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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5년 8월 16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신동광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열린라디오 YTN>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최휘 아나운서(이하 최휘): 이번 여름 유난히 덥게 느껴집니다. 이번 주 내린 비로 폭염이 주춤하지만, 여름은 아직 남아있는데요, 오늘 미디어언어 시간에서는 날씨와 관련된 단어들의 어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매일경제에서 어원 칼럼 말록 홈즈 시리즈를 연재 중이신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나오셨습니다.
◇신동광 작가(이하 신동광): 말 속에 답이 있다! 안녕하세요, 말록 홈즈 신동광입니다.
◆최휘: 이번 여름 정말 덥습니다. 서울이 역대 7월 열대야일수 기록을 경신했는데, 어떻게 이겨내고 계십니까?
◇신동광: 네. 얌전히 집안에서 책 읽고 글 쓰며 가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틈틈이 다락방에서 맥주에 새우깡 놓고 소소하게 기우제도 지냅니다.
◆최휘: 기우제라고 하면 보통 신이나 영물들이 떠오르는데요. 대표적인 대상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신동광: 전 세계 역사 속 기우제의 대상은 다양한 전설 속 신령과 신수들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존재로 용(龍)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동양의 용은 물에서 왔습니다. 동아시아의 용들에게 물은 활동 터전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용이 드넓은 바다와 강부터, 호수, 개천, 연못 같은 작은 물까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용의 순우리말은 ‘미르’이고, 미르는 물(水)의 옛말 ‘믈’과도 통합니다. ‘미리내’는 ‘용이 머무는 냇물’입니다.
◆최휘: 기우제는 아니지만 전래동화 토끼와 거북이의 용왕과 만화 드래곤볼 속 신룡이 생각나는데요. 용이 되지 못한 한을 품은 이무기도 떠오릅니다. 이무기는 용과 어떻게 다른가요?
◇신동광: 국어사전에는 ‘용이 되지 못하고 물속에 산다는 전설상의 큰 구렁이’로 나옵니다. 하지만 이무기의 형태소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이름과 낱말에는 대표적 특성을 담겨 있는데, 이무기라는 이름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최휘: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랫동안 듣기만 했지, 뜻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원을 찾으셨나요?
◇신동광: 직접적 문헌적 근거는 없어, 어원탐답게 추리에 들어갔습니다. 이무기를 가리키는 한자어로 ‘이룡(螭龍: 도깨비 이, 용 용)’이 있습니다. ‘도깨비 용’, ‘요괴 용’을 뜻합니다. 못된 이무기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설화들과 맥이 같습니다.
◆최휘: ‘이’자가 ‘요괴’라고 하니까 바로 공감이 되네요. 그러면 ‘무기’의 뜻도 궁금해지는데요.
◇신동광: 막막할 때는 이웃나라나 인접 지역의 말들을 찾아봅니다. 용을 만주어로 ‘무두리’라고 부릅니다. 국어학자 안영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무두리는 용을 가리키는 순우리말 ‘미르’와 뿌리가 같습니다. 그렇다면 물을 가리키는 만주어가 용을 의미할 가능성이 큽니다. 만주어로 물은 ‘무케/무커’입니다. 만화가 이상규 작가의 웹툰 ‘호랑이형님’에 등장하는 귀염둥이 꼬마 호랑이 이름인 ‘무케’와 같습니다. 이렇게, 요괴를 가리키는 ‘이(螭)’와 ‘물’이나 ‘용’을 뜻하는 ‘무케/무커’를 더하면 ‘이무케’가 됩니다. ‘이무케’를 줄이면 ‘이묵’이고, ‘이묵’에 발음하기 편하게 ‘행위자/성질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주는 접미사 ‘-이’를 붙이면, 바로 ‘이묵이/이무기’가 됩니다. 결국 이무기는 ‘사악하거나 요사스러운 용’이란 뜻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입증을 위해서는 명확한 문헌이 필요한데, 그런 고서들이 남아있었다면 제가 이런 번뇌에 빠질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최휘: 문헌 근거가 있었으면 더 이해하기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동광: 그렇지 못하니까 저 같은 어원탐정이 등장한 겁니다. 이렇게 단어나 표현의 비교를 통해 여러 언어 사이의 친족 관계를 증명하고, 공통 조어(祖語: 조상 조, 말 어. ancestral language)의 모습을 추정하며 언어들의 역사적 변화를 알아보는 학문을 ‘비교언어학(comparative linguistics)’이라고 부릅니다. 비교언어학의 기법을 활용하면, 그동안 풀지 못했던 단어들의 어원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최휘: 뜻을 몰랐지만, 언어 비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는 말씀이죠?
