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개 중 73개 행방 묘연" 조선 국새 어디에?

"412개 중 73개 행방 묘연" 조선 국새 어디에?

2020.02.22. 오전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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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국새 6개 중 유일하게 환수…재미교포 기증
인(印) 대신 보(寶) 사용…"사대 관계 청산 의지"
’자주외교’ 상징 고종의 국새 ’대군주보’ 귀환
수사·압수 아닌 자발적 기증으로 환수…큰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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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고종이 자주 외교를 꿈꾸며 만들었지만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국새 '대군주보'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왕권의 상징인 국새와 어보는 조선 시대 모두 4백 개 넘게 만들어졌는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혼란기를 겪으며 70개 이상이 분실된 상태입니다.

기정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882년 고종 때 만들어진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입니다.

고종의 명으로 만들었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고 약 15년 동안 외교 분야의 대신 임명과 조약 관련 문서에 실제 사용된 것도 확인됐습니다.

기록상 고종 때 만든 국새 6개 가운데 유일하게 소재가 확인된 것인데, 한 재미교포가 경매로 매입했다가 최근 우리 정부에 기증했습니다.

'조선국왕지인'처럼 주로 도장 인(印)자로 끝나던 이전 국새와 달리 보물, 도장이란 뜻의 보(寶)자를 쓴 게 특징입니다.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고자 하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서준 /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 : (사대관계나 제후국이 쓰던 인(印)자 대신) 끝 글자를 대군주보처럼 보(寶)자의 국새를 썼다는 것은 자주적인 외교와 중국으로부터의 간섭 배제를 위한 고종의 큰 노력이 나타나 있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새가 국권을 상징하는 공문서용 도장이라면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의례용 도장.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후에 만든 게 많습니다.

대군주보와 함께 돌아온 효종 어보도 조선 17대 임금인 효종이 승하한 지 81년 뒤인 1740년에 제작된 것입니다.

국새와 어보 같은 유물은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

소지 자체가 불법이라 과거 해외 수사 공조나 압수와 같은 방식으로 환수된 적이 있지만, 이번엔 소유자의 자발적인 기증으로 돌아와 의미가 더 큽니다.

[이성주 / 재미교포·기증자 이대수 씨 아들 : (1960년대에 미국에 오신) 제 아버지는 한국의 유물을 보면, 역사적인 귀중품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조선 시대 만들어진 국새와 어보는 모두 412개.

이 가운데 국새 28개, 어보 45개 등 73개가 어디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혼란 속에서 도난된 것들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번 기증을 계기로 도난된 국새와 어보를 되찾기 위한 다양한 홍보 노력을 하겠다는 방침입니다.

YTN 기정훈[prodi@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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