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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승훈, 가수
[앵커]
이분이 갖고 있는 기록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죠. 데뷔 25주년을 맞은 발라드의 황제입니다. 열한 번째 정규앨범으로 만나보는 가수 신승훈 씨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앵커]
팬들에게 멋진 가을선물을 갖고 돌아오셨습니다. 이번에 몇 년 만에 정규앨범 내신 거죠?
[인터뷰]
9년 만에 내는 거예요.
[앵커]
9년 만에요.
[인터뷰]
그런데 중간에 미니앨범을, 아무것도 안 하면. 미니앨범을 내기는 냈는데 활동을 안 했죠. 정규앨범으로서는 9년 만에 나온 것 같아요.
[앵커]
정규앨범이 9년 만에 나왔고요. 따끈따끈한 앨범이 제 손에 있습니다. 바로 이 앨범인데요. 가까이 좀 보여주실까요? 보니까 'I am…& I am', 이렇게 써져 있네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인터뷰]
가장 신승훈다운 음악도 있고요.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담은 그런 음악들이 있어서 6곡 정도는 신승훈스러운. 그리고 나머지 6곡 정도는 신승훈이 그런 음악을으로 구분을 해서 재미있게 구성을 해 봤어요.
[앵커]
원조 신승훈, 뉴 신승훈이 조합된 그런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인터뷰]
그렇죠. 기존에 있었던 팬분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그다음에 저도 어차피 계속 실험정신을 하더라고요. 하다 보니 어떻게 보니 반씩이 나눠졌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엠 앤 아이엠으로 해 보자해서 했습니다.
[앵커]
파트 원하고 파트 투하고 타이틀곡이 다른 거죠. 파트 원이 이게 나예요. 파트 투가 타이틀곡이 '마요'라는 곡인데 두 곡이 색채가 다르더라고요. 소개를 해 주시죠.
[인터뷰]
'이게 나예요'는 애절한 발라드를 기다리셨던 기존 팬분들을 위한 오랫동안 기다려주셨잖아요. 그런 실험정신 없이 그냥 신승훈 스타일을 내봤고요. 마요는 제 속의 또 다른 나가 계속 있어요. 그래서 가끔 힙합도 하고 그런 마음이 있는데 그런 마음으로 해서 빈지노라는 친구와 랩을 같이 해서 콜라보로 같이 했는데 팬들이 선물을 자꾸 마요네즈를 선물을 해서 살 많이 찔 것 같아서 그 선물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마요네즈의 마요가 그 뜻은 아닌데.
[인터뷰]
뭐뭐 하지 마요, 이게 아닌데…. 여러분, 마요네즈 선물하지 마요.
[앵커]
이게 나예요는 신승훈표 정통 발라드인데요. 들어보니까 애절한 이별 이야기더라고요, 혹시 본인 이야기는 아니시죠?
[인터뷰]
그냥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최근에 가사를 십 몇 년 동안 못 썼거든요. 예전에는 타이틀곡을 다 제가 작사를 직접 제가 했는데 어느 새부터 무뎌지기 시작한 것도 있고 자신도 없어지고 또 어떨 때는 유치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큰일났다. 철이 들었구나, 내가. 철 없을 때는 막 썼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무심코 철이 들었음에도 그 멜로디를 쓰는데 바로 가사가 나와서 어찌보면 진정성있는 저의 또 다른 머릿속에 있었던 가사가 나온 것 같아요
[앵커]
예전에는 악상이 안 떠오르면 안면도 가신다,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펜션을 전전했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어떤 얘기입니까?
[인터뷰]
그런 것을 느꼈어요. 그냥 어느 곳에 가서 곡을 쓰는 게 아니라 차에서 즐기는 정경들이, 특히 거기는 서해안쪽이기 때문에 해가 질 때 제가 한번 갔는데 진짜 해가 석양이 질 때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 이런 걸 느껴야지 음악을 만들지 내가 왜 바쁘게 작업실에서 곡을 쓰려고 했지,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서 힐링도 되고 또 좋은 노래를 쓸 수 있다라는 것.