◇신동광: 네. 그동안 순우리말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외국어에 뿌리를 둔 말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대장간(대장間)’은 국어사전에 ‘쇠를 달구어 온갖 연장을 만드는 곳’으로 소개됩니다. 핵심은 ‘대장’이란 말의 의미인데, 대장과 대장장이 모두 ‘대장일을 하는 기술직 노동자’로 나옵니다. 무한한 재귀(再歸: 다시 재, 돌아올 귀: recurrence)의 반복입니다.
◆최휘: 대장이란 말이 군대의 장군이나 인체 기관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네요.
◇신동광: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이웃나라 중국어로 대장간을 찾아보니, ‘티에장푸(tiějiàng pù)’가 나옵니다. 한자로는 ‘철장포(鉄匠铺: 쇠 철, 재주 장, 가게 포)’, 쇠를 가지고 재주를 부리는 가게를 뜻합니다. 여기서 철의 중국어 발음이 ‘티에’입니다. 철(鉄)은 일본어에서도 중국어와 비슷하게 ‘테’로 발음이 납니다. 인기 비디오게임 ‘철권(鉄拳)’의 발음도 ‘텍켄(TEKKEN: てっけん)’입니다. 대장간의 ‘대’는 철의 중국발음을 우리말로 옮겼을 뿐입니다.
◆최휘: ‘쇠로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 대장인 거였군요. 이해가 쉽습니다. 다른 분야에도 순우리말로 알고 있는 외국 기반 단어가 있을까요?
◇신동광: 정육점에도 있습니다. 돼지의 머리와 목을 연결하는 부위의 고기인 ‘항정살’은 순우리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자사전에 항정이란 말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한자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추리해 봅니다. 목과 관련 있는 살이라 우선 ‘목 항(项)’자를 찾고 목을 뜻하는 또 다른 한자로 ‘목 경(颈)’자를 찾았습니다.
◆최휘: 항경이 항정으로 변화한 건가요?
◇신동광: 네. ‘항경(项颈)’자를 가지고 구글에서 중국어 백과사전을 검색해 보니, ‘샹징(xiàngjǐng)’이란 말이 뜹니다. 목덜미를 뜻하죠. 항정은 목덜미란 뜻의 ‘항경(项颈)’의 중국어 발음인 ‘샹징’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소리가 변한 말로 보입니다.
◆최휘: 와, 오늘부터 항정살 먹을 때마다, 돼지 목덜미가 떠오르겠네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해 주시겠어요?
◇신동광: 네. 마지막으로 ‘후라이’가 있습니다. 현빈과 손예진이 결혼 전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 “후라이 치지 마시라요!”란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허튼 소리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이는데요. 유래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최휘: 저 아주 어릴 때 어른들이 장난으로 그렇게 말하셨던 것 같아요. ‘후라이 보이’라는 분도 계시지 않았나요?
◇신동광: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살아오셨군요. 70년대 코미디 황제였던 故 곽규석 씨의 별명이 ‘후라이 보이’였습니다. 이분이 공군에서 군생활을 해서 ‘Fly Boy’를 뜻할 거라는 주장이 눈에 띕니다. 심지어 달걀 후라이(프라이)가 익으면 원래보다 커지니, 후라이는 ‘뻥치다’는 의미일 거란 추측도 보입니다.
◆최휘: 그럴 듯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서 또 찾아내셨겠죠?
