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토크] '끊임없는 연기 변신' 배우 이종혁

[공감토크] '끊임없는 연기 변신' 배우 이종혁

2015.12.18. 오후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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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혁, 배우

[앵커]
오늘 공감토크 초대손님은 얼마전에 개봉한 영화에서 악역으로 변신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분입니다.

준수아빠로도 유명한 배우 이종혁 씨 함께 하겠습니다.

여심을 흔드는 꽃중년 이종혁 씨인데요. 이번에 악역으로 변신하셨다고요.

[인터뷰]
네.

[앵커]
어떤 영화인지 소개를 해 주시죠.

[인터뷰]
유전공학 박사로 나오는데. 한동민 박사로 나오는데 한 학생을 감금해서 11년 동안 이 친구의 성격을 바꾸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친했던 친구가 그 친구를 찾아내면서 사연이 노출이 되는 거죠.

[앵커]
기존악역과는 차원이 다른 악역이라고 하는데. 앞서 하던 역할이랑 많이 달라서 내면 연기할 때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이번 영화는 적은 예산으로 찍고 시간이 얼마 안 걸렸어요. 한 달 안에 찍었고 23회차, 24회차였는데그만큼 감독님이랑 같이 얘기도 많이 하고.

[앵커]
친분이 원래 있으시다고요.

[인터뷰]
용의주도 한예슬씨 나왔던 영화같이 하면서 동갑내기 친구라서 친해졌고 시나리오를 소개해 주면서 그때는 준수 아빠였기 때문에 이런 악역도 한번해 보고싶다. 그리고 타이틀롤이었기 때문에 욕심을 냈죠.

[앵커]
이종혁 씨가 이번에 연말에는 악역으로 변신한 영화를 통해 팬들을 만나지만 지금 드라마, 뮤지컬, 정말 장르를 넘나들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계시는데, 시카고에서도 활약하고 있죠. 어떤 역할로 나오고 계신 건가요?

[인터뷰]
영화를 보면 리차드 기어가 했던 빌리 플린이라는 역할인데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이라 바지통도 크고 그때의 혼란스러웠을 때 미국 시카고 여자 죄수들의 얘기인데요, 브로드웨이에서 제일 오래된 롱런하고 있는 뮤지컬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흥행했습니다.

[앵커]
굉장히 좋은 반응이 있었죠.

[인터뷰]
역대 최고 흥행해서 올해 다시 앙코르했죠.

[인터뷰]
SNS를 통해서 팀원들하고 찍은 사진을 봤는데 최정원 씨, 아이비 씨 같이 하시죠? 어떤가요? 평소에 지내시기는?

[인터뷰]
항상 재미있고 즐겁고 그렇습니다. 공연장 가는 길이 즐거워요.

[앵커]
최정원 씨 같은 경우에는 대선배인데요. 같이 하면서 배우는 것도 쓸 것 같은데 어떤가?

[인터뷰]
최정원 누나죠. 체력관리를 되게 잘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정원 씨랑아이비 씨가 처음 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것 같고. 항상 감기 안걸리게 조심하고 항상 운동하고 공연 전에 몸 풀고 그런 것을 보면서 독하구나, 여배우들, 힘들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이렇게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이종혁 씨가 2006년에 드라큘라라는 뮤지컬 했을 때 3명의 캐스팅이 있었는데 그 세 분 중에서 가장 티켓파워가 높아서 추가 특별공연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자기자랑 좀 해 보시죠. 티켓파워가 높아진데는 어떤 요인이 있을까요?

[인터뷰]
자랑까지는 아니고 저는 연극부터 했기 때문에 연극하다 보니까 제가 조금 노래에도 소질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그때 김민기대표님께서 계신 학전에서부터. 그때부터 뮤지컬과 연극을 번갈아가면서 하게 된거죠.

[앵커]
많은 분들이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쉬리에도 출연을 하셨죠?

[인터뷰]
네, 그때 김수로 씨가 쉬리에 출연하면서 단역들을 저희 동기들로 쓴 거죠. 하루에 10만원인가, 15만원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아침부터 일어나서 다 칠하고 옷 입고 갯벌을 뛰는 거였어요.

첫 신이 최민식 씨가 막 뛰는 건데, 처음에 깃발 드는 군인이 필요하다라고 했는데 누가 할래 했더니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다 안보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깃발을 든 사람이 나다. 나라도 나를 찾을 수 있게 하자. 그거 하면서 처음 하게 된거죠.