[앵커]
그만큼 이번 앨범에 대한 부담이 컸다라는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렇죠. 9년 만의 정규앨범이고. 기다려주신 분들도 계시고. 신승훈을 잘 모르시는 분들, 어린 친구들에게도 이분 조금 하네, 이렇게 하는 소리도 듣고 싶었거든요, 사실.
[앵커]
음악 외길 25년입니다. 벌써 25년이 됐습니다. 음악 인생의 시작이 통기타 하나에서 시작이 됐다고 하던데요. 그 통기타는 어떻게 해서 얻게 된 건가요?
[인터뷰]
통기타는 일단은 저희 아버님이 중학교 2학년 때 약속을 안 지키셨어요. 저희는 그때부터 영악했던 것 같아요. 제 남동생이랑. 이때가 기회다, 뭘 사달라고 하자. 그래서 저는 바이올린이었고 남동생이 기타를 사달라고 했는데 막상 딱 받고 났는데 바이올린보다 기타가 더 매력이 있어서 트레이드를 했죠, 제 남동생과. 제가 용돈을 준 것 같아요. 그리고 기타를 받아서 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아마 시작됐던 것 같아요, 음악을.
[앵커]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셨기 때문에 결국은 아버지가 음악의 인생을 선물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런데 제가 가수를 처음 시작을 할 때 아버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왜냐하면 네가 과연 서울 올라가서 성공할 수 있냐. 실패를 했을 경우에는 아버지인 나로서도 어떤 위로도 안 될 거다. 그런 상처입는 것을 많이 생각을 하셨는데 막상 데뷔하고 노래가 히트되니까 아버님이 모든 잡지를 다 오려서 어머니보다 아버님이 더 열성적으로 스크랩을 해 주시는, 그랬죠.
[앵커]
데뷔하자마자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고요. 어떻게 보면 무명시절이 다른 가수보다는 상당히 짧았던 거잖아요.
[인터뷰]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처음에 데뷔할 때 저희 사무실에서 얼굴 없는 가수로 가자는 그런 것 때문에.
[앵커]
왜요?
[인터뷰]
모르겠어요. 그냥 언더쪽, 이렇게 생각을 하셨나봐요. 데뷔해서 11월 1일 90년에 데뷔를 했는데 그다음 해 91년 4월까지 TV를 한 번도 못했어요.
[앵커]
굉장히 섭섭하셨겠어요, 이렇게 잘생겼는데.
[인터뷰]
아니, 그것은 아니고요. 그때 아무튼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길거리에서 울려퍼지는데 제가 서 있어도 사람들이 저를 못 알아보는. 되게 안타까워서 사장님한테 저 TV 좀 출연시켜주세요라고 그랬는데 4월쯤에 모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올라갔으니까 당연히 나와야 되는 거죠. 그게 저한테는 처음 TV에 나왔던 게 소중한 기억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런 시기를 거쳐서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90년대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데요. 90년대 생각하면 어떠십니까. 그야말로 음악의 황금기였고 또 신승훈 씨의 전성기이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요.
[인터뷰]
맞습니다. 90년대라고 하면 진짜 자부심이 클 만큼 열심히도 했고요. 그리고 열심히 한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아직도 신승훈 그러면 그때를 추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앵커]
그 당시에 대기실에서 같이 있었던 가수들 하면 김건모 씨.
[인터뷰]
그렇죠. 김건모 씨는 대기실에만 같이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소속사였기 때문에 사무실도 같고 차를 또 같이 타고 오고. 처음 김건모 씨가 TV 출연할 때 분장실에 제가 데려가서, 제가 선배니까 먼저 데뷔를 했으니까 이 친구 얼굴 좀 새카마니까 조금만 하얗게 해 달라고 그랬는데 너무 하얗게 해서 진짜 되게 미안했었어요.
[앵커]
90년대 투톱이라고 할 수 있는 김건모 씨랑 신승훈 씨인데 결혼 안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건모 씨는 옆에서 봤을 때 왜 그러신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러게요. 저도 지금 생각을 해 보니까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분명히 외로워하고 있거든요, 서로들. 그런데 무슨 음악 때문은 아닌 것 같고요. 그렇게 살아오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조만간에 심각하게 김건모 씨랑 둘이 만나서 우리 어떻게 해야 되겠니 하면서 얘기를 좀 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앵커]
결과가 나오면 저희도 알려주시죠.
