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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공감토크 초대손님은 개성있는 퍼포먼스와 20년 요리경력의 내공으로 쿡방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분입니다. 최현석 셰프와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오세요. 허셰프를 드디어 YTN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양복을 차려입은 셰프의 모습을 보는 게 낯설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 의상 콘셉트는 어떤 건가요?
◆ 최현석 셰프
굳이 말씀드리면 핏 좋은 셰프.
[앵커]
핏 좋은 셰프로 오늘 YTN을 방문해 주셨는데요. 요즘에 프로그램을 상당히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몇 개 정도 하고 계시나요?
◆ 최현석 셰프
최근에는 몇 개월 전부터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하나 줄여서 지금 1개 하고 있어요.
[앵커]
아, 이제 한 개 프로그램으로 줄이고 요리쪽에 집중하시는 건가요?
◆ 최현석 셰프
네, 원래 차차 줄여가면서 주방에 있는 시간은 늘 있기는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거의 주방에 거의 매일 박혀 있죠.
[앵커]
요즘은 그야말로 셰프의 전성시대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요즘에는 대중화됐지만 많은 분들이 셰프가 주방장, 요리사 이런 말을 과거에는 더 많이 쓰지 않았습니까?
◆ 최현석 셰프
그렇죠. 다른 개념인 건가요?
[앵커]
이게 셰프하고 다른 개념인가요?
◆ 최현석 셰프
셰프하고 주방장이 셰프이고 다 똑같은 겁니다. 닭튀김, 통닭, 치킨 다 똑같은거 아닙니까?
덜 맛있고 치킨이라면 덜 바삭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르기에 따라 다른거죠.
[앵커]
먹방이 알려지다보니까 셰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고 방송 전후에 많은 차이가 느껴지실 텐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최현석 셰프
일단 제가 요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요리사들은 그냥 종업원이었어요.
그러니까 주방 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지 지금은 레스토랑, 레스토랑은 셰프다, 요리사 얼굴을 보고 레스토랑을 찾아가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식도 좋아지고 또 아티스트처럼 봐주시는 분들도 있고 인식이 엄청 많이 좋아졌죠.
[앵커]
그런 면에서는 보람도 느끼지만 셰프가 너무 방송에 많이 나오다 보니까 또 일각에서는 저러면 요리는 언제하나라는 인식도 있을 것 같고 부정적인 면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게 있을까요?
◆ 최현석 셰프
노출이 된다는 것은 뭔가 호감을 갖고 좋게 봐주시는 분도 많지만 뭔가 공격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그리고 같은 컴플레인이라도 뭔가 더 호되게 당하고 더 많이 거리를 찾으시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죠.
[앵커]
셰프테이너 시대라고 하다보니까 셰프들끼리 경쟁도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까 진실이 아닌 소문들도 많이 나기 마련이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방송 카메라 불이 꺼지면 셰프들끼리 데면데면하다, 이런 이야기들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실제로 분위기는?
◆ 최현석 셰프
방송안에서. 예능이잖아요. 그러니까 웃고 떠들고 그러는데 경쟁이라는 게 방송으로 경쟁을 하는 것은 되게 웃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체질이 요리사인데. 저희가 연예인이면 쟤가 나 보다 한 번더 웃겨서 샘이 나고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우리는 요리사거든요.
쟤가 나보다 요리를 더 맛을 잘 내면 샘이 나고 뭔가 경쟁심리가 생기는 것은 맞는데 우리 필드가 아닌 데서 그걸로 뭔가 경쟁을 하는 것은 되게 웃긴 것 같아요.
[앵커]
최현석 셰프는 이른바 타고난 요리사다. 왜 그러냐면 부모님도 요리사였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이야기도 있던데. 이른바 금수저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최현석 셰프
제 기억에 그렇게 부유한 적이 없었고 늘 쪼들리는 생활을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 아버님이 주방장이기는 하셨지만 그렇게 예전에 요리사 직업이 굉장히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도 요리사이고 어머니도 요리사니까 잘 살았겠구나 생각을 하시는데 금수저, 제가 금수저였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아버지가 양식 조리사였던 거죠?
◆ 최현석 셰프
아버지는 양식 조리사였고 형도 요리를 하셨는데 형도 양식. 어머니는 한식을 하셨고요.
