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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구원했던 '페르시아 후예'의 정권 붕괴 위기...역사의 반전 [와이파일]](https://image.ytn.co.kr/general/jpg/2025/0619/202506191008004566_t.jpg)
고대 시대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페르시아 고레스왕의 칙령이 새겨진 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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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이란과 이스라엘은 전면 충돌의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6월 13일, 이스라엘이 테헤란 등 이란 전역의 핵·군사시설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사실상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란은 즉각 150개 이상의 탄도미사일과 100개 이상의 드론으로 보복했지만, 전황은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 정권 교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란 정권은 매우 약하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때로 잔혹한 아이러니를 연출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흔들리고 있는 이란은, 바로 2,500년 전 유대 민족을 바빌론(지금의 이라크)의 속박에서 해방시킨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직계 후손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칭송한 고레스 대왕의 땅에서, 이제는 그 후손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에 떨고 있습니다.
한때 유대인의 구원자였던 민족의 후예가, 이제는 그들에 의해 정권 붕괴 위기에 몰렸습니다. 과거의 해방자가 현재 해방의 대상이 되고, 옛날의 은인이 오늘날 도움을 구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완전히 뒤바뀐 이 상황은 단순한 지정학적 충돌을 넘어, 인간 역사의 모순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의 권력 구조입니다. 과거 페르시아 제국이 유대인을 해방시켰다면, 이제는 그 후손인 유대 국가가 페르시아의 후손을 ‘해방’시키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네타냐후는 “군사적 대응의 결과로 정권이 바뀔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며, 사실상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종료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대립의 본질은 영토나 자원을 둘러싼 일반적인 국가 갈등이 아닙니다. 역사적 기억과 종교적 정체성, 그리고 완전히 뒤바뀐 권력 관계의 서사가 교차하는 문명사적 역전극입니다. 더욱이 양국 모두 같은 역사적 사건을 공유하면서도 정반대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갈등은 ‘기억의 정치학’이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성경 속 구원자,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기원전 586년, 바빌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솔로몬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유대 민족의 정치적·종교적 중심이 완전히 붕괴된 이 ‘바빌론 포로기’는 유대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대로 기록됩니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구원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 고레스 2세(Cyrus II the Great, 재위 559-530 BC)였습니다. 그는 바빌론을 정복한 후 전례 없는 관용 정책을 펼쳤는데, 그 핵심에는 유대인의 귀환 허용이 있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구약성경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서 45장 1절은 고레스를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로 칭하며, 하나님이 선택한 도구로 묘사합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서 열국(바빌론)을 항복하게 하며”
에스라서는 고레스의 칙령을 더욱 구체적으로 전합니다. 그는 단순히 귀환을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빌론이 약탈해간 성전 기물 5,400여 점을 반환하고 성전 재건을 위한 재정 지원까지 제공했습니다.
■관용에서 대립으로: 현대사의 아이러니
1979년 이슬람 혁명은 이란-이스라엘 관계의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팔레비 왕조 하에서 비공식적이나마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두 나라는, 호메이니의 집권과 함께 적대 관계로 돌변했습니다. 혁명 이후 이란의 최고지도자들은 일관되게 이스라엘을 “시온주의 정권”으로 규정하며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를 넘어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등 무장 조직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구축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합니다. 특히 이란이 농축우라늄 보유량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필요시 군사적 선제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왔습니다.
■기억의 역설: 박물관과 미사일 기지 사이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는 고레스 칙령이 새겨진 ‘고레스 원통’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설명문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고레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현재의 이란에서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탄도미사일과 드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자가 오늘날의 위협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의 지도부는 각각 다른 역사적 서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페르시아는 여전히 ‘구원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현재의 이란은 그 유산과 단절된 전혀 다른 실체로 인식됩니다. 반대로 이란에게 현재의 이스라엘은 서구 제국주의의 전초기지이자 이슬람 세계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집니다.
■문명 충돌의 심층 구조
이란-이스라엘 갈등의 복잡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국가 간 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적 기억과 종교적 세계관이 충돌하는 문명사적 갈등입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페르시아 제국이 보여준 종교적 관용과 문화적 다원주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습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하면서도 정복지의 토착 종교를 존중했던 페르시아의 정책은, 오늘날의 다문화주의 이념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이런 관용의 전통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아파 이슬람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이슬람 대 유대교의 종교적 대립으로 프레임화하고 있습니다.
