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속 평온' 키이우 취재기..."온전한 평화 오길"

'폐허 속 평온' 키이우 취재기..."온전한 평화 오길"

2022.06.20. 오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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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YTN 취재진은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를 받아 지난 9일부터 일주일 동안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직접 들어가 취재했습니다.

한국 취재진이 키이우에 들어간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 지 100여 일 만에 처음이었는데

현지 취재를 마치고 온 신준명 기자와 한상원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키이우에 들어갔던 과정부터 설명해주시죠.

[신준명]
네, 외교부가 지난 9일 0시부터 키이우 등 중서부 11개 주에 대한 취재진의 진입을 허용하면서 현지 취재가 가능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지 100여 일이 지난 시점이었죠.

당시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넘어갈 수 있는 메디카 국경은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려는 차량 행렬이 10km 가까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국경을 건너려면 일주일씩 도로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국경 검문소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들은 대부분 대형 화물차였는데 그중에서도 중고차를 싣고 있는 차량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쟁으로 차량이 많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의 중고차 수요가 급증해서 폴란드에서 들여가는 거라는 게 현지인의 설명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폴란드에서 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촬영 장비를 들고 걸어서 국경을 건너가게 됐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전시 상황인 탓에 대부분의 지역이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 상태였는데요.

그래서 저희도 9일 새벽 5시 해가 뜰쯤에서야 국경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국경에서 키이우까지는 650km 정도 됐습니다.

국경에서 차를 구해 9시간 정도를 멈추지 않고 가니 키이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YTN의 키이우 현지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앵커]
키이우로 진입하는 과정에서부터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면서요?

[한상원]
그렇습니다.

국경부터 키이우까지 가는 길목 곳곳에는 지역 방위군이 사용하는 참호들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또, 고속도로 곳곳에서 수시로 검문을 실시하고 있었고요.

고속도로에선 일반 차량과 군용 트럭과 장갑차들이 섞여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 입구마다 러시아 전차의 진입을 저지하는 장애물들이 설치돼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키이우의 북서쪽 도시로 진입하자마자 무너진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건물이 무너진 게 아니라 도시 전체에서 성한 건물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강을 건너는 다리들도 다 폭파돼 있어서 간이 도로를 이용해 건너야 했고요.

이렇게 무너진 도시를 보니 섬뜩한 기분과 함께 저희가 지금 전쟁터에 온 게 맞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YTN 취재진이 키이우에 도착하자마자 무너진 건물을 배경으로 생중계를 한 게 기억에 남는데

키이우 현지 상황, 어땠습니까?

[신준명]
러시아와의 전면전이 벌어졌던 키이우의 북서쪽 도시들, 이르핀과 부차, 보로댠카는 말 그대로 폐허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생중계를 한 곳은 키이우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이르핀이라는 작은 외곽도시였습니다.

당시 무너진 건물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섰는데, 발이 푹 꺼져서 넘어질 뻔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당시 아스팔트 바닥이었는데, 포탄을 맞아서 아스팔트가 녹아 움푹 파인 거였습니다.

그제서야 제 주변으로 수m 간격으로 그런 포탄 자국들이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오면서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이르핀 인근의 부차라는 도시도 완전히 폐허가 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특히, 러시아가 점령 뒤 민간인 400여 명을 학살한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교회 뒤편 공터에서 민간인 시신 수백 구가 손발이 묶인 채로 발견돼 전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주민들에게 듣기 위해서 근처를 돌아다니며 인터뷰했는데,

한 시민이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그 큰 구덩이에서도 시신 여러 구가 발견됐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부차에서는 러시아군이 반려견들도 무차별적으로 죽여 "보이는 건 다 죽였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시 이르핀에서 북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보로댠카라는 도시도 폐허였습니다.

한 아파트가 포격을 당해 두 동강이 난 곳이 전쟁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파괴된 러시아의 장갑차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도 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이런 현장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고자 무너진 건물이나 수풀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는데요,

현지인들은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남기고 간 폭발물이나, 전차의 불발탄들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으니 다가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앵커]
폐허가 된 북서쪽 외곽 도시 이야기를 들으니 키이우의 중심지, 도심의 상황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한상원]
네, 키이우 도심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불안과 슬픔이 깔려있었습니다.

특히 하루가 멀다 하고 키이우 도심 곳곳의 교회에서 동부 전선에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장례 미사가 열렸습니다.

저희가 처음으로 군인들의 장례를 보게 된 곳은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이었는데, 이곳은 키이우에서 아주 유명한 관광 명소지만 이제는 관광객이 아니라 조문객이 더 많이 찾아오는 추모의 공간이 돼 있었습니다.

당시 군인 3명의 장례가 진행됐습니다.

유족부터 전우들까지 오열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저도 모르게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수도권 앞 광장에는 파괴된 러시아 전차 여러 대가 전시돼 있었습니다.

