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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5년 9월 14일 (일요일)
■ 진행 : 김영민 아나운서
■ 대담 : 비보이 곰(B-boy GOM) 김완혁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김영민 아나운서 (이하 김영민) : 매일같이 춤을 추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비보이 배틀은 남과 경쟁해야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자기 몸과 싸워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말하는데요. 그 말이 나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국내 최초 한 발로 춤추는 비보이, 비보이 곰 김완혁 씨와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비보이 곰 김완혁 (이하 김완혁) : 예, 안녕하세요.
◆ 김영민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까요?
◇ 김완혁 : 이미 너무 멋지게 소개를 해 주셔서요. 저는 조금 내려놓고, 열심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비보이 그리고 특이하게 생긴 비보이 김완혁입니다. 반갑습니다.
◆ 김영민 : 네,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은 괜찮으셨나요?
◇ 김완혁 : 가까운 데 살고 있습니다.
◆ 김영민 : 다행입니다. 제가 처음에 ‘비보이 곰’이라고 김완혁 씨를 소개했거든요. 이게 활동명이신 거죠?
◇ 김완혁 : 요즘에 힙합하는 사람들 보면 다 이름 안 쓰고 별명 많이 쓰죠? 저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비보이 형들이랑 이름을 지어봤는데, 동아리에서 저는 형들이 곰 같다고 하기도 했고 그때 곰플레이어 이런 것들이 있었어서요.
◆ 김영민 : 아 그렇군요. 보통 래퍼 분들도 그렇고 댄서 분들도 그렇고 닉네임으로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사실 닉네임 없이 아나운서 김영민 이렇게 본명을 쓰거든요.
◇ 김완혁 : 당연한 거 아닐까요?
◆ 김영민 : 저도 뭔가 활동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하나 지어주시겠어요?
◇ 김완혁 : ‘프린세스’로 하시죠?
◆ 김영민 : 너무 영혼 없이 말하시는 거 아닌가요?
◇ 김완혁 : 엘사 이런 식으로, 죄송합니다.
◆ 김영민 : 고맙습니다. 제가 또 나중에 활동명을 쓰는 날이 생긴다면 꼭 사용하겠습니다. 일단 비보이 곰 님을 모셨습니다. 비보이라고 하면 사실 저희가 다 어떤 건지 알긴 알잖아요. 이 뜻이 결국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 혹은 남자를 뜻하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브레이크 댄스라 함이 어떤 건지 청취자 분들께 소개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김완혁 : 제가 알기로는 역사가 여러 가지 말들이 있어서 브레이크, 브레이크 타임이죠. 무도회장에서 연주와 연주 사이 브레이크 타임에 사람들이 나와서 짧고 강력하게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춤을 추던 시간, 그것을 브레이크 댄스라고 부른 것 같고요. 또 비보이, 여자는 비걸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 김영민 : 브레이크 댄스의 어원이 그런 데서 왔다는 건 또 처음 알게 됐네요.
◇ 김완혁 : 지금은 또 이렇게 진화해서 요즘 트렌드는 ‘브레이킹’이라고 부릅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그럼 어디 가서 브레이킹 댄스라고 말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브레이킹?
◇ 김완혁 : 네, 맞습니다. 비보이도 비보잉이라고도 많이 표현하시는데 제가 영어가 잘 안 되지만 비보잉을 한다, 브레이킹을 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자 우리 비보이 곰 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완혁님은 춤과의 인연이 언제부터 시작되셨어요?
◇ 김완혁 : 완전 초기로 올라가 보자면 초등학교 한 5학년 때 입니다.
◆ 김영민 : 꽤 일찍부터 춤과의 인연이 시작되셨네요.
◇ 김완혁 : 그것보다 더 어렸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동네 축제에서 청소년 댄스 대회 이런 거를 했었어요. 우연히 그걸 봤는데 막 어떤 사람이 머리로 돌고 어떤 사람은 물구나무 서서 뛰어나오고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그때 접해봤기 때문에 제가 중학교 3학년부터 춤을 시작했는데요. 제가 그거를 할 수 있을까는 생각을 못 해봤지만 그 기억이 아마 발단이 돼서 친구들이랑 같이 이 춤을 하게 된 게 가장 초기에 접한 네 사연입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그러면 그 이후로도 쭉, 성인이 되어서까지 전문 댄서로 계속 춤을 추셨던 건가요? 아니면 중간에는 잠시 사회생활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하셨던 건가요?
◇ 김완혁 : 고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를 갈 때까지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강원도 사람인데, 열심히 해서 나도 TV나 영상에 나오는 비보이처럼 저런 활동을 해보고 싶다. 서울에 가고 싶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대학교를 가게 됐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대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등록금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 김영민 : 그렇죠.
