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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 진행 : 김영민 아나운서
■ 대담 : 가수 김상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김영민 아나운서 (이하 김영민) : 매년 가을이면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코모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잘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렸던 가을의 대표곡인데요. 오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에서는 노래의 주인공, 가을의 목소리 가수 김상희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상희 : 아유, 안녕하세요.
◆ 김영민 : 반갑습니다.
◇ 김상희 : 나이가 그렇게 저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그 노래 끝까지 아셔요?
◆ 김영민 : 들어봤어요. 그리고 제가 선생님 오시니까 선생님 곡들 다시 한 번 쭉 들어봤는데 생각보다 저한테 익숙한 곡들이 많더라고요. 반가운 마음도 들었고, ‘아 이게 선생님 곡이었구나’ 이런 곡도 굉장히 많았어요. YTN 라디오에서는 처음 뵌 것 같은데 처음 방문하신 거죠? 저희 청취자분들께 자기소개를 한번 부탁드릴게요.
◇ 김상희 : 맨 처음에 레디오 출연할 때는 정말 조그마한 방에서 마이크도 이런 마이크가 아니에요. 조그마한 마이크 그거 놓고, 얘기할 때도 거의 창문을 통해서 눈으로 손으로 이렇게 얘기하면서 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시설도 다르고 이렇게 넓은 방에서 우리 둘이 한다는 것이 어쩐지 너무 호화스럽다.
◆ 김영민 : 아, 정말요?
◇ 김상희 :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옛날 생각 많이 합니다.
◆ 김영민 : 그러시군요. 청취자 분들께서 정말 반갑게 느끼실 것 같아요.
◇ 김상희 : 저도 정말 반가워요.
◆ 김영민 :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요새 라디오를 통해서 한참 많이 흘러나오는 노래이긴 한데요. 굉장히 오래전 노래이기도 하잖아요. 언제 발표를 하셨어요?
◇ 김상희 : 햇수 대라고 하면 제 나이 물어보는 거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제 나이가 얼마인지 잘 모르는데 굉장히 오래 전에, 거의 한 70년대 초반에 나왔던 노래인가? 이런 생각인데 그것도 정확하지 않아요.
◆ 김영민 : 사실은 이 노래가 6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노래입니다. 저는 사실 선생님 나이는 몰라요. 수십 년 동안 이 노래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사랑받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김상희 : 그 당시만 해도 울고 웃는 노래가 참 많고 그랬는데 이렇게 자연을 내 곁에 가까이 두고 흥얼흥얼하면서 하는 노래, 이런 노래로서는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고요. 그때만 해도 코스모스가 그렇게 유행하지는 않았었어요. 길가에 가다 보면 키가 아주 큰 그리고 굉장히 갸냘픈 그런 꽃들이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한들한들 하는 모습만 봤었지 그것이 그렇게 가슴속에 박혀 오는 줄은 몰랐는데 그 노래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코스모스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가을의 대표 꽃이 코스모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코스모스가 이렇게 사랑받게 된 데에는 선생님의 곡이 또 한몫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곡을 처음 받으셨을 때가 기억이 나세요?
◇ 김상희 : 김강섭 선생님하고 하준희 선생님께서 작사하셨는데. 이 곡을 받자마자 작곡가가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그렇게 얘기 안 하고 멜로디만 했어요. 즐겁게 하늘하늘 하면서 이 노래를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여러분들이 들으시는 것처럼 한들한들 이렇게 노래를 하는데 나중에 작사가한테 그 가사가 나온 연유를 듣고는 조금 기분이 달라졌어요. 아주 친한 분의 장례식에 갔다가 와서, 그러니까 무덤까지 갔다 오시는 길에 버스 안에서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걸 보고 연상이 돼서 그 노래를 작사했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전혀 제 노래하고 분위기가 달라서. 그래서 작사가한테 물어봤어요. “선생님 좀 어둡게 할까요?” 그랬더니 아니요. 이거는 김상희 씨 거니까 김상희 씨의 마음을 또 멋을 내서 맛을 내서 그렇게 해달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직도 한들한들 이렇게 합니다.
◆ 김영민 : 김강섭 선생님께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하셨다고요?
◇ 김상희 : 그 선생님 계시면 주눅 들어요.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음악적인 면에서 가수가 노래를 박자대로 안 한다든지 너무 당겼다가 앞으로 당겼다. 예를 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작곡을 해서 부르면 엄청나게 화를 내세요. 그게 많은 가수들한테 얘기하는데, 그게 사실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인데 듣는 그때는 굉장히 서운하고 서럽고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다들 그때 그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 김영민 : 그렇군요. 혹시 예전 일이지만 무대 하실 때나 아니면 녹음하실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거 혹시 있으세요?
◇ 김상희 : 맨 처음에 레코딩을 하러 갔을 때가 대머리 총각인데 이상해요. 가니까 이렇게 굉장히 큰 넓은 데 사람들이 악단이 다 앉아 있어요. 저 위에는 유리창 너머로 어떤 분이 앉아 계시고. 저는 그분이 누군지도 몰라요. 처음이니까. 그분이 엔지니어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최성락 선생님이시고요. 그런데 벽이 이런 벽이 아니에요. 담요 같은 게 걸려 있고. 그래서 선생님 이거 왜 이래요? 그랬더니 방음 장치, 그래요. 그런데 녹음을 그때 못 해요. 밖에서 혹시나 자동차가 지나가다가 클랙션 소리가 나온다든가 하면은 잡음이 들어가니까 12시 넘어서 조용할 때 밤에 그때 녹음을 해요. 그런데 누가 조금이라도 삐끄덕 한다든지 음이 하나 틀린다든지 이러면 다시 해야 돼요. 그러니까 가수로서는 얼마나 주눅이 들어요.
◆ 김영민 :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이런 녹음 장비나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다 보니까.