[앵커]
아버지가 저 요리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반응이 어땠습니까?
◆ 최현석 셰프
제가 요리하겠습니다라고 한 게 아니고 너도 요리나 해였던 것 같아요. 제가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했는데 너도 할 거 없으면 길이 이쪽이니까 요리를 해라라고 해서 형의 손에 이끌려서 요리를 하게 됐죠.
[앵커]
어머니는 한식요리사였으면 자라면서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많이 먹어봤을 것 같아요.
◆ 최현석 셰프
쪼들리더라도 먹는 건 정말 잘 먹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재료가 좋아서 맨날 갈비를 먹고 고기 반찬 이런 거라기 보다는 어머님이 음식을 잘하시니까 기억에 버섯 하나로도 뭔가 전을 부쳐서 만들어 주시면 고기맛이 나고 찌개를 끓이시고. 그런 조리법들을 다양하게 쓰셔서 입맛이 되게 예민해지고 호사를 누리는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죠.
[앵커]
어머니가 해 주신 요리 중에 제가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계란말이가 가장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하는데 계란말이의 추억은 어떤 건가요?
◆ 최현석 셰프
중학교 때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몰래 까먹다 들킨 적이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너무 화가 나셔서 입 안에 이만큼 계란말이를 물고 있는데 확인을 하시고 뺨을 치셨는데 코피가 났어요.
막 뒤로 지혈을 하는데 입 안에 피하고 계란말이가 있을 거 아니에요. 친구들이, 학우들이 같이 있는데 혼나고 하는 그런 수치심도 있지만 이걸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죠.
그때 뱉으면 또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꾹 참고 그냥 삼켰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앵커]
부모님으로부터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받았고 그리고 아버지도 요리나 해라고 이제 길고 정해 주셨고. 하지만 셰프가 되기까지 초년생길이고단하다고 들었는데요?
◆ 최현석 셰프
20년 전이었으니까 정말 힘들었던 것은 오래 서 있는 것. 아버님이평생동안 다리 주물러라, 저 너무 귀찮았거든요. 어린 나이에 쉬시기만 하면 주물러라, 밟아라. 왜 그러셨는지. 최근에는 또 절실하게 더 느끼고요.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힘들고 그리고 굉장히 화려해 보이잖아요. 플레이팅하고 영화를 보면 이러는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뭔가 쓸고 닦고 정리하고 설거지 하고 그런 일들이 정말 오랫동안 생각보다 길게 몸으로, 육체적으로 험한 일들을 많이 하거든요.
[앵커]
그런 기간을 몇 년 정도 지나신 건가요?
◆ 최현석 셰프
1년 몇 개월 한 것 같아요. 불판을 잡는, 선배가 불판을 잡을 때 거기서 준비해 주는 그 파트로 올라갔죠.
선배들이 막 요리를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데 약간 바쁘면 들어가서 살짝살짝 프라이팬도 잡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었고요.
조금 조금 지나서 불판도 잡고 메인파트에서 스테이크도 굽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런 기간을 차곡차곡 거쳐서 레시피 1000개를 넘게 개발하는 크레이지 셰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현석은 천재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 최현석 셰프
몇 년 전에는 분명히 동의를 했을 텐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한 8년 전, 제가 주방장이 되면서 부터 그러니까 스승님이 하시는 요리를 똑같이 하기 싫어서 메뉴를 개발했는데 정말 좋은 요리들이 많았던 건 오랜 기간 앞으로 창작하기 위해서 응축했던 그런 기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스승님한테 배워서. 그게 어느 정도 600개 정도 지나고 나서는 점점 고갈될 거 아니에요.
그때는 공부를 하고 뭔가 영감을 얻기 위해서 많이 찾아다니고 이렇게 되니까 처음에는 천재다, 나는 천재야. 천재인데 왜 조금씩 막히지? 천재 아닌가? 아직 천재야. 천재 아닐 지도 몰라, 나는 천재가 아니구나, 이렇게 바뀐 것 같아요.
[앵커]
많은 분들이 허셰프하면 생각나는 게 이렇게 소금 뿌리는 거. 제가 잘못낸 건가요, 어떻게 해야 맞는 건가요?
