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 최태성, “아무개를 잊은 민족에겐 역사는 없다”

큰 별 최태성, “아무개를 잊은 민족에겐 역사는 없다”

2019.04.10. 오후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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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별 최태성, “아무개를 잊은 민족에겐 역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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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뉴스FM, 조현지입니다’]
■ 방송 : YTN라디오 FM 94.5 (12:20~14:00)
■ 진행 : 조현지 아나운서
■ 대담 : 최태성 한국사 강사


큰 별 최태성, “아무개를 잊은 민족에겐 역사는 없다”





◇ 조현지 아나운서(이하 조현지)> 대한민국의 ‘대한’은 고종황제가 지은 이름, 대한제국의 전신이고요. ‘민국’은 독립운동가 신석우 선생이 붙인 이름이라고 하죠. 이렇게 만들어진 이름 대한민국. 4월 11일 내일은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생일이자 임시정부 수립일인데요. 특히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초대석에서는 별 중의 별, 별들의 별. 큰 별 최태성 한국사 강사와 함께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최태성 한국사 강사(이하 최태성)> 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 조현지>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원래도 바쁘신데요.

◆ 최태성>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 조현지> 정말 어렵게 모셨는데, 청취자분들도 내가 아는 큰 별 최태성 선생님이 맞나, 하시는 분들이 꽤 계실 것 같아요. 먼저 어쩌다 큰 별이 되신 거예요?

◆ 최태성> 어쩌다 큰 별이 아니라 제가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제 제자들이, 제 이름이 태성이잖아요. 태성 선생님? 그러면 큰 별 선생님이네, 라고 해서 제자들이 붙여준 이름이에요. 또 그렇게 불러주니까 입에 붙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칭, 타칭 ‘큰 별 쌤’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조현지> 학생들이 선생님을 별로 만들어주면서 지금 더 바쁘게 활동하시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저희가 오늘 최태성 선생님 모신다고 이야기하면서 학창시절에 역사 선생님 한 번 안 좋아해 본 친구들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 최태성> 제가 호사를 누리고 있는 거죠.

◇ 조현지> 자, 저희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기 전에 청취자 여러분들께 간단한 퀴즈를 내드리려고 해요.

◆ 최태성> 문제를 한 번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 나갑니다. 3·1운동이 일어난 요일은? 보기 나갑니다. 1번, 화요일, 2번, 목요일, 3번, 토요일.

◇ 조현지> 선생님 너무 어려운데요?

◆ 최태성> 어려운가요? 정답인 날은 기분이 좋습니다. 노래에도 있죠. 이 날은 밤이 좋아~

◇ 조현지> 하하, 기분 좋은 날이 언제인지 생각을 해보시고요. 오늘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으로 선생님한테 역사를 배워보려고 합니다. 임시정부 수립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그 전에 경술국치부터 짚어봐야 한다고요?

◆ 최태성> 경술국치라는 것은 생소할 수 있는데, 교과서적 표현으로 본다면, 한일 병합. 우리가 일제강점기로 들어갔던 그 날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정확한 날짜로 이야기한다면, 1910년 8월 29일, 그 날이 바로 경술국치인데요. 쉽게 이야기하면, 경술년이 1910년이에요. 그날 국치, 나라가 치욕적인 아픔을 당했던 날, 경술국치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 조현지> 고종이 끝까지 서명과 옥쇄 날인을 거부했지만, 일사늑약을 체결하고 경술 국치가 일어난건데요.

◆ 최태성> 그렇죠. 일사늑약이 1905년이잖아요? 1905년에 일사늑약을 우리가 체결하게 되는데, 외교권이 강탈당한 거예요. 사실 1905년 을사늑약 때 우리의 주권은 거의 다 빼앗겼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혹시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데 앞장섰던 을사오적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이 사람은 기억하고 계시죠?

◇ 조현지> 이완용.

◆ 최태성> 다음은 누군가요, 하고 물어보면 그다음부터 대답들을 못하시더라고요. 다들 그래요. 그런데 기억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을사오적은 누가 있냐면,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박제순. 이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뭐냐면,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렇게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섰던 그들의 이름도 우리가 기억하는 것. 그래야 우리가 반목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박제순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조현지> 을사오적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이 경술국치일, 8월 29일이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조기를 게양하도록 조례로 지정해놓기도 한다고 해요. 그런데 아는 분들이 많이 없는 거죠?

