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공사'의 민낯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공사'의 민낯

2017.09.08. 오후 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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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 내리쬐던 지난달 경기도 한 야산의 문화재 발굴 현장. 줄줄이 모습을 드러낸 조선시대 분묘에 들어가 조사단이 구슬땀을 흘리며 유해와 유물을 수습하고 있었다. 주변 땅에는 무덤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조그만 도기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공동묘지터이다. 발굴 작업이 끝나면, 새 IT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하나의 장소에 켜켜이 중첩되는 시간의 지층이랄까. 기자에게 현장을 안내하던 발굴 기관 책임자가 담담하게 말한다. "사자(死者) 위를 후대의 생자(生者)가 또 이렇게 딛고 살아가는 거죠. 이 정도 발굴은 규모가 작은 편입니다. 과거 서울의 모 뉴타운 건설 사업의 발굴 조사에서는 이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엄청난 수량으로 조선시대 유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

발굴 장소는 문화재청 문화재 보존관리지도의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이하 '유존지역') 에는 빠져있는 영역아었다. 건설 공사를 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내면서, 유물 파편들이 새롭게 발견됐던 것이다. 때로는 평범한 구릉 지대에서, 때로는 배산 임수의 명당 자리에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의 유물이 불쑥 현재로 들어온다. 땅을 파보기 전에는 누구도 매장문화재가 있다,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법. 다만 현실적으로 입수 가능한 최선의 고고학적 정보를 동원해 판단할 일이지만, 현행 법률하에서는 매장문화재의 존재 가능성이 아닌 3만㎡ 미만라는 건축 공사의 면적 단위로 문화재 조사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다.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공사'의 민낯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수도권의 매장문화재 구역 주변에 난립한 중소규모 난개발 공사를 시각화한 매장문화재 SOS 지도 (이하 'SOS 지도')를 공개한 바 있다. SOS 지도에 나타난 공사 지점은 아무런 문화재 조사를 받지 않고 진행된 '깜깜이 공사'의 위치로 지난 18년 동안의 누적 분포를 볼 수 있다. 취재진은 이런 건축 지점의 분포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경기도와 인천 지역을 가로 5km 세로 5km의 격자로 나눠 깜깜이 공사의 밀도를 표시한 지도를 제작했다. 각 구역에 들어오는 깜깜이 공사의 숫자를 집계한 뒤 숫자가 클수록 진한 붉은 색으로, 작을수록 옅은 색으로 나타냈다. 밀도 지도를 보면 경기도의 남부와 서부에 진한 색상의 격자가 몰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 화성시와 수원시, 용인시. 평택시. 김포시. 시흥시 그리고 인천 지역 등이다. 포천시와 남양주시 등에도 깜깜이 공사가 집중된 사실이 포착됐다.

경기도와 인천 지역 깜깜이 공사의 밀집 지역을 SOS 지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관찰하면, 흥미로운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 : 포털 기사에서 인터랙티브 지도가 나타나지 않으면, 인터넷 주소 http://bit.ly/2vj67b3 에서 지도를 볼 수 있음. 또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는 인터랙티브 지도가 구현되지 않을 수 있음)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공사'의 민낯


가장 많은 깜깜이 공사가 나타난 곳은 어느 유적지 부근일까?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사적 제3호인 수원 화성( 水原 華城) 주변이다. 경기도와 인천 지역의 유존지역 500m 이내 범위에 '깜깜이 공사' 숫자가 가장 많이 몰린 구역이다. 18년 동안 무려 1,374개 지점에 달한다. 화성 내부에 몰려 있을 뿐 아니라 성 주변도 포위하고 있다. 성곽은 그 안과 밖 광범위하게 수많은 관련 시설과 주거지 터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정작 매장문화재를 중점 관리하는 유존지역은 성 자체만 지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수원 화성 정비를 계기로 성에서 600m 이상 떨어진 장소에서 시굴 조사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정작 화성 코앞에서는 문화재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SOS 인터랙티브 지도를 통해 각 붉은 점의 위치를 클릭해보면, 성곽에서 바짝 붙은 위치에서 지난해까지도 공동주택이 들어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화성시의 남양 장성 부근도 마찬가지이다. 남양 장성 오른편의 남양도호부는 현재 남양초등학교 아래 남양동 일대에 걸쳐 위치하는 관아 터다. 일대는 깜깜이 공사의 합산 면적이 남양 장성과 수원 화성 다음으로 넓었고, 공사 숫자도 경기도와 인천 지역에서 10번째로 많았다.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공사'의 민낯


