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선 유서 단독보도한 신문에 묻는다 [미디어비평]

박지선 유서 단독보도한 신문에 묻는다 [미디어비평]

2020.11.09. 오전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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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유서 단독보도한 신문에 묻는다 [미디어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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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FM 94.5 [열린라디오 YTN]

□ 방송일시 : 2020년 11월 7일 (토) 20:20~21:00
□ 진행 : 김양원 PD
□ 대담 : 김언경 뭉클미디어인권연구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비평] 박지선 유서 단독보도한 신문에 하는 질문 5가지


◇ 김양원 PD(이하 김양원)> 한 주간 뉴스를 꼭꼭 씹어보는 시간, 미디어 비평입니다. 오늘은 김언경 뭉클 미디어 인권연구소장과 전화연결 되어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언경 소장(이하 김언경)> 네 안녕하세요.

◇김양원> 오늘 가져오신 첫 소식도 인권 감수성과 관련한 내용이네요.

◆김언경> 사실 그동안 이런 이야기 제가 참 많이 했는데요. 그 많이 했다는 사실 자체가 참담하고 이렇게 계속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현실이 더 참담합니다. 바로 개그맨 박지선 씨의 죽음과 그에 대한 부적절한 언론보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김양원> 조선일보가 고 박지선씨의 유서를 [단독]이라는 타이틀로 공개한 내용을 말씀하시는 듯 해요.

◆김언경> 조선일보는 지난 3일 박지선 씨 어머니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노트 1장짜리 메모가 남겨져 있었는데, 이것이 유서성 메모를 단독 취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이 보도의 제목에는 단독이라고 써있고요. 다음에 박지선 엄마 유서 그리고 작은 따옴표로 엄마의 뜻을 적었습니다. (<[단독] 박지선 엄마 유서 ‘피부병 힘들어한 딸만 보낼 수 없다’> 저는 오늘 굳이 방송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보도는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이라고 하면서 메모에는 어떤 어떤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담겼다가 아니고 담겼다고 한다 라는 것은 조선일보 취재진이 직접 그 내용을 본 것은 아니고 누군가에게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죠.

◇김양원> 저도 이 기사를 봤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내용을 비판하는 댓글이 많았어요.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거죠.

◆김언경> 먼저 이 보도는 유서성 메모라는 것을 취재해서 단독으로 그 내용을 전했다는 것이 핵심이잖아요. 2일 경찰은 “현장에서 박씨 모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를 발견했으나 유족 뜻에 따라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기자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걸로 끝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유가족을 취재하지도 말고, 경찰들을 털어서 메모의 내용이 뭔지 알아내 보도하려는 그런 노력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김양원> 심히 무례한 짓이고, 가족을 한 순간에 잃은 유족에게는 가슴에 소금을 뿌리는 짓인데.. 자살보도 가이드라인에도 부적절했어요?

◆김언경> 그렇죠. 우선 자살보도 관련한 가이드라인은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한국기자협회가 2004년 10월에 한국자살예방협회와 같이 공동으로 제정했는데요. 이게 좀 짧았습니다. 너무 짧아서 이렇게 잘 지키지 못하나 싶었는지 2013년 3월에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란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만든 이후에도 계속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두 번이나 업데이트를 해서 지금은 2018년에 발표한 자살보도권고기준3.0 버전이 있습니다. 이제 언론인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SNS를 통해서 사실상 일인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숙독하셔서 자신이 쓰고 말하는 것이 이 기준에 부합한가 항상 검토하고 되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은 조선일보 보도를 자살보도권고기준 3.0에 따라서 어떤 문제가 있나 짚어볼게요.