◇ 김완혁 : 춤은 2순위가 됐습니다. 그래서 접은 거죠. 사실은 꿈은 접혀 있었죠. 그런 후에 저한테 큰 사연인 24살에 이렇게 사고를 겪게 됐고요.
◆ 김영민 : 그때가 24살이셨군요.
◇ 김완혁 : 네, 2013년도 스물넷이었습니다. 다치고 나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다시 춤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15년 동안 활동을 외발비보이로서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 김영민 : 다리를 잃는 사고를 겪으셨던 거죠?
◇ 김완혁 : 그렇습니다. 큰 사고였죠. 이 정도로 다치려면 굉장히 컸을 거예요. 그렇게 다리 하나를 잃게 됐는데요. 이 얘기는 제가 너무 많이 해봐서 이 뒤에 꼭 붙는 말이 있습니다. 근데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보시듯이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분위기를 바꿉니다.
◆ 김영민 : 사실 그때 24살이면 아무리 성인이지만 어렸을 때잖아요. 그걸 겪어내는 게 힘드시기도 했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 김완혁 : 저는 그때가 제3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닌가 해요. 24살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을지 모르겠지만 보편적으로는 그때 굉장히 자신감이 차오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남자였고요.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을 때인데요. 그때 경솔하게 행동했다가 이런 사고를 겪게 됐습니다. 이렇게 크게 내 몸이 바뀌게 되었는데도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근데 퇴원하고 일상생활에 부딪히게 되다 보니까 ‘아 정말 크게 바뀐 거구나’, ‘나는 평소에 하던 이런 것들을 할 수 없구나’ 또는 ‘하나하나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겠구나’ 더 나아가서는 슬픈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쓸모가 없어졌구나’,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됐구나’
◆ 김영민 : 그런 감정까지.
◇ 김완혁 : 사실 많이 힘들었죠. 제가 씩씩하게 말을 하긴 하지만 누구든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큰 변화를 겪게 되면요.
◆ 김영민 : 근데 그 과정에서 다시 춤으로 돌아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그때 춤을 떠올리게 되셨어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몸이 불편해지면 오히려 춤과 멀어지려고 했을 것 같은데.
◇ 김완혁 : 저의 속성이랑 연결이 되는데요. 제가 춤을 시작한 것과 똑같습니다. 저는 사람들한테 박수를 받고 싶어 하는게 참 큰 것 같아요. 또 내가 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그게 가장 좋은 게 춤이었고요. 무대에 올라가는 거였고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거는 제가 처음에 시작한 거랑 이유가 똑같죠.
◆ 김영민 : 그렇군요. 사실 예전의 내 몸이 아닌 바뀐 몸으로 춤 동작을 새롭게 익혀야 하잖아요. 연습하는 과정은 많은 우여곡절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을까요?
◇ 김완혁 : 해외에는 선례들이 조금 있습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 김완혁 : 그 사람들을 보면서 저도 용기를 얻었고요. 우는 소리를 하자면 참 보고 배울 그런 저의 몸을 가진 사람이 잘 없습니다. 보통 춤을 추는 기본기나 모든 것들은 사지에 맞춰져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만들어 내야 됐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제가 만들어내야 했고 최대한 저의 장점은 살렸죠. 처음에는 예전에 하던 기술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고요. 제가 물구나무 같은 동작을 많이 했기 때문에 팔을 많이 썼습니다. 저한테 맞춰서 할 수 있는 걸 계속 개발을 해야 했었는데 제 입으로 얘기하긴 그렇지만 쉽지 않긴 했습니다.
◆ 김영민 : 그런 얘기하셨잖아요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례가 없었다. 그게 어려운 점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제가 느끼기에는 새로운 동작을 그럼 다시금 개발을 하셨어야 될 텐데 그 과정에서 완혁 씨가 선구자가 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발자국을 찍는 사람.
◇ 김완혁 : 긍정적이십니다.
◆ 김영민 : 그럼 나중에 누군가가 완혁 씨를 보고 희망을 갖고 그 발자국을 따라갈 수도 있으니까 저는 사실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 김완혁 : 자신감 채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민 : 청취자 분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비보이 동작에 여러가지 화려한 동작이 있는 건 아는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잖아요. 거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데 가장 자신 있는 동작과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조금 어렵더라 하는 동작 뭐 이런 거 있을까요?
◇ 김완혁 : 일단은 가장 자신 있는 것은 밸런스입니다.
◆ 김영민 : 그게 뭐예요?
◇ 김완혁 : 중심 잡기. 어떤 어려운 동작으로 버티는 그런 기술을 제가 가장 많이 씁니다. 중심을 잡고 버티는 거죠. 사실 그거는 굉장히 테크닉적인, 보통은 뺑글뺑글 도는 걸 많이 생각하시잖아요. 저는 멈춰 있는 동작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 없는 거는 반대로 뺑글뺑글 도는 겁니다.