◇신동광: 저도 죽자고 찾다가 답답해 죽을 뻔했는데, 비교언어학적 접근을 통해 본질에 가까운 답을 찾은 것 같다는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최휘: 네. 기대됩니다.
◇신동광: 제가 추정하는 후라이의 뿌리는 ‘호래(胡來)’입니다. 호래(胡來)의 중국어 발음은 ‘훌라이(húlái)’입니다. 위키 날말사전(wiktionary)는 ‘훌라이(胡來)’를 “무분별하게 행동하다”, “문제를 일으키다”란 뜻을 가진 중국어 단어로 설명합니다. 이 말 ‘훌라이’가 우리나라로 건너오며 ‘후라이’로 발음이 변했을 거라 추측합니다.
◆최휘: ‘호’자가 붙으면 오랭캐와 관련 있다는 말은 들어봤습니다.
◇신동광: 맞습니다. 오랑캐의 박 호박, 탈부착형인 한복의 주머니와 달리 옷과 일체인 호주머니, 오랑캐의 복숭아 호도 등 많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노략질과 해코지를 일삼는 북방 오랑캐에게 항상 시달려 왔습니다. ‘후레자식’이란 말도 ‘오랑캐의 자식’을 뜻하는 ‘호로자식(胡奴子息: 오랑캐 호, 종 노, 아들 자, 아이 식)’에서 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경멸은 깊었습니다. 특히 오랑캐의 침략이 잦은 북쪽의 국경 지대라면 뭐든 안 좋은 곳에는 오랑캐가 쓰였을 거라 추정합니다.
◆최휘: 가슴속에 한과 적개심이 맺힐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표현에도 적용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신동광: 따라서 “후라이 치지 마시라요”는 “오랑캐나 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허튼 말 마십시오”란 뜻으로 추리해 보았습니다.
◆최휘: 지금까지 신동광 작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동광: 감사합니다.
YTN 장정우 (jwjang@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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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신동광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열린라디오 YTN>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최휘 아나운서(이하 최휘): 이번 여름 유난히 덥게 느껴집니다. 이번 주 내린 비로 폭염이 주춤하지만, 여름은 아직 남아있는데요, 오늘 미디어언어 시간에서는 날씨와 관련된 단어들의 어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매일경제에서 어원 칼럼 말록 홈즈 시리즈를 연재 중이신 어원연구가 신동광 작가 나오셨습니다.
◇신동광 작가(이하 신동광): 말 속에 답이 있다! 안녕하세요, 말록 홈즈 신동광입니다.
◆최휘: 이번 여름 정말 덥습니다. 서울이 역대 7월 열대야일수 기록을 경신했는데, 어떻게 이겨내고 계십니까?
◇신동광: 네. 얌전히 집안에서 책 읽고 글 쓰며 가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틈틈이 다락방에서 맥주에 새우깡 놓고 소소하게 기우제도 지냅니다.
◆최휘: 기우제라고 하면 보통 신이나 영물들이 떠오르는데요. 대표적인 대상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신동광: 전 세계 역사 속 기우제의 대상은 다양한 전설 속 신령과 신수들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존재로 용(龍)을 꼽을 수 있습니다. 동양의 용은 물에서 왔습니다. 동아시아의 용들에게 물은 활동 터전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용이 드넓은 바다와 강부터, 호수, 개천, 연못 같은 작은 물까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용의 순우리말은 ‘미르’이고, 미르는 물(水)의 옛말 ‘믈’과도 통합니다. ‘미리내’는 ‘용이 머무는 냇물’입니다.
◆최휘: 기우제는 아니지만 전래동화 토끼와 거북이의 용왕과 만화 드래곤볼 속 신룡이 생각나는데요. 용이 되지 못한 한을 품은 이무기도 떠오릅니다. 이무기는 용과 어떻게 다른가요?
