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조선 하늘의 대스타, 중국으로 향한 이유는?

100년 전 조선 하늘의 대스타, 중국으로 향한 이유는?

2022.08.15. 오전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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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는 우주·항공 분야 큰 성과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일제 강점기던 100년 전, 우리 민족의 최고 스타였던 비행사를 떠올려봅니다.

처음으로 조선의 하늘을 난 조선인, 안창남 선생인데요.

만 29살 짧은 삶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보장된 꽃길을 마다한 숭고한 행적에 있습니다.

이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영화 '안창남 비행사'입니다.

100년 전인 1922년, 조선의 하늘을 난 최초의 조선인 안창남의 활약을 담았습니다.

해방의 기쁨 속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안창남이 일제 강점기 한국인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준 존재였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영화 '안창남 비행사' 대사 : "그대신 나에게는 3.1정신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치고 있다"]

조종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18살에 일본으로 건너간 안창남은 비행학교를 거치며 천재적 비행 기술을 인정받았습니다.

3년 뒤, 서울과 인천 하늘에서 선보인 고국 방문 비행은 일본인과 서양인의 비행만 보던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줬습니다.

안창남의 이름이 들어간 민요 개사곡이 유행했고, 비누와 석유 등 각종 광고, 잇단 책 출판 등 안창남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안창남의 비행을 담은 책은 일제가 금서로 지정할 정도였습니다.

[강나진 / 국립항공박물관 학예연구사 : (고국 방문 비행은) 우리도 하면 된다는 도전 정신과 희망,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시켰던 행사였습니다. 또한 스스로에게 우리도 뭔가 꿈을 이뤄낼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던 행사였습니다.]

고국 비행을 계기로 안창남의 삶도 선회했습니다.

모국의 애국지사들과의 만남에 이어 간토 대지진 직후 한인 학살을 목격한 안창남은 인기 비행사의 삶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항일투쟁을 위해 중국군에 합류했고, 독립운동단체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해 의열투쟁을 벌였습니다.

만 29살이던 1930년, 안창남은 비행훈련 중 추락해 공중의 별로 사라졌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로 위성을 띄우고 국산 초음속 전투기가 초도 비행에 성공한 올해,

안락한 삶 대신 도전과 조국 독립을 향한 희망을 선택한 청년 비행사의 삶을 기리기 위한 전시가 더욱 뜻깊습니다.

YTN 이승은입니다.

[특별기획전 '공중용사 안창남']
오는 10월 10일까지 국립항공박물관



YTN 이승은 (s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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