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있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영화 '김복동'

[뉴있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영화 '김복동'

2019.07.26. 오후 8:39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 진행: 변상욱 앵커, 안보라 앵커
■ 출연: 송원근 / 영화감독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불꽃 같은 여성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고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우리 곁을 찾아옵니다. 할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이제 반 년이 지났는데요.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영화에 녹여낸 송원근 감독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감독님 어서오십시오. 어떤 영화인지 일단 소개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송원근]
간단하게 먼저 말씀 드리면 영화 제목 자체가 김복동이기 때문에 김복동이라는 1월에 돌아가셨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다룬 이야기인데요. 1992년 할머니께서 세상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린 후 돌아가시기까지 할머니의 투쟁사 그리고 인간적인 고뇌 그 역사 속에서 어떤 생각들을 하시면서 이 활동을 하셨는지를 관객 여러분들께 소개시켜드리는 그런 영화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저희가 감독님을 소개하기에 앞서 영상 구성을 짧게 봤는데도 저는 너무 울컥하더라고요. 그동안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는 사실 꾸준히 제작이 됐었는데 감독님께서 김복동 할머님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소재를 삼아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셨는데 그 계기가 있습니까?

[송원근]
일단 할머니께서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자신의 삶이 시한부로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을 때부터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이런 발걸음이 후세에게 어떻게 계속 남아서 이제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길을 후세대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주변에 있는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 그다음에 영상을 계속 기록해 온 미디어몽구 김정환 씨에게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말씀이 토대가 돼서 제안이 있었고요.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고 저희 제작진은 김복동 할머니의 걸어온 삶 중에서 오늘의 이야기에 중심을 뒀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그즈음으로 오기까지 할머니의 어떤 활동의 기반, 고뇌 이런 부분들을 좀 담아서 단순하게 우리가 영상이나 뉴스로 봤을 때 할머니의 외침 외에 할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그런 활동을 하셨었는지를 관객들이 잘 느끼고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앵커]
그러면 여기저기서 자료들을 많이 찾으려고 애쓰셨겠네요.

[송원근]
맞습니다.

[앵커]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송원근]
일단 저희는 공동 기획 자체가 정의기억연대, 미디어몽구랑 같이 했습니다. 촬영해 온 베이스가 그쪽이었고 전쟁과여성 인권박물관 자료실에 여러 할머니들의 기록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동시에 할머니의 증언록 같은 것도 있고 한데 그중에서 저희가 김복동이라고 써져 있는 체크돼 있는 부분들은 체크를 해서 가져와서 다 들었었고 그런 식으로 해서 자료들은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앵커]
그래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도 찾아내셨다는 거군요?

[송원근]
맞습니다. 관심을 보여주고 계신 부분이 그런 부분이더라고요.

[앵커]
그러면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16살에 들어갔다가 한국에 오니까 23살. 16살도 참 꽃다운 나이이고 23살도 참 꽃다운 나이고. 당시 어떤 상황을 할머니께서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지금?

[송원근]
저게 1992년 3월에 지금 현재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신 윤미향 대표가 부산에 할머니가 살고 계신 다대포 앞으로 찾아갑니다. 댁에서 할머니하고 당시 상황을 나누시는 건데요. 끌려가셨을 때의 모습을 계속 여쭤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게 저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이거든요. 사람들, 그러니까 할머니께서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상황. 그래서 이런 게 어떻게 깔려갔는지 이런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어떤 상황이었었는지 계속 여쭤보는 거거든요. 할머니는 답답하면서도 물어보니까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어서 얘기를 하고. 또 물어보는 사람은 불편하고 할머니가 싫어하시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는 이런...

[앵커]
거기에 대체 왜 끌려가셨어요, 어떻게 끌려가셨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데...

[송원근]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 하시고 계시는 상황입니다.

[앵커]
그러시군요. 그런데 이건 어디에서 찾으셨어요?

