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듯 밤의 빛을 담는 '라이트 페인팅'

수행하듯 밤의 빛을 담는 '라이트 페인팅'

2021.09.05. 오전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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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진 예술 하면 '순간의 포착'이란 말이 떠오르죠.

반대로 어둠 속에서 오랜 시간 셔터를 열어둔 채 사진을 찍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70년 전 피카소가 시도해 유명해진 라이트 페인팅 기법이라고 하는데요.

이승은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이정록 展, 9월 28일까지, 갤러리 나우]

하늘과 땅을 잇는 흰 사슴이 한라산 백록담에 내려왔습니다.

계절과 함께 돋아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슴뿔에는 자연의 생명력이 담겼습니다.

이정록 작가는 4년간 연구 끝에 필름에 지속광과 순간광을 함께 담는 자신만의 라이트 페인팅 기법을 완성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카메라 셔터를 열어둔 채 배경을 필름에 노출한 뒤 수십, 수백 번 플래시를 터트려 나비 형상을 중첩합니다.

한 작품을 길게는 6시간 정도 촬영합니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세계의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이정록 / 사진 작가 : 사진이라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리얼리티 위에 환상적인 것이 입혀지는 굉장히 효과적인 힘 있는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신목-폭낭> 시리즈, 이흥렬 작가]

제주의 팽나무가 어둠 속에서 신비한 존재감을 내뿜습니다.

바다로 간 가족의 안녕을 비는 마음을 하늘로 전하는 신목입니다.

평화로웠던 마을을 지키던 팽나무,

4.3사건으로 재만 남은 곳에 홀로 남아 역사를 기억합니다.

작가는 나무를 찍기 위해 밤을 택했고, 때문에 수고로운 라이트 페인팅 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조명을 설치한 뒤 밤이 오길 기다렸다가 밤새 한 나무와 이야기하듯 촬영을 진행합니다.

[이흥렬 / 사진작가 : 밤에 찍는 이유는 마치 무대에서 주인공들이 연기를 할 때 조명을 집중해서 받잖아요? 스팟 조명을 받는 것처럼 나무도 역시 주인공이기 때문에 지구의 주인공이니까, 사람과 같은 조명을 해서 나무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인 거죠.]

어둠 속에서도 작가들은 빛을 물감 삼아 수행하듯 자연의 숭고함을 담고 있습니다.

YTN 이승은입니다.

YTN 이승은 (s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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