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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계속 항공 사진으로 보고 계신데요.
지금 위에서 많은 인파가 운집이 되어 있고요.
모두 다 손을 흔들며 교황께 인사를 보내고 있고요.
교황은 손을들고 오른쪽, 왼쪽 다 지켜 보시면서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을 해 주셨지만 원래는 이렇게 걸어가면서 신자들과 또 호흡하며 하시는 과정인데 그럼 바티칸에서 직접걸어가시면서 하시는건가요?
[인터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티칸 앞에도 동선이 길기 때문에 그곳에서 걸었을 때 아까도 말씀을 드렸듯이 경호상의 문제라든지 또 사람들이 갑자기 몰릴 수가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차를 이용해서 가시죠.
[기자]
그런데 저 차는 아무런 안전이나 교황을 위한 장치는 없는 차예요.
그 전에 교황들은 방탄차를 이용을 하셨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방탄차를 거부한다, 나의 목숨은 하나님께 이미 달려있다라는 얘기를 하시면서 대중과 신자와 좀더 가까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강력한 뜻을 밝히셨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 방문에도 어떻게 보면 보호장치가 없는 그야말로 오픈카, 열려있는 그런 차를 타셨습니다.
[앵커]
경호당국에서는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경호하는 입장에서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경호가 어려운 그런 역대 교황이 없었다는 고충을 토로하더라고요.
[인터뷰]
예전에 경호 담당하는 사람이 교황님께 교황님 저희들이 너무나 힘듭니다.
좀 저희들을 배려해 주세요라고 이런 말씀을 했대요.
그랬더니 교황님께서 답 하시기를 그것은 당신들의 일입니다.
저는 제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앵커]
이제 차가 광화문광장을 지나고 있는데요.
오늘 시복미사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우선적으로 광화문하면 우리나라의 어떤 상징입니다.
조선시대부터 포도청이나 이런 가장 중심 관저가 있었던 곳이고요.
한양의 중심이죠.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서소문 성지 같은 성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을 선정한 가장 커다란 이유는 다른 것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곳,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라는 것들을 찾아봤을 때 바로 광화문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예전에 84년도에는 여의도, 그 때는 공터가 있었죠.
그 공터에 100만 명 정도가 모일 수가 있었는데 현재는 서울에 그런 장소가 없죠.
그래서 우리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가급적 많이 올 수 있는 곳, 그래서 광화문을 선정하게 된 것이죠. [앵커]
지금도 역시 100만명 정도가 운집을 했고요.
[기자]
또 한 명의 아이가 큰 축복을 받았네요.
[앵커]
지금 시복식, 미사 과정에 있는 모습인데요.
이제 얘기를 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시복식이 무엇이고, 시복을 하는 복자는 무엇인지 여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신부님, 시복식이 어떤 것이죠?
[인터뷰]
시복식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살아생전에 거룩하게 살았든지 아니면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그런 분을 교회에서 기념하고 그분들을 공경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어떤 예식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복자라든지 아니면 성인. 사실 복자나 성인 두 분 다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전례상으로, 공식 예절상으로 복자는 성인 이전의 단계로서 복자를 먼저 주게 되죠.
그런데 독특한 것은 복자라고 하면 시복식이 거행되면 그것은 우리나라 우리나라 한국교회에서만 그분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 반면에 성인이 되면 전세계에서 공경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시복식과 성인식의 차이는 바로 그런 점이 있습니다.
[앵커]
지금 또 아이의 입을 맞추고 시작을 했고요.
현장에서는 비바 파파를 외치고 있습니다.
[기자]
오늘 이 시청에서 광화문광장까지 모두 1. 2km 구간을 지금 교황이 카퍼레이드로 이동을 하면서 많은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요.
앞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이 미사에 공식 초청된 천주교 신자만 17만 명이에요.
이미 아침부터 13개 출구가 마련돼 있는데 그쪽으로 입장을 해서 전국에 16개 교구별로 나뉘어서 지역마다 앉아 있습니다.
교황을 보기 위해서 현재 설치돼있는 방호벽이 있는데 이 통제라인 바깥에도 참석의 행운을 얻지 못한, 티켓을 얻지 못한 일반 신자, 그냥 시민들이 모여서 지금은 최대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마련된 제대에 교황이 도착을 하면 10시부터 시복 미사가 시작이 됩니다.
