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보복'으로 시작해 '최악의 한일 관계'로 마무리

'경제 보복'으로 시작해 '최악의 한일 관계'로 마무리

2019.12.31. 오후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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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해마다 순탄하지 않은 한일 관계였지만 올해는 특히 사상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다만 연말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새해에는 점진적으로 관계가 좋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도쿄 특파원 연결해 한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황보연 특파원!

한일 관계로 사상 최악으로까지 빠진 계기는 역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였지요?

[기자]
그렇습니다.

지난해 10월 말에 우리 대법원이 강제 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뒤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고요.

이후 동해에서 우리 함정이 일본 초계기에 위험한 사격 관제 레이더를 비췄다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로 관계는 더욱 얼어붙으면서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7월 1일 일본이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한 일본 기업의 한국 수출에 제재 조치를 취한 게 최악의 한일 관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일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8월에 접어들자마자 한국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수출 우대 국가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만 쏙 빼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수출할 때 절차를 대폭 까다롭게 바꿨습니다.

[앵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이런 경제 제재를 가한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기자]
일본 정부는 경제 제재를 하기 전부터 줄곧 한국 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을 문제 삼았습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징용 배상 문제는 다 끝났다는 게 일본의 주장인데요.

우리 법원이 개인이 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고 판결하자 한국이 약속을 어겼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경제 제재 조치를 단행한 것입니다.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인 셈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징용 문제로 경제 제재를 가한 것을 인정할 경우 세계무역기구 WTO 제소되면 패소할 가능성이 큰 만큼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고 나왔습니다.

안전 보장 면에서 한국의 수출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억지 논리를 갖다 붙인 것입니다.

WTO 예외 규정에 안전보장상 문제가 있다면 경제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 부분을 파고든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 수출 제도의 어느 부분이 안전보장 면에서 문제가 있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떤 안전 보장 문제가 발생했는지 전혀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일본의 수출 제재 조치가 반년 넘게 이어졌는데요.

그 영향은 어떠한가요?

[기자]
반도체 강국인 한국을 겨냥해 불화수소와 포토 레지스트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까다롭게 하고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면서 한국 기업으로서는 일본 기업에서 관련 제품을 조달하기가 상당히 어렵게 됐습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품목 위주로 수출 제재를 가해 한국 기업에 타격을 주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수출 허가를 지연시키면서 몇 달에 한 번 찔끔 허가는 내주는 상황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관련 제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거나 자체 개발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고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피해는 그러나 우리 기업만 입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길이 일본 정부에 의해 사실상 막히면서 일본 기업 피해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터무니없는 보복 조치에 반발해 국내에서 급속하게 확산한 일본 불매, 즉 '노 재팬' 운동으로 일본 기업뿐 아니라 일본 지역 경제까지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일본의 한국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나 줄었습니다.

특히 일본 자동차는 감소 폭이 89%에 달했고 지난해까지 전 세계에서 한국에 가장 많이 수출했던 일본 맥주는 99% 수출이 감소했습니다.

한국 관광객으로 넘쳐나던 일본 지역 관광지들은 한국 관광객이 발을 끊으면서 비명을 지르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한국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65%나 감소했습니다.

특히 규슈나 돗토리현, 홋카이도 등 지난해까지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타격이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앵커]
이런 최악의 한일 관계에 최근 개선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새해 한일 관계 어떻게 전망하나요?

[기자]
일본은 우리 정부의 수출 규제 철회 요구에 무시 전략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러다 우리 정부가 지난 8월 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꺼내 들자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지난달 지소미아 조건부 종료 연장과 수출 규제 당국 간 대화에 합의하면서 전기가 마련됐습니다.

지난 16일 한일 국장급 대화가 3년 반 만에 재개됐고 24일에는 1년 3개월 만에 한일 정상회담까지 개최되면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테이블이 가까스로 차려진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눈에 띄는 일본의 수출 규제 철회의 움직임은 없었지만, 협상의 장이 모처럼 마련됐고, 새해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어서 점진적은 수출 규제 완화의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수출 규제의 배경에 징용 배상 문제가 있는 만큼 한국 내에서 이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가 그 시기와 속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일본이 때만 되면 도발하는 독도나 교과서 문제가 항상 잠재돼 있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를 두고 한일 양국이 더 첨예해질 가능성이 커 전반적으로 새해 한일 관계가 속도감 있게 진전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지금까지 도쿄에서 YTN 황보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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