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과 쓰나미에 멈춘 팔루"...특파원이 본 현장

"지진과 쓰나미에 멈춘 팔루"...특파원이 본 현장

2018.10.08. 오후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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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정아 앵커
■ 출연 : 김영수 기자, 심관흠 기자, 이현오 기자 (인도네시아 취재팀)

[앵커]
YTN은 지난주 1000명이 훌쩍 넘는 사망자를 낸 인도네시아 지진과 쓰나미 현장에 취재진을 특파해서 현지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취재팀이 현장 상황을 전해 주기 위해서 스튜디오에 직접 나왔습니다. 인도네시아 취재팀 김영수, 이현오, 심관흠 기자 세 명 나와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위험한 곳에 취재를 가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취재를 간다 했을 때부터 이곳 서울에서도 굉장히 걱정이 많았었는데 무사히 돌아오셔서 굉장히 반갑습니다. 고생 많으셨고요. 일단 금요일날 돌아온다, 소식이 전해졌었는데 어제 도착을 했어요.

[기자]
저희가 인천에 들어온 게 오전 7시쯤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팔루에서 출발한 건 금요일입니다. 지난 5일 금요일날 팔루에서 출발을 했는데 차로 이동을 했기 때문에 거의 하루 정도를 차를 타고 이동을 했습니다.

마카사르까지 가서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요. 그래서 팔루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 2박 3일 정도 걸렸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앵커]
팔루에서 마카사르까지 가는 그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기자]
그러니까 800km에서 900km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로가 왕복 2차로 도로인데 지진 피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울퉁불퉁하고 포장이 안 된 곳도 있고 그래서 현지 차량이 그렇게 또 상태가 좋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앵커]
800~900km.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00km 조금 안 되니까요. 이것보다 훨씬 넘는데 도로도 지금 울퉁불퉁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 움직이기는 힘든 상황이었겠네요.

[기자]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카사르에서 비행기로 팔루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차량으로 이동을 했는데 그때는 차가 조금 밀렸습니다. 그래서 25시간 정도 걸렸거든요. 그러니까 저희가 출장을 다녀오는 사이에 차로만 50시간 정도 탔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앵커]
이현오 기자, 왕복 50시간 정도, 취재도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오가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기자]
왕복 50시간이라는 건 한국에서는 절대 겪을 수 없는 건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현지에 팔루에 가면 물자와 기름과 기본 식량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 가야 했습니다. 비행기로...

[앵커]
물, 먹을 거 이런 걸 챙겨서 들어가셨겠군요.

[기자]
네, 미리 다 챙겨갔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로 간다면 1~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비행기로 모든 걸 실을 수 없기 때문에 저희 차 트렁크에 여러 가지 장비와 섞여서 물과 기름, 식량 등을 같이 싣고 갔습니다.

[앵커]
지진 피해가 심한 지역이 팔루잖아요. 팔루까지 가는 과정도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차량을 타고 가는 것 말고 육로로 가는 거 말고는 정말 방법이 없었습니까?

[기자]
저희가 사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봤는데 배로 가는 건 저희는 쓰나미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했고 이제 비행기를 처음에는 저희가 한국에서 갈 때는 예약을 해 놓고 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비행기가 다행히 뜨는구나라고 생각을 해서 갔더니 취소가 된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봤는데 군용기가 뜬다는 소식이 있어서 팔루공항 마카사르와 팔루공항을 다니는 군용기가 뜬다고 해서 저희 영사나 무관보를 통해서 취재진도 어쨌든 한국인 실종자가 있고 하니까 같이 갈 수 없겠느냐라고 해서 계속 시도를 했는데 그마저도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일부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분들이 탔어야 했고 구호물품도 굉장히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저희가 들어갈 틈은 없었던 것 같고요. 현지인들도 이 군용기를 굉장히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가 현장에서 리포트를 많이 보여드렸는데 마카사르에 있는 군공항과 팔루에 있는 공항에 현지인들이 굉장히 많이 타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게 표를 구할 수 없는 분들이 현장에서 군용기를 타려고 순서를 기다리는 건데.

[앵커]
민간항공을 이용하려면 또 돈이 드니까요.