◇신동광: 국어사전에는 ‘용이 되지 못하고 물속에 산다는 전설상의 큰 구렁이’로 나옵니다. 하지만 이무기의 형태소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이름과 낱말에는 대표적 특성을 담겨 있는데, 이무기라는 이름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최휘: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랫동안 듣기만 했지, 뜻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원을 찾으셨나요?
◇신동광: 직접적 문헌적 근거는 없어, 어원탐답게 추리에 들어갔습니다. 이무기를 가리키는 한자어로 ‘이룡(螭龍: 도깨비 이, 용 용)’이 있습니다. ‘도깨비 용’, ‘요괴 용’을 뜻합니다. 못된 이무기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설화들과 맥이 같습니다.
◆최휘: ‘이’자가 ‘요괴’라고 하니까 바로 공감이 되네요. 그러면 ‘무기’의 뜻도 궁금해지는데요.
◇신동광: 막막할 때는 이웃나라나 인접 지역의 말들을 찾아봅니다. 용을 만주어로 ‘무두리’라고 부릅니다. 국어학자 안영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무두리는 용을 가리키는 순우리말 ‘미르’와 뿌리가 같습니다. 그렇다면 물을 가리키는 만주어가 용을 의미할 가능성이 큽니다. 만주어로 물은 ‘무케/무커’입니다. 만화가 이상규 작가의 웹툰 ‘호랑이형님’에 등장하는 귀염둥이 꼬마 호랑이 이름인 ‘무케’와 같습니다. 이렇게, 요괴를 가리키는 ‘이(螭)’와 ‘물’이나 ‘용’을 뜻하는 ‘무케/무커’를 더하면 ‘이무케’가 됩니다. ‘이무케’를 줄이면 ‘이묵’이고, ‘이묵’에 발음하기 편하게 ‘행위자/성질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주는 접미사 ‘-이’를 붙이면, 바로 ‘이묵이/이무기’가 됩니다. 결국 이무기는 ‘사악하거나 요사스러운 용’이란 뜻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입증을 위해서는 명확한 문헌이 필요한데, 그런 고서들이 남아있었다면 제가 이런 번뇌에 빠질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최휘: 문헌 근거가 있었으면 더 이해하기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동광: 그렇지 못하니까 저 같은 어원탐정이 등장한 겁니다. 이렇게 단어나 표현의 비교를 통해 여러 언어 사이의 친족 관계를 증명하고, 공통 조어(祖語: 조상 조, 말 어. ancestral language)의 모습을 추정하며 언어들의 역사적 변화를 알아보는 학문을 ‘비교언어학(comparative linguistics)’이라고 부릅니다. 비교언어학의 기법을 활용하면, 그동안 풀지 못했던 단어들의 어원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최휘: 뜻을 몰랐지만, 언어 비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는 말씀이죠?
◇신동광: 네. 그동안 순우리말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외국어에 뿌리를 둔 말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대장간(대장間)’은 국어사전에 ‘쇠를 달구어 온갖 연장을 만드는 곳’으로 소개됩니다. 핵심은 ‘대장’이란 말의 의미인데, 대장과 대장장이 모두 ‘대장일을 하는 기술직 노동자’로 나옵니다. 무한한 재귀(再歸: 다시 재, 돌아올 귀: recurrence)의 반복입니다.
◆최휘: 대장이란 말이 군대의 장군이나 인체 기관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네요.
◇신동광: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이웃나라 중국어로 대장간을 찾아보니, ‘티에장푸(tiějiàng pù)’가 나옵니다. 한자로는 ‘철장포(鉄匠铺: 쇠 철, 재주 장, 가게 포)’, 쇠를 가지고 재주를 부리는 가게를 뜻합니다. 여기서 철의 중국어 발음이 ‘티에’입니다. 철(鉄)은 일본어에서도 중국어와 비슷하게 ‘테’로 발음이 납니다. 인기 비디오게임 ‘철권(鉄拳)’의 발음도 ‘텍켄(TEKKEN: てっけん)’입니다. 대장간의 ‘대’는 철의 중국발음을 우리말로 옮겼을 뿐입니다.
