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뉴스-더인터뷰] '소녀상' 일본은 가렸지만 세계는 기린다

[더뉴스-더인터뷰] '소녀상' 일본은 가렸지만 세계는 기린다

2019.08.12. 오후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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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노종면 앵커, 박상연 앵커
■ 출연 : 김서경 / '평화의 소녀상'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일본 아이치현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지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전시를 열어놓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일본 측의 조치에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일본이 방해할수록 소녀상에 담긴 평화의 메시지는 더 넓게 퍼져나간다는 걸 일본만 모르는 것 같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드신 김서경, 김운성 부부 작가 두 분 가운데 김서경 작가님을 만나뵙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말씀드린 대로 평화의 소녀상도 스튜디오에 함께 초대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서경]
반갑습니다.

[앵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지금 제 옆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갔던 그 조각상과 똑같은 건가요?

[김서경]
그 조각상과 같습니다.

[앵커]
크기와...

[김서경]
채색과 재료와 모든 것이 같습니다.

[앵커]
지금 아이치현 아이치 트리엔날레 전시관에서 전시는 중단됐잖아요. 그러면 조각상을 철거해 오신 건가요?

[김서경]
아니요, 조각상은 철거되지 않고요. 말하자면 방치,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시장 안이 완전히 차단됐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앵커]
전시관 자체가요?

[김서경]
네. 거기 입구에 가림막이 생겨서 그 가림막 뒤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앵커]
일본 우익들의 철거 요청이 계속 있다는 기사가 있던데 어떻습니까, 지금?

[김서경]
아마도 전화나 메일을 통해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 저희에게 직접적으로 어떤 통보라든가 그런 것들이 온 적은 없습니다.

[앵커]
일본 경찰에서 관련 수사를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좀 지켜봐야 될 것 같고요. 2012년도에도 소녀상 전시가 되다가 철거됐던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서경]
2012년에는 도쿄도 미술관에서 잔라전이라는 그룹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룹전 도중에 나흘 만에 철거당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작가한테는 그때 통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때는 모르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일본에 있는 유카 오카모토라는 기획자분을 알게 돼서 2015년에 저희를 초대해 주셨어요, 표현의 부자유전이라는 전시회 속에서 많은 작업들이 있는데 그중에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그다음에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반대. 그리고 오키나와 문제. 그다음에 헌법 9조에 대한 문제. 그런 이야기들이 그 안에 다 담겨져 있는데 그런 전시가 이번에 표현의 부자유전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2015년에 표현의 부자유전으로 열렸고 이번에 그것을 모태로 해서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라는 전시가 기획이 된 거잖아요. 그때 2015년 또 2012년에 전시를 했을 때는 이 작품이 간 게 아니고 모형이 갔다고 들었습니다.

[김서경]
지금 앞에 있는 이 소녀상은 아니고요. 지금 모형이 없어서 못 가져왔는데 20cm 브론즈 형태로 된 모형입니다. 바닥은 없는 상태에서 브론즈로 된 모습의 소녀상이 있었습니다.

[앵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 이 모형 소녀상보다는 크기가 조금 더 크지만 실물보다는 작은. 알겠습니다.

[앵커]
2015년 그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요?

[김서경]
문제는 없었고요. 개인 갤러리에서 했는데 극우분들이 저희가 있었을 때는 뵙지를 못했고요. 극우분들이 그다음에 오셔서 일단 저희를 기획해 주신 많은 분들이 저희를 위해서 그 앞에서 지켜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일본분들이 번갈아가면서.

[앵커]
사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번에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이 작품이 간 걸 두고 최근에 불거진 한일 갈등 때문에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작가분들이 간 게 아닌가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질문을 드립니다. 언제 초대를 받으신 겁니까?

[김서경]
저희에게 통보된 건 한 2, 3개월 전이고요. 1년 전에 표현의 부자유전이 저희 기획자한테 이번 전시에 초청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앵커]
지난해 이미 1년 전에.

[김서경]
네. 그래서 총감독이 저희를 초청해 주신 거죠.