◇ 김상희 : 그래도 그때로서는 그것이 최고의 기술이고 최고의 즐거움이었는데 거기에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가 녹음을 한 그 노래가 대머리 총각이에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그 명곡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저희 방송에서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가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노래 처음 부르셨을 때 20대셨고, 지금은 제가 연세는 모르지만
◇ 김상희 : 계산해야 돼요. 손가락 꼽아야 돼요.
◆ 김영민 :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어느 나이대에 노래를 부르느냐에 따라 감정도 달라지고 노래를 느끼는 바도 달라지고 그러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 김상희 : 제 목소리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맨 처음하고 지금하고 노래하는 기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어디든지 가면 같은 기분으로 노래를 하고 또 호응을 같이 해 주세요. 늘 어디서나. 그래서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노래를 할 때만큼은 옛날로 돌아가서 그 기분으로 노래합니다.
◆ 김영민 : 그러면 이 노래 부르실 때마다 수십 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드시겠네요.
◇ 김상희 : 그러니까 맨날 젊어지는 것 같아요.
◆ 김영민 : 동안의 비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알기로는 KBS 1기 전속 가수셨죠. 그렇게 가수 생활을 그렇게 시작을 하셨고 올해로 벌써 데뷔 65년 차가 되셨습니다.
◇ 김상희 : 벌써 그렇게 됐대요?
◆ 김영민 : 네, 벌써 그렇게 됐대요. 그 당시에 굉장히 유니크하다고 할까요? 특별하셨을 것 같아요. 고려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여성 학사 가수 1호’ 이런 타이틀을 얻게 되셨는데 어떻게 하다가 처음에 노래를 하게 되셨을까요?
◇ 김상희 : 우연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이 운명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학교 때는 제가 합창단 지휘를 하고 음악은 항시 접했지만 제가 가수가 된다든지 가수 이름을 하나도 몰랐어요. 집에서도 그렇고. 그런데 합창단을 모집한다고 그러는데 KBS에서 저희 친구들의 아르바이트, 학비를 버는 방법은 그때는 가정교사였어요. 그걸로 좀 보탬이 되고 학비도 보태고 이랬는데 절 더러 너는 그러면 합창단을 하라고. 시험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전속 가수 팀 하나는 합창단 팀. 그래서 써가지고 제 친구가 갖다 넣었어요. 그리고 시험을 보러 갔는데 그때 가는데 옷도 없어 가지고 교복 바지 입고 우리 엄마 반 코트 입고 덜레덜레 가서 합창단 팀에 가서 저 시험 보러 왔는데요 그랬더니 이름을 보시더니 학생 여기 없어요 그래요. 아닌데요, 넣었는데요. 아닌데 저 옆방에 가보세요. 그래 옆방에 갔더니 옆방에 있어요.
◆ 김영민 : 그게 바로 전속 가수 시험이었어요?
◇ 김상희 : 전속가수. 들어오라고 그러는데 뭘 알아야지 들어가죠. 들어갔는데 심사위원들이 쭉 앉아 계시는데 저는 아무도 몰라요. 그분들은 초짜 학생 같은 사람이 들어오니까 눈이 둥그래지더니 노래 한번 해보시죠 그래요. 어떤 노래 할까요 했더니 가요 하셔야죠 그래서 저 가요 모르는데요 그랬더니 심사위원들이 다들 머리를 싸매시더니 그럼 여길 왜 오셨습니까? 그래서 합창단 시험 보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잘못 넣어가지고 이리 왔다가 근데 거기 중간에 앉아 계신 선생님이 이렇게 들어보시더니 학생 아는 노래 있어요? 그러더니 이렇게 고개를 갸웃 하시더니 혹시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 아세요? 그래서 몰라요. 그랬더니 고개를 푹 수그리셔요. 그분이 손석우 선생님이세요.
◆ 김영민 : 아 그렇군요.
◇ 김상희 : 그 유명한 노래를 모른다니까 이거는 가수가 아니잖아. 그래서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선생님이 그러면 아는 노래가 뭐예요? 그분이 김강섭 씨예요. 그런데 모르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외국 곡 한 서너 곡 알고 학교에서 봤던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을 압니다 그랬더니 그럼 그거 한번 해보세요. 반주도 없어요. 악보도 없어요. 그래서 거기서 코메 프리마라는 외국 곡을 했어요. 근데 선생님들이 이상해 다 고개 갸웃거리더니 서로 얼굴들을 마주 보고 눈을 마주 보고.
◆ 김영민 :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 김상희 : 또 다른 나라 없어요? 그래서 잘 모르니까 가도 돼요? 그랬더니 한 곡만 더 하래요. 그래서 영작문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노래를 했더니, 됐대요. 가라고 그래요. 나중에 발표가 났는데, 됐어요. 당선이. 그것도 1등이래요. 그래서 전속 가수 첫 걸음을 시작했죠.
◆ 김영민 : 그러셨군요. 정말 유명한 배우들 보면 다 친구 오디션 따라 갔다가 됐다 이런 이야기 정말 많이 들었는데.
◇ 김상희 : 그렇게 해서 가수가 됐는데, 그때는 월급을 줬는데 우리 학생들은 정말 그때 호사스러운 간식이 뭐냐 하면 빵이에요.
◆ 김영민 : 그때는 그랬군요.
◇ 김상희 : 학생들이 기다려, 월급날.
◆ 김영민 : 아 정말요? 친구들이?
◇ 김상희 : 네. 방송국 앞에서 기다렸다가 우르르 빵집에 가서 빵하고 우유를 산같이 쌓아놓고 다 먹어. 그게 한 달에 한 번씩 했던 추억입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근데 방송국 전속 가수라는 게 지금은 없잖아요. 그게 어떤 역할을 했어요?
