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된 조선 왕릉 40기...풍수·조경·건축·미술 최고봉

개방된 조선 왕릉 40기...풍수·조경·건축·미술 최고봉

2023.09.30. 오후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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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선희 앵커, 장원석 앵커
■ 출연 : 송진욱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큐레이터, 조상민 동국대학교 4학년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와이드]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신들의 정원으로도 불리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입니다. 5백 년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가 묻힌 왕릉 40기가 최근 모두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우리가 지키고 알려야 할 문화유산, 오늘은 왕릉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왕릉을 정말 좋아해서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자칭타칭 왕릉 덕후로 불리는 문화재청 송진욱 큐레이터, 대학생 조상민 씨 특별히 초대했습니다. 두 분 어서 오세요. 마지막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왕릉입니다. 효릉이 최근 공개가 됐습니다. 먼저 보고 갈까요? 이 영상 보면서 효릉, 마지막으로 공개가 된 왕릉입니다. 어떤 임금이 묻힌 곳인가요?

[송진욱]
지난 9월 8일날 개방이 되었는데요. 효릉은 조선 제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입니다. 호릉은 희릉과 예릉과 함께 경기 고양시 서삼릉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앵커]
희릉, 예릉과 함께 서삼릉에 위치하고 있고요.

[송진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희릉은 인종의 어머니가 되시는 장경왕후의 능이고요. 그다음에 예릉은 강화도령으로 유명한 조선25대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입니다.

[앵커]
이번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을 것 같아요. 한 3주 정도 됐나요. 완전히 다 공개가 된 게. 국내 조선왕조 왕과 왕비가 묻힌 왕릉이 40기라고 하는데 사실은 42기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북한 지역에 있는 거예요. 제릉과 후릉. 그래서 이걸 빼면 남쪽에 40기가 있는 건데 이번에 일반에 공개되기까지 얼마나 걸린 건가요?

[송진욱]
세계유산 등재 전에도 비공개로 진행됐었는데요. 2009년에 조선왕릉이 모두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면서 문화재청에서 원형복원 계획을 발표했고요. 그 계획에 따라서 능형 내의 부적합 시설물을 철거하고 관람편의시설을 설치한 다음에 순차적으로 비공개 왕릉을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보통 왕릉 그러면 왕이나 왕후의 무덤이다 보니까 약간 권위적이고 뭐라고 할까, 약간 엄숙하다는 그런 느낌이 들 것 같은데 의외로 막상 왕릉에 가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또 힐링이 된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만큼 뭐라고 할까, 입지가 좋은 곳에 세우고 또 가꾸는 게 가장 큰 숙제였을 것 같은데 담당자들도 있는 겁니까?

[송진욱]
맞습니다. 조선왕릉이 제사 공간인데도 그렇게 많이 권위적이거나 엄숙한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폐쇄성이 없다는 특징인데요. 왕릉 주변에 소나무가 우거지고 햇빛이 잘 드는 조용한 숲속에 왕릉들이 위치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여지고 있는 거고요. 조선시대에는 육조 중에서 예조가 왕릉을 직접 관리하였습니다. 그다음에 이조에서 왕릉 보전을 담당 업무를 하고 있는 능참봉을 임명하게 되었고요. 이 능참봉 같은 경우에는 종9품입니다. 조선시대 관직 중에서는 가장 낮은 벼슬인데요. 이 두 사람이 보름씩 정도 나눠서 왕릉 옆에 있는 제실에서 교대근무를 하면서 왕릉을 관리하였는데요. 이 능참봉 같은 경우에는 과거 없이 관직 진출이 가능했던 직종이었습니다. 그래서 왕릉 관리 권한을 가져서 인기가 많이 있었는데요. 왕이 효성이 지극할수록 고생한 관직이 바로 이 능참봉이었습니다.

[앵커]
지금 우리 송진욱 큐레이터가 여러 가지 정보를 설명해 줬는데 조상민 씨는 이런 왕릉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우리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좀 엄숙하고 가면 왠지 옷도 점잖게 입고 가야 될 것 같고 그러는데요.

[조상민]
왕릉을 보면서 저도 처음에는 되게 엄숙하고 웅장하다, 이런 생각을 하였었는데 저도 원정대를 통해서 40기 왕릉을 다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왕릉마다 각각의 사연들이 있고 왕릉이 단순히 웅장하고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왕실이라는 곳이 마냥 좋지만도 않은 곳이고 또 왕가의 슬픔과 비애도 담겨져 있는 그런 복합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궁금한 것이 앞서서 우리가 효릉 영상을 잠깐 봤는데 주변 보니까 비석이 여러 개가 세워져 있는 곳이 있었어요.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송진욱]
비석이 태실이라고 해서 탯줄을 모셔놓은 곳입니다. 원래는 명당 산에 모셨었는데 일제 침략을 거치면서 훼손이 많이 있었던 곳입니다.

