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디바' 정미조, 37년 만에 컴백

'70년대 디바' 정미조, 37년 만에 컴백

2016.02.26. 오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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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조, 가수·화가

[앵커]
1970년대 가요계의 신데렐라. 다시 돌아온 정미조 씨를 오늘 저희가 초대했습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인터뷰]
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앵커]
굉장히 젊으신데요?

[인터뷰]
그래요? 젊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앵커]
항상 마음을 젊게 사셔서 그런가요?

[인터뷰]
한 20년 이상을 젊은 학생들과 늘 같이 지내다 보니까 아마 그래서 그런지 저도 나이를 잊고 살았거든요.

[앵커]
최근 퇴임을 하셨다고요?

[인터뷰]
네, 정년퇴임했어요.

[앵커]
미대에서 학생들 가르치시고 미술도들을 가르치시다가 최근에 은퇴를 하셨고 이제 노래로 다시 돌아오셨군요. 노래가 그동안 계속 그리우셨습니까. 아니면 잊고 사셨습니까?

[인터뷰]
저는 잊고 살았다고 해야겠죠. 계속 그리웠으면 벌써 나왔을 텐데 37년이라면 거의 4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에 제가 안 했다는 것은 늘 그리움은 있었지만 그냥 내가 그렇게 노래를 많이 했지,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다른 곳에, 다른 자리에 와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을 했었죠.

[앵커]
그래도 노래를 워낙 잘하시는데 이걸 썩히기 아깝다고 저 같으면 들 것 같기도 하고 또 사랑하셨던 거니까, 노래를. 그립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

[인터뷰]
제가 그것을 그만두고 정말 무 자르듯이 단칼에 그냥 그만두고 79년도에 파리에 갈 때만 해도 저는 몰랐어요. 그런데 프랑스에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에 한국을 소개하는 시간에 제가 개요를 기타로 치고 우리 아리랑도 부르면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그 라디오에서 그러는 거예요. 제 목소리를 듣더니 깜짝 놀라면서 왜 여기에 와 있냐고, 한국에서 노래를 해야 될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서 그림만 공부하러 올 수가 있느냐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요.

[앵커]
그림을 보여주시기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또 이해를 했을 텐데. 그림도 굉장히 좋던데요.

[인터뷰]
그래요? 감사합니다.

[앵커]
노래도 그렇게 잘하시고 그림도 잘 그리시고 그리고 원래 자라신 환경도 유복하셨다고 하고 미인이시고 공부도 잘하셔서 좋은 대학 나오셨고. 요즘 말로 하면 엄친딸 아닙니까. 공주병 같은 게 있을 법도 한 그런 조건이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제 아버님은 굉장히 엄하셨고요. 사실은 김포에서 제일 부자였었어요, 옛날에. 그래서 주조업도 하시고 또 극장도 하시고 이러면서 좋은 자선사업도 하시고 그러셨어요.

하지만 저희한테는 굉장히 엄격하시고 낭비하는 것을... 엄청 절제하도록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라다 보니까 파리에 가서도 학교 다니고 책 사고 그것 외에는 별로 낭비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앵커]
그러면 이화여대 졸업하시고서, 서양학과 졸업하시고 가수된다고 했을 때 그때 아버님께서 놀라셨겠는데요?

[인터뷰]
놀라기도 하셨고 반대하고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어려서부터 5, 6년 무용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교내 콩쿠르에... 고등학교 때는 콩쿠르에 입상을 하고요. 대학에 와서는 노래를 하고 그런데 그림은 또 미술대학 서양학과, 이러니까 부모님도 아, 쟤가 도대체 무엇이 되려고 저러나, 그런 생각을 늘 갖고 항상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제가 저 노래하다가 다시 공부할 겁니다.

그래서 한 3년만 노래를 하고 다시 대학원에 갈까,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 생각을 한 것은 제 지도교수님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그림은 이 다음에 늙어서까지도 할 수 있지만 노래라는 것은 젊었을 때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자꾸 그러셔서 용기를 얻었죠.

[앵커]
그 교수님 지금도 기억 나시겠는데요?