◆ 김영민 : 아, 그렇군요.
◇ 김완혁 : 네, 파워무브라고 하는데요. 원심력을 잘 써야 되는데 사실 제가 핑계를 대는 건 싫어하지만 대칭이 아니기 때문에 원심력을 주기가, 다리를 이렇게 슝슝 돌리기가 어렵긴 합니다. 그런 얘기를 해 볼 수 있겠네요.
◆ 김영민 : 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잖아요.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저는 사실 밸런스 서서도 잘 못 잡는데요. 완혁님의 이야기를 한창 들어보고 있었는데요. 출연하신 분의 신청곡 들어보는 ‘나의 인생, 나의 노래’ 코너를 준비하고 있는데 저희 신청곡 하나 듣고 갈게요. 어떤 곡 준비하셨어요?
◇ 김완혁 : 제가 아까 신청곡 생각을 했었는데 얼마 전에 저희 가족의 강아지가 갔습니다. 15살 잘 살다가 조용히 자는 듯이 갔습니다. 이 음악을 제가 이미 많이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즘에 이 음악이 더 잘 들리는 거죠. 왜냐하면 이 음악엔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김나영 님의 봄내음보다 너를’ 여러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 김영민 :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비보이 곰 님 김완혁 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이야기 여러 가지로 해봤는데요. 24살에 불의의 사고로 큰 사고를 당하셨고 그래서 지금은 ‘외발 비보이’라는 타이틀로 춤을 추고 계십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외발 비보이라는 말을 하는 게,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러워요. 이런 타이틀이 혹시 불편하지는 않으실까 이런 생각도 드는데 어떠세요? 스스로 어떻게 규정지어지기를 원하세요?
◇ 김완혁 : 굉장히 핵심입니다. 지금 저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 강사 일도 하고 있는데요. 저도 되게 조심스러워요. 이 얘기를 하는 이런저런 장애에 관한 용어들 이런 거에 접근하기가 어떻게 말을 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는데요. 일단은 저한테 물어봐 주신 외발 비보이, 저는 하나도 상관없습니다. 이게 왜 이렇게 조금씩 불편함이 있는지는 저도 느낌 압니다. 그래서 한 발의 비보이라고도 또 고치시고. 사실 근데 의미가 같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개선되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많이 만나고 소통하고 친해져야 같아요. 어려워하시는 그 부분을, 저는 감사하죠. 그런 걸 또 생각해 주시는 거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영민 : 조금 더 춤과 완혁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게요. 사실 정말 전문 댄서로 춤을 추시다 보면 몸이 많이 축날 것 같은데, 어떠세요?
◇ 김완혁 : 오늘 제가 병원에 갔다 왔네요. 재활치료. 많은 댄서 분들이 가는 곳에 처음 가서 상담을 받고 왔습니다. 내가 나이를 꽤 먹었구나 생각을 하거든요. 36살인데 잘 아픈 데가 잘 안 나아요. 한 번 다쳤던 데가 잘 안 낫고 있는데 어깨가 다쳤어서 그거를 보기 위해서 열심히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 김영민 : 그러시군요. 사실 24시간 동안 춤만 추는 건 아니실 것 같은데, 일상은 어떻게 보내시는지도 궁금해요.
◇ 김완혁 : 생각 못하던 질문인데요. 감사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거 엄청 좋아하고요. 춤추는 사람 보면 다 외향형 인간인 것 같잖아요. 하지만 저는 극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에 혼자서 영상 만드는 것도 요즘엔 좋아하고요. 그리고 나중에 비보이를 혹시나, 이거는 이따가 다시 질문을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비보이를 2순위로 놓게 된다면 저는 약간 조용히 글을 써보고 싶은 그런 사람입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 김완혁 : 그리고 몇 번 경험이 있습니다. 기회가 돼서 책을 이렇게 써본 적도 있고요. 그 행위 자체가 굉장히 힐링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대단한 거 말고요. 평범한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 김영민 : 완혁님의 책을 제가 또 언젠가 보면서 작가로 모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아까 영상 만들기도 좋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찾아봤는데 유튜브 채널 있으시더라고요.
◇ 김완혁 :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제 민낯을 다 올려놨거든요.
◆ 김영민 : 여행 간 것도 올리시고요.
◇ 김완혁 : 이게 뭐냐면 제가 이런 공식적인 일을 할 때는 저의 단면 그리고 저의 꾸며진 면만 사람들이 기억하실 것 같은데, 저는 저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되게 솔직한 그런 채널을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 김영민 : 그 채널 이름을 한번 여기서 말하시면 또 구독자가 늘지 않을까요? 다소나마.
◇ 김완혁 : 감사합니다. 굉장히 이름이 어렵습니다. 곰 일단 아까 얘기드렸고요. ‘감동님’ 여기서 어려운 게, 감독님 같잖아요.