먼저 유서 공개를 하지 말라는 기준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자살보도권고기준 3.0] 3조는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라고 하고요. 4항에서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합니다. : 고인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살의 미화를 방지하려면 유서와 관련된 사항은 되도록 보도하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항 전체를 조금 더 설명드리고 싶은데요. 1항에서는 “유가족의 심리 상태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자살 사건 조사와 보도에서 유가족은 다양한 측면에서 힘든 상태이며 자살보도로 더욱 고통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양원> 그렇군요. 하지만 이런 주장도 있을 수 있잖아요. 뭔가 억울한 사연이 있는 죽음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고 장자연씨 사건 같은 경우인데요요. 이런 경우는 유서를 공개하는 것이 죽음의 진실이나 책임을 따지는데 꼭 필요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김언경> 모든 죽음에서 유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사실 그동안 많이 했지요. 그런데 그 기준은 그 유서 공개가 공익적 가치가 충분한가입니다. 예컨대 성완종 리스트라고 알고 계신 사례가 있죠. 2015년 4월 자원외교 비리 관련 조사 대상이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신의 로비 리스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고인의 상의 주머니에는 당시 정부 주요인사 등의 이름과 돈의 액수가 써 있는 메모가 있었죠. 이런 것도 사실 유서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내용은 공익적 가치가 있기에 보도했습니다. 자신이 당했던 부당하고 끔찍한 고통을 기록한 고 장자연 씨의 유서 역시 우리가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유서라 하더라도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 우리가 보도합니다. 하지만 박지선 씨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조선일보는 그 판단을 분명하게 했어야 합니다.

◇김양원> ‘유서 공개가 공익성이 있는가?’를 두고 거듭 검토하고 결정했어야 한다는 것이군요. 고 박지선씨 같은 연예인이나 사회인사의 극단적 선택은
유족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미치는 효과가 큽니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 내 지인이라는 생각에 그만큼 충격이 크기 때문이잖아요. 이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알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되는데 말이죠.

◆김언경> 네, 사실 이번 고 박지선씨 관련 보도를 했던 대부분의 언론들이 너무나 성급하게 사망 원인을 ‘자살’이라는 식으로 성급하게 보도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어떤 죽음이 자살인지 아닌지가 확실하게 확인되기 이전에 함부로 자살임을 암시하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최근 자살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서 이런 기본은 많이 이루어져서 과거에 비해서 보도 제목에 자살이라는 말 자체도 거의 안 들어가고 숨져. 죽음, 이런 식으로만 표현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어차피 그렇게만 써도 다 아는데 뭘 그러냐 이런 말씀을 하실 지도 모르는데요. 그래도 언론이 그렇게 자살을 부각하지 않는 것이 매우 필요하고 무엇보다 자살이 사인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함부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의 1조 4항에서도 ”자살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살로 단정 지어 보도하지 않습니다. : 자살로 명확히 판정되기 전까지 사인을 자살로 추정하거나 단정하는 보도는 삼가야 합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조선일보 등이 보도 안에서 아직 죽음의 원인을 모르겠다는 내용을 쓰고 있으면서도 유서 운운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서도 “모녀의 시신에는 사인(死因)을 추정할 만한 뚜렷한 단서가 남아 있지 않았으며, 경찰은 일단 음독(飮毒)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모녀의 사망 경위는 조사 중이지만, 타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건 무슨 의미이냐. 아직 사인을 확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서성 메모랍시고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알려주려 했다는 것이 참 한심하다 싶습니다.

◇김양원> 그렇군요. 죽음의 동기를 성급하게 추정해선 안된다.. 또 한가지 이번에도 언론보도를 보고 느낀 점은 왜? 무엇 때문에? 라는
사망 동기에 대한 섣부른 추정입니다. 사실 누구나 이런 유명인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게 되면 왜? 라는 물음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원인을 함부로 보도해서도 안되지 않습니까?