[앵커]
이번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좀 자세히 여쭙고 싶습니다. 4일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김서경]
오픈이 8월 1일이었는데요. 하루 전날 리셉션이라는 것을 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오픈 전날 기자들 모셔다 놓고 많은 관객들을 모셔다 놓고 지인들을 모셔다 놓고 행사를 했고요. 그다음에 1일날 드디어 오픈을 하게 됐죠. 그런데 1일날은 별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저희 소녀상을 보고 손 잡아주시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읽어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일본의 많은 관객분들은 아주 이 부분에 대해서, 전시하는 관람의 태도라든가 그리고 전시하는 그 마음자세라든가 이런 것들이 많이 저희가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앵커]
수준이 높았군요.

[김서경]
일단은 설명을 온전하게 다 읽으셨어요. 그리고 이 안에서 반일의 상징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셨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 와서 전시를 해 주셨다는 것이 되게 고맙다고 저희에게 말씀해 주신 분들이 계셨고요.

그리고 이튿날에 시장이 와서, 카와무라 시장이 갑자기 오시더니 소녀상을 보고 그다음에 기자회견을 하게 됐죠, 그 자리에서. 그러면서 철거를 시키겠다는 말을 하게 됐죠. 그런 다음에 저희 총감독이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항의전화가 있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지금 전시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겠다라는 게 있었고 그다음 날 또 기자회견을 관방장관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그때는 오고 있는 도중이라서 잘 몰랐었고요. 그러는 과정에서 다시금 중단을 시키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저희가 그 정보를 얻게 됐습니다. 그것까지가 전시가 중단된 저희가 듣게 된 그런 상황입니다.

[앵커]
조금 전에 시장이 와서 보고 기자회견을 한 것이 공개적으로 관 차원에서 반대 입장이 나온 게 처음이잖아요. 그게 나고야 시장이죠? 아이치현에 나고야시가 있고.

[김서경]
카와무라 시장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앵커]
그런데 그 일 이외에 정상적으로 처음에 오픈이 됐을 때도 사진은 찍을 수 있어도 SNS에는 올릴 수 없다라는 그런 안내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김서경]
네, 그러니까 저희가 하루 전날 그런 오픈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 사진은 찍되 SNS에 올리지 마세요라는 게 포스터로 커다랗게 입구에 붙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좀 불안하기는 했습니다, 사실은. 그런데 다른 전시장에는 그게 있지 않고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전시장에만 그 포스터가 붙어있었습니다.

[앵커]
소녀상이 전시되어 있던 그 전시관에만.

[앵커]
실제로 전시가 극우세력으로부터 방해를 받거나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김서경]
저희가 겪은 건 없습니다. 지금 보도를 통해서 여러 가지 설은 있는데 저희는 극우를 본 적은 있지만 극우가 와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행동하기 전에 저희 소녀상을 지키고 표현의 부자유전의 실행자분들이 설득을 해서 그분들이 더 이상의 행동이 없이 조용히 가게끔 만들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모습은 많이 봤습니다.

[앵커]
그런 위협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고요. 비슷한 다른 전시에서도 있었을 테니까. 그러면 상식적으로는 일본의 경찰력을 강화해서라도 표현의 자유를 지켜줘야 하는 그게 정상국가 아니겠습니까? 경찰력의 도움은 어느 정도 받았습니까?

[김서경]
경찰분들이 계셨고요. 관계자분들도 많이 계셨고요. 그리고 저희 실행위원들이 또 계셨고 또 저희 실행위원 속에서 도쿄에 있는 시민분들이 소녀상을 지키겠다고 와서 또 지켜주시기도 했고요. 나고야분들이 많이 지켜주시기도 했어요.

그런데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런 테러의 위협이 있으면 국가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밝혀내고 처벌을 해야 되는 게 마땅하잖아요. 그 공간 자체를 폐쇄한다는 것은 만약에 올림픽이 있으면 이런 테러 위협이 있으면 올림픽을 하지 않겠다라는 말과 같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좀 황당한 처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앵커]
조금 전에 나고야 시장 얘기도 하셨고 또 스가 관방장관, 정부 입장도 말씀하셨는데 나고야시가 아이치현에 있어서 아이치현 지사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저희가 어렴풋이 듣기로는 아이치현 지사는 이 전시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결국은 입장을 바꿨습니까?

[김서경]
일단 저희가 그분들을 만나뵌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저희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그분들을 알게 됐는데 일단 전시가 진행되는 것 자체가 중단됐을 경우에 츠다 총감독과 그다음에 아이치 지사분이 같이 그 부분을 해결한다고 저희는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결론은 같이 동조를 하지 않았나 싶어서 어떠한 기자회견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중단을 멈추지 않으면 입장이 같은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이런 전례가 있었는지 궁금한데. 국제미술제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이런 전시가 중단됐던 사례가 있습니까?