◆ 최태성> 그렇죠. 우리가 사실은 나라를 되찾은 날은 1945년 8월 15일로 너무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나라를 잃어버린 날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역사라고 하는 게 우리가 좋은 것, 기억하고 싶은 것, 기쁜 것, 이런 것만 기록해놓은 게 역사가 아니거든요. 아픈 것, 상처 입은 것, 잊고 싶은 것, 지우고 싶은 것도 기억하는 게 역사이기 때문에 8월 15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라를 잃어버린 날, 경술국치일, 8월 29일도 꼭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조현지> 네, 그러고 나서 이후에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또 우리가 유관순 열사로 많이 알고 있는 3·1운동이 일어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저만 해도 3·1운동이 정말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 민족 운동인데, 유관순 열사밖에 떠오르는 인물이 없단 말이에요. 어떤 분들이 있었을까요?

◆ 최태성> 유관순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이분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3·1운동에 참여했던 인원이 전체 인구의 10%라고 할 수 있는 200만 명이 참여합니다. 어마어마한 거죠. 그런데 우리가 사실 200만 명. 100년 전, 그 광장에 섰던 그 사람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느냐? 모르잖아요. 저는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이 날 광장에 섰던 200만 명, 우리가 모르는 그 시대의 아무개들. 저는 그 아무개들이 더욱 기억해야 하는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조현지> 200만이라는 숫자도 저는 정말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는 생각이 들고, 또 우리가 그 한 명, 한 명을 다 기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고, 그러네요.

◆ 최태성> 하지만 이분들이 광장에 나왔다는 것은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냐면, 1919년 당시 그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식민지로부터 해방이란 말이에요. 그 시대의 과제를 자신의 입을 통한 함성으로 이야기하고, 광장에 나와서 그런 주장을 했던 모습은 사실 우리가 단군 고조선이 세워진 기원전 2333년이라고 교과서에는 나와 있는데, 그때부터 1919년까지 거의 반만 년의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1919년 3월 1일, 그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온 그 모습은 정말 역사상 최초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조현지> 뭔가 선생님의 얘기를 듣다 보니 울컥하기도 하고요. 얼마나 힘들게 다들 모이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 다들 나이가 참 어려요. 10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20대, 3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사실 제가 지금 30대인데요. 내가 과연 나라를 위해서?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 당시 청춘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 최태성> 참 그런 것 같아요. 항상 역사, 현재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왜 87 항쟁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세대들을 우리가 예전에 386 세대라고 불렀단 말이에요. 그리고 4.19 혁명과 관련된 세대를 419 세대, 이렇게 불렀잖아요. 3·1운동도 마찬가지에요. 3·1운동은 정말 우리 역사에서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3·1운동은 그 시대를 살고 있었던 사람들한테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대를 뭐라고 하냐면, ‘3·1운동 세대’라고 이야기해요. 189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3·1운동 때가 되면 10대, 20대가 되거든요. 이들이 3·1 세대가 돼요. 누가 있냐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의열단 단장,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에요. 김원봉도 있고요. 그다음에 이봉창, 윤봉길, 다 이때 태어났고요. 유관순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아리랑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그 주인공 김산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때 태어났거든요. 이때 태어났던 3·1 세대가 누구냐면, 바로 항일 운동의 몸통이 됐던 사람들이에요. 예를 들면, 김산 같은 경우에는 3·1운동의 영향을 받고,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 그때가 14살이에요. 중학교 나이잖아요. 나도 뭔가 해야겠다고 해서 700리 길을 걸어가지고 어디를 가냐면, 당시 만주 쪽에 있던 신흥무관학교라고 있어요. 거기에 가요. 나 여기에 입학을 시켜달라고요. 그런데 너무 아쉽게도 신흥무관학교는 18살부터 입학이 되거든요. 그런데 700리 길을 걸어온 15살짜리를 못 받아주는 거예요. 김산이 자리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어요. 너무 우니까 시험만 봐라,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줘서 시험을 봤어요. 그런데 떨어져요. 어느 과목에서 떨어졌냐면, 신체검사에서 떨어져요. 체육시험에서. 너무 어리니까. 또 울어요. 내가 뭔가 진짜 해보겠다. 결국, 속성반에다가 입학은 시켜주는데, 나중에 김산은 혁명의 길로, 혁명가의 길로 가게 되는데요. 이 모습을 통해서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이 3·1운동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영향을 받았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케이스가 아닌가.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바로 이 3·1운동의 영향을 받고 활동했던 그런 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 조현지> 정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역사의 한 장면인데요. 저는 사실 3·1운동 따로, 임시정부 수립 따로, 이렇게 학교 때 시험 보는 용도로 공부했던 기억이 더 많아요. 그런데 이 3·1운동을 계기로 우리가 왕이나 황제, 일제의 천황이 아닌 국민에게 주권이 주어지는 대한민국으로서의 발걸음이 됐다는 게 이렇게 의미가 있는 것이었나 하는 것을 올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 최태성> 그럼요. 3·1운동을 통해서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한테 정말 많은 영향을 줬고, 3·1 세대가 탄생했고요. 또 우리한테 어떤 영향이 있냐면, 3·1운동을 기점으로 해서 그 이전까지는 대한제국이었잖아요. 그런데 이 3·1운동을 계기로 해서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이름이 탄생한단 말이죠. 제국에서 민국으로 전환되었던 엄청나게 중요한 계기였고요. 또 3·1운동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우리는 뭐라고 부르냐면, 이제까지 왕이 통치하던 시대였거든요. 이때 살고 있던 사람들을 우리는 백성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3·1운동을 계기로 해서 이제 ‘시민’이 탄생한 거예요. 여러분,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요. 우리는 백성이 아니라 시민이잖아요. 이게 언제부터냐는 거예요. 바로 3·1운동부터, 아까도 이야기했던 광장에 나왔던 그 시대의 그 아무개들의 시대적 과제를 담고 있는 그 함성으로 인해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을 만드는 출발선을 형성했다. 이래서 3·1운동은 너무 너무 중요한 사건이 된다는 것이죠.