◆최휘: ‘쇠로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 대장인 거였군요. 이해가 쉽습니다. 다른 분야에도 순우리말로 알고 있는 외국 기반 단어가 있을까요?
◇신동광: 정육점에도 있습니다. 돼지의 머리와 목을 연결하는 부위의 고기인 ‘항정살’은 순우리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자사전에 항정이란 말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한자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추리해 봅니다. 목과 관련 있는 살이라 우선 ‘목 항(项)’자를 찾고 목을 뜻하는 또 다른 한자로 ‘목 경(颈)’자를 찾았습니다.
◆최휘: 항경이 항정으로 변화한 건가요?
◇신동광: 네. ‘항경(项颈)’자를 가지고 구글에서 중국어 백과사전을 검색해 보니, ‘샹징(xiàngjǐng)’이란 말이 뜹니다. 목덜미를 뜻하죠. 항정은 목덜미란 뜻의 ‘항경(项颈)’의 중국어 발음인 ‘샹징’이,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소리가 변한 말로 보입니다.
◆최휘: 와, 오늘부터 항정살 먹을 때마다, 돼지 목덜미가 떠오르겠네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해 주시겠어요?
◇신동광: 네. 마지막으로 ‘후라이’가 있습니다. 현빈과 손예진이 결혼 전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 “후라이 치지 마시라요!”란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허튼 소리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이는데요. 유래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최휘: 저 아주 어릴 때 어른들이 장난으로 그렇게 말하셨던 것 같아요. ‘후라이 보이’라는 분도 계시지 않았나요?
◇신동광: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살아오셨군요. 70년대 코미디 황제였던 故 곽규석 씨의 별명이 ‘후라이 보이’였습니다. 이분이 공군에서 군생활을 해서 ‘Fly Boy’를 뜻할 거라는 주장이 눈에 띕니다. 심지어 달걀 후라이(프라이)가 익으면 원래보다 커지니, 후라이는 ‘뻥치다’는 의미일 거란 추측도 보입니다.
◆최휘: 그럴 듯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서 또 찾아내셨겠죠?
◇신동광: 저도 죽자고 찾다가 답답해 죽을 뻔했는데, 비교언어학적 접근을 통해 본질에 가까운 답을 찾은 것 같다는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최휘: 네. 기대됩니다.
◇신동광: 제가 추정하는 후라이의 뿌리는 ‘호래(胡來)’입니다. 호래(胡來)의 중국어 발음은 ‘훌라이(húlái)’입니다. 위키 날말사전(wiktionary)는 ‘훌라이(胡來)’를 “무분별하게 행동하다”, “문제를 일으키다”란 뜻을 가진 중국어 단어로 설명합니다. 이 말 ‘훌라이’가 우리나라로 건너오며 ‘후라이’로 발음이 변했을 거라 추측합니다.
◆최휘: ‘호’자가 붙으면 오랭캐와 관련 있다는 말은 들어봤습니다.
◇신동광: 맞습니다. 오랑캐의 박 호박, 탈부착형인 한복의 주머니와 달리 옷과 일체인 호주머니, 오랑캐의 복숭아 호도 등 많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노략질과 해코지를 일삼는 북방 오랑캐에게 항상 시달려 왔습니다. ‘후레자식’이란 말도 ‘오랑캐의 자식’을 뜻하는 ‘호로자식(胡奴子息: 오랑캐 호, 종 노, 아들 자, 아이 식)’에서 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경멸은 깊었습니다. 특히 오랑캐의 침략이 잦은 북쪽의 국경 지대라면 뭐든 안 좋은 곳에는 오랑캐가 쓰였을 거라 추정합니다.
◆최휘: 가슴속에 한과 적개심이 맺힐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표현에도 적용되었다는 말씀이군요?
◇신동광: 따라서 “후라이 치지 마시라요”는 “오랑캐나 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허튼 말 마십시오”란 뜻으로 추리해 보았습니다.
◆최휘: 지금까지 신동광 작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동광: 감사합니다.
YTN 장정우 (jwjang@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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