[앵커]
지금은 유해진 씨나 이종혁 씨나 큰 배우가 됐지만 주유소습격사건에 등장할 때만 해도 단역이었고, 그 때 받은 대본을 보면 역할이 양아치 1번, 3번 이셨나요?

[인터뷰]
1번도 아니고 3번이었습니다. 해진이 형은 있었을 거예요. 아마 배역 이름이 있었을 거예요.

[앵커]
이종혁 씨는 양아치3번. 몇 번 정도 나왔나요?

[인터뷰]
잘 모르겠는데, 뒤에 편집되고 주유소습격사건 때도 옷이랑 제가 다 구입을 해서 했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런 시기를 거쳐서 배우 인생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됐던 작품이 어떤 작품이라고 할 수있을까요?

[인터뷰]
아무래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많은 분들이 누군가. 하셨으니까 그때 그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그 작품 찍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인터뷰]
정말 액션을 열심히 연습을 했었고. 그때만 해도 신혼 때인데 태권도장을 무술감독님이 자기 태권도장이 아니라 친한 사람 태권도장에서 구석에다 애들 연습할 때 뒤에서 같이 연습을 하게 해서 옥상에서 줄넘기 하고 헬스장에서 런닝머신 뛰고 편의 점에서 우유 500mL 먹고. 그렇게 먹으면서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래 열심히 하자 그러면서.

[앵커]
헝그리정신으로 찍으셨군요.

[인터뷰]
정말 액션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앵커]
그당시 화제가 됐던 부분이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이종혁씨도 그렇고 상문고 출신들이 의기투합해서 승리했다.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도 캐스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인터뷰]
감독님이 그렇게 생각하셨을수도 있죠. 그런데 제가 대본을 봤을 때 우리 학교 얘기인 것 같은 거예요. 말죽거리 그러니까 이거 우리 학교 같은데. 우리동네에 있었나. 감독님이 상문고 출신이시더라고요. 제가 나이가 좀 있었지만 그때 제가 18살 역으로 했었거든요. 할 수 있겠다 했는데 했는데 감독님이 욕 한번 해볼래? 하셔서 욕 한번 했더니.

[앵커]
어떤 욕. 심한 욕을 하셨나요?

[인터뷰]
육두문자죠. 18. 이런 거하면서 그거 하니까 감독님이 좋아하셨고 그때 PD님이 제가 옛날에 연극라이어를 안내상, 이문식 씨랑 했거든요. 완전 막내 때 그런데 그 작품을 그 전에 주인공 하셨던 분이에요. 그래서 너 라이어 했었어. 그럼 너는 연기를 안 봐도 괜찮겠다 그래서 많이 도와주셨고 어떻게 운도 좋았던 것 같고.

[앵커]
연극할 때 고생하던 시절이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많은 분들이 이종혁 씨를 기억하는 작품 중의 하나는 신사의 품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서 이른바 꽃중년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어떤 작품일까요? 첫 광고를 찍게 한 작품이라고 하던데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어떤 광고였었죠?

[인터뷰]
그때 화제였던 것 같아요. 김은숙 작가가 그때 잘 해서 광고를 꼭 찍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꽃아 주시더라고요. 열심히 했죠. 그래서 광고 찍게 돼서 좋았고 누나 나 광고찍었어 햐니까 잘 됐다 하고.

[앵커]
신사에서는 바람둥이였잖아요. 다른 작품을 보면 악역으로도 나오고 . 제가 보니까 차도남 이미지도 있으신것 같습니다. 실제 성격은 어느 쪽입니까?

[인터뷰]
저는 되게 털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까칠하거나... 물론 많은 면이 있겠죠. 내가 연기에 필요한 것을 끄집어 내서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이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냥 털털하고 소주 한잔 마시는 것 좋아하고.

[앵커]
이종혁 씨 인생의 그래프를 그려본다면 꾸준한 상승세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상승세가 되는 데는 아내의 힘이 상당히 컸다고 보는데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었죠?

[인터뷰]
무명 시절이 있으니까요. 그때 어떻게 보면 미친 거죠.

[앵커]
어떤 점에서.

