡이었습니다.
[가수 김완선 : 기타를 치시고 록을 연주하시는 분이 386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그래서 이제 하나하나씩 찍어 가지고 곡을 만든 거거든요. 내 스타일 음악이 아닌데 아 친구가 춤을 추는 친구니까 춤을 출 수 있는 리듬을 만들어야겠다 해서 직접 배우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역시 레전드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해마다 히트곡을 내놓으며 김완선은 가요계 신데렐라로 우뚝 섭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데뷔해 쉼 없이 달렸던 김완선은 서서히 지쳐 갔고 급기야 5집 앨범을 끝으로 무대를 떠나기로 마음먹습니다.
[가수 김완선 : 2집 앨범을 내고 나서부터는 이게 내 길이 아니다, 나랑 너무 안 맞는 직업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고, 제가 5집까지만 하고 그만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하니까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고.]
그러나 엄청난 히트와 함께 100만 장 이상 팔린 5집 앨범은 되려 은퇴 결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결국, 홍콩 무대에까지 도전했고 96년 국내로 복귀합니다.
이후 매니저인 이모의 죽음과 함께 모든 걸 소진한 김완선은 홀연히 하와이도 떠납니다.
[가수 김완선 : 저는 사실 하와이 갔을 때만 해도 그냥 영원히 여기서 살아야 되겠다 생각에 간 거예요.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어요. 그만큼 제가 지쳐 있었다는 거죠 하와이로 가서는 이제 처음으로 아무 일도 안 하고 한 2~3년을 쉬게 된 거죠. 그러면서 굉장히 객관적으로 제 인생을 좀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저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김완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고 후배 K팝 아이돌과도 함께 무대를 꾸미며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가수 김완선 : 그런 부담이 없어진 거 같아요. 아, 노래를 히트시켜야 돼, 인기가 많아져야 돼, 이런 거에서 좀 떠나고 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그 걸 할 무대가 있고, 그런 건 자체가 지금은 그때부터는 굉장히 감사하게 느껴지고.]
새 앨범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라틴 팝으로 김완선 특유의 리듬감을 살려냈습니다.
최고의 '댄스 퀸'으로 10~20대를 보내고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음악을 알 것 같다는 김완선.
앞으로 김완선의 음악과 도전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YTN 박순표입니다.
영상기자:이동규
YTN 박순표 (sunny@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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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팝은 이제 한류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80년대 여성 댄스 가수로 출발해 홍콩과 일본 등 해외에서 활동하며 원조 한류스타로 평가받는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데뷔 40년을 맞는 김완선입니다.
최근에도 신곡을 내고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데요, 가수 김완선의 음악 인생을 박순표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왠지 춤이 좋았고 음악이 좋았습니다.
가수 매니저이자 제작자였던 이모의 손에 이끌려 처음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16살의 나이에 첫 앨범을 냅니다.
현대 댄스음악의 시작이라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평가와 함께 당시로써는 30만 장이라는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웠습니다.
[가수 김완선 : 그때는 길거리에서 이제 리어카 (리어카라고 하죠) 길보드 차트 뭐 이런 게 있어 가지고 그렇게 좀 카피된 테이프이나 앨범들이 많이 팔렸던 시기라 정확하게 계산이 잘 안되던 때죠. 그래도 신인가수 첫 집으로 그 정도가 집계가 됐다면 엄청나게 많이 팔린 거죠.]
2집 [리듬 속의 그 춤을]은 김완선을 '댄스 퀸'으로 만들었습니다.
록의 대부 신중현이 처음 현대적인 댄스음악을 만들었고 30년이 더 지나 평창 동계올림픽에 쓰일 정도로 시대를 앞선 명곡이었습니다.
[가수 김완선 : 기타를 치시고 록을 연주하시는 분이 386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그래서 이제 하나하나씩 찍어 가지고 곡을 만든 거거든요. 내 스타일 음악이 아닌데 아 친구가 춤을 추는 친구니까 춤을 출 수 있는 리듬을 만들어야겠다 해서 직접 배우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역시 레전드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해마다 히트곡을 내놓으며 김완선은 가요계 신데렐라로 우뚝 섭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데뷔해 쉼 없이 달렸던 김완선은 서서히 지쳐 갔고 급기야 5집 앨범을 끝으로 무대를 떠나기로 마음먹습니다.
[가수 김완선 : 2집 앨범을 내고 나서부터는 이게 내 길이 아니다, 나랑 너무 안 맞는 직업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고, 제가 5집까지만 하고 그만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하니까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고.]
그러나 엄청난 히트와 함께 100만 장 이상 팔린 5집 앨범은 되려 은퇴 결심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결국, 홍콩 무대에까지 도전했고 96년 국내로 복귀합니다.
이후 매니저인 이모의 죽음과 함께 모든 걸 소진한 김완선은 홀연히 하와이도 떠납니다.
[가수 김완선 : 저는 사실 하와이 갔을 때만 해도 그냥 영원히 여기서 살아야 되겠다 생각에 간 거예요.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어요. 그만큼 제가 지쳐 있었다는 거죠 하와이로 가서는 이제 처음으로 아무 일도 안 하고 한 2~3년을 쉬게 된 거죠. 그러면서 굉장히 객관적으로 제 인생을 좀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저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김완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고 후배 K팝 아이돌과도 함께 무대를 꾸미며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가수 김완선 : 그런 부담이 없어진 거 같아요. 아, 노래를 히트시켜야 돼, 인기가 많아져야 돼, 이런 거에서 좀 떠나고 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그 걸 할 무대가 있고, 그런 건 자체가 지금은 그때부터는 굉장히 감사하게 느껴지고.]
새 앨범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라틴 팝으로 김완선 특유의 리듬감을 살려냈습니다.
최고의 '댄스 퀸'으로 10~20대를 보내고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음악을 알 것 같다는 김완선.
앞으로 김완선의 음악과 도전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YTN 박순표입니다.
영상기자:이동규
YTN 박순표 (sunny@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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