◆ 김영민 : 근데 감동.
◇ 김완혁 : 네, 제가 말장난을 친 겁니다. 감동도 드릴 수 있겠지만 제가 감독하는 영상.
◆ 김영민 : 그렇군요. 곰 감독님이 전하는 감동적인 콘텐츠들 보고 싶으시다면 유튜브 채널에 한번 놀러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이제 장애인의 삶에 대한 얘기도 짧게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제가 처음 뵀을 때 가장 먼저 눈을 보고 인사드리고 그다음에 눈에 띄었던 것이 의족을 착용하고 계셨던 점이었는데요. 이 의족은 착용하고 생활하시기에 불편하진 않으세요?
◇ 김완혁 : 이거를 불편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고 있고요. 가끔씩 삐뚤어질 때는 너무 불편해, 왜 이렇게 무거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저는 아직 젊은 나이가 받쳐주고 있어서 이 다리로, 이 의족으로 잘 다닙니다. 이건 사실 굉장히 개인별로 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 환부, 저의 다친 부분이 만약에 피부가 안 좋다거나 다른 문제가 있다면 또는 원래 있던 건강한 다리인 반대다리에 문제가 있으면 걷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는 굉장히 쾌적한 상태고요. 그렇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저는 지금 굉장히 감사한 상태여야 합니다.
◆ 김영민 : 보통 의족을 착용하신 상태로 춤을 추세요? 아니면 춤을 추실 때는 벗으시나요?
◇ 김완혁 : 저는 빼고 하는 게, 의족을 빼고 움직이는 게 훨씬 편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야 되기 때문에 의족을 끼고도 동작들을 여러 가지 할 수 있습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 김완혁 : 이 의족이 무겁습니다. 한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 책가방 무게 정도 됩니다.
◆ 김영민 : 4, 5kg
◇ 김완혁 : 네, 그 정도 됩니다.
◆ 김영민 : 무겁군요. 근데 사실 춤을 출 때는 뭐 껴도 되고 빼도 되고 하지만 평소에 보행을 할 때는 필수적이잖아요. 듣기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거나 할 때 의족을 착용하시는 것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편견과 불편한 시선을 겪으셔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거든요. 그 이야기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김완혁 : 아 이거는 굉장히 길고 제가 안에 쌓여 있는 게 많은 얘기라 최대한 간단하게 하자면 저는 아마 평생 동안 이 시선을 받을 거예요. 근데 도저히 적응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시선이 항상 다른 사람들이 주는 시선이기 때문에요. 요령을 여러 가지 터득을 하고 있긴 한데요. 뭐 눈을 감고 생각을 한다든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본다던가 이런 여러 방법들을 써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시선들은 적응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 얘기를 해보자면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건 저를 보고 무릎이 시리신지 다리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바로 앞에 앉아 있으니까요. 저를 안 보고도 원래 다리 운동을 하시는 분일 수도 있어요. 물론 지하철에서 다리 운동하는 게 모범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원래 그러실 수도 있고 제가 저의 피해 의식으로 그걸 너무 신경 쓰는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고민들을 대중교통에서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람 심리에 대해 한번 굉장히 궁금하고 그런 것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고 그런 생각도 듭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보고 다리 운동을 할까’, ‘왜 사람들은 이렇게 내 전신을 보지 않고 얼굴만 보고 이렇게 편견을 가질까’ 제가 노약자석에 자주 앉습니다. 얘기드리는 거는 모두 다 노약자석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으면 너무나도 당연히 버릇없는 사람으로 제가 보이죠. 뻔뻔하고 나쁜 사람 그래서 반바지를 이렇게 입고 다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다리를 굳이 보지 않으시기 때문에 오해가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당연히 나쁜 놈일 것이라는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김영민 : 여러 가지 편견과 시선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테니까.
◇ 김완혁 : 저는 당연하다 생각하고요. 기분 나쁘게 해드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 김영민 : 네, 마지막으로 짧게 여쭙겠습니다. 완혁님, 언제까지 춤추실 예정이세요?
◇ 김완혁 : 사실 요 근래에 많은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다치고 나서 슬럼프를 겪었는데 오늘 제가 병원에 갔다가 희망을 얻었습니다.
◆ 김영민 : 너무 좋네요.
◇ 김완혁 : 이 팔 하나로 많은 것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치고 싶지 않아서 긴장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걸 풀어주면 아직 충분히 더 쓸 수 있다고 해 주셨기 때문에 아직 향후 꽤 많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 김영민 : 네, 앞으로 길게 우리 춤추는 완혁님을 볼 수도 있을 거고 유튜버 완혁님, 작가 완혁님으로까지 인사드릴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또 바라보겠습니다. 오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비보이 김완혁 씨와 함께 했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김완혁 : 너무 감사합니다.