오늘 이 시복미사를 하는데 이제 아직 미사가 치러질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는데요.
교황의 뜻이 상당히 많이 반영이 됐다고 그래요.
[앵커]
검소하게 준비가 됐다고요.
[기자]
굉장히 검소하게 준비를 했고 또 시민과 교황의 거리를 가깝게 해서 제대 자체도 아주 낮고 또 짧게 이렇게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앵커]
지금 보시면 제대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제대에 거의 다 도착을 하신 모습인데요.
[앵커]
제대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도착을 했습니다.
[기자]
오늘 이 제대 위에 꽃이 올려져 있는데요.
이 꽃은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교황의 한국 방문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장밋꽃을 수천 송이를 보내왔습니다.
이 에콰도르 장미가 지금 제대 위에 올라가 있는데요.
세계적으로도 이 에콰도르 장미가 유명하다고 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에콰도르 장미가 올라오는데 이번에 역시 제대 위에 에콰도르 장미가 장식이 됐습니다.
[앵커]
제대를 중심으로 양 쪽으로 인파들이 운집해 있는데요.
저희 화면상으로 오른쪽 제대 앞을 지나서 다시 왼쪽으로 꺾었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인파들에게도 인사를 하겠다는 의미로 보이는데요.
[기자]
그래서 아마 퍼레이드를 하는데 시간이 걸릴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바로 저런 점이 교황님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저 멀리에 있는 사람들도 배려해서 다시 저쪽으로 가신 그 모습, 바로 이러한 사람에 대한 배려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앵커]
이쪽으로 다 도실지 아니면 그쪽 광화문광장 쪽만 한번 도실지 모르겠지만 다시 꺾어서 반대편 쪽으로 돌았고요.
그쪽에 있는 좀 멀리서 보던 신자들은 상당히 환영을 하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기자]
교황께서 반대편 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아마 반대편에 있었던 신자들은 우리는 그냥 영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겠구나 했을 텐데.
[앵커]
방금 보셨나 모르겠는데요, 아이를 이동을 시키는데 앞에 있는, 그냥 사람한테 넘기면 경호원이 받는 거군요.
저 뒤에 있더라도 아이를 넘기면 받아서 축복을 하는 과정입니다.
지금 조금 밑에 계신 분들은 아이를 조금 앞으로 지금 보내실 것 같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카퍼레이드가 진행중이고요.
조금전에 제대가 보였었는데요.
제대는 한국사도의 모상이 있죠. 이 모상도 조금 특이하다고 하던데요.
[기자]
교황 뜻에 따라서 교황과 시민 거리를 최대한 좁혔습니다.
이 제대 높이도 1. 8m. 조금 키가 큰 남성 정도, 어른의 키 정도이고요.
제단을 낮춰서 신자들이 어디서나 교황과 눈을 맞출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러한 높이로 설정이 됐습니다.
잠시 말씀하신 제대 한 편에 놓인 성모상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그런 성모상인데요.
잠시 후에 제대의 모습이 자세히 나오겠지만 한복을 입고 있는 그런 성모상입니다.
그리고 교황이 앉을 미사 중간중간 의자에는 태극기의 건곤감리 문양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 또 물과 불의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한국 가톨릭 정신을 담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제대 위에 걸릴 십자가가 눈에 또 크게 띄일 텐데요.
한국 순조자들의 영령이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서 주물로 제작이 됐습니다.
[앵커]
신부님, 복자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한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가톨릭 역사에서 순교자가 많은 건가요?
[인터뷰]
그렇죠.
우리나라가 굉장히 많은 편이죠.
우리나라가 수차례에 걸쳐서 박해를 당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가운데서 1만여 명 이상의 순교자가 생긴 경우가 이례적인 것이죠.
물론 일본 같은 경우도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순교자들이 있는데.
그런데 일본은 우리 천주교회가 그렇게 크지를 못했어요.
반면에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천주교가 굉장히 컸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 이유를 살펴봤을 때 일본 같은 경우는 선교사가 유럽에서 선교사가 파견돼서 일본을 처음 방문을 했었고, 그 반면에 우리나라는 우리 평신도들이 먼저 천주교를 알고 싶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앵커]
서학이라고 불리죠.
[인터뷰]
나중에 사형을 당하고 그럴 때, 천주학적이라는 그런 죄명을 받으면서 순교를 하시게 된 것이죠.