[인터뷰]
그런데 분명히 김건모 씨는 제가 먼저 가면 자기도 간다고 할 거예요.
[앵커]
그때 대기실하고 요즘 또 활동하면서 보는 대기실하고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진 건가요?
[인터뷰]
일단은 90년대에는 낭만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룹보다는 솔로들이 많았고 지방을 내려가도 한 차에 다 같이, 그래서 해운대에 있는 공연장으로 갔다가 끝나고 다 같이 오고 이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마케팅적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부각되는 바람에 좀 아쉽기는 합니다. 예전처럼 좀 낭만 있는 시대, 그런 게 훨씬 더 좋았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가족과 같은 팬들과 호흡하는 가장 최고의 자리가 아무래도 콘서트일 텐데요. 이번에도 전국 콘서트 들어가시는 거죠?
[인터뷰]
네, 일단 12월 4, 5, 6일부터 해서 광주, 부산, 대구. 크리스마스 때는 부산에 있을 것 같고요. 크리스마스 때 좋은 일 있을 것 같아서 항상 콘서트 안 하고 쉬었더니 별일 없어서 이번에는 계속 공연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앵커]
공연 때마다 기획도 꼼꼼하게 직접 하신다고 들었고요. 이번 공연이 좀 특별한 점이라고 할까요,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기획도 예전에 많이 했는데, 연출도 직접하고. 그러다보니까 많은 사람들은 신승훈은 너무 완벽주의자, 이런 것 때문에 그래서 제가 결혼을 못하는 걸 수도 있어요. 이 자리를 통해서 허술하다. 그런 것도 보여 드리고 싶은데 저런 사람이랑 만나면 되게 피곤할 것 같아, 그런 것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연출을 안 합니다.
[앵커]
이미지 관리하시는 거군요.
[인터뷰]
아니요. 연출은 안 하고 이번 공연은 남다른 공연이 될 것 같아요. 항상 여태까지 1000회 이상 공연을 하면서 70% 정도밖에 만족을 못했다면 90% 만족하는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위안도 되어 주고 추억도 건드려주고.
[앵커]
한층 밝아진 노래로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런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팬들과 호흡한 공연 중에 잊지 못할 공연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인터뷰]
10주년 공연 때 야외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비를 쓰고 있는 1만 몇 천명을 봤을 때 진짜 감동이었고 팬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비가 내리니까, 저는 솔직히 비를 안 맞았거든요. 공연중 위가 막혀 있어서. 그런데 비를 맞으러 앞으로 나가니까 막 들어가라고. 비 맞지 말라고.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이 맞는데 어떻게 제가 안 맞을 수 있냐고. 딱 나갔는데 우비를 쓰고 있던 걸 전부 다 벗는 거예요. 1만 몇 천 명이. 하얗게 있다가 싹 변하는 거예요. 아, 내가 이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몇 십년을 이 친구들을 위해서 노래만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돼서 그 다음부터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콘서트라는 걸, 방송보다는.
그러다 보니까 TV를 거의 10년이나 못했어요. 그래서 요즘에 저를 몰라보는 친구도 많이 생기고 계몽 가수가 됐거든요. 엄마가 얘기를 해 줘야 돼요.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앵커]
비 맞고도 몇 시간씩 응원해 주는 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25년 노래하다 보면 슬럼프도 찾아올거고요. 힘들 때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을까요?
[인터뷰]
최근에 5년 전, 6년 전에 정말 음악을 관둘까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어떤 음악을 들어도 저한테 감동이 없고 이것은 도대체 음악이 잘못된 건지 내가 잘못된 건지 그것 때문에 거의 2, 3년을.
항상 음악을 끼고 살거든요. 심지어는 샤워할 때도 안에 방수라디오가 있어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서 샤워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음악을 안 들을 수 있나 할 정도로 음악을 안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잘못하면 진짜로 가요계를 떠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 어쩔 수 없더라고요. 팬들의 중간의 응원들이라든지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음악을 찾아서 들었는데 몇 년 동안 음악을 안 듣다 보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이제는 그렇게 안 하려고요.