[인터뷰]
그 나이에 한 것도 미친 거고. 29살에 했거든요. 그때는 진짜 한 달에 두 달을 연습하고. 5개월 공연하고 한 달에 50만원씩 받았을 때였거든요. 그리고 그걸 하면서 대학로 관계자들한테도 눈에 띄고 이렇게 됐던것 같아요. 그러다가 열심히 하댜보니까 신인상을 받게 된거예요. 그때 상금이 서울연극예술제인가. 신인상을 받았어요.

약간 제 자랑 하는 것 같겠지만 제가 뮤지컬했을 때 인데 연극 배우를 제치고 연기상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괜찮다. 괜찮을 것 같다, 나.

[앵커]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인터뷰]
와이프를 만나면서 나 이정도 되면 1년에 1000만원 벌 수 있을 것 같다. 사귀자.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어도 괜찮아. 나 잘될 것 같아. 통장에 200만원이 있더라고요.

[앵커]
이종혁 씨 통장에요.

[인터뷰]
연극하면서 모아놨던 것. 자꾸 돈이 나가는 거예요, 데이트 할 때마다 빨리 결혼해야겠다. 자꾸 돈 나간다. 그래서 결혼을 조금 부모님한테 도움 받아서 했던 것 같고요.

[앵커]
그 당시에 아내분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있던 상황이었죠.

[인터뷰]
그렇죠. 저보다 연봉이 훨씬 셌고. 와이프가 회사에 가면 저는 집에서 청소를 하고 도시락도 싸주고 버스 탈 때 안녕 해 주고 괜히 그런 것있잖아요. 사람들 많은데 사랑해. 사람들 다 쳐다 보고. 뭐야 하면 괜히 부끄러운데 좋아하고 그러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거 하고. 집에서 월드컵 보고. 6개월 있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토요일 밤 열기 뮤지컬이 있는데 오디션이 있는데. 합격했어요.

그런데 참 웃기게 저는 춤을 못추거든요. 춤을 잘 출 수 있나. 토요일 밤 열기인데 왜 춤을 안 준비해 오지? 그냥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주인공이 된거예요.

[앵커]
당당함 때문에 된 것 같은데요.

[인터뷰]
네, 그런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저희끼리 공연을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알 수 없어요.

우리가 무슨 극단이 있는 것 같고 아니고 여러분이 많이 보시는 것도 아니고 학전에서도 오디션을 봤었는데 김 선생님이 너 공연할 수 있냐 했는데 저는 못하는데요. 그때 저는 다른 공연이 있었거든요.

너 오디션 왜 봤어? 저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냥 나중에 기회 되시면 불러주시라. 그랬는데 나중에 전화가 와서 학전에서 의형제라는 뮤지컬을 했었고.

[앵커]
많은 분들이 배우 이종혁 씨를 떠올리면 아무래도 준수 아빠, 이렇게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빠 어디가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어떤 경험이었을까요?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신 건?

[인터뷰]
배우로서 이미지가 애 데리고 나오는 게 좋은가 아닌가 생각하다가 그때는 정말성공이라는 생각없이 그냥 어떻게 보면 출연료도 받으면서 아이와 우리가 추억의 앨범을 만들 수 있겠다. 그래서 참여하게 됐던거고요. 그게 또 그렇게 빵 터질 줄 몰랐죠.

[앵커]
준수가 지금 10살인가요?

[인터뷰]
2학년입니다.

[앵커]
준수가 아빠 어디가 출연한 경험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나요? 그때 TV를 봤었나요, 준수가?

[인터뷰]
방송 당시에는 안 봤어요.

[앵커]
지금 많은 친구들이 많이 알아볼 같은데요.

[인터뷰]
지금은 알아보더라도 준수다. 그런 식이지 옛날에는 정말 준수다 하고. 그 정도였거든요. 인기가 많아서 제가 시샘한 적도 있지만.

[앵커]
조금 전에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 준 사람이 아내분이고 고마움도 표시를 하셨는데요. 사랑스런 아들 준수, 그리고 아내분에게 영상편지 부탁드릴게요.

[인터뷰]
영상편지요? 이런 거 잘 못하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큰아들과 작은아들. 우리 가족이 되어서 정말감사하고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왔던 대로 잘 살자. 고마워 아들들 사랑하고.

[앵커]
감사합니다. 꽃중년 이종혁 씨 이번에 악역으로 돌아오셨는데 내년에도 더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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