◇ 김상희 : 그때는 가요보다는 예를 들어서 합창으로 새마을 운동 노래를 합창으로 보여주는 그렇게 해서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건전가요 그런 것을 다 합창으로 하고. 어떤 때는 학교 가느라고 빠질 수도 있고 이러면 방송국에서 편의를 많이 봐줬어요.
◆ 김영민 : 그랬군요.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 김상희 : 학교에서는 저 가수인 줄 모르니까 점수로 다 매기는 거잖아요. 그때는 고대가 a반, b반 이렇게 나눠 있는데 a반인데, a반 시험을 보면 붙여요. 방을. 대학에서 방 붙이는 데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창피하니까 열심히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항시 그 방에 붙어야 되니까 애쓰던 그 흔적이 있어요.
◆ 김영민 :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물론 굉장히 보람됐지만 근데 또 듣기로는 그때 또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을 하셨다고요?
◇ 김상희 :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는 저 가수인 줄 모르니까. 우리 아버님은 제가 가수라고 그러면 뭐 난리 나실 판이에요. 워낙에는 고대도 못 가게 하신 분인데. 여자 대학 가라고.
◆ 김영민 : 아 정말요?
◇ 김상희 : 그래서 학비를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주셨어요. 그래서 고대를 갔는데 제가 가수가 된다고 그러면 안 되는 까닭이 저희 아버님이 극장을 세개 가지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 뒷면을 많이 아시니까 내 딸 절대 안 된다고. 가수하면 쫓겨난다고 그래서 야단 맞고는 굴뚝 밑에서 앉아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 김영민 : 어쩌다 들키셨어요?
◇ 김상희 : 어떤 아버님 친구분이 아버님하고 같이 저녁이면 이렇게 술 한잔들 하시잖아요. 하시는데 당신 딸 같은 사람이 노래를 한다고 그러니까 딱 일어나시더니 오늘 술값은 자네들이 내게, 나는 다시는 자네들하고 밥 술 안 먹겠다고 우리 딸은 가수가 아니라고 그러고 나오셨어요. 그 얘기 듣고는 날 절더러 가수냐고 그래서 아니요. 거짓말을 했더니 너 가수 하면 아버지하고 인연을 끊자고. 학비도 안 내준다고. 그리고 집에서 나가라고 최 씨 성을 쓰지 말라고. 그래서 예, 대답은 잘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그때는 길거리에 전파사가 있었어요. 그래서 스피커를 밖에다 내다 놔. 근데 이렇게 지나가는데 내가 생각해도 많이 듣던 사람 목소리야. 그게 전데, 그게 대머리 총각이 막 나오는 거라.
◆ 김영민 : 그렇군요.
◇ 김상희 : 그래가지고는 탄로가 나죠.
◆ 김영민 : 그러셨군요. 예전의 기억까지 한번 끄집어내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YTN 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오늘은 가을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노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에 가수 김상희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이 노래로 얘기의 문을 텄으니 이 노래를 안 들어볼 수가 없겠죠.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저희 함께 청해 듣겠습니다. 근데 그 시절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다 이런 이야기도 있거든요. 정말 많은 곡들이 나왔고 사랑받은 가수들도 있었는데, 쏟아지는 가요들 속에서 선생님의 곡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어떤 특별한 장점이나 특징이 있었을까요?
◇ 김상희 : 서민가수 같아요. 서민들이 즐거울 때는 즐거운 노래가 나오고 서민들이 우울하고 그럴 때는 거기에 맞는 노래가 나오고. 근데 그게 다 작곡가들이 만들어 주시는 거니까. 그래서 그분들의 마음하고 같이 움직였던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에요.
◆ 김영민 : 그렇군요.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곡을 발표하셨기 때문에 또 사랑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사랑받은 곡도 굉장히 많지만 방송 금지곡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 김상희 : 그 당시에 살기 좀 힘들었을 때 있었어요. 그래서 청년들 주머니에 돈 없었어요. 옷도 없었어요. 그래서 단벌신사, 구두도 하나. 영화 구경 가고 싶은데 구경 갈 돈이 없으니까 극장만 구경하고 나와요. 겉모습만 보고. 이런 식으로 그거를 풍자한 게 단벌신사. 근데 저는 그 노래가 무지 좋아서 막 같이 합창을 하는데 갑자기 금지가 됐어요.
◆ 김영민 : 왜요?
◇ 김상희 : 저쪽에서 이북에서 대한민국의 학사 가수가 사회를 이렇게 비판한다고. 이렇게 못 산다고. 거꾸로 하면 또 그렇게도 들리죠? 그래 가지고 금지가 됐어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그런데 노래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MC, 가수 출신 1호 MC라는 기록을 또 가지고 계신데요. 지금은 여성 MC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데 이때만 해도 전무했어요?
◇ 김상희 : 거의 아나운서 하시는 분들이 진행을 했어요. 여자 MC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나운서들이 하셨죠. 그런데 엉뚱땡뚱하게 가수가 엠씨 한다고 나오니까 화제가 됐는데 그게 기록에 남았어요.
◆ 김영민 : 그렇군요. 어떠셨어요?
◇ 김상희 : 그런 거 생각하면 무거워서 못 했을 텐데, 하래요. 자신 있다고 하라고. 그래서 괜찮겠냐 했더니 괜찮다고. 그거를 시키는 사람이 저희 남편이었어요. 그때는 남편이 아니고 되게 깐깐한 PD인데 맨날 야단치려고 그러고 그래서 맨날 거의 다투고 맨날. 그런데 어쨌든 방송 나가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방송 나가니까 나가나 보다 했는데 여성 MC로서 아마추어 분들 모셔다가,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셔다 노래 실력이 커지면 입상을 시키고 그분들이 가수의 길을 도와주고 이랬죠. 그런 프로그램이니까 굉장히 획기적이고 좋은데 거기다 여자가 사회를 본다 그랬었어요.
◆ 김영민 : 굉장히 혁신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했었네요.