■고레스의 유산은 어디로 갔는가
2,500년 전 고레스 대왕이 보여준 관용과 화해의 정신은 오늘날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현재의 이란에서도, 그의 은혜를 기억하는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고 정치적입니다. 같은 역사적 사건도 시대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이란-이스라엘 관계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고레스의 관용이 오늘날 박물관 유리관에만 남아있는 현실은, 역사적 기억이 어떻게 정치적 도구로 전용될 수 있는지를 시사합니다. 과거의 구원자가 현재의 적이 되는 이 역설적 상황에서, 우리는 화해와 이해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테헤란의 하늘 아래에서 계속되는 대립은, 결국 인간이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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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사는 때로 잔혹한 아이러니를 연출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흔들리고 있는 이란은, 바로 2,500년 전 유대 민족을 바빌론(지금의 이라크)의 속박에서 해방시킨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직계 후손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칭송한 고레스 대왕의 땅에서, 이제는 그 후손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에 떨고 있습니다.
한때 유대인의 구원자였던 민족의 후예가, 이제는 그들에 의해 정권 붕괴 위기에 몰렸습니다. 과거의 해방자가 현재 해방의 대상이 되고, 옛날의 은인이 오늘날 도움을 구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완전히 뒤바뀐 이 상황은 단순한 지정학적 충돌을 넘어, 인간 역사의 모순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의 권력 구조입니다. 과거 페르시아 제국이 유대인을 해방시켰다면, 이제는 그 후손인 유대 국가가 페르시아의 후손을 ‘해방’시키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네타냐후는 “군사적 대응의 결과로 정권이 바뀔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며, 사실상 이란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종료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대립의 본질은 영토나 자원을 둘러싼 일반적인 국가 갈등이 아닙니다. 역사적 기억과 종교적 정체성, 그리고 완전히 뒤바뀐 권력 관계의 서사가 교차하는 문명사적 역전극입니다. 더욱이 양국 모두 같은 역사적 사건을 공유하면서도 정반대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갈등은 ‘기억의 정치학’이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성경 속 구원자,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기원전 586년, 바빌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솔로몬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유대 민족의 정치적·종교적 중심이 완전히 붕괴된 이 ‘바빌론 포로기’는 유대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대로 기록됩니다. 그로부터 약 50년 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구원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 고레스 2세(Cyrus II the Great, 재위 559-530 BC)였습니다. 그는 바빌론을 정복한 후 전례 없는 관용 정책을 펼쳤는데, 그 핵심에는 유대인의 귀환 허용이 있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구약성경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서 45장 1절은 고레스를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로 칭하며, 하나님이 선택한 도구로 묘사합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서 열국(바빌론)을 항복하게 하며”
에스라서는 고레스의 칙령을 더욱 구체적으로 전합니다. 그는 단순히 귀환을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빌론이 약탈해간 성전 기물 5,400여 점을 반환하고 성전 재건을 위한 재정 지원까지 제공했습니다.
■관용에서 대립으로: 현대사의 아이러니
1979년 이슬람 혁명은 이란-이스라엘 관계의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팔레비 왕조 하에서 비공식적이나마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두 나라는, 호메이니의 집권과 함께 적대 관계로 돌변했습니다. 혁명 이후 이란의 최고지도자들은 일관되게 이스라엘을 “시온주의 정권”으로 규정하며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를 넘어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등 무장 조직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구축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합니다. 특히 이란이 농축우라늄 보유량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필요시 군사적 선제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왔습니다.
1970년대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여성들의 모습(출처:위키디피아)
■기억의 역설: 박물관과 미사일 기지 사이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는 고레스 칙령이 새겨진 ‘고레스 원통’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설명문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고레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현재의 이란에서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탄도미사일과 드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자가 오늘날의 위협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의 지도부는 각각 다른 역사적 서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페르시아는 여전히 ‘구원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현재의 이란은 그 유산과 단절된 전혀 다른 실체로 인식됩니다. 반대로 이란에게 현재의 이스라엘은 서구 제국주의의 전초기지이자 이슬람 세계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집니다.
■문명 충돌의 심층 구조
이란-이스라엘 갈등의 복잡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국가 간 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적 기억과 종교적 세계관이 충돌하는 문명사적 갈등입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페르시아 제국이 보여준 종교적 관용과 문화적 다원주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습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하면서도 정복지의 토착 종교를 존중했던 페르시아의 정책은, 오늘날의 다문화주의 이념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이런 관용의 전통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아파 이슬람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이슬람 대 유대교의 종교적 대립으로 프레임화하고 있습니다.
■고레스의 유산은 어디로 갔는가
2,500년 전 고레스 대왕이 보여준 관용과 화해의 정신은 오늘날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현재의 이란에서도, 그의 은혜를 기억하는 이스라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고 정치적입니다. 같은 역사적 사건도 시대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이란-이스라엘 관계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고레스의 관용이 오늘날 박물관 유리관에만 남아있는 현실은, 역사적 기억이 어떻게 정치적 도구로 전용될 수 있는지를 시사합니다. 과거의 구원자가 현재의 적이 되는 이 역설적 상황에서, 우리는 화해와 이해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테헤란의 하늘 아래에서 계속되는 대립은, 결국 인간이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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