[기자]
그렇죠. 정부의 도움을 좀 얻고자 하는 건데 마카사르에서 팔루로 들어가려는 분들은 대부분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분들이고요. 팔루에서 나오려는 분들은 여기가 위험하니 밖으로 나가고 싶다, 생필품이 필요하니까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들어가는 사람, 나오는 사람 모두 가족의 안전 때문에 우려되기 때문에 들어가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이 동시에 벌어진 건데 저희는 여기에서 스튜디오에서 현장 화면을 보면서 방송을 합니다마는 현장에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고 이렇게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또 달랐을 것 같습니다. 카메라에 저희가 보지 않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을 것 같은데요.

[기자]
일단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눈길 가는 모든 곳이 파괴된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희도 당황을 많이 했고 저희가 처음 간 곳이 해안 쪽에서 산간 쪽으로 이동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진흙으로 완전히 덮여버린 두 마을이 있었습니다. 발라로아랑 페토보라는 두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같은 경우는 액상화 현상이라고 하는 강한 지진으로 인해서 지하에 있던 진흙이 솟구쳐 오르면서...

[앵커]
지금 저 화면인가요?

[기자]
네, 지금 저게 다 액상화 현상이라고 하는 진흙으로 마을이 어떻게 보면 생매장돼버려서 다 덮여버렸는데요. 이제 특히 페토보 마을 같은 경우는 저희가 현장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많이 심각했습니다. 저도 카메라 기자다 보니까 현장 접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데 이 진흙 자체가 겉은 좀 말라있는데 조금만 무게가 실려도 늪처럼 푹 빠져버려서...

[앵커]
그러니까 저희가 지금 화면에서 볼 때는 진흙 높이가 상당히 높아 보이는데 저걸 밟으면 밑으로 빠져버린다.

[기자]
저래서 최대한 저희가 접근해서 찍은 화면이 저 정도인데요. 밟게 되면 정말 늪처럼 빠지게 돼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서 저희는 더 이상 접근을 하지 않았고. 어쨌든 저런 늪 같은 진흙이 계속 마을을 순식간에 덮쳤기 때문에 엄청난 사상자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카메라에 담지 못했던 부분은 방송에서는 절망에 가득 찬 계속 울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많이 나왔지만 저는 오히려 되게 초연한 주민들의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앵커]
저 재난 속에서도?

[기자]
저 재난 속에서도 일단은 자연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재해는 일어난 것이고 살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냐는 그런 의지를 많이 보여줬거든요. 예를 들면 그런 잔해 속에서 뭐라도 건질 수 있을 만한 물건을 하는데 웃고 떠들면서 농담을 하면서 그런 식으로 밝은 모습, 의외로 밝은 모습을 하면서 그런 모습을 보이거나 더 생각에 남는 건 다리가 완전히 무너졌던 해안가 같은 경우인데 다리 뒤에 거기도 해안가 마을인데 완전히 무너졌거든요.

그런데 해안가 마을 사람들이 다리 쪽에 와서 기념 촬영을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저는 그걸 보면서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재해는 좀 더 다르게 받아들이고 초연하는 모습, 좀 더 우리는 어차피 재해는 일어났으니 산 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겠나라는 걸 많이 봐서 저는 오히려 좀 감명 깊었습니다.

[앵커]
오히려 초연한 모습이 좀 생소하기도 하지만 이런 부분이 마음 아프기도 하고 오히려 지금 감명 깊었다, 이런 얘기까지 했는데 대처 방법에 대한 모습을 또 카메라에 담으면서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 재해, 지금 사망자 수가 굉장히 늘고 있습니다.

2000명 가까이 늘었고 실종자도 또 일부 보도에 의하면 5000명 더 있다, 이런 얘기까지 나오고 있거든요. 현지에서 직접 취재해 봤을 때 사망자 집계,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 것 같습니까?

