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큐] 류성룡 탄식 담긴 대통력...이순신 '최후' 기록 공개

[뉴스큐] 류성룡 탄식 담긴 대통력...이순신 '최후' 기록 공개

2022.11.25. 오후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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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광연 앵커, 박석원 앵커
■ 출연 :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 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큐]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에 오른 문신이자 징비록 저자로 잘 알려진 서애 류성룡 선생의 것으로 보이는 옛 달력이 일본에서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료에는 특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최후 모습이 기록돼 있어 특히 주목받고 있는데요.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님과 함께 이 내용 들어보겠습니다.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노승석]
안녕하세요.

[앵커]
제목만 보시고 이름이 비슷해서 영화배우님이신가 싶은데 류성룡 비망기입 대통력, 직접 소개해 주시죠.

[노승석]
류성룡 비망기입 대통력, 길어서 읽기도 어렵고 의미 파악도 바로 어렵다고 많은 분들이 얘기를 하시죠. 그러나 원본을 보면 정확하게 대통력이라는 세 글자로 적혀 있습니다. 그 밑에는 개별적으로 간지가 적혀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요. 원래는 대통력이라고 되어 있는데 대통이라는 의미는 크게 통일해서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책력이다라는 의미로 대통력이라는 세 글자로 의미를 써왔던 것인데요. 누구든지 이 대통력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1년에 대한, 365일에 대한 메모리 형태로 쭉 기록이 되어 있고 여기에는 특히 조선사회에서는 음양오행, 간지와 대입을 해서 별자리 등을 기입을 해서 그날그날의 길흉을 따집니다.

어느 날에는 길하고 어떤 일을 해야 좋고. 이런 것들이 적혀있는 게 바로 대통력이죠. 그런데 이건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대통력이지만 유독 류성룡 비망기입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바로 류성룡 선생만의 특별한 기록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류성룡 비망기입이라는 말을 붙인 거죠. 그러면 비망기입이라는 말은 어떤 말인가. 잊어버릴 것을 대비해서 기록들을 적어둔다, 이런 의미가 비망기입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편리상 붙여진 게 이런 류성룡 비망기입 대통력이라는 것입니다.

[앵커]
소장님의 설명 들었는데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고 400여 년 전 얘기기 때문에 관심들이 많거든요. 서둘러서 질문드리겠습니다. 특히나 류성룡 선생의 탄식이 등장해서 화제인데 직접 소개해 주시죠.

[노승석]
탄식이 마지막 구절에 오호라, 이런 한자로 되어 있습니다. 원본을 보시면 상당히 일반인이 보기 어려운 상태로 적혀 있는데요. 충무공의 그런 마지막 전투 상황을 평소에 늘 기억했다가 1600년 경자년에 이걸 특별한 메모로 적어둔 것을 경자년의 의 표지에 이것을 만들어서 1년 동안 이 책력을 사용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특히나 이순신 장군을 부하들이 말리는 내용은 류성룡의 징비록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면서요?

[노승석]
그렇습니다. 징비록에는 마지막 상황에 대해서 탄환을 맞았다라고만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순신 장군께서 직접 활과 돌을 무릅쓰고 나아가려고 하니까 부하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말리며 말하기를, 원문에는 대장불의자경이라고 되어 있죠. 대장께서 스스로 가볍게 하시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스스로 가벼이 해서는 안 되십니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이 표현이 당시 사료라든지 관련 문헌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내용이 되겠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대장은 이순신 장군을 말할 텐데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는 설명이었는데. 소장님, 그런데 지금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게 1598년 무술년이고 사실 400년 넘는 전 이야기를 하는 게 굉장히 흥미로운데 이번에 공개된 대통력 같은 경우는 2년 뒤인 경자년이거든요. 2년의 시차가 있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 까요?

[노승석]
어제 많은 보도와 함께 내용이 많이 나왔는데 쭉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자세히 말씀을 드릴까 하는데요. 전사하신 후에 그다음 해 1599년 2월 8일자에 선조실록을 보면 형조좌랑 윤양이 이순신에 대한 전공을 선조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 4월 25일날 이순신에 대해서 업적을 인정하고 사당을 세우는 것에 대한 추진하겠다는 것을 홍문관에서 보고를 하죠. 그 뒤에 1600년 1월 29일에 선조는 직접 언급을 합니다. 그동안 이순신에 대한 사당을 국가 차원에서 세우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야기가 됐었는데 지금까지 세워지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 뭘 했느냐라는 질책성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 과정을 봤을 때는 전사 후에 1599년 이때가 기해년이죠. 이때부터 충무공에 대한 업적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고 사당까지 최초로 건립해야 된다라는 이야기가 선조로부터 직접 나왔던 것이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정의 분위기에 맞춰서 류성룡 선생도 지난날에 대한 전사 상황을 기억하면서 적어둔 내용을 경자년에 책력에 표지로 삼아서 본인도 역시 이것을 하나의 중요한 자료로 늘 읽고 봤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앵커]
우리가 흔히 이순신 장군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해석이 됐는데 옛 명제상의 다이어리를 통해서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한번 들여다봤고, 이런 이순신 장군 기록 말고도 1600년 경자년 풍경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흔히 다이어리에는 날씨도 기록하고 약속도 기록하는데 어떤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나요?

[노승석]
경자년의 대통력을 보면 물론 날짜별로 주요한 일들, 주요한 사건들 또 특기할 만한 내용들을 아주 자세하지는 않지만 대표적인 이야기들을 조목조목 적어두셨는데요. 특히 일본에 잡혀간 강항에 대한 이야기가 6월 5일자에 붉은 색깔 글씨로 주서로 작성되었습니다. 빨간색으로 기록을 했다는 것은 본인이 보기에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거죠. 그리고 또 꿈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어머니를 모시고 꽃을 구경했다는 이야기. 또 어머니에 대한 건강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소장님, 시간은 거의 다 됐고 30초 정도 남았는데 저희가 이런 얘기를 쭉 하는 건 결국 이 질문인 것 같거든요. 대통력의 사료적 가치는 어느 정도입니까?

[노승석]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은 아니지만 사후에 이순신의 전황을 알 수 있는 그런 사료로써의 중요한 의미가 담긴 표지의 내용. 이게 가장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요. 결사적인 전투 상황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전사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내용으로써 오해를 불식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고 이순신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라고 볼 수가 있고요. 특히 류성룡과 이순신의 그런 남다른 우정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써 높이 평가할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지금 화면처럼 심하게 흘려쓴 초서체라서 해독이 까다로웠다고 했는데 소장님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잘 들었습니다. 노승석 연구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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