◇ 김상희 : 그래서 맺어진 인연이에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결혼을 하실 당시에 듣기로는 집안에 반대도 좀 있었다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 김상희 : 조금 있었다고 그러는 거는 그건 말이 안 되고 양가에서 완전히 뒤집어지는데 우리 시집은 뭐라시냐 하면 600년 된 종갓집인데, 종부가 노래를 하는 분이 들어오면 어떻게 집안일을 다 다스리느냐. 안 된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키운 딸인데 종부 자리 들어가서 일하고 그러느냐고. 그래서 하여튼 양가에서 아주 대립을 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이 안 되죠. 결국은 우리 남편이 싸워서 이겼어요. 우리는 맨날 싸움이야. 이래 싸우고 저래 싸우고.
◆ 김영민 : 사랑 이야기까지 잠깐 또 해봤습니다. 라디오 진행도 오래 하셨죠?
◇ 김상희 : 굉장히 오래 했어요.
◆ 김영민 : 사실 선생님 앞에서 제가 이렇게 진행하는 게 좀 부끄러워요.
◇ 김상희 : 안 그래요. 이렇게 앞에 앉아서 얘기를 같이 한다는 게 참 좋은데, 맨날 언제든지 진행할 때 되면 그 사람 보고 얘기를 해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런데 정말로 진행을 하고 나면은 아쉽죠. 아 이거 물어볼걸.
◆ 김영민 : 아 맞아요. 항상 그런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후배 가수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이렇게 또 말씀을 하셔서 너무 저도 인상 깊었거든요. 선배가 후배를 보면서 존경스럽다고 이야기를 하셨으니. 요즘 또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가요계의 대모로서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보세요?
◇ 김상희 : 저도 세계로 제일 먼저 떠난 가수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일본에 가서는 LP가 3장. sp라고 조그만 거, 그게 3장. 그리고 CF도 하고 또 공연도 많이 했어요. 근데 그때는 제가 거기 가서 한국말 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일본말 하면 또 야단맞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영어로 했어요. 외국 공연을 그래서 시작을 하게 돼서 많이 공연을 하고 그랬던 생각이 납니다.
◆ 김영민 : 선생님이 그렇게 처음에 아무도 걷지 않은 눈 덮인 벌판을 누군가가 먼저 이렇게 걸어가면 그 뒤를 누군가 걸어가듯이 선생님께서 해외 진출도 하시고.
◇ 김상희 : 겁이 없어서 그래요. 뭘 모르니까. 한 번도 겁을 낸 적이 없으니까 그냥 가는 건데 가보면 처음 갔다는 소리도 하고 또 잘 갔다고 그러기도 하고 하니까 참 좋았죠.
◆ 김영민 : 맞습니다. 지금도 정말 활발히 활동을 하고 계시고 여전히 노래하고 계신데 선생님 정말 거의 인생의 대부분을 노래하셨잖아요. 선생님께 노래는 어떤 의미예요?
◇ 김상희 : 저하고 똑같아요. 저는 그냥 서면은 어쨌든 노래를 꼭 하니까 제가 노래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슬플 때 즐거운 노래하려고 그러면 좀 괴롭기도 하지만 그때는 가수니까, 이러면서 마음을 다잡고 즐겁게 노래하고 그러죠.
◆ 김영민 : 그렇군요. 긴 세월 동안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내 오셨는데 김상희라는 이름으로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가 있으세요?
◇ 김상희 : 김상희의 가치...
◆ 김영민 : 가장 어려운 질문일 수 있겠네요.
◇ 김상희 : 무슨 상을 탔다든지 이런 거는 별로 그렇게 저한테는 그게 아니고 저하고 우리 집 식구들하고 앉아서 얘기할 때 그때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잖아요. 엄마고 또 밖에 나가서도 친구고. 친구들끼리 만나서도 친구고. 하지만 어디서든지 우리 친구들하고 우르르 갔을 때 모르시는 분들이 오셔가지고 혹시 아니시냐고 그러면서 메모지는 예쁜 건 아닐지라도 어디서 이렇게 오려 오셔서 사인 하나 해주세요 이러면 그때는 아 내가 참 가수를 잘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때는 신문지 이렇게 오려서 그렇게도 주셔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기분 나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저를 생각해 주시니까 좋다 그래가지고 거기다 사인합니다.
◆ 김영민 : 팬들의 사랑을 느낄 때만큼은 정말 가수하길 잘했다 이 생각이 강하게 들 것 같아요. 만약에 가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요?
◇ 김상희 : 저 법관 했으면 참 답답했을 것 같아요. 조정위원이라고 있어요. 거기 오신 분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줄 수 있고 이렇게 화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법원으로 가기 전에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데 그거를 한 번 한 적이 있었어요. 나는 어쨌든 간에 누가 보면 한쪽은 좀 기울어지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가서 좋게 해주려고 웬만하시면 이런 식으로 하는데 그분들은 어떤 때는 말을 안 듣고 자기는 끝까지 하겠다고. 그럼 끝까지 하시면 손해 나실 텐데요 그러면 괜찮대. 저는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다가 끝나서 잘 안 되잖아 그럼 그때 울어. 울고 와서 그때 말씀 들을걸 그러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죠. 내 딴에는 열심 나게 연구를 해 가지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래서 이거는 내가 가슴 아파가면서까지 할 일이 못 되는구나 해서 조정위원을 그만뒀어요.
◆ 김영민 : 그렇군요. 청취자 여러분께 가을을 맞아서 드리고 싶은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 김상희 : 오랜 시간 동안 같이 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 여러분들한테는 제가 할 수 있는 동안은 가수 김상희로서 코스모스 노래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김영민 : 오늘 말씀 너무 고맙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여학사 가수 1호 그리고 여성 MC 1호이기도 한 김상희 씨와 함께 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함께 나눠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 김상희 : 오늘 김영민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 김영민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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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영민 아나운서
■ 대담 : 가수 김상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김영민 아나운서 (이하 김영민) : 매년 가을이면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코모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잘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렸던 가을의 대표곡인데요. 오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에서는 노래의 주인공, 가을의 목소리 가수 김상희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상희 : 아유, 안녕하세요.