[인터뷰]
그럼요. 이준 교수님.

[앵커]
이준 교수님.

[인터뷰]
이준, 외자예요. 이대에서 학장님까지 하시고 정년퇴임하신 지도 오래 되셨어요.

[앵커]
그러면 저희가 그당시에 아, 사랑아라는 노래 부르신 화면, 영상이 있더라고요. 그때 모습을 먼저 시청자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 추억에 젖으시도록.

[인터뷰]
저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요.

[앵커]
보시죠. 고음도 굉장히 폭발적이고 또 저음은 저음대로 매력이 있고 약간 허스키하기도 하고요. 제가 기억하는 노래는, 저는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 휘파람을 부세요가 생각이 나고요. 불꽃도 아까 제가 들어보니까 옛날에 들었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인터뷰]
그때가 1975년도이죠. 금주의 인기가요 1위까지 했었어요.

[앵커]
70년대에 10대 가수상을 두 번 받으셨다고 들었고요. 이화여대에서부터 그때 대학 축제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패티김 선생님께서 오셔서 쟤, 정말 노래 잘한다, 그러셨다면서요?

[인터뷰]
그러니까 이화여대는 외부활동은 절대 못하게 되어 있어요. 결혼해도 안 되고 미스코리아 나가도 안 됐는데.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메이데이라는 큰 행사가 있었어요, 이화여대에. 그래서 몇 천명이 있는 그 대강당에 패티김 씨와 길옥윤 선생님하고 오셨더라고요.

그때 가장 인기가 있었었어요, 그분이. 그래서 저는 학생으로서 노래를 하니까 제일 먼저 시켜서 대강당 무대에 나가서 노래를 하고 딱 들어오니까 패티김 선생님이 이렇게 보더니 얘, 이리 와봐, 이리 와봐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네, 그러고 갔더니 이야, 너 노래 기가 막히게 잘 한다.

그당시에 뉴스 바로 다음에 패티김쇼가 일주일에 한 번씩 있었어요, 토요일에. 내 프로그램에 너를 매주 출연시켜줄 테니까 나와라. 그렇게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앵커]
패티김 선생님이 사실 눈도 까다로우시고 쉽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닌데 그렇게 하셨을 정도면... 그러면 선생님, 그때 휘파람, 그 노래 다시 좀 들려주시고. 휘파람 좀 저희가 들어보면서 계속 선생님께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그럴까요? 제가 보고 싶을 때는 두 눈을 꼭 감고.

[앵커]
이번에 새로 만드신 새 앨범에도 이 노래도 들어있다고요?

[인터뷰]
네.

[앵커]
이 노래하고 개여울?

[인터뷰]
44년 전에 저의 데뷔 1979년도 2월에 제 데뷔 앨범 속에 들어있던 노래예요, 개여울이. 그러니까 데뷔곡이죠. 그 곡으로 여러분에게 많이 사랑을 받게 됐는데. 그런데 그 당시의 음악시스템이라는 게 많이 열악하고 또 제가 달리 클래시컬하게 그런 음악으로 노래를 했으면 하는 그런 생각에서 이번에 새로운 CD가 나왔는데요.

그 안에 제가 피아노 반주와 알토 클라리넷으로 아주 심플하게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생각외로 너무 좋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앵커]
가사는 김소월 시인의 시를 가사로 한 노래라고요. 개여울. 이번에 새로 부르신 것 그러면 잠깐 들어볼까요, 저희가?

[인터뷰]
그럴 수 있을까요?

[앵커]
이번에 새로 부르신 개여울. 선생님을 세상에 알린 노래이고 이번에 새롭게 탄생한 노래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참 시구 같은 노랫말에 선생님의 그 목소리가 아주 잘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저 노래 취재하고 있는 문화부 기자가 저것을 한번 취재하고 오더니 선생님 팬이 돼서 너무너무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저것을 프로듀싱하신 분이 처음에는 원래 녹음한 다음에 수정도 하고 하시려고 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수정을 안 하고 그냥 쓰기로 했다고 하셨더라고요.

[인터뷰]
네, 맞아요.

