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스토리] 언론인 동료들에게, 용기를 내세요!… 영화 ‘트루스(Truth)’

[M스토리] 언론인 동료들에게, 용기를 내세요!… 영화 ‘트루스(Truth)’

2024.03.05. 오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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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루스' (2016)
감독: 제임스 밴더빌트, 주연: 케이트 블란쳇, 로버트 레드포드
[M스토리] 언론인 동료들에게, 용기를 내세요!… 영화 ‘트루스(Truth)’
▲ 영화 ‘트루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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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스(Truth, 감독 제임스 밴더빌트)’는 언론인에 관한 영화의 카테고리에서 앞단에 떠오르는 작품은 아니다. 케이트 블란쳇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은 작품치고는 국내 개봉 당시 화제성도 떨어졌고, 관객 동원도 2만 명 이하로 매우 저조한 편이었다. 영화의 완성도나 배우들의 연기력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조디악’,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토탈 리콜’ 등의 각본을 썼던 제임스 밴더빌트 감독은 ‘트루스(Truth)’라는 꽤 까다로운 프로젝트를 무난하게 완성했다. 그는 불과 10년 전, 미국을 뒤흔들었던 일명 ‘래더 게이트’ 사건을 영화화하는데 가장 큰 용기와 강단이 필요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실존 인물들에게 민감한 사건인 만큼 영화에는 진정성과 신중함, 배려도 잘 녹아들어 있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데에는 한국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가 아니었다는 점과 함께 주인공들이 목표를 이루지 못한 데다 결국 방송국에서 퇴출당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다수 관객들은 실패한 프로타고니스트, 주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스(Truth)’가 만들어졌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2004년,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프로듀서 ‘메리 메이프스’(케이트 블란쳇 役)와 미국의 전설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앵커인 ‘댄 래더’(로버트 레드포드 役)는 CBS의 간판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60분’을 이끌고 있다. 메리는 재선을 앞둔 부시 대통령의 군 복무 시절 비리에 대한 제보를 받고 새롭게 팀을 꾸려 사실을 확인해 나간다. 부시에 대한 주요 의혹은 그가 베트남 파병을 피해서 미국 내 주방위군으로 간 것인지, 그렇다면 그를 주방위군에 넣어준 사람은 누구였는지, 또 그가 성실하게 군 복무에 임했는지 등이다. ‘60분’ 팀은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부지런히 움직여 군에서 부시를 담당했던 상사들의 증언과 메모를 입수하고, 방송에 내보낸다.
이들의 보도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잠시 성공적이었던 듯하지만, 곧 한 우파 블로거에 의해 문서 위조 가능성이 제기되자 제보자와 증인들이 발을 빼기 시작한다. 메모 내용을 확인해 준 하지스 중령은 부시의 근무 태만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증언을 거부하고, 심지어 메모들이 위조된 것 같다고 말한다. 애초에 관련 문서를 ‘60분’ 팀에 넘겼던 빌 대령은 정체불명의 인물들에게서 그 문서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CBS는 빌을 카메라 앞에 세워 왜 거짓말을 했는지 추궁하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한 채 ‘래더 게이트’는 싱겁게 끝나고 만다. 결국 해당팀은 사내 청문회를 거쳐 모두 방송국을 떠난다. 청문회가 끝나려는 순간, 메리는 부시 쪽 사람들로 구성된 CBS 변호인단 앞에서 항변한다. 보도의 핵심은 부시의 군 복무 시절 특혜 및 근무 태만 여부인데, 사람들은 문서 위조 여부만 놓고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강렬한 변론이기는 했지만 방송 보도에서는 물증이 심증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을 깰 만큼 위력적이지는 못했다.
44년간 CBS에 근무했고, 존 F. 케네디 피살 사건 및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하는 등 24년간 최장수 앵커로서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댄 래더는 이 일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퇴사 후 메리는 ‘래더 게이트’ 이전에 보도했던 아부그라이브 취재로 피버디 상을 받는다. 이러한 결말이 언론인으로서 자료의 진위 여부를 보다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던 데 대한 정당한 대가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도, ‘래더 게이트’가 유능한 언론인들의 뒷모습을 보게 해준 씁쓸한 사건이었다는 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트루스(Truth)’는 이것이 언론인들의 흑역사로 묻어버리고 말아야 할 사건이 아님을 역설한다. 영화에는 사실, 민망할 정도로 ‘질문’의 중요성에 관한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질문을 멈추는 순간, 미국인들이 패배하는 것’이라는 댄의 대사는 기억해 둘만하다. 또한, 메리는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때렸던 폭력적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두려움 뒤로 숨지 않고 계속 진실을 향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저널리스트가 된 인물이다. 설사 그 질문이 재선이 유력한 현직 대통령을 향한 것이라 해도 그녀는 물음표를 거두지 않았다. 그녀가 제보자와 문서 출처에 대해 더 섬세하게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 우를 범했다고 해서 그녀의 다른 의문들까지 물거품으로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비극적 결말을 맞으면서도 그녀와 댄이 좋은 파트너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가치관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신해 나가고 있는 A.I.가 아직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질문’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트루스(Truth)’의 관점은 더 중요해진다.

메리와 댄의 깊은 신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진실을 추구해 나가는 질문만큼이나 이 영화에 강조된 것이 ‘롤 모델’과 ‘팀의 중요성’이다. 짧게나마 ‘60분’ 팀에 합류했던 ‘마이크 스미스’는 청문회 직전, 댄에게 어떻게 언론 일을 시작하게 됐냐고 묻고, 댄은 호기심이 그 이유의 전부라고 대답한다. 댄이 같은 질문을 마이크에게 던지자 마이크는 이렇게 답한다. “You(선배 때문에요).”

그러므로 마이크에게도 ‘래더 게이트’의 경험이 실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댄과 일했던 시간들은 마이크 또한 누군가의 롤 모델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루스(Truth)’의 제작진들도 이 사건이 언론인들에게 경각심과 함께 직업정신을 고양시켜 줄 발전적 실패담으로 남길 바랐을 것이다. 댄의 마지막 뉴스 멘트가 그런 바람을 대변한다.

“… 곳곳에서 위험을 무릅쓰는 나의 언론인 동료들, 모두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Courage!)”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YTN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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