[앵커]
그럼 여기서 잠깐 질문 하나 드려볼게요. 그래픽을 좀 주시겠어요? 이 태실에 있는 비석들입니다. 지금 보면 오른쪽, 왼쪽 색깔이 다르죠. 한쪽은 검고 한쪽은 흽니다.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시청자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의미인가요?

[송진욱]
보시면 비석 재질이 다릅니다. 검정색이 오석이고요. 오석비군인데 여기가 왕가 황제, 황태자의 태실이 있고요. 그다음에 흰색이 화강석입니다. 그래서 화강석 비군인데 여기가 왕자, 공주 이런 분들. 즉 왕실 가족들의 태실이 있습니다.

[앵커]
그리고 궁금해지는 것이 조선왕실 사람들, 태가 처음부터 여기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데 있다고 모였을까, 이런 것도 궁금한데요.

[송진욱]
원래는 조선시대 때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의 건강과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서 전국 명산에 묻었습니다. 탯줄을 명당 산에 묻었는데요. 1920년대 후반에 일제강점기 때인데요. 관리랑 태항아리를 조사한다는 목적 하에 따라서 지금의 서삼릉으로 강제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앵커]
조선왕릉 40기도 지금 보면 곳곳에 다 흩어져 있어요. 한 곳에 모여 있지 않습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왕릉을 다 보려면 정말 큰 마음먹고 다녀야 될 것 같아요. 아까 우리 대학생조상민 씨도 그런 얘기를 잠깐 해 주셨습니다마는 시민원정 행사가 있었다고. 이 40기의 능을 모두 탐방하는 그런 행사였다고 하는데 참가하게 된 계기가 어떤 걸까요?

[조상민]
제가 이번 조선왕릉원정대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솔직히 말하면 여기 계신 송진욱 전시 큐레이터 덕분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제가 문화유산 산업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송진욱 큐레이터님께 조선 왕릉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강의를 들으면서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왕릉만의 아름다움과 역사, 특징들에 관해서 배우게 되었고 기회가 된다면 조선왕릉을 답사하며 강의 때 배웠던 내용들을 제 눈으로 직접 견문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앵커]
우리 송 큐레이터께서 큰 역할을 하셨는데.

[앵커]
재미있게 강의를 해 주셨나 봐요.

[조상민]
너무 재미있게 강의를 잘 해 주셨습니다.

[앵커]
혹시 가능 내용 중에 기억 남는 게 있을까요?

[조상민]
나중에도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사릉의 사연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사릉의 뜻이 생각할 사, 혹은 그리워할 사 자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연유가...

[앵커]
사릉은 누구의 릉인가요?

[조상민]
정순왕후의 능입니다. 단종의 어머니였던 정순왕후의 능이었는데. 돌아가셨는데 평생 동안 단종을 그리워하시면서 매일마다 언덕에 올라가셔서...

[앵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 게 남양주에 있는 단종 비, 정순왕후의 사릉입니다. 저희가 뒤에 나올 얘기라서 급히 지금 사진을 올려놨는데요. 저기를 갔다 오신 거죠?

[조상민]
네, 맞습니다.

[앵커]
실제 그리워하는 그런 것들이 현장에 가서도 느껴졌을까요?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조상민]
강의 때도 들었지만 또 현장에 가서도 해설사분들께서 다 해설을 해 주셨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해설을 듣고 나서 왕릉을 보니 뭔가 조금 더 다르게 해설들과 사연들이 저한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앵커]
40기를 다 돌아다니려면 일정 그리고 코스 짜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다 돌아다녔습니까?

[조상민]
일정은 8월 22일부터 27일까지 5박 6일로 일정이 진행되었는데 1일차에는 먼저 경기도 구리시 소재의 동구릉에서 집합하였고 동구릉 중 하나인 건원릉 정자각에서 원정대의 무사 원정을 기원하는 제사인 고유제와 함께 발대식을 진행하였습니다.

[앵커]
발대식 제도 올렸군요?

[조상민]
그렇습니다. 발대식이 끝난 후에는 건원릉을 시작으로 동구릉 전부와 남양주 소재의 홍유릉까지 답사하였습니다.

[앵커]
이 원정단이 출발한 장소가 건원릉이라고 했는데 누구의 능인가요?

[조상민]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1대 왕인 태조 이성계의 릉으로 건원릉은 다른 능과는 달리 봉분에 억새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 억새가 태조의 유원에 따라 태조의 고향이었던 함흥에서 가져와서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앵커]
탐방을 다닌 일정을 보니까 저희가 뉴스에서 가장 덥다고 전해 드렸던 그때 한참 왔다갔다 해서 그래서 지금 또 까맣게 탄 게 아닌가, 그렇게도 보이는데 어땠습니까?