[앵커]
이번 앨범을 제가 쭉 보니까, 노래를 들어보니까 가장 특별한 곡이 있었습니다. 신승훈 씨가 결혼식 축가 많이 부르기로 유명한데. 이제는 축가는 그만 부르겠다. 내 청혼곡을 부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청혼할 노래를 앨범에 실으셨어요.
[인터뷰]
'Would You Marry Me'라는 노래를 실었습니다.
[앵커]
저 개인적으로 그 노래가 가장 가슴에 와닿던 노래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제 미래의 신승훈 씨 반쪽을 만나면 꼭 불러주실 거잖아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여기서 미리 연습을 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인터뷰]
쑥스럽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노래를 하려다보니까. 그래도 마음을 담아서.
[앵커]
이 노래 부르시면 어떤 여자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그래요? 저는 노래로는 프러포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걸로 어필하고 싶지 노래로 여자에게 매력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앵커]
프러포즈 계획까지 다 세우셨군요.
[인터뷰]
어떻게 할지 다. 여기서도 말씀드려도 되죠? 제 슬로건은 걸리기만 해라, 이겁니다.
[앵커]
이번 앨범이 'I am…& I am'. 신승훈 씨 인생에서 시즌2의 인생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십니까?
[인터뷰]
저로서는 그냥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어떤 분들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신승훈 정도면 25년 됐으면 이제 듣는 사람이 불안하지 않게 안정된 음악 좀 하라고. 왜 자꾸 실험을 하냐고 하는데 제 성격상 안 되겠어요. 욕을 먹을지언정 계속하고 싶은 건 해야 될 것 같고. 그리고 나서도 또 기존에 사랑했었던 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해야 될 것 같고요.
[앵커]
이번 콘서트도 기대해야 되겠습니다.
[인터뷰]
꼭 와주십시오.
[앵커]
꼭 가겠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발라드계의 황태자죠. 신승훈 씨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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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분이 갖고 있는 기록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죠. 데뷔 25주년을 맞은 발라드의 황제입니다. 열한 번째 정규앨범으로 만나보는 가수 신승훈 씨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앵커]
팬들에게 멋진 가을선물을 갖고 돌아오셨습니다. 이번에 몇 년 만에 정규앨범 내신 거죠?
[인터뷰]
9년 만에 내는 거예요.
[앵커]
9년 만에요.
[인터뷰]
그런데 중간에 미니앨범을, 아무것도 안 하면. 미니앨범을 내기는 냈는데 활동을 안 했죠. 정규앨범으로서는 9년 만에 나온 것 같아요.
[앵커]
정규앨범이 9년 만에 나왔고요. 따끈따끈한 앨범이 제 손에 있습니다. 바로 이 앨범인데요. 가까이 좀 보여주실까요? 보니까 'I am…& I am', 이렇게 써져 있네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인터뷰]
가장 신승훈다운 음악도 있고요.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담은 그런 음악들이 있어서 6곡 정도는 신승훈스러운. 그리고 나머지 6곡 정도는 신승훈이 그런 음악을으로 구분을 해서 재미있게 구성을 해 봤어요.
[앵커]
원조 신승훈, 뉴 신승훈이 조합된 그런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인터뷰]
그렇죠. 기존에 있었던 팬분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그다음에 저도 어차피 계속 실험정신을 하더라고요. 하다 보니 어떻게 보니 반씩이 나눠졌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엠 앤 아이엠으로 해 보자해서 했습니다.
[앵커]
파트 원하고 파트 투하고 타이틀곡이 다른 거죠. 파트 원이 이게 나예요. 파트 투가 타이틀곡이 '마요'라는 곡인데 두 곡이 색채가 다르더라고요. 소개를 해 주시죠.