바로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평신도들로부터 이루어 진 교회이고, 그러한 신앙을 지금까지도 이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그래서 조금 전에도 설명을 해 주셨지만 십자가에서도 순교자의 영성이 퍼져나가기를 원한다고 설명이 됐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정리를 해보면 을묘박해, 신유박해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기자]
지금 교황의 카퍼레이드를 계속 보시고 계신데요.
시복식이 열릴 때마다 교황이 오시는 거는 결코 아닌 거죠, 신부님.
굉장히 이례적으로 시복식은 그 날을 교회에서 거행을 하는 건데, 교황이 직접 와서 시복식을 거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로마에서 시복식이나 시성식을 거행하는 것이 관례이죠.
그런 가운데서 우리나라는 참 복된 나라다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이례적으로 교황님께서 84년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우리나라에 직접오셔서 순교 성인을 추대를 하셨죠.
[앵커]
특별 대접을 받은 거군요?
[인터뷰]
그렇게 해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앵커]
시복, 시성도 사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그들의 삶을 본받아서 사랑이라든지 평화를 실천하라 그런 뜻이죠.
[인터뷰]
바로 우리는 죽은 사람들과 통공해서 신앙고백에서 성인들의 통공이 있죠.
그런 분들과 우리는 항상 교감을 맺는 우리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들께 강구를 하고 그분들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바로 이제 이런 것들이 서로의 친교를 이루는 것이죠.
[앵커]
한바퀴를 돈 것 같습니다.
[기자]
잠시 오픈 카가 멈춰섰는데요.
[앵커]
아마도 세월호 유족들이 있는 곳이 아닌가 싶은데, 맞습니다.
단식농성 중이던 세월호 유족 대표를 만나서...
[인터뷰]
잊어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앵커]
어제 유족을 만나면 안아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고 해요.
[앵커]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곳에 잠시 멈췄습니다.
사실 이 광장에 농성장이 있었잖아요.
그것을 임시로 줄이고.
[앵커]
철거를 하게 됐다고 하죠.
[기자]
천주교에서 교황 방한을 준비하면서 방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시복식 장소로 쓰이는 광장에 세월호 유족들이 단신 농성을 하고 있는데 그들과 계속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자 여러 가지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세월호 측에서는 교황 방한을 통해서 세월호 특별법이 빨리 통과가 되기를 바라는 그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했고, 천주교 측에서는 이 시복식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고 했는데요.
이 와중에 교황 방한 직전까지 농성 문제가 해결이 되지를 않았죠.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 언론에서 많은 질문을 했을 때 천주교 측에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내쫓고 하나님께 미사를 바칠 수는 없는 거다, 그들의 아픔을 안고 가겠다고 그러셨거든요.
그것이 한국 천주교 측의 입장뿐만 아니라 교황청과 이미 교감이 된 얘기고 그래서 미사 중에서도 세월호 얘기가 나왔었고요.
오늘 또 이렇게 세월호 가족들을 시복식에 초청을 해서 참석을 하도록 허용을 한 것입니다.
[앵커]
지금 카퍼레이드 조금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지금 교황께서는 전에 아르헨티나 화재 사고 때도 희생자들을 굉장히 많이 위로하셨다고 하던데요.
[인터뷰]
저는 그걸 잘 못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앵커]
아르헨티나에서 화재로 400명 이상이 숨지고 70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사건 때도 소방차보다 먼저 가서 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해 줬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교황님의 가장 커다란 사명 중에 하나가 바로 아프고 고통받는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시는 것이죠.
[앵커]
차가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경호원이 좀 뛰고 있는 모습이네요.
[앵커]
지금까지는 천천히 걸으셨는데 지금은 달리고 있습니다.
[앵커]
10시부터 시작인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10시부터 미사가 시작이 되고요.
교황은 미리 제의실에 도착해서 현재 지금 입고있는 교황 평상복 위에 시복식을 위해 준비된 제의를 입고 준비하는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마 이 퍼레이드가 끝나면 간이로 마련된 제의실에 가서 미사를 준비를 하실 것입니다.
[앵커]
그 제의도요, 직접 만든 의미가 담긴 제의라고 들었어요.