인천 부평초등학교 일대도 마찬가지이다. 조선 선조 때의 부평도호부 청사 등 유적이 밀집했지만, 붉은 점이 곳곳에 보인다. 남양초등학교과 부평초등학교 모두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기간에 소학교로 설립된 학교다. 일제가 객사 등 조선 관아 터를 허물고, 소학교 건물을 지은 사실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용인 마북동 유물 산포지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유물이 동시에 출토된다. 지도를 보면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3개의 외곽뿐 아니라, 그 중간 지대를 깜깜이 공사가 깊숙이 파고든 모습이다. 각 시대의 유물 유적이 교차해 나타나는 고고학적인 거점인 만큼 매장문화재 훼손 위험도 높아 보인다.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공사'의 민낯


오산 외삼미돋 유물산포지 역시 용인 마북동과 비슷한 분포를 보인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이다. 근처에는 도지정문화재로 등재된 오산 외삼미동 고인돌이 있어, 청동기 시대까지 아우른다. 선사 시대 유적지 주변일수록 이후 시대의 유적지가 동시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마북동처럼 깜깜이 공사가 어김없이 유존지역 사이에 흩어져 있다.

화성 태봉산 백제 유적군은 삼국시대 중 백제 유적과 유물이 대규모로 출토되었고 앞으로 추가로 나올 확률이 높은 곳이다. 분묘와 주거 유적 등이 밀집해 나타나고, 특히 하단의 마하리 고분군은 원삼국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많은 고분군이 집중되어 있어 사적 451호로 등재됐다. 한강 유역에 한정되었던 초기 백제의 형성 과정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곳이지만, 서쪽에 각종 건축 공사가 잔뜩 몰려있다. 유물산포지에 근접한 건물은 근린생활시설 (상점이나 식당 등)이 많고, 단독주택도 여기저기 발견된다. 건축 시점 역시 1999년에서 지난해까지 다양하다.

성곽과 관아 터, 초등학교 주변, 그리고 각 시대의 유물이 동시 출현하는 고밀도 유물 산포지가 SOS 지도의 주요 지역을 설명하는 키워드이다. 이같은 곳일수록 유존지역을 둘러싸고, 틈새로 들어오는 깜깜이 공사의 세력은 광범위하고도 밀도있게 나타났다.

이제 시야를 살짝 넓혀보자. 문화재청의 매장 문화재 지표 조사 보고서 중 누락된 보고서가 많아, 일단 SOS 지도는 경기도와 인천만을 대상으로 했다. 사대문 안에 지표 조사가 전면 의무화된 서울은 조사 대상에서 일단 제외했다. 전국의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광범위한 정보 수집과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취재진은 매장문화재 영역에 대한 소규모 난개발의 전국적인 실태를 가늠하기 위해, 유존지역에서 반경 300m내의 사업면적 3만 ㎡ 미만 공사의 합산 면적을 시군구별로 집계했다. 깜깜이 공사만 따진 것은 아니지만, 문화재 구역에 대한 소규모 개발 압력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이다. 경기도 화성과 용인이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고, 평택, 양주, 광주 등 5개 경기도 기초지자체가 10위 안에 들었다. 특히 신라의 천년 고도인 경주가 3위를 기록한 점이 눈에 띈다.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공사'의 민낯


취재진은 경주 전역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시도하려 했지만,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잡히지 않는 문화재 조사 정보가 많아 조사 범위를 신도심으로 좁혔다. 경주시청 부근의 동천동, 황성동, 용강동 일대가 분석 대상이다. 일대에는 신라 고분군이 산재하며, 왕경유적지의 북쪽 외곽이어서 왕경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의 연구에 중요한 유물 유적들이 발견된다. 일단 2010년 이후의 건축공사만 따져보아도 문화재 조사를 한 기록이 전혀 없는 건축공사가 48곳 확인됐다. (지도상의 붉은 점)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공사'의 민낯


경주 시청 측은 범람 지역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동천동과 황성동 일대는 과거에 주변 하천에 의한 홍수와 유실이 잦았던 지역이라 유물 유적이 발굴될 가능성이 적은 만큼 하천에 가까운 지점은 문화재 조사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의 안재호 교수는 "동천동과 황성동은 하천이 범람했다고 해도 모래나 자갈에 의해서 잘 보존되어 있을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면서 "이런 지역은 반드시 발굴해야 하고 깎여 나갔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경주시청 측이 범람 지대라고 밝힌 황성동에서는 신석기시대 등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된 바 있다.