◆ 김영민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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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김영민 아나운서 (이하 김영민) : 매일같이 춤을 추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비보이 배틀은 남과 경쟁해야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자기 몸과 싸워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말하는데요. 그 말이 나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국내 최초 한 발로 춤추는 비보이, 비보이 곰 김완혁 씨와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비보이 곰 김완혁 (이하 김완혁) : 예, 안녕하세요.
◆ 김영민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까요?
◇ 김완혁 : 이미 너무 멋지게 소개를 해 주셔서요. 저는 조금 내려놓고, 열심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비보이 그리고 특이하게 생긴 비보이 김완혁입니다. 반갑습니다.
◆ 김영민 : 네,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은 괜찮으셨나요?
◇ 김완혁 : 가까운 데 살고 있습니다.
◆ 김영민 : 다행입니다. 제가 처음에 ‘비보이 곰’이라고 김완혁 씨를 소개했거든요. 이게 활동명이신 거죠?
◇ 김완혁 : 요즘에 힙합하는 사람들 보면 다 이름 안 쓰고 별명 많이 쓰죠? 저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비보이 형들이랑 이름을 지어봤는데, 동아리에서 저는 형들이 곰 같다고 하기도 했고 그때 곰플레이어 이런 것들이 있었어서요.
◆ 김영민 : 아 그렇군요. 보통 래퍼 분들도 그렇고 댄서 분들도 그렇고 닉네임으로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사실 닉네임 없이 아나운서 김영민 이렇게 본명을 쓰거든요.
◇ 김완혁 : 당연한 거 아닐까요?
◆ 김영민 : 저도 뭔가 활동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하나 지어주시겠어요?
◇ 김완혁 : ‘프린세스’로 하시죠?
◆ 김영민 : 너무 영혼 없이 말하시는 거 아닌가요?
◇ 김완혁 : 엘사 이런 식으로, 죄송합니다.
◆ 김영민 : 고맙습니다. 제가 또 나중에 활동명을 쓰는 날이 생긴다면 꼭 사용하겠습니다. 일단 비보이 곰 님을 모셨습니다. 비보이라고 하면 사실 저희가 다 어떤 건지 알긴 알잖아요. 이 뜻이 결국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 혹은 남자를 뜻하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브레이크 댄스라 함이 어떤 건지 청취자 분들께 소개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김완혁 : 제가 알기로는 역사가 여러 가지 말들이 있어서 브레이크, 브레이크 타임이죠. 무도회장에서 연주와 연주 사이 브레이크 타임에 사람들이 나와서 짧고 강력하게 나를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춤을 추던 시간, 그것을 브레이크 댄스라고 부른 것 같고요. 또 비보이, 여자는 비걸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 김영민 : 브레이크 댄스의 어원이 그런 데서 왔다는 건 또 처음 알게 됐네요.
◇ 김완혁 : 지금은 또 이렇게 진화해서 요즘 트렌드는 ‘브레이킹’이라고 부릅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그럼 어디 가서 브레이킹 댄스라고 말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브레이킹?
◇ 김완혁 : 네, 맞습니다. 비보이도 비보잉이라고도 많이 표현하시는데 제가 영어가 잘 안 되지만 비보잉을 한다, 브레이킹을 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자 우리 비보이 곰 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완혁님은 춤과의 인연이 언제부터 시작되셨어요?
◇ 김완혁 : 완전 초기로 올라가 보자면 초등학교 한 5학년 때 입니다.
◆ 김영민 : 꽤 일찍부터 춤과의 인연이 시작되셨네요.
◇ 김완혁 : 그것보다 더 어렸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동네 축제에서 청소년 댄스 대회 이런 거를 했었어요. 우연히 그걸 봤는데 막 어떤 사람이 머리로 돌고 어떤 사람은 물구나무 서서 뛰어나오고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그때 접해봤기 때문에 제가 중학교 3학년부터 춤을 시작했는데요. 제가 그거를 할 수 있을까는 생각을 못 해봤지만 그 기억이 아마 발단이 돼서 친구들이랑 같이 이 춤을 하게 된 게 가장 초기에 접한 네 사연입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그러면 그 이후로도 쭉, 성인이 되어서까지 전문 댄서로 계속 춤을 추셨던 건가요? 아니면 중간에는 잠시 사회생활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하셨던 건가요?
◇ 김완혁 : 고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를 갈 때까지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강원도 사람인데, 열심히 해서 나도 TV나 영상에 나오는 비보이처럼 저런 활동을 해보고 싶다. 서울에 가고 싶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대학교를 가게 됐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대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등록금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 김영민 : 그렇죠.
◇ 김완혁 : 춤은 2순위가 됐습니다. 그래서 접은 거죠. 사실은 꿈은 접혀 있었죠. 그런 후에 저한테 큰 사연인 24살에 이렇게 사고를 겪게 됐고요.