◆ 김영민 : 반갑습니다.
◇ 김상희 : 나이가 그렇게 저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그 노래 끝까지 아셔요?
◆ 김영민 : 들어봤어요. 그리고 제가 선생님 오시니까 선생님 곡들 다시 한 번 쭉 들어봤는데 생각보다 저한테 익숙한 곡들이 많더라고요. 반가운 마음도 들었고, ‘아 이게 선생님 곡이었구나’ 이런 곡도 굉장히 많았어요. YTN 라디오에서는 처음 뵌 것 같은데 처음 방문하신 거죠? 저희 청취자분들께 자기소개를 한번 부탁드릴게요.
◇ 김상희 : 맨 처음에 레디오 출연할 때는 정말 조그마한 방에서 마이크도 이런 마이크가 아니에요. 조그마한 마이크 그거 놓고, 얘기할 때도 거의 창문을 통해서 눈으로 손으로 이렇게 얘기하면서 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시설도 다르고 이렇게 넓은 방에서 우리 둘이 한다는 것이 어쩐지 너무 호화스럽다.
◆ 김영민 : 아, 정말요?
◇ 김상희 :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옛날 생각 많이 합니다.
◆ 김영민 : 그러시군요. 청취자 분들께서 정말 반갑게 느끼실 것 같아요.
◇ 김상희 : 저도 정말 반가워요.
◆ 김영민 :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요새 라디오를 통해서 한참 많이 흘러나오는 노래이긴 한데요. 굉장히 오래전 노래이기도 하잖아요. 언제 발표를 하셨어요?
◇ 김상희 : 햇수 대라고 하면 제 나이 물어보는 거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제 나이가 얼마인지 잘 모르는데 굉장히 오래 전에, 거의 한 70년대 초반에 나왔던 노래인가? 이런 생각인데 그것도 정확하지 않아요.
◆ 김영민 : 사실은 이 노래가 6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노래입니다. 저는 사실 선생님 나이는 몰라요. 수십 년 동안 이 노래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사랑받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김상희 : 그 당시만 해도 울고 웃는 노래가 참 많고 그랬는데 이렇게 자연을 내 곁에 가까이 두고 흥얼흥얼하면서 하는 노래, 이런 노래로서는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고요. 그때만 해도 코스모스가 그렇게 유행하지는 않았었어요. 길가에 가다 보면 키가 아주 큰 그리고 굉장히 갸냘픈 그런 꽃들이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한들한들 하는 모습만 봤었지 그것이 그렇게 가슴속에 박혀 오는 줄은 몰랐는데 그 노래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코스모스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가을의 대표 꽃이 코스모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코스모스가 이렇게 사랑받게 된 데에는 선생님의 곡이 또 한몫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곡을 처음 받으셨을 때가 기억이 나세요?
◇ 김상희 : 김강섭 선생님하고 하준희 선생님께서 작사하셨는데. 이 곡을 받자마자 작곡가가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그렇게 얘기 안 하고 멜로디만 했어요. 즐겁게 하늘하늘 하면서 이 노래를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여러분들이 들으시는 것처럼 한들한들 이렇게 노래를 하는데 나중에 작사가한테 그 가사가 나온 연유를 듣고는 조금 기분이 달라졌어요. 아주 친한 분의 장례식에 갔다가 와서, 그러니까 무덤까지 갔다 오시는 길에 버스 안에서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걸 보고 연상이 돼서 그 노래를 작사했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전혀 제 노래하고 분위기가 달라서. 그래서 작사가한테 물어봤어요. “선생님 좀 어둡게 할까요?” 그랬더니 아니요. 이거는 김상희 씨 거니까 김상희 씨의 마음을 또 멋을 내서 맛을 내서 그렇게 해달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직도 한들한들 이렇게 합니다.
◆ 김영민 : 김강섭 선생님께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하셨다고요?
◇ 김상희 : 그 선생님 계시면 주눅 들어요.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음악적인 면에서 가수가 노래를 박자대로 안 한다든지 너무 당겼다가 앞으로 당겼다. 예를 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작곡을 해서 부르면 엄청나게 화를 내세요. 그게 많은 가수들한테 얘기하는데, 그게 사실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인데 듣는 그때는 굉장히 서운하고 서럽고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다들 그때 그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 김영민 : 그렇군요. 혹시 예전 일이지만 무대 하실 때나 아니면 녹음하실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거 혹시 있으세요?
◇ 김상희 : 맨 처음에 레코딩을 하러 갔을 때가 대머리 총각인데 이상해요. 가니까 이렇게 굉장히 큰 넓은 데 사람들이 악단이 다 앉아 있어요. 저 위에는 유리창 너머로 어떤 분이 앉아 계시고. 저는 그분이 누군지도 몰라요. 처음이니까. 그분이 엔지니어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최성락 선생님이시고요. 그런데 벽이 이런 벽이 아니에요. 담요 같은 게 걸려 있고. 그래서 선생님 이거 왜 이래요? 그랬더니 방음 장치, 그래요. 그런데 녹음을 그때 못 해요. 밖에서 혹시나 자동차가 지나가다가 클랙션 소리가 나온다든가 하면은 잡음이 들어가니까 12시 넘어서 조용할 때 밤에 그때 녹음을 해요. 그런데 누가 조금이라도 삐끄덕 한다든지 음이 하나 틀린다든지 이러면 다시 해야 돼요. 그러니까 가수로서는 얼마나 주눅이 들어요.
◆ 김영민 :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이런 녹음 장비나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다 보니까.