[인터뷰]
'이게 나예요'는 애절한 발라드를 기다리셨던 기존 팬분들을 위한 오랫동안 기다려주셨잖아요. 그런 실험정신 없이 그냥 신승훈 스타일을 내봤고요. 마요는 제 속의 또 다른 나가 계속 있어요. 그래서 가끔 힙합도 하고 그런 마음이 있는데 그런 마음으로 해서 빈지노라는 친구와 랩을 같이 해서 콜라보로 같이 했는데 팬들이 선물을 자꾸 마요네즈를 선물을 해서 살 많이 찔 것 같아서 그 선물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마요네즈의 마요가 그 뜻은 아닌데.
[인터뷰]
뭐뭐 하지 마요, 이게 아닌데…. 여러분, 마요네즈 선물하지 마요.
[앵커]
이게 나예요는 신승훈표 정통 발라드인데요. 들어보니까 애절한 이별 이야기더라고요, 혹시 본인 이야기는 아니시죠?
[인터뷰]
그냥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최근에 가사를 십 몇 년 동안 못 썼거든요. 예전에는 타이틀곡을 다 제가 작사를 직접 제가 했는데 어느 새부터 무뎌지기 시작한 것도 있고 자신도 없어지고 또 어떨 때는 유치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큰일났다. 철이 들었구나, 내가. 철 없을 때는 막 썼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무심코 철이 들었음에도 그 멜로디를 쓰는데 바로 가사가 나와서 어찌보면 진정성있는 저의 또 다른 머릿속에 있었던 가사가 나온 것 같아요
[앵커]
예전에는 악상이 안 떠오르면 안면도 가신다,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펜션을 전전했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어떤 얘기입니까?
[인터뷰]
그런 것을 느꼈어요. 그냥 어느 곳에 가서 곡을 쓰는 게 아니라 차에서 즐기는 정경들이, 특히 거기는 서해안쪽이기 때문에 해가 질 때 제가 한번 갔는데 진짜 해가 석양이 질 때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 이런 걸 느껴야지 음악을 만들지 내가 왜 바쁘게 작업실에서 곡을 쓰려고 했지,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서 힐링도 되고 또 좋은 노래를 쓸 수 있다라는 것.
[앵커]
그만큼 이번 앨범에 대한 부담이 컸다라는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렇죠. 9년 만의 정규앨범이고. 기다려주신 분들도 계시고. 신승훈을 잘 모르시는 분들, 어린 친구들에게도 이분 조금 하네, 이렇게 하는 소리도 듣고 싶었거든요, 사실.
[앵커]
음악 외길 25년입니다. 벌써 25년이 됐습니다. 음악 인생의 시작이 통기타 하나에서 시작이 됐다고 하던데요. 그 통기타는 어떻게 해서 얻게 된 건가요?
[인터뷰]
통기타는 일단은 저희 아버님이 중학교 2학년 때 약속을 안 지키셨어요. 저희는 그때부터 영악했던 것 같아요. 제 남동생이랑. 이때가 기회다, 뭘 사달라고 하자. 그래서 저는 바이올린이었고 남동생이 기타를 사달라고 했는데 막상 딱 받고 났는데 바이올린보다 기타가 더 매력이 있어서 트레이드를 했죠, 제 남동생과. 제가 용돈을 준 것 같아요. 그리고 기타를 받아서 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아마 시작됐던 것 같아요, 음악을.
[앵커]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셨기 때문에 결국은 아버지가 음악의 인생을 선물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런데 제가 가수를 처음 시작을 할 때 아버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왜냐하면 네가 과연 서울 올라가서 성공할 수 있냐. 실패를 했을 경우에는 아버지인 나로서도 어떤 위로도 안 될 거다. 그런 상처입는 것을 많이 생각을 하셨는데 막상 데뷔하고 노래가 히트되니까 아버님이 모든 잡지를 다 오려서 어머니보다 아버님이 더 열성적으로 스크랩을 해 주시는, 그랬죠.
[앵커]
데뷔하자마자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고요. 어떻게 보면 무명시절이 다른 가수보다는 상당히 짧았던 거잖아요.
[인터뷰]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처음에 데뷔할 때 저희 사무실에서 얼굴 없는 가수로 가자는 그런 것 때문에.
[앵커]
왜요?