한번 보여주시죠. 어떻게 해야 되나요?
◆ 최현석 셰프
원래 이렇게 30cm 정도 위에서 조금 높은 곳에서 이렇게 뿌리거든요. 그래야 고르게 뿌려지는데 가까운 곳에서 뿌리면 뭉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주방이 원래 재미가 없고 그러니까 후배들 재미있으라고. 장난을 좀... 그런데 약간 각이 멋있게 나와야 되거든요. 재미로 해서 방송에서 했던 것인데 그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각인돼서 허셰프라는 이미지가 된 거죠.
[앵커]
후배들 재미있게 해 주려고 이런 것까지 연구를 하셨다고 했는데 주방에서는 어떤 선배입니까? 무섭습니까?
◆ 최현석 셰프
일단 그냥 선배였을 때는 되게 재미있는 형이고 잘 따르는 형이었는데. 주방장이 되면서 무서웠던 주방장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 전에 더셰프라는 영화를 봤는데 어쩌면 그렇게 나랑 똑같은지. 진짜 요리가 원하는 대로 안 되고 그러면 다 쏟아붓고. 한때 정말 욕설 많이 하는 셰프였을 때도 있고. 그런데 지금은...
[앵커]
상상이 안 가는데요, 최현석 셰프가.
◆ 최현석 셰프
그렇죠. 저도 이렇게 온화한 제 입에서 그런 욕이 나갔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셰프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던 그런 셰프인데요. 한때는 좀 우울증 같은 것도 빠진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적이 언제인가요?
◆ 최현석 셰프
3년 전인가. 교육이나 이런 쪽에서도 굉장히 많이 요청이 들어오고 그리고 학생들이 제가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유명한 요리사가 되어 있으니까 학생들이 이메일을 많이 보내요.
그런데 정말 그때는 이메일이 많이 왔어요. 그리고 회사도 저에게 주목이 되어 있고 저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에. 그러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되게 컸던 것 같아요.
내 앞가림도 못하고 사는데 내가 남들한테 멘토가 되거나 이럴 수 있는 주변이 될까라는 생각에 막 스트레스를 받다가 그러다가 약간 불면증이 걸리고 되게 우울증 같은 게 걸려서 6개월 동안 심하게 고생했던 적이 있어요.
[앵커]
최현석 셰프의 요리. 그리고 최현석 셰프의 요리에 대한 철학을 보고 많은 팬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하고 계신데요. 젊은이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는 요인 중의 하나가 최현석 셰프가 유학도 다녀오지 않았고요.
그리고 고등학교 출신이지만 굉장히 성공한 셰프가 됐다는 점 때문일 수도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학력이나 유학 이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건가요?
◆ 최현석 셰프
이런 얘기들을 후배들한테 제자들한테 많이 하거든요. 꿈을 이루는 길이 어떻게 한 가지 길이 있겠냐. 다양하게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는데. 물론 유학이나 좋은 요리 교육기관에서 아니면 좋은 레스토랑에서의 경험들은 분명히 좋은 키가 되기는 하는데 그게 뭐든지 가능하게 만드는 열쇠는 아니거든요.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누가 그걸 잘 살리고 더 열심히 하고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을 해요. 제 주변의 지인 셰프들이 면접을 볼 때 자격증, 요리대회 수상경력,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써요.
면접을 봤을 때 그 사람 인성. 얼마나 빠릿빠릿하냐, 잘할 수 있나. 그런 근성이나 이런 것들을 보지 본인이 중요한 거죠. 현실적으로 뭔가 내가 그런 게 지원이 되면 좋은 쪽이기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훨씬 좋은 거거든요.
그런 것을 배워서 이용할 수 있지만 현실이 안 되는데 무리해서 집 팔아서 유학가서 요리사되는 것은 되게 웃긴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칼질도 못 했는데 칼질 배워가면서 요리를 배워가면서 했는데 다양한 길이 있다라는 것.
[앵커]
요즘에 셰프가 뜨다보니까 일등신랑감으로도 꼽히고 있습니다. 셰프가 정말 일등신랑감입니까?
◆ 최현석 셰프
셰프는 좋은 연애상대가 될 수 있는데, 애인감은 되는데 신랑감은 별로 좋지 않아요.