전차에는 녹아내린 러시아군의 방탄복, 군복, 군화부터 포탄 탄피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상당히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또 시커멓게 그을린 전차에서 탄약과 화약 냄새가 여전히 진동하고 있어서 아주 최근까지도 전투에 동원됐던 무기라는 걸 실감할 수도 있었고요.

그 가운데 부서진 승용차 한 대가 섞여 있어 굉장히 눈에 띄었습니다.

차량 측면에는 러시아어로 아이들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피난 가던 우크라이나인들이 아이들이 타고 있으니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로 붙여둔 거였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승용차 곳곳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내부에 혈흔도 상당해 충격적이었습니다.

[앵커]
신준명 기자는 키이우 도심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나요?

[신준명]
먼저 영화에서나 듣던 공습 경보 사이렌을 직접 들었을 땐 정말 섬뜩했습니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휴대전화에도 공습경보 알림이 뜨면서 제가 들은 게 맞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저희가 러시아가 철수 38일 만에 키이우를 재공습했다는 외신보도를 인천공항에서 접하고 난 뒤에 비행기에 탔거든요.

그래서인지 공습경보를 들을 때마다 불안함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어디에 미사일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키이우 도심에서 실제로 미사일이 떨어진 곳도 가게 됐습니다.

러시아가 한창 키이우를 폭격하던 3월 초, 도심에 위치한 TV 타워를 파괴하기 위해 미사일을 쐈던 일이 있습니다.

그 현장이었는데, 그 TV 타워 앞 인도에 커다란 기둥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이 TV 타워가 아니라 인도에 떨어져 그대로 박혀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그 충격으로 인근 건물 한쪽 벽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고 인근 나무들은 미사일 폭발 당시의 열기로 새카맣게 탄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또, 당시 길을 가던 행인 5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앵커]
공포스럽고 안타까운 일들이 일상에 퍼져있는 상황이군요.

취재를 진행하면서 현지인들도 많이 만나게 됐죠?

[한상원]
그렇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의 무너진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짠나'라는 여성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보로댠카의 두 동강 난 아파트를 취재하다 만나게 됐는데요,

짠나는 페허가 된 자신의 고향에 석 달 만에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당시 짠나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망가진 아파트에 들어가 자신의 집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전기가 끊긴 탓에 냉장고의 음식이 모두 상해 악취가 진동을 하고 유리창 하나 성한 곳이 없어 바람조차 막을 수 없는 모습이었는데요

울면서 청소를 하던 짠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앵커]
그럼 신 기자는 누가 기억에 남나요?

[신준명]
키이우 지역 방송의 기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직원 100여 명 규모로 키이우 부차에서는 가장 큰 방송사의 소속 기자 알렉스였는데,

러시아가 침공 당시 모든 지역 방송사부터 무차별 공격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점령 기간 방송사 시설을 모두 파괴한 것도 모자라 철수 당시엔 돈이 될 만한 카메라 장비는 모두 들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이 탓에 알렉스는 한순간에 직장을 잃게 됐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요,

그 목소리 직접 들어보시죠

[알렉스 / 키이우 부차 :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이전보다 더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앵커]
신 기자에게 하나 더 물어보죠.

키이우에서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는 모습도 보였다고요?

[신준명]
그렇습니다.

키이우에는 서울로 치면 한강과 같은 드니프로 강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이 강변 공원에 반려견과 산책 나온 사람들, 조깅 등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해가 뜨거워지는 오후가 되면 강변에선 일광욕과 수영을 하러 나온 사람들도 상당했는데요,

이런 시민들은 YTN 취재진을 보면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해주곤 했습니다.

이처럼 키이우 도심에는 조금씩 일상이 돌아오는 모습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언제든 미사일이 날아들 수 있다는 불안함을 키이우의 시민들도, 저희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요,

지금 키이우의 불안한 평화가 사라지고, 하루 빨리 온전한 평화가 오길 바랍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이렇게 전쟁 국가를 취재하고 온 소감이 궁금하네요.

[신준명]
제가 키이우 현지에서 취재한 지 3일째 되던 날,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기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이 기자는 키이우에 온 지 90일 가까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제가 느낀 아쉬운 점입니다.

그 전에 저희 YTN뿐 아니라 모든 한국언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식을 폴란드 국경에서 간접적으로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키이우에 들어간 것도 전쟁이 발발한 지 백일이 넘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외교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취재진의 우크라이나 진입을 제한했던 것에 공감은 합니다만,

기자로서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였다"고 변명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한상원 기자는 어떻습니까?

[한상원]
같은 생각입니다.

전쟁 지역의 소식을 조금 더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현장에서 크게 느꼈습니다.

다만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하는 건 맞습니다.

이를 위해 CNN 등 외신처럼 분쟁 지역 취재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YTN 신준명 (shinjm7529@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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