[앵커]
그냥 쉽게 하셨습니까, 녹음을?

[인터뷰]
저는 예전의 녹음 시스템은 릴테이프라는 게 있어서 한 채널은 반주, 녹음, 한 채널은 그냥 노래예요. 그러다 보면 굉장히 힘들어요, 조금이라도 삐끗하거나 컨디션이 안 좋거나 이러면 그냥 다 망치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디지털, 컴퓨터 이래서 채널을 엄청나게 써도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보니까 진짜 환상적이더라고요,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마음을 푹 놓고 내가 잘못해도 또 다시 하고 그러면서 그것을 다시 편집하면 되겠지. 그래서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개여울을 불렀거든요. 아, 또다시 하면 되겠다 했더니 오케이, 됐습니다, 조정실에서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에요, 나 또 불러야 돼요 그랬더니 아, 이게 좋습니다, 그냥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대로 썼어요.

[앵커]
앨범 제목 자체가 37년, 그러니까 37년 만에 돌아오셨다는 거군요? 12곡 들어있고요.

[인터뷰]
네. 12곡이 아니라 13곡이죠. 신곡이 11곡이고 개여울하고 휘파람을 부세요 해서 모두 13곡.

[앵커]
저는 제가 들어본, 이번에 새로 나온 노래 중에 귀로라는 노래 아까 듣고 눈물날 뻔했거든요, 정말로요.

[인터뷰]
어머나, 그래요?

[앵커]
그래서 조금 이따가 시청자 여러분들도 들어보시고 어떠신지, 눈물 나시는지 한번...

[인터뷰]
정말 그러면 성공이에요, 제 생각에는. 진짜 남자분이 눈물이 날 정도로 뭉클하다고 하면 저 이 노래 연습하면서 몇 번을 노래 연습하다가 중단하고 눈물 흘리면서. 어릴 때 기억이 그렇게 생생하게 또 나더라고요, 이 노래를 연습하다 보니까.

[앵커]
본인 얘기 같다고 하셨더라고요.

[인터뷰]
네, 맞아요.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야단 맞고 창가에서 밖을 쳐다보면서 훌쩍훌쩍 울었었거든요. 그 생각이 그렇게 생생하게 나더라고요.

[앵커]
그러면 저희가 나중에 들려드리려고 했는데 얘기가 여기까지 나왔으니까 귀로를 여기서 들어봐야겠네요. 귀로를 한번, 우선 영상으로 잠깐 보시고 그다음에 계속 노래로 들려드리겠습니다. 귀로입니다.

[앵커]
저도 정말 너무 좋은데 시청자 여러분들도 공감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뷰]
그런데 이날 사실은 더 분위기 있게 더 잘 부를 수 있었는데요. 정말 37년 만에 무대에 탁 서서 그것을 부르는데 너무 떨렸어요.

[앵커]
떨리시죠.

[인터뷰]
떨려서 가사 틀릴까 봐 걱정되고 그래서 분위기 속에 제가 완전히 푹 젖어야 되는데 젖어들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어요.

[앵커]
지금 들려드리는 노래는 따로 녹음하신 노래입니다. 편안하게 부르신 노래일 겁니다.

[인터뷰]
그렇죠.

[앵커]
선생님의 귀로, 돌아온 길 아니겠습니까? 멀리 돌아서 36년을 돌아서 다시 이 노래의 길로 돌아오셨는데 왜 떠나셨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까지 다 듣자면 저희가 오늘 2시간 들어야 되고요.

어쨌든 곡절이 있으셨고 그때 금지곡이 되면서 이제 떠날 때가 됐구나 해서 7년 만에 떠나셔서 파리로 유학 가셔서 거기서 박사 받으시고 그리고 오셔서 미대 교수가 되셨고. 그 작품들도 한번 잠깐 보여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미술 작품들이요.

그래서 제가 궁금한 건 이런 그림들을 그리시고 또 음악을 통해서 노래로 또 예술을 하시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인지.

[인터뷰]
공통점이 있죠.

[앵커]
어떤 겁니까?