왜냐하면 신랑감은 결혼해서.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들이 되게 중요한데 근무하는 시간 자체가 굉장히 길고요. 그리고 뭔가, 뭔가를 기념할 만한 좋은 날들 그런 날들은 우리는 주방에 있어야 되는데 제일 바쁜 날이거든요.
와이프도 그런 것 같아요. 아이들도 요리사 남편을 데리고 온다고 하면 절대로 시집보내지 않겠다.
[앵커]
예쁜 두 딸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 것 같은데 따님이 사진을 보니까 키도 굉장히 크고 미인이더라고요.
◆ 최현석 셰프
네. 좀 그렇게 길쭉길쭉 아빠를 닮아서.
[앵커]
이제 연말이라 더 바빠지실 것 같은데요. 이 기회를 빌어서 가족에게 짤막하게 영상편지라도. 카메라 보시면서 잠깐 해 주시죠.
◆ 최현석 셰프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가족들하고 시간을 가장 많이 못 한 게 미안한데. 가족들하고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이거 되게 어색한데요. 쑥쓰럽고 이런 거 잘못해서요. 연수야, 연재야 사랑한다.
[앵커]
사랑한다는 말까지 이렇게 남겨주셨는데요. 연말에 가족에게 큰 기쁨일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전성기를 누리고 계시고 앞으로도 제2의, 제3의 전성기가 기대가 되는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 있으실까요?
◆ 최현석 셰프
전 세계 미식도시라고 할 만한 그런 곳에 탁탁탁 제 레스토랑을 꽂아넣는 게 제 목적이고요. 인성과 소양, 그리고 실력 모든 것을 갖춘 요리기관, 요리학교 이런 것을 세우는 게 제 큰 목표입니다.
[앵커]
앞으로 전세계 곳곳에 최현석 셰프의 레스토랑이 세워지는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 최현석 셰프
내년이나 내후년에 저희 뉴욕에 있는 레스토랑에 놀러오시죠.
[앵커]
초대해 주시면 꼭 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최현석 셰프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최현석 셰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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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감토크 초대손님은 개성있는 퍼포먼스와 20년 요리경력의 내공으로 쿡방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분입니다. 최현석 셰프와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오세요. 허셰프를 드디어 YTN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양복을 차려입은 셰프의 모습을 보는 게 낯설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 의상 콘셉트는 어떤 건가요?
◆ 최현석 셰프
굳이 말씀드리면 핏 좋은 셰프.
[앵커]
핏 좋은 셰프로 오늘 YTN을 방문해 주셨는데요. 요즘에 프로그램을 상당히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몇 개 정도 하고 계시나요?
◆ 최현석 셰프
최근에는 몇 개월 전부터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하나 줄여서 지금 1개 하고 있어요.
[앵커]
아, 이제 한 개 프로그램으로 줄이고 요리쪽에 집중하시는 건가요?
◆ 최현석 셰프
네, 원래 차차 줄여가면서 주방에 있는 시간은 늘 있기는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거의 주방에 거의 매일 박혀 있죠.
[앵커]
요즘은 그야말로 셰프의 전성시대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요즘에는 대중화됐지만 많은 분들이 셰프가 주방장, 요리사 이런 말을 과거에는 더 많이 쓰지 않았습니까?
◆ 최현석 셰프
그렇죠. 다른 개념인 건가요?
[앵커]
이게 셰프하고 다른 개념인가요?
◆ 최현석 셰프
셰프하고 주방장이 셰프이고 다 똑같은 겁니다. 닭튀김, 통닭, 치킨 다 똑같은거 아닙니까?
덜 맛있고 치킨이라면 덜 바삭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르기에 따라 다른거죠.
[앵커]
먹방이 알려지다보니까 셰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고 방송 전후에 많은 차이가 느껴지실 텐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최현석 셰프
일단 제가 요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요리사들은 그냥 종업원이었어요.
그러니까 주방 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지 지금은 레스토랑, 레스토랑은 셰프다, 요리사 얼굴을 보고 레스토랑을 찾아가고 그러니까 굉장히 인식도 좋아지고 또 아티스트처럼 봐주시는 분들도 있고 인식이 엄청 많이 좋아졌죠.