[기자]
보통 그 제의를 할 때 방문국에서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그전에 사용하시던 것을 가지고 가실 수도 있는데 워낙 검소한 그런 성품이시기 때문에 제의에 사용하는 천이나 옷감 이런 것들을 화려하게 하지 않고 정말 값싼 제품으로. 다만 정성을 들이게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진행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앵커]
예정상 45분 정도에 제의실로 들어가고요.
퍼레이드가 45분 정도에 마칠 것으로 예상이 됐었는데요.
지금 계속 경호원들이 달리는 것으로 봐서는 속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시민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고 계시고요.
이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의실로 들어가서 이제 미사를 위한 제의를 착용하게 되시고요.
그 이후에는 미사가 시작이 되죠.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시복 예식이 진행이 되는 거고요.
간략하게 정리를 해볼까요?
[기자]
보통 천주교에서 하는 일반 미사 중에 시복식을 추구하는 식으로 화려하지 않고 오늘 시복식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어떤 것을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미사 중에 시복식 청원과 선언들이 추가되는데요.
시복식 과정에 특징이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어떻게 보면 시복 예식이라는 것이 매우 간단합니다.
시복을 원하는 측에서 청원을 하고 그것을 수락하는 예식, 이것이 바로 시복식의 간략한 모습입니다.
방금 말씀을 하신 것처럼 우리 천주교 모든 예식들은 미사 중에 이뤄지고요.
그래서 미사 참여 예식이 끝나자 마자 우리 한국 교회에서 124분의 순교자를 교황님께서 복자로 시성을 해 주십시오라는 청원서를 올리죠.
그러고 나서 교황님께서 나는 당신들의 요청을 수락합니다라는 수락요청을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복자가 어떤 분들인지 그분들은 옛날분들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나 화가들을 동원해서 복자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분들을 펼치고 나서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마치고 이것이 전부 시복식의 간단한 예식입니다.
[앵커]
지금 차가 제단 뒤로 돌아서 갔는데요.
곧 내리실 것 같습니다.
[기자]
내려서 이제 제단 뒤쪽에 마련된 간이 제의실에 들어가셔서 미사를 위해서 아마 준비된 제의를 입으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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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계속 항공 사진으로 보고 계신데요.
지금 위에서 많은 인파가 운집이 되어 있고요.
모두 다 손을 흔들며 교황께 인사를 보내고 있고요.
교황은 손을들고 오른쪽, 왼쪽 다 지켜 보시면서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을 해 주셨지만 원래는 이렇게 걸어가면서 신자들과 또 호흡하며 하시는 과정인데 그럼 바티칸에서 직접걸어가시면서 하시는건가요?
[인터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티칸 앞에도 동선이 길기 때문에 그곳에서 걸었을 때 아까도 말씀을 드렸듯이 경호상의 문제라든지 또 사람들이 갑자기 몰릴 수가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차를 이용해서 가시죠.
[기자]
그런데 저 차는 아무런 안전이나 교황을 위한 장치는 없는 차예요.
그 전에 교황들은 방탄차를 이용을 하셨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방탄차를 거부한다, 나의 목숨은 하나님께 이미 달려있다라는 얘기를 하시면서 대중과 신자와 좀더 가까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강력한 뜻을 밝히셨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 방문에도 어떻게 보면 보호장치가 없는 그야말로 오픈카, 열려있는 그런 차를 타셨습니다.
[앵커]
경호당국에서는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경호하는 입장에서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경호가 어려운 그런 역대 교황이 없었다는 고충을 토로하더라고요.
[인터뷰]
예전에 경호 담당하는 사람이 교황님께 교황님 저희들이 너무나 힘듭니다.
좀 저희들을 배려해 주세요라고 이런 말씀을 했대요.
그랬더니 교황님께서 답 하시기를 그것은 당신들의 일입니다.
저는 제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앵커]
이제 차가 광화문광장을 지나고 있는데요.
오늘 시복미사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우선적으로 광화문하면 우리나라의 어떤 상징입니다.
조선시대부터 포도청이나 이런 가장 중심 관저가 있었던 곳이고요.
한양의 중심이죠.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서소문 성지 같은 성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을 선정한 가장 커다란 이유는 다른 것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곳,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라는 것들을 찾아봤을 때 바로 광화문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예전에 84년도에는 여의도, 그 때는 공터가 있었죠.
그 공터에 100만 명 정도가 모일 수가 있었는데 현재는 서울에 그런 장소가 없죠.
