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 성관계 땐 징역 1년"...이슬람식 새 형법에 인도네시아 '발칵'

"혼전 성관계 땐 징역 1년"...이슬람식 새 형법에 인도네시아 '발칵'

2022.12.07. 오후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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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 성관계 땐 징역 1년"...이슬람식 새 형법에 인도네시아 '발칵'
사진 출처 : AP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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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가 100여 년 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졌던 형법을 이슬람법에 가까운 방향으로 대대적으로 개정하자, 새 법이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가 이번 형법 개정으로 이슬람 보수주의로 전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회가 지난 6일 통과시킨 새로운 형법은 혼외 성관계와 혼전 동거, 낙태를 금지하고 대통령과 국가 기관을 모욕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혼외 성관계 적발 시 1년 이하의 징역, 혼전 동거 시에는 6개월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배우자나 부모, 자녀 등 당사자 가족이 고발해야 경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친고죄 형태로 정해졌습니다.

낙태도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다만 성폭행에 의한 임신이거나 의료법에 따라 태아가 12주 미만일 경우 산모의 건강 등을 고려해 낙태가 가능하도록 예외 조항을 뒀습니다.

현직 대통령을 모욕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등 대통령과 부통령, 국가 기관, 국가 이념을 모욕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대통령 모욕죄의 경우 대통령만이 고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사전 통보 없이 시위해도 형사 처벌합니다.

이 밖에도 신성모독법을 확대했으며 사형제도는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무교주의나 무신앙을 권고해서도 안 되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정한 6개 종교 외에 다른 종교를 가질 경우 징역 5년 형에 처하는 조항도 유지됐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교와 힌두교, 개신교, 가톨릭, 불교, 유교 등 6개 종교만을 인정하며 모든 시민은 이 6가지 종교 중 하나를 가져야 합니다. 공산주의를 막는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논란이 일었던 동성애 처벌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는 2019년 형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며 시위가 이어졌고 국제 인권단체의 공개 반대도 이어지면서 재논의를 거쳐 결국 동성애 처벌 조항은 삭제됐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형법이 개정되자 인도네시아 국회 앞에는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형법 개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법으로 도덕을 제한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우스만 하미드 국제앰네스티(AI) 인도네시아 집행 이사는 새로운 법이 "20년 넘게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인도네시아의 발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라며 "혼외 성관계를 불법화하는 것은 국제법에 의해 보호되는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전국 대학생 단체는 새로운 법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통령이나 부통령, 국가 기관을 모욕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 비판과 모욕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없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바유 사트리아 우토모 전국 대학생 집행기구 사무총장은 "우리는 대규모 시위를 통해 법안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줄 계획"이라며 "우선 지역 단체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모두가 당할 수 있다'는 의미의 #SemuaBisaKena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새로운 형법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눈과 입을 가린 사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언론들도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7일 자카르타 포스트는 1면에 형법 개정 소식을 전하면서 '새로운 형법은 시민의 자유를 뒤엎었다'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또 '보수적으로 전환'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인도네시아는 수십 년 동안 종교적이지도 세속적이지도 않은 국가 지위를 유지해왔지만, 이번 형법 개정으로 종교적으로 전환했다"라며 "우리의 문화적 이념적 다양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최대 일간지인 콤파스도 사설을 통해 "법 시행까지 3년이 남았으니 그 안에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내야 한다"라며 시행령을 통해서라도 모호한 조항을 없애고 시민사회가 우려하는 점들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의회가 새로운 형법을 통과시켰지만 새 법은 구체적인 시행령과 시행 규정이 필요해 3년 뒤에나 시행될 예정입니다.

새로운 법에 대해 산업계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법이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 만큼 외국인 투자나 관광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인도네시아 관광 산업 위원회의 부국장인 마우라나 유스란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입은 관광산업이 부활하려는 때 이 법이 나왔다며 "완전히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호주 언론은 인도네시아의 형법 개정 소식을 전하며 '발리 성관계 금지법'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최대 관광지 발리에는 연 100만 명의 호주인이 찾으며 이들은 서핑과 해변 파티 등을 즐깁니다.

특히 미국도 새 형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성 김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대사는 "개인의 결정을 범죄화하는 것은 많은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투자할지를 결정할 때 주요 검토 사항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은 그러한 변화가 인권과 기본적 자유 행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염려가 된다"면서 "개정법이 그곳을 방문하고 거주하는 미국 시민권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두고 세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억7천500만 명으로 세계 4위의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약 87%가 이슬람으로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원리주의 이슬람 단체를 중심으로 보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YTN 임수근 (sgl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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