[앵커]
그런 면에서는 보람도 느끼지만 셰프가 너무 방송에 많이 나오다 보니까 또 일각에서는 저러면 요리는 언제하나라는 인식도 있을 것 같고 부정적인 면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게 있을까요?
◆ 최현석 셰프
노출이 된다는 것은 뭔가 호감을 갖고 좋게 봐주시는 분도 많지만 뭔가 공격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그리고 같은 컴플레인이라도 뭔가 더 호되게 당하고 더 많이 거리를 찾으시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죠.
[앵커]
셰프테이너 시대라고 하다보니까 셰프들끼리 경쟁도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까 진실이 아닌 소문들도 많이 나기 마련이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방송 카메라 불이 꺼지면 셰프들끼리 데면데면하다, 이런 이야기들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실제로 분위기는?
◆ 최현석 셰프
방송안에서. 예능이잖아요. 그러니까 웃고 떠들고 그러는데 경쟁이라는 게 방송으로 경쟁을 하는 것은 되게 웃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체질이 요리사인데. 저희가 연예인이면 쟤가 나 보다 한 번더 웃겨서 샘이 나고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우리는 요리사거든요.
쟤가 나보다 요리를 더 맛을 잘 내면 샘이 나고 뭔가 경쟁심리가 생기는 것은 맞는데 우리 필드가 아닌 데서 그걸로 뭔가 경쟁을 하는 것은 되게 웃긴 것 같아요.
[앵커]
최현석 셰프는 이른바 타고난 요리사다. 왜 그러냐면 부모님도 요리사였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이야기도 있던데. 이른바 금수저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최현석 셰프
제 기억에 그렇게 부유한 적이 없었고 늘 쪼들리는 생활을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 아버님이 주방장이기는 하셨지만 그렇게 예전에 요리사 직업이 굉장히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도 요리사이고 어머니도 요리사니까 잘 살았겠구나 생각을 하시는데 금수저, 제가 금수저였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아버지가 양식 조리사였던 거죠?
◆ 최현석 셰프
아버지는 양식 조리사였고 형도 요리를 하셨는데 형도 양식. 어머니는 한식을 하셨고요.
[앵커]
아버지가 저 요리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반응이 어땠습니까?
◆ 최현석 셰프
제가 요리하겠습니다라고 한 게 아니고 너도 요리나 해였던 것 같아요. 제가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했는데 너도 할 거 없으면 길이 이쪽이니까 요리를 해라라고 해서 형의 손에 이끌려서 요리를 하게 됐죠.
[앵커]
어머니는 한식요리사였으면 자라면서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많이 먹어봤을 것 같아요.
◆ 최현석 셰프
쪼들리더라도 먹는 건 정말 잘 먹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재료가 좋아서 맨날 갈비를 먹고 고기 반찬 이런 거라기 보다는 어머님이 음식을 잘하시니까 기억에 버섯 하나로도 뭔가 전을 부쳐서 만들어 주시면 고기맛이 나고 찌개를 끓이시고. 그런 조리법들을 다양하게 쓰셔서 입맛이 되게 예민해지고 호사를 누리는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죠.
[앵커]
어머니가 해 주신 요리 중에 제가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계란말이가 가장 기억이 많이 남는다고 하는데 계란말이의 추억은 어떤 건가요?
◆ 최현석 셰프
중학교 때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몰래 까먹다 들킨 적이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너무 화가 나셔서 입 안에 이만큼 계란말이를 물고 있는데 확인을 하시고 뺨을 치셨는데 코피가 났어요.
막 뒤로 지혈을 하는데 입 안에 피하고 계란말이가 있을 거 아니에요. 친구들이, 학우들이 같이 있는데 혼나고 하는 그런 수치심도 있지만 이걸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죠.
그때 뱉으면 또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꾹 참고 그냥 삼켰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
[앵커]
부모님으로부터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받았고 그리고 아버지도 요리나 해라고 이제 길고 정해 주셨고. 하지만 셰프가 되기까지 초년생길이고단하다고 들었는데요?