[인터뷰]
똑같아요.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게 제가 무용을 5, 6년 했다고 그랬잖아요. 몸으로써 저 예술 세계를 표현했다면 그러면 그림은 물감으로 표현했고요. 그다음에 노래는 소리로써 표현하는 거죠. 결국은 똑같아요, 저한테는. 그래서 어려서도 음악, 무용, 미술을 다같이 상하를 해 왔기 때문에 제가 노래를 다시 하는 것조차도 새삼스러운 것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신입생 환영회 같은 때에 오리엔테이션 한다고 멀리 떠나잖아요, 리조트로 가서. 그러면 학장들과 학과장 이런 사람들, 교수도 여러 명이 가요. 학생들 잘 다독여주고 학생들하고 놀다가 그다음에는 교수들이 학생들도 교수들이 계속 있으면 불편해해요.

그래서 너희들 놀아라 하고. 우리도 놀아야 되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꼭 노래방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노래를 해 주면 너무 좋아해요, 학생분들보다 더 좋아해요.

[앵커]
교수님들이요?

[인터뷰]
네, 교수님들이요. 그래서 막 디카로, 스마트폰으로 해서 막 전송해 주고 나 지금 정 교수님 노래 듣고 있는 중이야, 이러고.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내가 그림 그리고 그럴 때는 다른 교수들이 별로 신경도 안 쓰더니 노래만 했다하면 이렇게 좋아하니 정말 저도 즐겁고 듣는 사람도 그렇게 좋아하고. 노래는 저한테 늘 즐거움의 연속인 것 같아요.

[앵커]
그게 노래, 음악의 힘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길만 다른 것이지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일 뿐이지. 그러면 선생님이 표현하시고자 하는, 때로는 음악을 통해서, 때로는 그림을 통해서 하셨던 제일 큰 주제랄까요, 표현하고 싶었던 내용은 어떤 겁니까?

[인터뷰]
저는 어떤 내용이라고 하면 한 가지에, 어떤 작가들은 쭉 한 가지만 그림을 평생을 그리시는 분이 있는데 저는 주제가 그때그때 다 다르고 방법도 다 달라서 제 홈페이지를 보시면 페인팅, 회화과, 서양학과 하면 페인팅만 생각하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페인팅뿐만 아니라 판화, 조각, 설치, 영상, 미디어아트까지 다 해 봤어요.

그러니까 방법적인 것만 다른 것이지 결국은 제가 늘 관심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영혼의 세계, 그러니까 우리가 사후에는 잠깐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처음에 파리에 갔을 때는 파리의 야경에 취해서 야경을 많이 그리다가 그다음에는 한국적인 것을 찾다 보니까 영혼에 대한, 그러니까 민간신앙이라고 해서 옛날부터 혼을 잘 보내고 또 조상님을 잘 모시고 이런 게 다 영혼에 대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것을 미술로 표현을 많이 했고요. 그리고 지금은 다시 서울의 야경도 굉장히 아름답이라고요. 그래서 또다시 서울 야경을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앵커]
선생님, 그 말씀을 듣고 나니까 지금 이 그림들도 다르게 보이고요. 그리고 귀로라든지 이런 노래의 의미도 다시 느껴지고 그렇습니다. 소울, 스피릿이 있는 거군요, 그 안에.

[인터뷰]
그런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고요. 또 노래를 다시 시작하면서 느껴지는 것은 예넌에, 그러니까 정말 40년 전 저의 모습은 그냥 신나서 막 노래를 했다면 지금은 그게 아니라 인생을 몇십 년 살고 난 다음에 정말 영혼의 공감, 그러니까 제 노래를 듣는 분들도 마음의 떨림과 느낌과 서로 그런 것에 대한 소통이 됐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서 다시 지금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앨범 37년, 제가 다 들어보지 못하고 아까 귀로하고 휘파람을 부세요를 들어봤는데 다른 노래들도 들어보면서 선생님의 지금 그 말씀을 염두에 두고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한류스타가 돼서 해외에서도 하시고 그런 게 꿈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그랬으면 좋겠어요.

[앵커]
꼭그렇게 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정말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YTN 출연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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