[조상민]
실제로 이번 여름이 유독 더웠던 것은 맞지만 원정 당시에는 비로 인해서 날씨가 선선했던 적이 많기 때문에.

[앵커]
그 와중에 비가 왔네요, 다행히도.

[조상민]
전체적으로 폭염 피해 없이 그래도 원정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아까 사릉 얘기 잠깐 해 주셨는데 40기 능마다 각각 이야기가 정말 다채롭게 있잖아요. 사릉 외에 또 특별히 다가왔던 능이 있을까요?

[조상민]
저는 사릉의 주인이신 정순왕후의 남편이셨던 단종의 장릉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영월에 계신 영월장릉인데 다른 왕릉들에 비해서 왕릉으로 가는 길이 굉장히 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험했던 이유가 단종이 폐위가 되고 나서 급하게 엄홍도라는 분이 시신을 수습해서 몰래 매장을 하셨기 때문에 그 매장한 자리에 왕릉을 짓다 보니 다른 왕릉들에 비해서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길지가 아니라 산 중턱에 매장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올라갔던 길이 험했던 기억도 있고 또 근처에 소나무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이 험할수록 솔방울이 많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굉장히 솔방울이 많았던 기억이 있으면서 단종의 고달팠던 삶과 애환이 그대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이렇게 몇 번 대화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왕릉에 대한 열정, 그리고 지식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됐는데 이렇게 대학생을 왕릉으로 이끈 명강의를 해 준 송 큐레이터는 40기 왕릉 중에서 어떤 왕릉이 가장 손꼽게 기억에 남나요?

[송진욱]
사실 저는 이걸 직업으로 하다 보니까 왕릉이 다 똑같아 보여요, 사실. 애매한데. 그래도 조금 저도 마음에 드는 곳이 제가 2005년에 왕릉을 처음 접했는데요. 거기가 강남에 있는 선정릉입니다. 거기가 조금 제 마음속에 가는 왕릉 중 하나입니다.

[앵커]
왜 특별히 선정릉이 마음에 드실까요?

[송진욱]
처음 가본 곳이었고요, 일단은. 왕릉 자체를 아예 몰랐던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직접 제 눈으로 딱 보니까 정말 이런 게 있구나, 정말 왕릉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구나. 이게 저한테는 신기하고 충격적이었어요, 사실은. 저는 없어진 줄 알았거든요, 조선왕릉 자체가. 그런데 온전히 다 보존되었다는 게 저는 신기했었습니다.

[앵커]
저희가 앞서 맨앞에서도 두 분을 소개해 드렸지만 왕릉과 특별한 사랑을 하시는 두 분이에요. 왕릉덕후라고 자칭타칭 주변에서. 굉장히 유명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도대체 어떤 계기로 왕릉과 이렇게 사랑에 빠지게 된 건지 우리 대학생 조상민 씨부터 얘기를 들어볼까요?

[조상민]
저는 일단 전공이 역사학과다 보니까 과에서 답사를 가면서 왕릉들을 많이 자주 봤었고 또 앞서 말씀했듯이 송진욱 큐레이터께 왕릉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서 왕릉에 빠지게 되었지만 왕릉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이번 조선왕릉 원정에서 왕릉숲길을 걸을 때와 왕릉의 능침공간에 올라갔을 때가.

[앵커]
능침공간은 뭐하는 데인가요?

[조상민]
능침공간은 평소에는 개방되어 있지 않은 곳인데 특별한 행사는 원정대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왕릉의 봉분과 성물이 있는 공간입니다. 그곳은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올라가보기는 힘들지만 저희는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 능침공간들까지도 답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신성한 공간에 들어가보니 좀 더 빠지게 된 케이스일까요?

[조상민]
맞습니다. 확실히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확실히 직접 견문하면서 많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앵커]
전공도 사학이라고 하셨는데 사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조상민]
가장 기억에 남는 계기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서 저에게 책을 많이 사주셨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읽고 가장 좋아했던 책이 역사 소설인 삼국지라는 책입니다. 그 삼국지 소설을 읽으면서 삼국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역사소설도 그렇고 정통역사책도 그렇고 책을 많이 읽다 보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에 빠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런 역사학도가 이제 왕릉과도 사랑에 빠지게 됐습니다. 우리 송 큐레이터님은 어떤 계기로 이렇게 왕릉에 빠지게 되셨을까요?