[기자]
현재까지 나온 것만 2000명인데요. 저희가 현장에서 보면서 이 집계가 솔직히 무의미하다고 느낀 게 아까도 말했듯이 액상화 현상으로 마을이 순식간에 진흙으로 다 덮이지 않았습니까? 이게 거의 순식간에 생매장되듯이 했기 때문에 구조대원들도 사실 손을 쓰기가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 시신을 수습한다고 하더라도 직접 본 시신은 거의 진흙이랑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굉장히...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집계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요. 피해 지역이었던 섬 자체가 한반도 크기의 굉장히 넓은 섬이었기 때문에 저희가 못 가본 곳들도 굉장히 많았고 집계 자체도 힘든 오지마을이라든지 이런 마을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예상돼서 앞으로 더 늘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앵커]
지금 공식 집계보다 사망자 수가 더 늘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봤을 때 그런 상황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 김영수 기자, 지금 현지 기온은 한국하고 기온이 많이 다르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저희 한여름 정도 수준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굉장히 습하기도 하고요.

[앵커]
그렇다면 시신이 발굴돼도 처리과정이 굉장히 힘들 것 같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힘들 것 같다는 보도들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기자]
저희가 갔던 현장 중에서도 시신이 수습되는 모습을 목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페토보 마을 같은 경우에 진흙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봤는데 신원 확인하는 절차가 그게 다인지는 저희가 팔로우를 못 했지만 그 현장에서 시신을 찾고 그리고 주민분들을 데려오는, 그러니까 신원확인을 그 자리에서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차가 두 대가 있는데 아마 한 대는 매장을 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고 한 대는 가족들한테 인계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원 확인이 되지 않으면 제가 현지 관계자한테 물어봤더니 24시간 내에 매장을 하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하더라고요.

[앵커]
인도네시아 정부 방침이 24시간 내에...

[기자]
네, 그렇습니다. 그게 방침인지 종교적인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위생적인 이유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전염병 때문에.

[앵커]
지금 전염병이 굉장히 많이 창궐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기자]
그리고 저희가 취재할 때도 병이 옮을 수가 있으니까 조심을 하라는 가이드의 충고도 듣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마 굉장히 많은 시신들이 그냥 매장되지 않았을까, 저희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안타까운 상황인데 사실 이번 인도네시아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한국 국민들이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 중의 하나가 한국인 실종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살아 돌아오기를 저희가 기원을 했습니다마는 안타깝게도 희생이 된 이런 상황 아니겠습니까? 희생자 어머니가 현지로 떠나서. 만나보셨죠?

[기자]
네, 만나봤습니다.

[앵커]
어떤 말씀들을 좀 하시던가요?

[기자]
처음에 어머니가 저희가 마카사르에서 만나서 처음으로 YTN이 단독으로 인터뷰를 하고 어머니께서 팔루로 군용기를 타고 올라가신 후에 저희도 육로로 올라가서 계속 어머니를 취재를 해 왔습니다. 어머니를 취재하면서 팔루를 떠나던 날 아드님이 유해로 발견되고 화장을 하고 그리고 유해를 안고 저희랑 팔루공항에서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했는데요.

인터뷰 내내 저희도 마음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인터뷰를 한번 보시죠.

[한국인 희생자 어머니 : 지금도 아직 따뜻해요. 아들 안고 있으면 따뜻한 것 같이. 부모가 죄가 커서 자식이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좋은 일을 하면서, 죄를 소멸시켜 나가면서 내세에 만나기로 기약을 했습니다.]

[앵커]
참 아직도 따뜻하다... 내세에 만나기로. 내가 내 죄를 소멸시키면서 봉사를 많이 해서 내세에 만나기로 기약했다, 이 말씀을 지금 하셨는데 애써 담담한 듯하시지만 목소리가 떨리고요. 지금 이 얘기를 전해 주는 이현오 기자 목소리도 떨리거든요. 이 얘기를 직접 들었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기자]
사실 전날 밤에 저희 한국인 희생자가 발견되고 저희 숙소에 앉아 있는데 어머니께서 제 옆으로 오셨어요. 그래서 한 시간 정도를 대화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직은 악몽 같지만 그래도 아들이 자기가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일을 하다가 갔으니 괜찮다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하지만 타지에서 아들의 유해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마음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도 인터뷰를 계속 몇 번 했지만 인터뷰하는 내내 저희도 카메라를 들고 마이크를 들고 있는 저희도 계속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앵커]
김영수 기자, 이런 취재를 하고 이런 인터뷰를 해야 될 때마다 굉장히 힘들죠.