그래서 우리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가급적 많이 올 수 있는 곳, 그래서 광화문을 선정하게 된 것이죠. [앵커]
지금도 역시 100만명 정도가 운집을 했고요.
[기자]
또 한 명의 아이가 큰 축복을 받았네요.
[앵커]
지금 시복식, 미사 과정에 있는 모습인데요.
이제 얘기를 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시복식이 무엇이고, 시복을 하는 복자는 무엇인지 여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신부님, 시복식이 어떤 것이죠?
[인터뷰]
시복식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살아생전에 거룩하게 살았든지 아니면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그런 분을 교회에서 기념하고 그분들을 공경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어떤 예식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복자라든지 아니면 성인. 사실 복자나 성인 두 분 다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전례상으로, 공식 예절상으로 복자는 성인 이전의 단계로서 복자를 먼저 주게 되죠.
그런데 독특한 것은 복자라고 하면 시복식이 거행되면 그것은 우리나라 우리나라 한국교회에서만 그분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 반면에 성인이 되면 전세계에서 공경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시복식과 성인식의 차이는 바로 그런 점이 있습니다.
[앵커]
지금 또 아이의 입을 맞추고 시작을 했고요.
현장에서는 비바 파파를 외치고 있습니다.
[기자]
오늘 이 시청에서 광화문광장까지 모두 1. 2km 구간을 지금 교황이 카퍼레이드로 이동을 하면서 많은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요.
앞서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이 미사에 공식 초청된 천주교 신자만 17만 명이에요.
이미 아침부터 13개 출구가 마련돼 있는데 그쪽으로 입장을 해서 전국에 16개 교구별로 나뉘어서 지역마다 앉아 있습니다.
교황을 보기 위해서 현재 설치돼있는 방호벽이 있는데 이 통제라인 바깥에도 참석의 행운을 얻지 못한, 티켓을 얻지 못한 일반 신자, 그냥 시민들이 모여서 지금은 최대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북측 광장에 마련된 제대에 교황이 도착을 하면 10시부터 시복 미사가 시작이 됩니다.
오늘 이 시복미사를 하는데 이제 아직 미사가 치러질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는데요.
교황의 뜻이 상당히 많이 반영이 됐다고 그래요.
[앵커]
검소하게 준비가 됐다고요.
[기자]
굉장히 검소하게 준비를 했고 또 시민과 교황의 거리를 가깝게 해서 제대 자체도 아주 낮고 또 짧게 이렇게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앵커]
지금 보시면 제대 앞을 지나고 있습니다.
제대에 거의 다 도착을 하신 모습인데요.
[앵커]
제대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도착을 했습니다.
[기자]
오늘 이 제대 위에 꽃이 올려져 있는데요.
이 꽃은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교황의 한국 방문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장밋꽃을 수천 송이를 보내왔습니다.
이 에콰도르 장미가 지금 제대 위에 올라가 있는데요.
세계적으로도 이 에콰도르 장미가 유명하다고 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에콰도르 장미가 올라오는데 이번에 역시 제대 위에 에콰도르 장미가 장식이 됐습니다.
[앵커]
제대를 중심으로 양 쪽으로 인파들이 운집해 있는데요.
저희 화면상으로 오른쪽 제대 앞을 지나서 다시 왼쪽으로 꺾었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인파들에게도 인사를 하겠다는 의미로 보이는데요.
[기자]
그래서 아마 퍼레이드를 하는데 시간이 걸릴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뷰]
바로 저런 점이 교황님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저 멀리에 있는 사람들도 배려해서 다시 저쪽으로 가신 그 모습, 바로 이러한 사람에 대한 배려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앵커]
이쪽으로 다 도실지 아니면 그쪽 광화문광장 쪽만 한번 도실지 모르겠지만 다시 꺾어서 반대편 쪽으로 돌았고요.
그쪽에 있는 좀 멀리서 보던 신자들은 상당히 환영을 하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기자]
교황께서 반대편 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아마 반대편에 있었던 신자들은 우리는 그냥 영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겠구나 했을 텐데.
[앵커]
방금 보셨나 모르겠는데요, 아이를 이동을 시키는데 앞에 있는, 그냥 사람한테 넘기면 경호원이 받는 거군요.