◆ 김영민 : 그때가 24살이셨군요.
◇ 김완혁 : 네, 2013년도 스물넷이었습니다. 다치고 나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다시 춤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15년 동안 활동을 외발비보이로서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 김영민 : 다리를 잃는 사고를 겪으셨던 거죠?
◇ 김완혁 : 그렇습니다. 큰 사고였죠. 이 정도로 다치려면 굉장히 컸을 거예요. 그렇게 다리 하나를 잃게 됐는데요. 이 얘기는 제가 너무 많이 해봐서 이 뒤에 꼭 붙는 말이 있습니다. 근데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보시듯이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분위기를 바꿉니다.
◆ 김영민 : 사실 그때 24살이면 아무리 성인이지만 어렸을 때잖아요. 그걸 겪어내는 게 힘드시기도 했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 김완혁 : 저는 그때가 제3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닌가 해요. 24살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을지 모르겠지만 보편적으로는 그때 굉장히 자신감이 차오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남자였고요.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을 때인데요. 그때 경솔하게 행동했다가 이런 사고를 겪게 됐습니다. 이렇게 크게 내 몸이 바뀌게 되었는데도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근데 퇴원하고 일상생활에 부딪히게 되다 보니까 ‘아 정말 크게 바뀐 거구나’, ‘나는 평소에 하던 이런 것들을 할 수 없구나’ 또는 ‘하나하나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겠구나’ 더 나아가서는 슬픈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쓸모가 없어졌구나’,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됐구나’
◆ 김영민 : 그런 감정까지.
◇ 김완혁 : 사실 많이 힘들었죠. 제가 씩씩하게 말을 하긴 하지만 누구든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큰 변화를 겪게 되면요.
◆ 김영민 : 근데 그 과정에서 다시 춤으로 돌아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그때 춤을 떠올리게 되셨어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몸이 불편해지면 오히려 춤과 멀어지려고 했을 것 같은데.
◇ 김완혁 : 저의 속성이랑 연결이 되는데요. 제가 춤을 시작한 것과 똑같습니다. 저는 사람들한테 박수를 받고 싶어 하는게 참 큰 것 같아요. 또 내가 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그게 가장 좋은 게 춤이었고요. 무대에 올라가는 거였고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거는 제가 처음에 시작한 거랑 이유가 똑같죠.
◆ 김영민 : 그렇군요. 사실 예전의 내 몸이 아닌 바뀐 몸으로 춤 동작을 새롭게 익혀야 하잖아요. 연습하는 과정은 많은 우여곡절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을까요?
◇ 김완혁 : 해외에는 선례들이 조금 있습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 김완혁 : 그 사람들을 보면서 저도 용기를 얻었고요. 우는 소리를 하자면 참 보고 배울 그런 저의 몸을 가진 사람이 잘 없습니다. 보통 춤을 추는 기본기나 모든 것들은 사지에 맞춰져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만들어 내야 됐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제가 만들어내야 했고 최대한 저의 장점은 살렸죠. 처음에는 예전에 하던 기술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고요. 제가 물구나무 같은 동작을 많이 했기 때문에 팔을 많이 썼습니다. 저한테 맞춰서 할 수 있는 걸 계속 개발을 해야 했었는데 제 입으로 얘기하긴 그렇지만 쉽지 않긴 했습니다.
◆ 김영민 : 그런 얘기하셨잖아요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례가 없었다. 그게 어려운 점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제가 느끼기에는 새로운 동작을 그럼 다시금 개발을 하셨어야 될 텐데 그 과정에서 완혁 씨가 선구자가 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발자국을 찍는 사람.
◇ 김완혁 : 긍정적이십니다.
◆ 김영민 : 그럼 나중에 누군가가 완혁 씨를 보고 희망을 갖고 그 발자국을 따라갈 수도 있으니까 저는 사실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 김완혁 : 자신감 채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민 : 청취자 분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비보이 동작에 여러가지 화려한 동작이 있는 건 아는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잖아요. 거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데 가장 자신 있는 동작과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조금 어렵더라 하는 동작 뭐 이런 거 있을까요?
◇ 김완혁 : 일단은 가장 자신 있는 것은 밸런스입니다.
◆ 김영민 : 그게 뭐예요?
◇ 김완혁 : 중심 잡기. 어떤 어려운 동작으로 버티는 그런 기술을 제가 가장 많이 씁니다. 중심을 잡고 버티는 거죠. 사실 그거는 굉장히 테크닉적인, 보통은 뺑글뺑글 도는 걸 많이 생각하시잖아요. 저는 멈춰 있는 동작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 없는 거는 반대로 뺑글뺑글 도는 겁니다.
◆ 김영민 : 아, 그렇군요.