[기자]
아까 이현오 기자가 얘기했는데 저희가 처음에 뵀을 때는 사실 살아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희망이 있었고 저희도 있었고 어머님도 희망을 가지고 오셨던 걸로 저는 느낌을 받았는데.

[앵커]
건물 잔해들 사이가 벌어진 틈들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희망을 가지셨죠.

[기자]
그런데 저희가 떠날 때, 그러니까 유해를 안고 계실 때 인터뷰를 할 때는 저도 굉장히 울컥했고요. 어머님 말씀이 정말,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님 말씀이 이렇게까지 대단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어쨌든 재난현장에 지금 취재를 간 만큼 어려운 점이 굉장히 많았을 것 같은데요. 심관흠 기자, 어떤 부분이 취재하는 데 가장 어려웠습니까?

[기자]
아무래도 저희는 카메라 기자다 보니까 장비를 많이 챙겨야 되는데 그런 어려움이라든지 현지의 전기공급이 어려워서 충전하는 문제도 있었고요. 그런 장비 때문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고 일단 더위가 아무래도 저희는 출발했을 때 가을이었는데 또 갑자기 폭염에 적응을 해야 되는 상황이고. 일단 의식주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컸습니다.

일단 현지 상황을 외신에서 계속 나오기는 했지만 직접 가는 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걱정이 굉장히 컸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저희가 육로로 가게 된 것도 그런 기름, 식수, 식량을 직접 챙기기 위함도 있었고. 그래서 아무래도 그런 심리적인 문제가 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앵커]
현지에서 보면 기름이 모자라서 저희가 오토바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얻으려고 하는 분들 또 화면에서 볼 수가 있었거든요. 현지에서 취재를 해 봤을 때 어땠습니까? 지금 빠져나오는 사람들, 기름이 있어야 타고 나올 수 있으니까요.

[기자]
지금 보시는 그림인데요. 현지 보면 주유소에 대부분 이렇게 줄이 서 있고 이렇게 줄 서서 기름 받는 모습이 있습니다. 기름과 식량 문제가 제일 컸는데 식량 같은 경우는 조달을 받으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거든요. 있어야 하고 그래야 올 수 있고 나갈 수 있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그래서 마카사르에서 기름을 가지고 올라갔고 현지 가서는 팔루에서는 기름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희는 미리 마카사르에서 기름을 팔루 내에서 이동할 만큼을 준비해 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현지에 있는 한국인을 위한 기름도 조금 가져갔고요. 조금 넉넉히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이 기름을 사기 위해서 한 주유소에서 이렇게 수백 명씩 인파가 대기하고 있고 이렇게 드럼통 같은 작은 드럼통이 거의 셀 수도 없습니다.

이 정도로 많이 준비되어 있어서 이런 드럼통과 오토바이의 행렬들이 한 주유소만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주유소에 있습니다.

[앵커]
저렇게 줄을 서 있으면 얼마나 기다려야 저 한 통을 기름을 채울 수 있는 겁니까?

[기자]
저희가 현지에서 주유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을 인터뷰를 두 분 정도를 여쭤봤는데요. 새벽 1시부터 기다려서 이쪽에 있었다는 분도 계시고 본인이 사는 지역이 아닌데도 근처에서 오셔서 새벽 1시부터 대기하고 저희가 이 인터뷰 한 시간이 오후 4시쯤이 됐는데 그때까지 계속 기다리셨는데 기름을 못 받고 계셨다고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앵커]
새벽 1시부터 한낮을 지나서 오후 4시, 그러면 땡볕에서 기름을 받기 위해서 새벽부터 해서 낮을 지나서 기다려야 겨우 한 통을 받을 수 있는 이런 상황이었군요. 각자 취재현장에서 느꼈던 아쉬운 점도 있었을 것 같고요. 또 조금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심관흠 기자.

[기자]
저는 오히려 느꼈던 점이 있었는데요. 피해 현장이나 시신, 한국인 유가족까지 직접 카메라에 영상을 담아야 하는데 그러면서 취재 윤리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신원조회를 위해서 시신이 담긴 가방을 열 때 주민들이 갑자기 몰려들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타인의 불행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그걸 보도하는 저희 기자 입장에서는 그런 기자로서의 윤리는 정해야...