[송원근]
이거를 저희 김복동 할머니 영화를 제작하면서 제공받은 오디오 파일 속에 이게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1992년 김복동이라고 적혀 있었던 음성 파일이었고 사실 이게 어떤 파일인지 잘 모르고 일단 듣기 시작했는데 이 질문하는 사람이 처음에 누구인지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지 하게 되면서 아, 이게 윤 대표라고 하면서 맞다라고 얘기하시고. 당시에 할머니가 느끼셨던 답답함 그리고 그동안 내가 이거를 말하기까지의 고민 같은 것들이 2018년, 17년, 19년 이때 할머니가 당시를 증언한 것과는 다르게 67, 68살에 당시로서는 젊은 할머니의 목소리로 증언을 하셨던 게 괴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런 부분들을 잘 좀 살리고 싶었습니다.

[앵커]
저희가 뉴있저 가족분들의 실시간 의견을 좀 받고 있습니다. #0945번의 유료문자, 유튜브, 팟빵으로 댓글 받고 있는데요. 먼저 2545님께서 김복동 할머니에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시면서 영화 김복동 대박났으면 좋겠고 많이들 보러오시라는 의견도 주셨습니다.

감독님께서 앞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러니까 이 영화에 어찌보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데. 그러면서 아베 총리의 연설을 담았다고 해요. 저희가 그 연설 준비했는데 함께 듣고 오시겠습니다.
[아베 신조 / 일본 총리 :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증거는 없었다는 겁니다. 제 입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했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 말씀드렸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움을 확인했습니다.]

[앵커]
박근혜 대통령한테 전화통화로 미안하다고 얘기했다 퉁치고 넘어가는 거군요?

[송원근]
그게 할머니들께서 계속 이야기하시는 거는 뭐냐 하면 공식적인 사죄를 우리한테 해라라는 거였거든요. 얘네들이 공식적으로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그게 국가가 잘못했으니까 법적으로 배상하라는 게 할머니들이 30년 가까이 주장하셨던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거를 아베 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그 부분은 불가역적으로 끝났다. 나는 더 이상 그렇지 않게 하겠다는 걸 의회에서 물어보는 민주당 의원에게 답변하는 장면입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입니다.

[앵커]
아베 총리가 불가역적이라는 단어는 아직까지도 아베 정권이 쓰고 있죠?

[송원근]
지금까지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앵커]
아베 총리의 연설이 이제 영화 내용 속에 실제로 들어있는 거죠?

[송원근]
영화에 그대로 사용을 했습니다.

[앵커]
얼마나요?

[송원근]
저 영상은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일본 의회 내에서 물어봤기 때문에 아베 총리가 저만큼 대답을 하는 거지, 우리 정부나 우리나라 사람이 물어봤으면 불가역적으로 끝났다라고 하고 아무 대답을 안 했을 겁니다. 다만 민주당 의원이 당시 상황에 대해서 네가 진짜로 사죄를, 사과를 했다는데 그 말을 직접 여기서 한번 해 봐라라고 이제 의원이 물어보는데 이런 부분 같은 경우에는 전혀 저희는 들어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상황이었고 일본 의회에 공개돼 있는 영상이라서 제가 그 부분을 사용을 그대로 했습니다.

[앵커]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송원근]
있는 그대로 보시고 판단은 관객분들, 국민들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뭔가 만들다 보면 이 장면은 정말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빛을 봐야만 하는 장면이다, 이런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감독으로서.

[송원근]
그런 것들이 있긴 한데 그런 부분은 가장 큰 메시지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저희가 제작진이 하고 싶어라 하는 말, 메시지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장면이 주는 그 메시지 자체가 지금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 그다음에 영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해졌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은 좀 보시면 아마 아 하실 겁니다.

[앵커]
잘못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데 영화 개봉 언제입니까?

[송원근]
영화 개봉은 8월 8일입니다.

[앵커]
혹시 개봉관 구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거나 이런 거 없었습니까?

[송원근]
개봉관 구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느냐는 질문을 굉장히 제가 요즘에 많이 받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아닙니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요구하시고 요청하시고 예매예약을 하시고 실질적으로 클릭과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극장이 개봉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언론 배급시사회도 했었는데요. 많은 기자분들이 굉장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도 충분히 많이 느끼실 수 있고 공감하실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영화를 제작하시면서 사실 힘드셨다고 여쭤보면 안 될 것 같고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우셨습니까?