[인터뷰]
모르겠어요. 그냥 언더쪽, 이렇게 생각을 하셨나봐요. 데뷔해서 11월 1일 90년에 데뷔를 했는데 그다음 해 91년 4월까지 TV를 한 번도 못했어요.
[앵커]
굉장히 섭섭하셨겠어요, 이렇게 잘생겼는데.
[인터뷰]
아니, 그것은 아니고요. 그때 아무튼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길거리에서 울려퍼지는데 제가 서 있어도 사람들이 저를 못 알아보는. 되게 안타까워서 사장님한테 저 TV 좀 출연시켜주세요라고 그랬는데 4월쯤에 모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올라갔으니까 당연히 나와야 되는 거죠. 그게 저한테는 처음 TV에 나왔던 게 소중한 기억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런 시기를 거쳐서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90년대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데요. 90년대 생각하면 어떠십니까. 그야말로 음악의 황금기였고 또 신승훈 씨의 전성기이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요.
[인터뷰]
맞습니다. 90년대라고 하면 진짜 자부심이 클 만큼 열심히도 했고요. 그리고 열심히 한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아직도 신승훈 그러면 그때를 추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앵커]
그 당시에 대기실에서 같이 있었던 가수들 하면 김건모 씨.
[인터뷰]
그렇죠. 김건모 씨는 대기실에만 같이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소속사였기 때문에 사무실도 같고 차를 또 같이 타고 오고. 처음 김건모 씨가 TV 출연할 때 분장실에 제가 데려가서, 제가 선배니까 먼저 데뷔를 했으니까 이 친구 얼굴 좀 새카마니까 조금만 하얗게 해 달라고 그랬는데 너무 하얗게 해서 진짜 되게 미안했었어요.
[앵커]
90년대 투톱이라고 할 수 있는 김건모 씨랑 신승훈 씨인데 결혼 안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건모 씨는 옆에서 봤을 때 왜 그러신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러게요. 저도 지금 생각을 해 보니까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분명히 외로워하고 있거든요, 서로들. 그런데 무슨 음악 때문은 아닌 것 같고요. 그렇게 살아오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조만간에 심각하게 김건모 씨랑 둘이 만나서 우리 어떻게 해야 되겠니 하면서 얘기를 좀 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앵커]
결과가 나오면 저희도 알려주시죠.
[인터뷰]
그런데 분명히 김건모 씨는 제가 먼저 가면 자기도 간다고 할 거예요.
[앵커]
그때 대기실하고 요즘 또 활동하면서 보는 대기실하고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진 건가요?
[인터뷰]
일단은 90년대에는 낭만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룹보다는 솔로들이 많았고 지방을 내려가도 한 차에 다 같이, 그래서 해운대에 있는 공연장으로 갔다가 끝나고 다 같이 오고 이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마케팅적이나 이런 것들이 많이 부각되는 바람에 좀 아쉽기는 합니다. 예전처럼 좀 낭만 있는 시대, 그런 게 훨씬 더 좋았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가족과 같은 팬들과 호흡하는 가장 최고의 자리가 아무래도 콘서트일 텐데요. 이번에도 전국 콘서트 들어가시는 거죠?
[인터뷰]
네, 일단 12월 4, 5, 6일부터 해서 광주, 부산, 대구. 크리스마스 때는 부산에 있을 것 같고요. 크리스마스 때 좋은 일 있을 것 같아서 항상 콘서트 안 하고 쉬었더니 별일 없어서 이번에는 계속 공연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앵커]
공연 때마다 기획도 꼼꼼하게 직접 하신다고 들었고요. 이번 공연이 좀 특별한 점이라고 할까요,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기획도 예전에 많이 했는데, 연출도 직접하고. 그러다보니까 많은 사람들은 신승훈은 너무 완벽주의자, 이런 것 때문에 그래서 제가 결혼을 못하는 걸 수도 있어요. 이 자리를 통해서 허술하다. 그런 것도 보여 드리고 싶은데 저런 사람이랑 만나면 되게 피곤할 것 같아, 그런 것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연출을 안 합니다.
[앵커]
이미지 관리하시는 거군요.