◇ 김상희 : 그래도 그때로서는 그것이 최고의 기술이고 최고의 즐거움이었는데 거기에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가 녹음을 한 그 노래가 대머리 총각이에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그 명곡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저희 방송에서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가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 노래 처음 부르셨을 때 20대셨고, 지금은 제가 연세는 모르지만
◇ 김상희 : 계산해야 돼요. 손가락 꼽아야 돼요.
◆ 김영민 :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어느 나이대에 노래를 부르느냐에 따라 감정도 달라지고 노래를 느끼는 바도 달라지고 그러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 김상희 : 제 목소리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맨 처음하고 지금하고 노래하는 기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어디든지 가면 같은 기분으로 노래를 하고 또 호응을 같이 해 주세요. 늘 어디서나. 그래서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노래를 할 때만큼은 옛날로 돌아가서 그 기분으로 노래합니다.
◆ 김영민 : 그러면 이 노래 부르실 때마다 수십 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드시겠네요.
◇ 김상희 : 그러니까 맨날 젊어지는 것 같아요.
◆ 김영민 : 동안의 비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알기로는 KBS 1기 전속 가수셨죠. 그렇게 가수 생활을 그렇게 시작을 하셨고 올해로 벌써 데뷔 65년 차가 되셨습니다.
◇ 김상희 : 벌써 그렇게 됐대요?
◆ 김영민 : 네, 벌써 그렇게 됐대요. 그 당시에 굉장히 유니크하다고 할까요? 특별하셨을 것 같아요. 고려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여성 학사 가수 1호’ 이런 타이틀을 얻게 되셨는데 어떻게 하다가 처음에 노래를 하게 되셨을까요?
◇ 김상희 : 우연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이 운명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학교 때는 제가 합창단 지휘를 하고 음악은 항시 접했지만 제가 가수가 된다든지 가수 이름을 하나도 몰랐어요. 집에서도 그렇고. 그런데 합창단을 모집한다고 그러는데 KBS에서 저희 친구들의 아르바이트, 학비를 버는 방법은 그때는 가정교사였어요. 그걸로 좀 보탬이 되고 학비도 보태고 이랬는데 절 더러 너는 그러면 합창단을 하라고. 시험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전속 가수 팀 하나는 합창단 팀. 그래서 써가지고 제 친구가 갖다 넣었어요. 그리고 시험을 보러 갔는데 그때 가는데 옷도 없어 가지고 교복 바지 입고 우리 엄마 반 코트 입고 덜레덜레 가서 합창단 팀에 가서 저 시험 보러 왔는데요 그랬더니 이름을 보시더니 학생 여기 없어요 그래요. 아닌데요, 넣었는데요. 아닌데 저 옆방에 가보세요. 그래 옆방에 갔더니 옆방에 있어요.
◆ 김영민 : 그게 바로 전속 가수 시험이었어요?
◇ 김상희 : 전속가수. 들어오라고 그러는데 뭘 알아야지 들어가죠. 들어갔는데 심사위원들이 쭉 앉아 계시는데 저는 아무도 몰라요. 그분들은 초짜 학생 같은 사람이 들어오니까 눈이 둥그래지더니 노래 한번 해보시죠 그래요. 어떤 노래 할까요 했더니 가요 하셔야죠 그래서 저 가요 모르는데요 그랬더니 심사위원들이 다들 머리를 싸매시더니 그럼 여길 왜 오셨습니까? 그래서 합창단 시험 보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잘못 넣어가지고 이리 왔다가 근데 거기 중간에 앉아 계신 선생님이 이렇게 들어보시더니 학생 아는 노래 있어요? 그러더니 이렇게 고개를 갸웃 하시더니 혹시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 아세요? 그래서 몰라요. 그랬더니 고개를 푹 수그리셔요. 그분이 손석우 선생님이세요.
◆ 김영민 : 아 그렇군요.
◇ 김상희 : 그 유명한 노래를 모른다니까 이거는 가수가 아니잖아. 그래서 죄송합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선생님이 그러면 아는 노래가 뭐예요? 그분이 김강섭 씨예요. 그런데 모르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외국 곡 한 서너 곡 알고 학교에서 봤던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을 압니다 그랬더니 그럼 그거 한번 해보세요. 반주도 없어요. 악보도 없어요. 그래서 거기서 코메 프리마라는 외국 곡을 했어요. 근데 선생님들이 이상해 다 고개 갸웃거리더니 서로 얼굴들을 마주 보고 눈을 마주 보고.
◆ 김영민 :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 김상희 : 또 다른 나라 없어요? 그래서 잘 모르니까 가도 돼요? 그랬더니 한 곡만 더 하래요. 그래서 영작문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노래를 했더니, 됐대요. 가라고 그래요. 나중에 발표가 났는데, 됐어요. 당선이. 그것도 1등이래요. 그래서 전속 가수 첫 걸음을 시작했죠.
◆ 김영민 : 그러셨군요. 정말 유명한 배우들 보면 다 친구 오디션 따라 갔다가 됐다 이런 이야기 정말 많이 들었는데.
◇ 김상희 : 그렇게 해서 가수가 됐는데, 그때는 월급을 줬는데 우리 학생들은 정말 그때 호사스러운 간식이 뭐냐 하면 빵이에요.
◆ 김영민 : 그때는 그랬군요.
◇ 김상희 : 학생들이 기다려, 월급날.
◆ 김영민 : 아 정말요? 친구들이?
◇ 김상희 : 네. 방송국 앞에서 기다렸다가 우르르 빵집에 가서 빵하고 우유를 산같이 쌓아놓고 다 먹어. 그게 한 달에 한 번씩 했던 추억입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근데 방송국 전속 가수라는 게 지금은 없잖아요. 그게 어떤 역할을 했어요?
◇ 김상희 : 그때는 가요보다는 예를 들어서 합창으로 새마을 운동 노래를 합창으로 보여주는 그렇게 해서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건전가요 그런 것을 다 합창으로 하고. 어떤 때는 학교 가느라고 빠질 수도 있고 이러면 방송국에서 편의를 많이 봐줬어요.