[송원근]
할머니의 생각을 역사 속에서 녹여내는 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베 정부가, 일본 정부가 우경화 되면서 할머니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신 게 2010년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지면서 할머니가 그걸 계기로 해서 다른 소녀상을 찾는 일반 국민들과 더욱더 긴밀한 교감들을 펼치게 됩니다. 그 교감이 바탕이 돼서 서로 주고받고 어린 학생들은 할머니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고. 그러면 그거에 반응해서 또 다른 국민들이 찾아주시고 오히려 일본이 더 역사를 지우려고 할 때 할머니는 역으로 전 세계에 자신이 살아 있는 피해자라고 자신의 피해 상황을 증언을 하시면서 다른 피해자들을 오히려 더 감싸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런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들을 고민하는 게,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해야 될지 그런 부분이 가장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앵커]
그냥 피해 할머니에서 인권 운동가로 승화되는 장면이기도 하고.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더 불꽃처럼 피어올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고 가시는 그런 모습이었군요. 그런데 계속 제작일기를 쓰셨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송원근]
그러니까 이게 제작일기를 쓰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때그때 하루하루를 기록을 해 왔었습니다. 쓰다 보니까 이게 나중에 한 6개월, 7개월이 넘어가니까 그런 기록이 남겨져서 제작 노트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시더라고요. 노트라고 하는데 그냥 점들처럼 그때그때의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가을에 봤던 감이 겨울에 그 위에 눈이 쌓이고 까치 밥으로도 안 돼서 말라비틀어진 꽃이 그대로 남아져 있는 채 봄까지 남아 있는 모습. 떠나신 할머니의 방에서 그 감을 봤을 때... 그런... 그런 모습들이 어쨌든 계속 연결을 잘 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앵커]
기자는 감이 있건 떨어지건 신경 안 쓰는데 또 감독 예술인의 눈은 다르군요. 그런데 혹시 잘 보관하셨다가 조감독 있었을 거 아닙니까? 나중에 조감독이 감독님의 제작노트를 영화로 다시 만드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때는 정말 거기 쓰셨던 장면, 장면들이 멋지게 꾸며질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수익 전액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내놓기로 얘기하신 거죠?

[송원근]
저희 뉴스타파에서 이거를 제작할 때부터 사회적인 공기로서 저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이게 수익이 난다고 해서 저희에게 돌아올 건 없을 것 같고요. 이 수익금은 전액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활동에 쓸 텐데요. 절반은 할머니와 같이 활동을 했던 단체의 활동 자금으로 갈 거고. 절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기록을 데이터 구축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데 이 부분에 저희가 최대한 사용을 해서 하려고 합니다.

[앵커]
그렇게 기록이 남아야죠. 문자가 계속 들어오나요? 들어오고 있습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369님 사과와 배상도 못 받으시고 하늘 깊이 간직하신 채 타계하신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할머님들 모든 하늘나라에서 위로받으시고 한이 풀리시면 좋겠다라는 의견 주셨고요.

4702님께서는 영화 김복동 많이 봐주십시오. 우리나라의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고 계속 기록해 나가야 합니다라는 의견 주셨는데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김복동 할머님께서 원하셨던 것도 내가 걸어왔던 일을 후세들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부분 아니겠습니까?
]
요새 더군다나 일본과의 갈등이 점점 첨예해지고 불매운동같은 것도 벌어지는데 이럴 때 국민들한테 이런 메시지를 좀 전해 드리고 싶다 하는 게 있으면 마지막으로 전해 주시죠.

[송원근]
할머니께서는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다 불같이 화를 내고 격정적일 때 굉장히 차분하실 수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그런 마음을 우리 국민들이 오히려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저렇게 한다고 해서 같이 불같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보다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차근차근 제대로 꾹꾹 눌러서 쌓아나가는 게, 그것이 오히려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8월 8일 개봉, 저희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독님.

[송원근]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