◆ 최현석 셰프
20년 전이었으니까 정말 힘들었던 것은 오래 서 있는 것. 아버님이평생동안 다리 주물러라, 저 너무 귀찮았거든요. 어린 나이에 쉬시기만 하면 주물러라, 밟아라. 왜 그러셨는지. 최근에는 또 절실하게 더 느끼고요.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힘들고 그리고 굉장히 화려해 보이잖아요. 플레이팅하고 영화를 보면 이러는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뭔가 쓸고 닦고 정리하고 설거지 하고 그런 일들이 정말 오랫동안 생각보다 길게 몸으로, 육체적으로 험한 일들을 많이 하거든요.
[앵커]
그런 기간을 몇 년 정도 지나신 건가요?
◆ 최현석 셰프
1년 몇 개월 한 것 같아요. 불판을 잡는, 선배가 불판을 잡을 때 거기서 준비해 주는 그 파트로 올라갔죠.
선배들이 막 요리를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데 약간 바쁘면 들어가서 살짝살짝 프라이팬도 잡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었고요.
조금 조금 지나서 불판도 잡고 메인파트에서 스테이크도 굽고 그랬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런 기간을 차곡차곡 거쳐서 레시피 1000개를 넘게 개발하는 크레이지 셰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현석은 천재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 최현석 셰프
몇 년 전에는 분명히 동의를 했을 텐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한 8년 전, 제가 주방장이 되면서 부터 그러니까 스승님이 하시는 요리를 똑같이 하기 싫어서 메뉴를 개발했는데 정말 좋은 요리들이 많았던 건 오랜 기간 앞으로 창작하기 위해서 응축했던 그런 기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스승님한테 배워서. 그게 어느 정도 600개 정도 지나고 나서는 점점 고갈될 거 아니에요.
그때는 공부를 하고 뭔가 영감을 얻기 위해서 많이 찾아다니고 이렇게 되니까 처음에는 천재다, 나는 천재야. 천재인데 왜 조금씩 막히지? 천재 아닌가? 아직 천재야. 천재 아닐 지도 몰라, 나는 천재가 아니구나, 이렇게 바뀐 것 같아요.
[앵커]
많은 분들이 허셰프하면 생각나는 게 이렇게 소금 뿌리는 거. 제가 잘못낸 건가요, 어떻게 해야 맞는 건가요?
한번 보여주시죠. 어떻게 해야 되나요?
◆ 최현석 셰프
원래 이렇게 30cm 정도 위에서 조금 높은 곳에서 이렇게 뿌리거든요. 그래야 고르게 뿌려지는데 가까운 곳에서 뿌리면 뭉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주방이 원래 재미가 없고 그러니까 후배들 재미있으라고. 장난을 좀... 그런데 약간 각이 멋있게 나와야 되거든요. 재미로 해서 방송에서 했던 것인데 그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각인돼서 허셰프라는 이미지가 된 거죠.
[앵커]
후배들 재미있게 해 주려고 이런 것까지 연구를 하셨다고 했는데 주방에서는 어떤 선배입니까? 무섭습니까?
◆ 최현석 셰프
일단 그냥 선배였을 때는 되게 재미있는 형이고 잘 따르는 형이었는데. 주방장이 되면서 무서웠던 주방장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 전에 더셰프라는 영화를 봤는데 어쩌면 그렇게 나랑 똑같은지. 진짜 요리가 원하는 대로 안 되고 그러면 다 쏟아붓고. 한때 정말 욕설 많이 하는 셰프였을 때도 있고. 그런데 지금은...
[앵커]
상상이 안 가는데요, 최현석 셰프가.
◆ 최현석 셰프
그렇죠. 저도 이렇게 온화한 제 입에서 그런 욕이 나갔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셰프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던 그런 셰프인데요. 한때는 좀 우울증 같은 것도 빠진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적이 언제인가요?
◆ 최현석 셰프
3년 전인가. 교육이나 이런 쪽에서도 굉장히 많이 요청이 들어오고 그리고 학생들이 제가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유명한 요리사가 되어 있으니까 학생들이 이메일을 많이 보내요.
그런데 정말 그때는 이메일이 많이 왔어요. 그리고 회사도 저에게 주목이 되어 있고 저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에. 그러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되게 컸던 것 같아요.
내 앞가림도 못하고 사는데 내가 남들한테 멘토가 되거나 이럴 수 있는 주변이 될까라는 생각에 막 스트레스를 받다가 그러다가 약간 불면증이 걸리고 되게 우울증 같은 게 걸려서 6개월 동안 심하게 고생했던 적이 있어요.