◆ 김영민 : 그랬군요. 일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 김상희 : 학교에서는 저 가수인 줄 모르니까 점수로 다 매기는 거잖아요. 그때는 고대가 a반, b반 이렇게 나눠 있는데 a반인데, a반 시험을 보면 붙여요. 방을. 대학에서 방 붙이는 데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창피하니까 열심히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항시 그 방에 붙어야 되니까 애쓰던 그 흔적이 있어요.
◆ 김영민 :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물론 굉장히 보람됐지만 근데 또 듣기로는 그때 또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을 하셨다고요?
◇ 김상희 :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는 저 가수인 줄 모르니까. 우리 아버님은 제가 가수라고 그러면 뭐 난리 나실 판이에요. 워낙에는 고대도 못 가게 하신 분인데. 여자 대학 가라고.
◆ 김영민 : 아 정말요?
◇ 김상희 : 그래서 학비를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주셨어요. 그래서 고대를 갔는데 제가 가수가 된다고 그러면 안 되는 까닭이 저희 아버님이 극장을 세개 가지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 뒷면을 많이 아시니까 내 딸 절대 안 된다고. 가수하면 쫓겨난다고 그래서 야단 맞고는 굴뚝 밑에서 앉아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 김영민 : 어쩌다 들키셨어요?
◇ 김상희 : 어떤 아버님 친구분이 아버님하고 같이 저녁이면 이렇게 술 한잔들 하시잖아요. 하시는데 당신 딸 같은 사람이 노래를 한다고 그러니까 딱 일어나시더니 오늘 술값은 자네들이 내게, 나는 다시는 자네들하고 밥 술 안 먹겠다고 우리 딸은 가수가 아니라고 그러고 나오셨어요. 그 얘기 듣고는 날 절더러 가수냐고 그래서 아니요. 거짓말을 했더니 너 가수 하면 아버지하고 인연을 끊자고. 학비도 안 내준다고. 그리고 집에서 나가라고 최 씨 성을 쓰지 말라고. 그래서 예, 대답은 잘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그때는 길거리에 전파사가 있었어요. 그래서 스피커를 밖에다 내다 놔. 근데 이렇게 지나가는데 내가 생각해도 많이 듣던 사람 목소리야. 그게 전데, 그게 대머리 총각이 막 나오는 거라.
◆ 김영민 : 그렇군요.
◇ 김상희 : 그래가지고는 탄로가 나죠.
◆ 김영민 : 그러셨군요. 예전의 기억까지 한번 끄집어내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YTN 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오늘은 가을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노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에 가수 김상희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이 노래로 얘기의 문을 텄으니 이 노래를 안 들어볼 수가 없겠죠.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저희 함께 청해 듣겠습니다. 근데 그 시절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다 이런 이야기도 있거든요. 정말 많은 곡들이 나왔고 사랑받은 가수들도 있었는데, 쏟아지는 가요들 속에서 선생님의 곡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어떤 특별한 장점이나 특징이 있었을까요?
◇ 김상희 : 서민가수 같아요. 서민들이 즐거울 때는 즐거운 노래가 나오고 서민들이 우울하고 그럴 때는 거기에 맞는 노래가 나오고. 근데 그게 다 작곡가들이 만들어 주시는 거니까. 그래서 그분들의 마음하고 같이 움직였던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에요.
◆ 김영민 : 그렇군요.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곡을 발표하셨기 때문에 또 사랑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사랑받은 곡도 굉장히 많지만 방송 금지곡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 김상희 : 그 당시에 살기 좀 힘들었을 때 있었어요. 그래서 청년들 주머니에 돈 없었어요. 옷도 없었어요. 그래서 단벌신사, 구두도 하나. 영화 구경 가고 싶은데 구경 갈 돈이 없으니까 극장만 구경하고 나와요. 겉모습만 보고. 이런 식으로 그거를 풍자한 게 단벌신사. 근데 저는 그 노래가 무지 좋아서 막 같이 합창을 하는데 갑자기 금지가 됐어요.
◆ 김영민 : 왜요?
◇ 김상희 : 저쪽에서 이북에서 대한민국의 학사 가수가 사회를 이렇게 비판한다고. 이렇게 못 산다고. 거꾸로 하면 또 그렇게도 들리죠? 그래 가지고 금지가 됐어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그런데 노래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MC, 가수 출신 1호 MC라는 기록을 또 가지고 계신데요. 지금은 여성 MC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데 이때만 해도 전무했어요?
◇ 김상희 : 거의 아나운서 하시는 분들이 진행을 했어요. 여자 MC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나운서들이 하셨죠. 그런데 엉뚱땡뚱하게 가수가 엠씨 한다고 나오니까 화제가 됐는데 그게 기록에 남았어요.
◆ 김영민 : 그렇군요. 어떠셨어요?
◇ 김상희 : 그런 거 생각하면 무거워서 못 했을 텐데, 하래요. 자신 있다고 하라고. 그래서 괜찮겠냐 했더니 괜찮다고. 그거를 시키는 사람이 저희 남편이었어요. 그때는 남편이 아니고 되게 깐깐한 PD인데 맨날 야단치려고 그러고 그래서 맨날 거의 다투고 맨날. 그런데 어쨌든 방송 나가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방송 나가니까 나가나 보다 했는데 여성 MC로서 아마추어 분들 모셔다가,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셔다 노래 실력이 커지면 입상을 시키고 그분들이 가수의 길을 도와주고 이랬죠. 그런 프로그램이니까 굉장히 획기적이고 좋은데 거기다 여자가 사회를 본다 그랬었어요.
◆ 김영민 : 굉장히 혁신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했었네요.
◇ 김상희 : 그래서 맺어진 인연이에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결혼을 하실 당시에 듣기로는 집안에 반대도 좀 있었다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요.