[인터뷰]
아니요. 연출은 안 하고 이번 공연은 남다른 공연이 될 것 같아요. 항상 여태까지 1000회 이상 공연을 하면서 70% 정도밖에 만족을 못했다면 90% 만족하는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위안도 되어 주고 추억도 건드려주고.
[앵커]
한층 밝아진 노래로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런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팬들과 호흡한 공연 중에 잊지 못할 공연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인터뷰]
10주년 공연 때 야외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비를 쓰고 있는 1만 몇 천명을 봤을 때 진짜 감동이었고 팬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비가 내리니까, 저는 솔직히 비를 안 맞았거든요. 공연중 위가 막혀 있어서. 그런데 비를 맞으러 앞으로 나가니까 막 들어가라고. 비 맞지 말라고.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이 맞는데 어떻게 제가 안 맞을 수 있냐고. 딱 나갔는데 우비를 쓰고 있던 걸 전부 다 벗는 거예요. 1만 몇 천 명이. 하얗게 있다가 싹 변하는 거예요. 아, 내가 이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몇 십년을 이 친구들을 위해서 노래만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돼서 그 다음부터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콘서트라는 걸, 방송보다는.
그러다 보니까 TV를 거의 10년이나 못했어요. 그래서 요즘에 저를 몰라보는 친구도 많이 생기고 계몽 가수가 됐거든요. 엄마가 얘기를 해 줘야 돼요.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앵커]
비 맞고도 몇 시간씩 응원해 주는 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25년 노래하다 보면 슬럼프도 찾아올거고요. 힘들 때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을까요?
[인터뷰]
최근에 5년 전, 6년 전에 정말 음악을 관둘까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어떤 음악을 들어도 저한테 감동이 없고 이것은 도대체 음악이 잘못된 건지 내가 잘못된 건지 그것 때문에 거의 2, 3년을.
항상 음악을 끼고 살거든요. 심지어는 샤워할 때도 안에 방수라디오가 있어요.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서 샤워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음악을 안 들을 수 있나 할 정도로 음악을 안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잘못하면 진짜로 가요계를 떠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 어쩔 수 없더라고요. 팬들의 중간의 응원들이라든지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음악을 찾아서 들었는데 몇 년 동안 음악을 안 듣다 보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이제는 그렇게 안 하려고요.
[앵커]
이번 앨범을 제가 쭉 보니까, 노래를 들어보니까 가장 특별한 곡이 있었습니다. 신승훈 씨가 결혼식 축가 많이 부르기로 유명한데. 이제는 축가는 그만 부르겠다. 내 청혼곡을 부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청혼할 노래를 앨범에 실으셨어요.
[인터뷰]
'Would You Marry Me'라는 노래를 실었습니다.
[앵커]
저 개인적으로 그 노래가 가장 가슴에 와닿던 노래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제 미래의 신승훈 씨 반쪽을 만나면 꼭 불러주실 거잖아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여기서 미리 연습을 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인터뷰]
쑥스럽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노래를 하려다보니까. 그래도 마음을 담아서.
[앵커]
이 노래 부르시면 어떤 여자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그래요? 저는 노래로는 프러포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걸로 어필하고 싶지 노래로 여자에게 매력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앵커]
프러포즈 계획까지 다 세우셨군요.
[인터뷰]
어떻게 할지 다. 여기서도 말씀드려도 되죠? 제 슬로건은 걸리기만 해라, 이겁니다.
[앵커]
이번 앨범이 'I am…& I am'. 신승훈 씨 인생에서 시즌2의 인생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십니까?
[인터뷰]
저로서는 그냥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어떤 분들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신승훈 정도면 25년 됐으면 이제 듣는 사람이 불안하지 않게 안정된 음악 좀 하라고. 왜 자꾸 실험을 하냐고 하는데 제 성격상 안 되겠어요. 욕을 먹을지언정 계속하고 싶은 건 해야 될 것 같고. 그리고 나서도 또 기존에 사랑했었던 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해야 될 것 같고요.
[앵커]
이번 콘서트도 기대해야 되겠습니다.
[인터뷰]
꼭 와주십시오.
[앵커]
꼭 가겠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발라드계의 황태자죠. 신승훈 씨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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