[김서경]
우리나라에 있었죠.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고요. 우리나라에 박근혜 정권 때 박근혜를 희화화시키는, 박근혜 대통령을 희화하시키는 그런 홍성담 작가의 작품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앵커]
광주비엔날레에 걸렸다가 빠졌죠.

[김서경]
저희가 알고 있는 건 그렇습니다.

[앵커]
일본 정부가 유독 소녀상에 대한 반대 입장을 숨기지도 않아요. 노골적으로 표하고 있고 실질적인 방해 행위들을 하는 것으로 저희는 보도를 통해서 접하고 있는데 작가님께서 겪었던 일이 있습니까?

[김서경]
일단은 겪었던 게 아무런 통보 없이 중단을 시켰던 것에 대해서 작가한테 아무런 입장 표명을 안 했다는 게 저희는 큰 문제라고 작가들은 생각을 합니다. 메일이나 문자라도 왔어야 되는데 아무런 통보가 없었습니다. 그냥 기자회견을 통해서 듣게 된 거니까 일단은 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앵커]
과거 다른 곳에서 전시를 하려고 했을 때 독일이라든가 이런 데서 그런 방해를 경험한 사례가 있나요?

[김서경]
그러니까 전시를 방해받은 건 전시 중에는 없었고요. 전시가 끝난 이후에 일본의 도르트문트에서 저희가 3일동안 했는데 같은 소녀상을 갖고 전시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3일이 끝난 다음에 철수하는 날 일본 총영사가 전화가 왔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박물관이었거든요, 탄광박물관. 그런데 거기 총책임자분을 만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났나 보다 했는데 그 속에서 여태까지 일본 정부에서 이렇게 막고 다녔다는 증거가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앵커]
앞서 문제제기할 생각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대응할 계획이신지요?

[김서경]
일단 지금 오늘도 일본의 많은 미술인들이 참여작가들이 젊은 작가들 중심으로 아마도 츠다 총감독을 만날 예정에 있습니다. 곧 만날 예정에 있는데 그런 것들을 통해서 같이 함께 항의를 하고요. 일단 성명서도 함께 내기도 하고요. 그리고 많은 시민단체들과 같이 연대하기도 하고 또한 법적인 것까지 같이 어떻게 할지 지금 고려 대상에 두고 있습니다.

[앵커]
법적인 조치가 뭐가 가능할까요?

[김서경]
일단 그런 자세한 얘기는 조금 저희가 연구 중에 있어서.

[앵커]
알겠습니다. 저희가 소녀상 출연시켜놓고 저희들끼리만 얘기를 했는데요. 소녀상 얘기를 작품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 보죠. 2011년에 만드셨던가요?

[김서경]
네. 2011년 12월 14일이 할머님들의 수요집회 20년이 되는 그 날이었고 또한 1000차 수요집회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기리기 위해서 평화기림비라는 것을 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압력이 뉴스를 통해서 저희가 접하게 되면서 그러면 저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조형물로 해야 되겠다라고 해서 조형물 디자인을 하다가 소녀상까지 오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소녀상을 제작하게 된 건 할머님들의 20년의 투쟁의 역사와 그리고 그 소녀들이 받았을 일제 하에서의 고통과 그리고 이 땅에 돌아와서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나라에게 외면당하고 이런 것들이 그 안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할머님들의 고통, 그 소녀들의 아픔 이런 것들이 다 담겨져 있는 상태에서 소녀상을 봐주시면 좋겠고요.

그리고 또한 할머님들은 그 자리에서 처음에는 본인들의 아픔을 증거하기 위해서 증인으로 그 자리에 계셨는데 지금은 할머님들께서 평화운동가가 되셨고요. 여성인권운동가가 되셨어요. 본인들과 똑같은 아픔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여성과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의지가 담긴 소녀상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님들의 꿈이 담긴 거고요. 세세한 설명을 드려야 되는데...

[앵커]
간단하게 상징을 담으셨을 것 같은데, 의미를. 그 상징 부분만 좀 말씀해 주시죠. 새부터 말씀해 주실까요?