◆김언경> 맞습니다. 자살보도권고기준 3.0의 “구체적인 자살방법,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는 매우 위험합니다.”라면서 “자살은 단순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인들로 유발됩니다. 따라서 표면적인 자살 동기만을 보도할 경우 결과적으로 잘못된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살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 보도는 파급력이 크므로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유명인의 자살이나 자살시도를 다루는 보도는 모방 자살을 초래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는 이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예민한 사항이었습니다. 고인은 유명한 분이며, 또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으며, 존경하고 공감대를 주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돌아가셨고, 그의 어머니가 함께 돌아가신 사안은 매우 신중하게 다뤘어야 합니다. 사실 어려운 상황에서 어려운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이런 보도를 함부로 하면 사회적으로 부정적 파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자살 보도는 유가족에게 예를 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사안으로 인해서 2차, 3차로 사회적 불행이 생기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이 보도는 매우 부적절한 보도였습니다.

◇김양원> 지금까지 짚어주신 내용들을 정리하면, 유서공개로 인한 유가족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 또 공익에 부합한가, 죽음의 원인을 너무 빨리 자살로 몰아가지 않았나, 모방자살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않았나... 이런 내용인데요,
이후 다른 언론들 보도는 어떻게 보셨나요?

◆김언경> 조선일보 보도 이후 몇몇 매체도 뒤따라 유서 내용을 기사화했고 무책임한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인이 앓고 있던 지병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보도들이 많았다는 것인데요. 다수 언론이 지병에 집중하면서 11월 3일 해당 병명은 종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일보가 해당 보도 이외에도 고인의 질병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연달아 보도했거든요. 다른 언론사들도 비슷하게 과거 고인이 병으로 힘들다고 말한 내용까지 끄집어내서 상세하게 소개하는 보도를 내놨습니다. 일종의 어뷰징 보도들이 이어진건데요, 이데일리 11월 3일 <박지선, 생전 호소한 ‘ㅇㅇ ㅇㅇㅇㅇ’…“ㅇㅇ 얘기 나오면 운다”> 여성조선 <고 박지선 괴롭혔던 ‘ㅇㅇ ㅇㅇㅇㅇ’ 증상은?> 헬스조선 <박지선 사망...지병 ‘ㅇㅇ ㅇㅇㅇㅇ’ 어떤 질환이길래> 등이었습니다. 특히 헬스조선의 보도는 "박지선이 평소 앓던 ㅇㅇ 질환으로 힘들어했다", “박씨의 지병이었던 ㅇㅇ ㅇㅇㅇㅇ는 어떤 질환일까?”라며 고인의 지병을 논란거리나 화젯거리 정도로 보도했는데, 이런 것은 뭐라고 말해야할까요? 그냥 화젯거리가 되니 돈이나 벌어보겠다는 심정으로 마구 써재끼는 것 아닐까요?

◇김양원> 또한번 죽음으로 또다시 클릭 장사를 한 언론들이네요.

◆김언경> 오죽하면 지난 4일 한겨레가 사설을 썼는데요, 인용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번에도 대다수 언론이 유서 공개를 자제했는데 조선일보가 유독 ‘단독’을 붙여 보도한 것은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클릭 장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조선일보 누리집에는 이 기사를 비롯해 박 씨 자살 관련 기사가 150개 가까이 올라와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 윤리는 아예 휴지통에 처박은 듯하다.”라고요. 이런 현상은 유튜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요. “언론은 자살 관련 보도를 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 과도하게 보도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유가족의 슬픔을 배가하고, 모방 자살을 부르는 원인이 됩니다. 특히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더 이상 자살보도권고기준을 어기는 언론행태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양원> 유튜뷰, SNS를 통해서 모두가 미디어 생산자인 시대죠. 다시한번 자살보도권고기준 알고 지나갔으면 하고요.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사망자 수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자살 사망자 수가 많은데요. 언론이 이런 사회적인 비극을 줄이는데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미디어비평 ‘뭉클’하게 전해주신
김언경 소장님 감사합니다.

◆김언경> 네, 감사합니다.

◇김양원> 지금까지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 김언경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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