[송진욱]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일단은 아직도 있다는 게 충격이었고요. 사실 저는 조선왕실사를 좋아했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왕실사를 공부하다가 이 왕릉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신기하고. 그래서 고3 때, 2005년 그때부터 왕릉을 다니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까지 직업으로 있지 않았을까.

[앵커]
성공한 덕후의 전형이네요.

[앵커]
그렇죠. 그럼 송 큐레이터님도 혹시 어떤 책이라든지 영화나 드라마, 계기가 있었습니까?

[송진욱]
저는 사극이었습니다. KBS... 얘기해도 되나요?

[앵커]
그럼요.

[송진욱]
K본부에서 하는 사극들을 보고 제가 심하게 빠져 있었었어요, 사극 자체에. 그래서 그걸 보다가 조선왕실을 계속 태조부터 순종까지 쭉 찾아보고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보고. 그때 당시에 인터넷이 그렇게 많이 발전이 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렵게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것도 찾아서 보고 그렇게 해서 공부를 하다가 왕릉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앵커]
신라나 백제시대의 왕릉도 있잖아요.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보면 왕릉의 특징이 다를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송진욱]
시기마다 조금씩 조금씩 변천 과정이 있는데요. 신라왕릉 같은 경우에는 돌을 맨 처음에 쌓고 봉분을 크게 쌓은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앵커]
화면에 시대별 왕릉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설명과 함께 들으면 좋을 것 같아요.

[송진욱]
봉분을 크게 쌓은 것이 특징인데요. 신라 후기부터 무덤 주변에 성물들이 세워졌던 시기였고요. 백제 같은 경우에도 화면에 보시면 돌무지 무덤의 형태도 있었기 때문에 봉분을 크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고려왕릉 같은 경우에는 신라 후기 양식을 계승함과 동시에 무덤방을 석실로만 만들어서 돌로만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장치가 없어서 도굴 피해가 컸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후기 같은 경우에는 지금 보시는 게 고려 공양왕릉인데요. 이거 같은 경우에는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능이다 보니까 형태는 고려왕릉 플러스 조선왕릉의 특징이 보였던 거고요. 조선왕릉 같은 경우에는 능침 주변에 여러 성물들이 시기마다 발전이 되었고요. 능침을 포함해서 정자각이라든지 홍살문, 능혁 근처에 제실을 조성하였고요. 문석인이나 무석인은 시기마다 조금씩은 다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같은 경우에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덤 내부가 회격이라는 석회를 사용해서 도굴 피해가 전혀 없었습니다.

[앵커]
그래서 지금까지 문화재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는 그런 이유가 있겠군요.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가야 고분군도 세계유산이 됐는데 어떤 가치를 인정받은 건가요?

[송진욱]
얼마 전인데요. 바로 9월 17일에 우리나라에서는 16번째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먼저 실존했던 가야의 역사를 고분군을 통해서 증명이 된 거고요. 동아시아 고대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이런 점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등재된 곳이 7곳인데요. 최소 거의 3000기 정도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가야 자체가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서는 기록이 없기는 한데요. 많지는 않은데 이 고분군 발굴을 통해서 출토품이 좀 나왔습니다. 토기나 철기, 그다음에 장신구 등 출토품이 나왔는데요. 이 고분군을 통해서 가야를 알리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대학생 조상민 씨한테 하나 더 여쭤보고 싶어요. 왕릉과 사랑에 빠졌으니까 앞으로 왕릉과 관련한 연구나 이것과 관련된 직업, 이런 것들을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 계획이 어떨까요?

[조상민]
우선 저는 왕릉도 그렇고 궁궐도 그렇고 우리 문화유산을 활용한 행사들이 굉장히 많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문화재 재단이나 아니면 문화재청 기획 쪽에 들어가서 기회가 된다면 그런 문화유산을 활용한 행사들을 기획하고 시행하는 쪽에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앵커]
왕릉의 매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행사 기획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왕릉을 찾고 또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는 그런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왠지 오늘 이후로 학부모님들이 삼국지라든지 아니면 사극 본다고 자녀분들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앵커]
성공한 덕후가 우리 문화재를 이렇게 많이 알리고 연구하고 그런 일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그런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앵커]
맞습니다. 왕릉, 당대 최고의 풍수 또 조경, 건축, 미술학자의 솜씨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양식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그래픽으로 시청자 여러분, 보이시죠?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자녀들과 함께 왕릉 나들이 하시면서 우리 옛 문화를 즐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문화재청 조선왕릉누리집에 연휴 기간 관람 가능한 시간 나와 있습니다. 또 10월 3일까지 무료 개방이라고 하니까요.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한번씩 방문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문화재청 송진욱 큐레이터 그리고 대학생 조상민 씨 함께했습니다. 오늘 두 분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YTN 김정회 (jungh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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