[김서경]
일단 머리부터 말씀드릴까요. 머리는 본인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서 거칠게 잘려진 그런 모습인데요. 가족의 인연과 조국에 대한 인연이 끊김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옆의 새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할머님들이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으셨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할머님들이 평화에 대한 그런 꿈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담게 되고요. 돌아가신 할머님과 살아계신 할머님들을 연결해 주는 영매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손은 원래 주먹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다소곳한 모습이었는데 일본 정부의 압력이 계속된다는 뉴스를 접하고 안 되겠다. 저희가 더 굳세게 다짐을 해야겠다 약속을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꽉 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맨발입니다. 소녀의 발은. 이 땅에 돌아와서 살아낸 그 고통이 담겨져 있고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명예 부분 그리고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역사 부분이 불편한 발의 뒤꿈치가 들린 모습으로 표현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소녀상의 뒤에는 여기 작은 모형을 보면 보일 텐데 이렇게 그림자가 있습니다. 할머님들이 살아낸 고통 하나하나를 파편화된 모습으로 모자이크로 만들어졌고요. 그리고 가슴에는 돌아가신 할머님이 저희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나비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든 김에 평화비라는 이 글씨는 길원옥 할머님이라고 재작년에 가수로 데뷔하셨어요. 그분의 글씨체를 여기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소녀상에는 빈 의자가 있습니다. 빈 의자가 지금 제가 얘기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다 함축된 모습인데 돌아가신 할머님이 이 자리에 함께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요.

두 번째로는 이 앞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왜 저 사람들은 20년이 넘게, 지금 거의 30년째 수요집회를 하고 있지? 한번 앉아서 생각해 보는 자리. 그리고 할머님들은 바라보는 자리. 그리고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될까? 한번 고민해 보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소녀상은 제작되었습니다.

[앵커]
작품 곳곳에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1월에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님께서는 일본이 사과하기 전까지 전 세계에 소녀상을 세우겠다,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로 소녀상이 전 세계에 어느 정도 있습니까?

[김서경]
지금 9점이 제막을 했는데요. 그중 1점이 이틀 만에 철거됐습니다. 그곳이 필리핀이었고요. 미국에 4곳이 있고요. 캐나다 그다음에 중국, 호주, 독일에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소녀상을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것처럼 설치하는 그런 노력들이 있고요. 또 작가님처럼 전시를 해서 알리는 그런 노력도 있을 텐데 작가님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전시를 조금 더 왕성하게 해야겠다, 이런 결심이 서셨는지요?

[김서경]
당연히 섰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많은 곳에서 사실은 연락도 오고요. 저희가 정말로 소녀상이 그냥 조각일 뿐인데 저들이 저렇게 막고 하는 것들이 무엇 때문일까 고민하게 되면서 더 열심히 소녀상에 대해서 알릴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소녀가 갖고 있는 상징이 단지 반일이 아니라 함께 평화를 만들자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져 있거든요. 그 부분을 꼭 전 세계에 알리고 싶은 생각에서 적극적으로 지금 고민 중에 있습니다.

[앵커]
지금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건 없습니까?

[김서경]
거의 가까이 코앞에까지는 왔는데 결정된 게 별로 없어서 말씀드릴 게 별로 없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저희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인터뷰 제목을 정하거든요. 일본 정부는 가렸지만 세계는 기린다라는 문구를 정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소녀상에 대한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바람을 담았는데요. 이런 생각들을 우리 시청자분들도 많이 하고 계실 것 같아요.

그게 지금 화면에도 잡혀 있는 이 작은 소녀상 모형이라도 가지고 싶은, 늘 보고 싶은, 간직하고 싶은 그런 의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 판매를 한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김서경]
일단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터넷 한 군데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작은 소녀상이라고 치시면 나올 겁니다. 그곳에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를 가 보니까 품절됐다고...

[김서경]
그 공장에 불이 난 거예요.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에. 그래서 지금 뭔가 빨리 회전이 안 되고 있어서 조만간 다음 주 정도에는 나올 예정에 있습니다.

[앵커]
빨리 생산이 제대로 잘 됐으면 좋겠고요. 간단하게 이 소녀상 판매수익금은 소녀상 설치를 비롯한 그러니까 일본군 성노예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노력에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김서경]
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김서경 작가님과 함께했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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