저 뒤에 있더라도 아이를 넘기면 받아서 축복을 하는 과정입니다.
지금 조금 밑에 계신 분들은 아이를 조금 앞으로 지금 보내실 것 같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카퍼레이드가 진행중이고요.
조금전에 제대가 보였었는데요.
제대는 한국사도의 모상이 있죠. 이 모상도 조금 특이하다고 하던데요.
[기자]
교황 뜻에 따라서 교황과 시민 거리를 최대한 좁혔습니다.
이 제대 높이도 1. 8m. 조금 키가 큰 남성 정도, 어른의 키 정도이고요.
제단을 낮춰서 신자들이 어디서나 교황과 눈을 맞출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러한 높이로 설정이 됐습니다.
잠시 말씀하신 제대 한 편에 놓인 성모상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그런 성모상인데요.
잠시 후에 제대의 모습이 자세히 나오겠지만 한복을 입고 있는 그런 성모상입니다.
그리고 교황이 앉을 미사 중간중간 의자에는 태극기의 건곤감리 문양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 또 물과 불의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한국 가톨릭 정신을 담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제대 위에 걸릴 십자가가 눈에 또 크게 띄일 텐데요.
한국 순조자들의 영령이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서 주물로 제작이 됐습니다.
[앵커]
신부님, 복자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한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가톨릭 역사에서 순교자가 많은 건가요?
[인터뷰]
그렇죠.
우리나라가 굉장히 많은 편이죠.
우리나라가 수차례에 걸쳐서 박해를 당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가운데서 1만여 명 이상의 순교자가 생긴 경우가 이례적인 것이죠.
물론 일본 같은 경우도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순교자들이 있는데.
그런데 일본은 우리 천주교회가 그렇게 크지를 못했어요.
반면에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천주교가 굉장히 컸습니다.
바로 그것이 그 이유를 살펴봤을 때 일본 같은 경우는 선교사가 유럽에서 선교사가 파견돼서 일본을 처음 방문을 했었고, 그 반면에 우리나라는 우리 평신도들이 먼저 천주교를 알고 싶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앵커]
서학이라고 불리죠.
[인터뷰]
나중에 사형을 당하고 그럴 때, 천주학적이라는 그런 죄명을 받으면서 순교를 하시게 된 것이죠.
바로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평신도들로부터 이루어 진 교회이고, 그러한 신앙을 지금까지도 이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그래서 조금 전에도 설명을 해 주셨지만 십자가에서도 순교자의 영성이 퍼져나가기를 원한다고 설명이 됐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정리를 해보면 을묘박해, 신유박해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기자]
지금 교황의 카퍼레이드를 계속 보시고 계신데요.
시복식이 열릴 때마다 교황이 오시는 거는 결코 아닌 거죠, 신부님.
굉장히 이례적으로 시복식은 그 날을 교회에서 거행을 하는 건데, 교황이 직접 와서 시복식을 거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로마에서 시복식이나 시성식을 거행하는 것이 관례이죠.
그런 가운데서 우리나라는 참 복된 나라다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이례적으로 교황님께서 84년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우리나라에 직접오셔서 순교 성인을 추대를 하셨죠.
[앵커]
특별 대접을 받은 거군요?
[인터뷰]
그렇게 해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앵커]
시복, 시성도 사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그들의 삶을 본받아서 사랑이라든지 평화를 실천하라 그런 뜻이죠.
[인터뷰]
바로 우리는 죽은 사람들과 통공해서 신앙고백에서 성인들의 통공이 있죠.
그런 분들과 우리는 항상 교감을 맺는 우리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들께 강구를 하고 그분들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바로 이제 이런 것들이 서로의 친교를 이루는 것이죠.
[앵커]
한바퀴를 돈 것 같습니다.
[기자]
잠시 오픈 카가 멈춰섰는데요.
[앵커]
아마도 세월호 유족들이 있는 곳이 아닌가 싶은데, 맞습니다.
단식농성 중이던 세월호 유족 대표를 만나서...
[인터뷰]
잊어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앵커]
어제 유족을 만나면 안아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고 해요.
[앵커]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곳에 잠시 멈췄습니다.
사실 이 광장에 농성장이 있었잖아요.
그것을 임시로 줄이고.
[앵커]
철거를 하게 됐다고 하죠.