◇ 김상희 : 조금 있었다고 그러는 거는 그건 말이 안 되고 양가에서 완전히 뒤집어지는데 우리 시집은 뭐라시냐 하면 600년 된 종갓집인데, 종부가 노래를 하는 분이 들어오면 어떻게 집안일을 다 다스리느냐. 안 된다. 우리 집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키운 딸인데 종부 자리 들어가서 일하고 그러느냐고. 그래서 하여튼 양가에서 아주 대립을 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이 안 되죠. 결국은 우리 남편이 싸워서 이겼어요. 우리는 맨날 싸움이야. 이래 싸우고 저래 싸우고.
◆ 김영민 : 사랑 이야기까지 잠깐 또 해봤습니다. 라디오 진행도 오래 하셨죠?
◇ 김상희 : 굉장히 오래 했어요.
◆ 김영민 : 사실 선생님 앞에서 제가 이렇게 진행하는 게 좀 부끄러워요.
◇ 김상희 : 안 그래요. 이렇게 앞에 앉아서 얘기를 같이 한다는 게 참 좋은데, 맨날 언제든지 진행할 때 되면 그 사람 보고 얘기를 해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런데 정말로 진행을 하고 나면은 아쉽죠. 아 이거 물어볼걸.
◆ 김영민 : 아 맞아요. 항상 그런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후배 가수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이렇게 또 말씀을 하셔서 너무 저도 인상 깊었거든요. 선배가 후배를 보면서 존경스럽다고 이야기를 하셨으니. 요즘 또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가요계의 대모로서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보세요?
◇ 김상희 : 저도 세계로 제일 먼저 떠난 가수 중에 하나예요. 그래서 일본에 가서는 LP가 3장. sp라고 조그만 거, 그게 3장. 그리고 CF도 하고 또 공연도 많이 했어요. 근데 그때는 제가 거기 가서 한국말 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일본말 하면 또 야단맞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영어로 했어요. 외국 공연을 그래서 시작을 하게 돼서 많이 공연을 하고 그랬던 생각이 납니다.
◆ 김영민 : 선생님이 그렇게 처음에 아무도 걷지 않은 눈 덮인 벌판을 누군가가 먼저 이렇게 걸어가면 그 뒤를 누군가 걸어가듯이 선생님께서 해외 진출도 하시고.
◇ 김상희 : 겁이 없어서 그래요. 뭘 모르니까. 한 번도 겁을 낸 적이 없으니까 그냥 가는 건데 가보면 처음 갔다는 소리도 하고 또 잘 갔다고 그러기도 하고 하니까 참 좋았죠.
◆ 김영민 : 맞습니다. 지금도 정말 활발히 활동을 하고 계시고 여전히 노래하고 계신데 선생님 정말 거의 인생의 대부분을 노래하셨잖아요. 선생님께 노래는 어떤 의미예요?
◇ 김상희 : 저하고 똑같아요. 저는 그냥 서면은 어쨌든 노래를 꼭 하니까 제가 노래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슬플 때 즐거운 노래하려고 그러면 좀 괴롭기도 하지만 그때는 가수니까, 이러면서 마음을 다잡고 즐겁게 노래하고 그러죠.
◆ 김영민 : 그렇군요. 긴 세월 동안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내 오셨는데 김상희라는 이름으로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가 있으세요?
◇ 김상희 : 김상희의 가치...
◆ 김영민 : 가장 어려운 질문일 수 있겠네요.
◇ 김상희 : 무슨 상을 탔다든지 이런 거는 별로 그렇게 저한테는 그게 아니고 저하고 우리 집 식구들하고 앉아서 얘기할 때 그때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잖아요. 엄마고 또 밖에 나가서도 친구고. 친구들끼리 만나서도 친구고. 하지만 어디서든지 우리 친구들하고 우르르 갔을 때 모르시는 분들이 오셔가지고 혹시 아니시냐고 그러면서 메모지는 예쁜 건 아닐지라도 어디서 이렇게 오려 오셔서 사인 하나 해주세요 이러면 그때는 아 내가 참 가수를 잘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떤 때는 신문지 이렇게 오려서 그렇게도 주셔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기분 나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저를 생각해 주시니까 좋다 그래가지고 거기다 사인합니다.
◆ 김영민 : 팬들의 사랑을 느낄 때만큼은 정말 가수하길 잘했다 이 생각이 강하게 들 것 같아요. 만약에 가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요?
◇ 김상희 : 저 법관 했으면 참 답답했을 것 같아요. 조정위원이라고 있어요. 거기 오신 분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줄 수 있고 이렇게 화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법원으로 가기 전에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데 그거를 한 번 한 적이 있었어요. 나는 어쨌든 간에 누가 보면 한쪽은 좀 기울어지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가서 좋게 해주려고 웬만하시면 이런 식으로 하는데 그분들은 어떤 때는 말을 안 듣고 자기는 끝까지 하겠다고. 그럼 끝까지 하시면 손해 나실 텐데요 그러면 괜찮대. 저는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다가 끝나서 잘 안 되잖아 그럼 그때 울어. 울고 와서 그때 말씀 들을걸 그러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죠. 내 딴에는 열심 나게 연구를 해 가지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래서 이거는 내가 가슴 아파가면서까지 할 일이 못 되는구나 해서 조정위원을 그만뒀어요.
◆ 김영민 : 그렇군요. 청취자 여러분께 가을을 맞아서 드리고 싶은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 김상희 : 오랜 시간 동안 같이 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 여러분들한테는 제가 할 수 있는 동안은 가수 김상희로서 코스모스 노래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김영민 : 오늘 말씀 너무 고맙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여학사 가수 1호 그리고 여성 MC 1호이기도 한 김상희 씨와 함께 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함께 나눠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 김상희 : 오늘 김영민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 김영민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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