◇ 김완혁 : 네, 파워무브라고 하는데요. 원심력을 잘 써야 되는데 사실 제가 핑계를 대는 건 싫어하지만 대칭이 아니기 때문에 원심력을 주기가, 다리를 이렇게 슝슝 돌리기가 어렵긴 합니다. 그런 얘기를 해 볼 수 있겠네요.
◆ 김영민 : 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잖아요.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저는 사실 밸런스 서서도 잘 못 잡는데요. 완혁님의 이야기를 한창 들어보고 있었는데요. 출연하신 분의 신청곡 들어보는 ‘나의 인생, 나의 노래’ 코너를 준비하고 있는데 저희 신청곡 하나 듣고 갈게요. 어떤 곡 준비하셨어요?
◇ 김완혁 : 제가 아까 신청곡 생각을 했었는데 얼마 전에 저희 가족의 강아지가 갔습니다. 15살 잘 살다가 조용히 자는 듯이 갔습니다. 이 음악을 제가 이미 많이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즘에 이 음악이 더 잘 들리는 거죠. 왜냐하면 이 음악엔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김나영 님의 봄내음보다 너를’ 여러분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 김영민 :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비보이 곰 님 김완혁 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이야기 여러 가지로 해봤는데요. 24살에 불의의 사고로 큰 사고를 당하셨고 그래서 지금은 ‘외발 비보이’라는 타이틀로 춤을 추고 계십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외발 비보이라는 말을 하는 게,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러워요. 이런 타이틀이 혹시 불편하지는 않으실까 이런 생각도 드는데 어떠세요? 스스로 어떻게 규정지어지기를 원하세요?
◇ 김완혁 : 굉장히 핵심입니다. 지금 저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 강사 일도 하고 있는데요. 저도 되게 조심스러워요. 이 얘기를 하는 이런저런 장애에 관한 용어들 이런 거에 접근하기가 어떻게 말을 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는데요. 일단은 저한테 물어봐 주신 외발 비보이, 저는 하나도 상관없습니다. 이게 왜 이렇게 조금씩 불편함이 있는지는 저도 느낌 압니다. 그래서 한 발의 비보이라고도 또 고치시고. 사실 근데 의미가 같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개선되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많이 만나고 소통하고 친해져야 같아요. 어려워하시는 그 부분을, 저는 감사하죠. 그런 걸 또 생각해 주시는 거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영민 : 조금 더 춤과 완혁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게요. 사실 정말 전문 댄서로 춤을 추시다 보면 몸이 많이 축날 것 같은데, 어떠세요?
◇ 김완혁 : 오늘 제가 병원에 갔다 왔네요. 재활치료. 많은 댄서 분들이 가는 곳에 처음 가서 상담을 받고 왔습니다. 내가 나이를 꽤 먹었구나 생각을 하거든요. 36살인데 잘 아픈 데가 잘 안 나아요. 한 번 다쳤던 데가 잘 안 낫고 있는데 어깨가 다쳤어서 그거를 보기 위해서 열심히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 김영민 : 그러시군요. 사실 24시간 동안 춤만 추는 건 아니실 것 같은데, 일상은 어떻게 보내시는지도 궁금해요.
◇ 김완혁 : 생각 못하던 질문인데요. 감사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거 엄청 좋아하고요. 춤추는 사람 보면 다 외향형 인간인 것 같잖아요. 하지만 저는 극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에 혼자서 영상 만드는 것도 요즘엔 좋아하고요. 그리고 나중에 비보이를 혹시나, 이거는 이따가 다시 질문을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비보이를 2순위로 놓게 된다면 저는 약간 조용히 글을 써보고 싶은 그런 사람입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 김완혁 : 그리고 몇 번 경험이 있습니다. 기회가 돼서 책을 이렇게 써본 적도 있고요. 그 행위 자체가 굉장히 힐링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대단한 거 말고요. 평범한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 김영민 : 완혁님의 책을 제가 또 언젠가 보면서 작가로 모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아까 영상 만들기도 좋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찾아봤는데 유튜브 채널 있으시더라고요.
◇ 김완혁 :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제 민낯을 다 올려놨거든요.
◆ 김영민 : 여행 간 것도 올리시고요.
◇ 김완혁 : 이게 뭐냐면 제가 이런 공식적인 일을 할 때는 저의 단면 그리고 저의 꾸며진 면만 사람들이 기억하실 것 같은데, 저는 저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되게 솔직한 그런 채널을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 김영민 : 그 채널 이름을 한번 여기서 말하시면 또 구독자가 늘지 않을까요? 다소나마.
◇ 김완혁 : 감사합니다. 굉장히 이름이 어렵습니다. 곰 일단 아까 얘기드렸고요. ‘감동님’ 여기서 어려운 게, 감독님 같잖아요.