수도권에서 옛 도읍지에 이르기까지, 매장문화재 행정의 사각지대, 즉 '깜깜이 공사'가 몰리는 지역은 공통점이 있다. 매장문화재 구역도 많지만, 개발 수요도 많은 곳이다. 옛 시절에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던 구역은 현재에도 건축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기초지자체의 문화재 담당 공무원 1~2명이 소화하기에는 행정 업무의 부담이 큰 지역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문화재 담당자가 많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원지형 훼손'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 이미 많은 개발이 이뤄졌으면 이미 원래의 지형이 훼손되어 유물이나 유구가 땅속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난 2009년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인 종로구 청진동에서 조선 시대 유적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한양 중심부의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 흔적과 제기, 백자, 기와 등이 나왔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건물터가 지표면에서 불과 80㎝ 아래에서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안재호 교수는 매장문화재 존재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재 우리가 가진 고고학적 정보와 인식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자갈층은 매장문화재가 없다고 널리 알려졌지만 2m 만 파보아도, 신석기 시대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전 국토를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규정해 공사하면 무조건 발굴하게 되어있는데, 별의별 유물이 나와서 문화재 다양성이 매우 높다."면서 이에 반해 한국은 현재의 한정된 지식으로 문화재가 있겠다 혹은 없겠다고 판단해 조사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러다 보니 늘 뻔한 유물만 나오고 새로운 유적은 발굴을 못 한다." 고 설명했다.

현재의 문화재 지도상의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은 그 자체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구역들이 있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과거에 문화유적 분포지도를 급하게 만들다 보니 유존지역이 많이 빠지거나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다시 전국적인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결과는 3만 ㎡ 미만 공사에 의한 난개발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형이 이미 훼손되어 문화재 조사가 필요 없다는 식으로 보존에 더욱 소홀히 하게 된다. '부정확한 유존지역 설정→난개발→원지형 훼손→ 난개발의 심화'의 단계를 반복적으로 거치는 악순환에 빠진다.

문화재청은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연속 보도를 계기로 정밀 지표조사와 함께 관련된 문화재 보호 법령의 개정 작업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3만㎡ 이상의 개발 사업만 문화재 지표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현 제도의 문제점이 데이터를 통해 드러난 만큼, 다음 달까지 한국고고회 등 전문가들과 자문 회의를 거쳐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종합적인 검토가 이뤄진다면, 3만㎡ 규정에 대해 18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적인 보완을 하는 셈이다.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문화재 보호도 만전을 기할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일까.YTN은 후속 보도에서도 매장문화재 보호와 관련한 나머지 쟁점과 대안을 추가로 살펴볼 예정이다.

취재·기사·데이터 분석 : 함형건 기자 [hkhahm@ytn.co.kr]
데이터 정리·분석 : 권오은

◎ 바로 잡습니다.: 취재진은 서해안 한 곳의 간척지를 공간 분석에 추가로 반영하면서, 깜깜이 공사 면적 산정결과에 작은 변화가 생겨 통계치를 수정합니다. 인터넷 기사 '소리 없는 난개발'…매장문화재 SOS 지도'와 방송 리포트 '소규모 난개발의 습격…매장문화재 SOS 지도' 관련해 '경기도와 인천 '깜깜이 공사'는 20,611개, 17.8㎢에 달하며, 국제규격 축구장 면적으로 따지면 2,493개에 해당하는 면적'으로 정정합니다. 또한, 경기도와 인천의 유존 지역 외부에서 매장문화재 조사를 하지 않고 진행된 건축 공사의 합산 면적은 231.2㎢로 여의도 80배, 축구장 3만2천 400개에 해당하는 것으로 최종 집계됐습니다.


=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관련 온라인 기사
①'소리없는 난개발'…매장문화재 SOS 지도
http://www.ytn.co.kr/_ln/0106_201708311445521186

②천하명당 정조대왕릉, 용의 여의주는 어디로 갔을까
http://www.ytn.co.kr/_ln/0106_201709051616444311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관련 방송 리포트
① 소규모 난개발의 습격…매장문화재 SOS 지도




② 방치된 백제 토성…소규모 난개발의 그늘




③ 문화재청 지도 정보 무더기 누락..."행정에 구멍"




④ 유적 발굴해놓고 나 몰라라...55% 부실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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