[앵커]
최현석 셰프의 요리. 그리고 최현석 셰프의 요리에 대한 철학을 보고 많은 팬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하고 계신데요. 젊은이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는 요인 중의 하나가 최현석 셰프가 유학도 다녀오지 않았고요.
그리고 고등학교 출신이지만 굉장히 성공한 셰프가 됐다는 점 때문일 수도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학력이나 유학 이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건가요?
◆ 최현석 셰프
이런 얘기들을 후배들한테 제자들한테 많이 하거든요. 꿈을 이루는 길이 어떻게 한 가지 길이 있겠냐. 다양하게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는데. 물론 유학이나 좋은 요리 교육기관에서 아니면 좋은 레스토랑에서의 경험들은 분명히 좋은 키가 되기는 하는데 그게 뭐든지 가능하게 만드는 열쇠는 아니거든요.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누가 그걸 잘 살리고 더 열심히 하고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을 해요. 제 주변의 지인 셰프들이 면접을 볼 때 자격증, 요리대회 수상경력,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써요.
면접을 봤을 때 그 사람 인성. 얼마나 빠릿빠릿하냐, 잘할 수 있나. 그런 근성이나 이런 것들을 보지 본인이 중요한 거죠. 현실적으로 뭔가 내가 그런 게 지원이 되면 좋은 쪽이기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훨씬 좋은 거거든요.
그런 것을 배워서 이용할 수 있지만 현실이 안 되는데 무리해서 집 팔아서 유학가서 요리사되는 것은 되게 웃긴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칼질도 못 했는데 칼질 배워가면서 요리를 배워가면서 했는데 다양한 길이 있다라는 것.
[앵커]
요즘에 셰프가 뜨다보니까 일등신랑감으로도 꼽히고 있습니다. 셰프가 정말 일등신랑감입니까?
◆ 최현석 셰프
셰프는 좋은 연애상대가 될 수 있는데, 애인감은 되는데 신랑감은 별로 좋지 않아요.
왜냐하면 신랑감은 결혼해서.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들이 되게 중요한데 근무하는 시간 자체가 굉장히 길고요. 그리고 뭔가, 뭔가를 기념할 만한 좋은 날들 그런 날들은 우리는 주방에 있어야 되는데 제일 바쁜 날이거든요.
와이프도 그런 것 같아요. 아이들도 요리사 남편을 데리고 온다고 하면 절대로 시집보내지 않겠다.
[앵커]
예쁜 두 딸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 것 같은데 따님이 사진을 보니까 키도 굉장히 크고 미인이더라고요.
◆ 최현석 셰프
네. 좀 그렇게 길쭉길쭉 아빠를 닮아서.
[앵커]
이제 연말이라 더 바빠지실 것 같은데요. 이 기회를 빌어서 가족에게 짤막하게 영상편지라도. 카메라 보시면서 잠깐 해 주시죠.
◆ 최현석 셰프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가족들하고 시간을 가장 많이 못 한 게 미안한데. 가족들하고 많은 시간을 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이거 되게 어색한데요. 쑥쓰럽고 이런 거 잘못해서요. 연수야, 연재야 사랑한다.
[앵커]
사랑한다는 말까지 이렇게 남겨주셨는데요. 연말에 가족에게 큰 기쁨일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전성기를 누리고 계시고 앞으로도 제2의, 제3의 전성기가 기대가 되는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 있으실까요?
◆ 최현석 셰프
전 세계 미식도시라고 할 만한 그런 곳에 탁탁탁 제 레스토랑을 꽂아넣는 게 제 목적이고요. 인성과 소양, 그리고 실력 모든 것을 갖춘 요리기관, 요리학교 이런 것을 세우는 게 제 큰 목표입니다.
[앵커]
앞으로 전세계 곳곳에 최현석 셰프의 레스토랑이 세워지는 것을 기대하겠습니다.
◆ 최현석 셰프
내년이나 내후년에 저희 뉴욕에 있는 레스토랑에 놀러오시죠.
[앵커]
초대해 주시면 꼭 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최현석 셰프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최현석 셰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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