◆ 김영민 : 근데 감동.
◇ 김완혁 : 네, 제가 말장난을 친 겁니다. 감동도 드릴 수 있겠지만 제가 감독하는 영상.
◆ 김영민 : 그렇군요. 곰 감독님이 전하는 감동적인 콘텐츠들 보고 싶으시다면 유튜브 채널에 한번 놀러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이제 장애인의 삶에 대한 얘기도 짧게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제가 처음 뵀을 때 가장 먼저 눈을 보고 인사드리고 그다음에 눈에 띄었던 것이 의족을 착용하고 계셨던 점이었는데요. 이 의족은 착용하고 생활하시기에 불편하진 않으세요?
◇ 김완혁 : 이거를 불편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고 있고요. 가끔씩 삐뚤어질 때는 너무 불편해, 왜 이렇게 무거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저는 아직 젊은 나이가 받쳐주고 있어서 이 다리로, 이 의족으로 잘 다닙니다. 이건 사실 굉장히 개인별로 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 환부, 저의 다친 부분이 만약에 피부가 안 좋다거나 다른 문제가 있다면 또는 원래 있던 건강한 다리인 반대다리에 문제가 있으면 걷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는 굉장히 쾌적한 상태고요. 그렇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저는 지금 굉장히 감사한 상태여야 합니다.
◆ 김영민 : 보통 의족을 착용하신 상태로 춤을 추세요? 아니면 춤을 추실 때는 벗으시나요?
◇ 김완혁 : 저는 빼고 하는 게, 의족을 빼고 움직이는 게 훨씬 편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야 되기 때문에 의족을 끼고도 동작들을 여러 가지 할 수 있습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 김완혁 : 이 의족이 무겁습니다. 한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 책가방 무게 정도 됩니다.
◆ 김영민 : 4, 5kg
◇ 김완혁 : 네, 그 정도 됩니다.
◆ 김영민 : 무겁군요. 근데 사실 춤을 출 때는 뭐 껴도 되고 빼도 되고 하지만 평소에 보행을 할 때는 필수적이잖아요. 듣기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거나 할 때 의족을 착용하시는 것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편견과 불편한 시선을 겪으셔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거든요. 그 이야기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 김완혁 : 아 이거는 굉장히 길고 제가 안에 쌓여 있는 게 많은 얘기라 최대한 간단하게 하자면 저는 아마 평생 동안 이 시선을 받을 거예요. 근데 도저히 적응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시선이 항상 다른 사람들이 주는 시선이기 때문에요. 요령을 여러 가지 터득을 하고 있긴 한데요. 뭐 눈을 감고 생각을 한다든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본다던가 이런 여러 방법들을 써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시선들은 적응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 얘기를 해보자면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건 저를 보고 무릎이 시리신지 다리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바로 앞에 앉아 있으니까요. 저를 안 보고도 원래 다리 운동을 하시는 분일 수도 있어요. 물론 지하철에서 다리 운동하는 게 모범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원래 그러실 수도 있고 제가 저의 피해 의식으로 그걸 너무 신경 쓰는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고민들을 대중교통에서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람 심리에 대해 한번 굉장히 궁금하고 그런 것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고 그런 생각도 듭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보고 다리 운동을 할까’, ‘왜 사람들은 이렇게 내 전신을 보지 않고 얼굴만 보고 이렇게 편견을 가질까’ 제가 노약자석에 자주 앉습니다. 얘기드리는 거는 모두 다 노약자석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으면 너무나도 당연히 버릇없는 사람으로 제가 보이죠. 뻔뻔하고 나쁜 사람 그래서 반바지를 이렇게 입고 다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다리를 굳이 보지 않으시기 때문에 오해가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당연히 나쁜 놈일 것이라는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김영민 : 여러 가지 편견과 시선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테니까.
◇ 김완혁 : 저는 당연하다 생각하고요. 기분 나쁘게 해드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 김영민 : 네, 마지막으로 짧게 여쭙겠습니다. 완혁님, 언제까지 춤추실 예정이세요?
◇ 김완혁 : 사실 요 근래에 많은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다치고 나서 슬럼프를 겪었는데 오늘 제가 병원에 갔다가 희망을 얻었습니다.
◆ 김영민 : 너무 좋네요.
◇ 김완혁 : 이 팔 하나로 많은 것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치고 싶지 않아서 긴장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걸 풀어주면 아직 충분히 더 쓸 수 있다고 해 주셨기 때문에 아직 향후 꽤 많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 김영민 : 네, 앞으로 길게 우리 춤추는 완혁님을 볼 수도 있을 거고 유튜버 완혁님, 작가 완혁님으로까지 인사드릴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또 바라보겠습니다. 오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비보이 김완혁 씨와 함께 했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김완혁 : 너무 감사합니다.
◆ 김영민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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