◇ 조현지> 알고 생각하니까 정말 중요한 날이네요. 선생님 안 모셨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어요. 이쯤에서 아까 내드렸던 퀴즈의 정답을 발표해볼 텐데요. 선생님, 퀴즈가 3·1운동이 일어난 요일을 맞추는 거였어요. 1번이 화요일, 2번이 목요일, 3번이 토요일이었습니다. 정답이 뭐죠, 선생님?

◆ 최태성> 제가 사실은 단순 지식적인 문제는 안 내는 게 좋아요. 그런데 이 문제는 단순 지식을 한 번 찍어보라고 하는 문제가 아니고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낸 거예요. 정답을 알려드릴게요. 정답은 3번 토요일입니다.

◇ 조현지> 토요일이라는 게 왜 중요하죠?

◆ 최태성> 왜 그러냐 하면, 많은 분들이 3·1운동은 고종의 장례식을 이용해서 출발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계세요. 틀린 말은 아닌데, 고종의 장례식이 그러면 3월 1일이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아니에요. 고종의 장례식은 3월 3일이에요. 원래 이 3월 3일에 만세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민족대표 33인들이 회의 과정 속에서 이게 그래도 장례식 날 만세하기는 부담스러웠던 거예요. 그래서 날짜를 하루 당겨요. 3월 3일이 월요일이었거든요. 그래서 3월 2일 일요일에 만세 운동을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3월 2일 일요일은 종교 행사가 있잖아요. 그래서 하루를 더 당겨요. 그게 바로 3월 1일 토요일이 되는 겁니다. 3월 1일 토요일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 속에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아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팁으로 이 문제를 드려봤습니다. 토요일이었습니다.

◇ 조현지> 기억해둬야겠네요. 지금 문자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아주 훌륭한 역사학자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귓속에 쏙쏙 가르침이 들어오네요. 왜 이제야 나타나신 거예요.” 다른 분께서는 “최태성 선생님, YTN 라디오에서 뵈니까 너무 좋아요. 더 자주 나와 주세요. 뉴스는 YTN, 역사는 최태성.” 하셨고요. 그리고 “역사 공부 좋네요. 유쾌하고 힘 있는 목소리. 정말 좋습니다. 방송을 잘 들으니까 배울 게 많아서 너무 좋네요.” 이렇게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시간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저희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까지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100주년을 맞아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뉴스FM 가족분들한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최태성> 오늘 4월 10일 임시 의정원, 국회가 처음 출발하고요. 여기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거든요. 일제강점기에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던 이분들. 이분들이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뒤에 오는 사람들한테 전달해주기 위해서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가면서 간절하게 살아왔던, 또 지켜왔던 분들이시거든요. 그들의 꿈은 뭐냐면, 이 대한민국을 실제 나라의 형태로 물려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바로 그들이 꿈꿨던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거잖아요. 참 힘들게 물려받은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 100년 전 그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우리는 또 100년 후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인지. 한 번 고민해볼 수 있는 4월 11일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조현지> 끝까지 감동까지 주고 가시네요. 오늘 초대석, 최태성 역사 강사와 함께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최태성> 벌써 시간이 지난 거예요? 금방이네요.

◇ 조현지> 네, 또 와주세요.

◆ 최태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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