[인터뷰]
저희가 정해야 되고 지켜야 되는 거라고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항상 유가족 취재가 가장 어려운데요. 특히 희생자 어머님이 저희 취재진에게 굉장히 잘해 주셨습니다, 얘기도 많이 해 주셨고요. 그런데 희생자가 발견이 되고 저희가 ENG 카메라를 들이댈 때는 정말 마음도 무겁고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타국과 타인의 불행을 보도할 때 알 권리와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앵커]
알 권리 그리고 도덕적 문제 사이에서 고민이 됐었던 이런 기회가 됐었던 것 같은데요. 이현오 기자는 어떻습니까?

[기자]
저희가 주로 취재한 곳은 쓰나미로 피해 입은 해안가와 노란색 다리 그리고 진흙으로 덮인 발라로아와 페토보 마을, 이런 곳이 주였는데요. 현지에서 현지 언론을 보면 이게 다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실종자와 사망자가 거의 2000명에 육박한 만큼 피해를 입은 지역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요.

지금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에서 제일 필요한 거는 어쩔 수 없이 거기 살아야 되는 분들, 밖으로 나오거나 이주하지 않고 그곳에 살아야 되는 분들에 대한 그런 지원이 제일 필요한데 현장을 더 취재해서 저희가 이런 현실을 알리고 했다면 더 원조가 활발히, 국제사회 원조가 더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면 좋았을 텐데 여건 상 그러지 못한 점은 좀 아쉽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현지 공항에 대한 복구 그리고 팔루에서부터 마카사르에 가기까지 대부분 도로가 2차선 왕복입니다.

이런 도로 등에서 많은 인프라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런 복구와 지원이 빨리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여서 그런 국제사회의 구호가 지금 절실히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처참한 인도네시아 지진현장의 화면을 저희가 보여드리면서도 또 우리 두 촬영기자께서 찍어주신 굉장히 예쁜 하늘도 한편으로 볼 수도 있는 이런 참 안타까운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김영수 기자, 이렇게 큰 재난현장에 취재를 가본 건 사실 처음이죠?

[기자]
제가 이렇게 큰 재난현장에 언제 또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재난이 없어야 하겠지만, 저 기자로서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고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는데요.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아까 얘기도 나왔지만 페토보 마을이라는 곳인데요.

진흙으로 완전히 덮인 마을인데 이미 리포트에도 저희가 활용을 했는데 저희가 현장에 가자마자 시신이 하나가 발견이 됐고 그걸 확인하는 아내입니다, 시신의 아내인데 굉장히 오열하는... 저는 소리만 듣고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말 큰 오열이었고 절규였는데요. 그 잠시 뒤에는 두 살배기 아이 시신을 수습을 해 오는 걸 제가 목격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 시신을 보기도 했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가, 제가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그대로 굳어 있는 모습이 진흙에 묻어 있는 그런 모습이 되게 마음이 아팠고요. 현장 구조대원이나 군인, 현지 군 그리고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굉장히 노력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사실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실 구조보다는 시신 수습이라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구조 인력이나 이런 게 굉장히 부족했겠죠. 굉장히 큰 재난이기 때문에. 그런데도 사실 많이 안타까웠죠. 저희는 조금 더 많은 인력이 투입이 돼서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볼 수는 없었고요.

사실상 골든타임이 지났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찾을 수 있도록 실낱같은 희망으로 찾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좀 시신 수습에라도 많이 투입이 돼서 국제사회가 많이 인도네시아 정부를 도움을 주거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마지막으로 저희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 저희 현지에서 취재진을 굉장히 많이 도와주신 분들이 있는데요. 교민분들도 그렇고 그리고 우리 영사 그리고 무관보께서 굉장히 숙소나 이런 거를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자리에서 드리고 싶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재해로 희생된 현지인분들 그리고 특히 한국인 희생자분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앵커]
저희가 현지에서 들어오는 화면을 보면서도 굉장히 마음 아픈 상황이었는데 이걸 직접 취재한 우리 취재기자들 현지에서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취재를 했을까, 이런 생각을 화면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지금 세 분 취재기자께서 이런 얘기를 마지막에 해 주셨습니다. 기억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취재팀 김영수, 이현오, 심관흠 기자와 얘기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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