[기자]
천주교에서 교황 방한을 준비하면서 방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시복식 장소로 쓰이는 광장에 세월호 유족들이 단신 농성을 하고 있는데 그들과 계속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자 여러 가지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세월호 측에서는 교황 방한을 통해서 세월호 특별법이 빨리 통과가 되기를 바라는 그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했고, 천주교 측에서는 이 시복식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고 했는데요.
이 와중에 교황 방한 직전까지 농성 문제가 해결이 되지를 않았죠.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 언론에서 많은 질문을 했을 때 천주교 측에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내쫓고 하나님께 미사를 바칠 수는 없는 거다, 그들의 아픔을 안고 가겠다고 그러셨거든요.
그것이 한국 천주교 측의 입장뿐만 아니라 교황청과 이미 교감이 된 얘기고 그래서 미사 중에서도 세월호 얘기가 나왔었고요.
오늘 또 이렇게 세월호 가족들을 시복식에 초청을 해서 참석을 하도록 허용을 한 것입니다.
[앵커]
지금 카퍼레이드 조금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지금 교황께서는 전에 아르헨티나 화재 사고 때도 희생자들을 굉장히 많이 위로하셨다고 하던데요.
[인터뷰]
저는 그걸 잘 못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앵커]
아르헨티나에서 화재로 400명 이상이 숨지고 70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사건 때도 소방차보다 먼저 가서 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해 줬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교황님의 가장 커다란 사명 중에 하나가 바로 아프고 고통받는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는 그러한 역할을 하시는 것이죠.
[앵커]
차가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경호원이 좀 뛰고 있는 모습이네요.
[앵커]
지금까지는 천천히 걸으셨는데 지금은 달리고 있습니다.
[앵커]
10시부터 시작인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10시부터 미사가 시작이 되고요.
교황은 미리 제의실에 도착해서 현재 지금 입고있는 교황 평상복 위에 시복식을 위해 준비된 제의를 입고 준비하는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마 이 퍼레이드가 끝나면 간이로 마련된 제의실에 가서 미사를 준비를 하실 것입니다.
[앵커]
그 제의도요, 직접 만든 의미가 담긴 제의라고 들었어요.
[기자]
보통 그 제의를 할 때 방문국에서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그전에 사용하시던 것을 가지고 가실 수도 있는데 워낙 검소한 그런 성품이시기 때문에 제의에 사용하는 천이나 옷감 이런 것들을 화려하게 하지 않고 정말 값싼 제품으로. 다만 정성을 들이게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진행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앵커]
예정상 45분 정도에 제의실로 들어가고요.
퍼레이드가 45분 정도에 마칠 것으로 예상이 됐었는데요.
지금 계속 경호원들이 달리는 것으로 봐서는 속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시민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고 계시고요.
이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의실로 들어가서 이제 미사를 위한 제의를 착용하게 되시고요.
그 이후에는 미사가 시작이 되죠.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시복 예식이 진행이 되는 거고요.
간략하게 정리를 해볼까요?
[기자]
보통 천주교에서 하는 일반 미사 중에 시복식을 추구하는 식으로 화려하지 않고 오늘 시복식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어떤 것을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미사 중에 시복식 청원과 선언들이 추가되는데요.
시복식 과정에 특징이 뭐가 있을까요?
[인터뷰]
어떻게 보면 시복 예식이라는 것이 매우 간단합니다.
시복을 원하는 측에서 청원을 하고 그것을 수락하는 예식, 이것이 바로 시복식의 간략한 모습입니다.
방금 말씀을 하신 것처럼 우리 천주교 모든 예식들은 미사 중에 이뤄지고요.
그래서 미사 참여 예식이 끝나자 마자 우리 한국 교회에서 124분의 순교자를 교황님께서 복자로 시성을 해 주십시오라는 청원서를 올리죠.
그러고 나서 교황님께서 나는 당신들의 요청을 수락합니다라는 수락요청을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복자가 어떤 분들인지 그분들은 옛날분들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나 화가들을 동원해서 복자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분들을 펼치고 나서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마치고 이것이 전부 시복식의 간단한 예식입니다.
[앵커]
지금 차가 제단 뒤로 돌아서 갔는데요.
곧 내리실 것 같습니다.
[기자]
내려서 이제 제단 뒤쪽에 마련된 간이 제의실에 들어가셔서 미사를 위해서 아마 준비된 제의를 입으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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