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판 납니다!” 北 ‘귀신소리’ 마을 이장, 대통령님 들리나요

“요즘 살판 납니다!” 北 ‘귀신소리’ 마을 이장, 대통령님 들리나요

2025.08.11. 오전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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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5년 08월 11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이완배 파주 통일촌 이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조금 전에 들으셨나요?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의 기괴한 소리 잠깐 들려드렸습니다. 최근에 우리 군이 대북 방송을 중단하고 확성기까지 철거하면서 북한이 이에 호응했죠, 대남 방송 중단했습니다. 그동안 대남 방송 때문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했던 파주 통일촌 이장님, 지난번에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이제 정말 조용한 마을로 돌아왔을지 직접 근황 들어보겠습니다. 파주 통일촌 이완배 이장 전화 연결합니다. 이장님 안녕하세요.

◇이완배 파주 통일촌 이장 (이하 이완배): 네 안녕하세요.

◆박귀빈: 어떻게 마을이 이제 조용해졌나요?

◇이완배: 그렇죠, 지금 아주 조용해서 이제 다 살판이 났습니다.

◆박귀빈: 이제 기괴한 귀신 소리 같은 것도 하나도 안 들리나요?

◇이완배: 안 들리죠, 아주 조용하죠.

◆박귀빈: 언제부터 이게 안 들리기 시작했어요?

◇이완배: 그때 6월 11일 날인가, 그때서부터 안 들린 것 같아요.

◆박귀빈: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6월 11일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했고요. 바로 그 직후에 한 8시간 만에 북한도 대남 소음 방송 껐다고 보도를 통해 봤는데 실제로 그때부터 안 들리는 거네요?

◇이완배: 그렇죠.

◆박귀빈: 주민들 반응 어떠세요?

◇이완배: 주민들 반응은 아주 조용하니까 이제 살판났다고 하죠.

◆박귀빈: 안 들리기 시작한 지가 한 지금 두 달 정도 지났네요? 그 작년에 기괴한 소리 때문에 통 잠도 못 주무시고 당시에 농작물도 잘 못 자란다고 그런 말씀을 하셨었거든요.

◇이완배: 그때는 아주 참 고통스러웠어요. 주민들 사는데...

◆박귀빈: 맞아요. 그때 너무나 힘드시다고 말씀을 전해 드렸고 한 두 달 정도 그렇게 조용히 지내시니까 작년에 그 고통들이 어느 정도 좀 지금 좀 회복이 되셨어요. 좀 많이 편안해지셨어요?

◇이완배: 그렇죠, 소리가 안 들리니 곧 평화가 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다 들죠.

◆박귀빈: 당시에 대북 방송 우리가 중단한 후에 북한이 이렇게 빨리 화답을 할 거라고 예상을 하셨어요?

◇이완배: 예상 못 했죠. 이번에 우리가 중단하니까 그쪽도 중단하는게 이렇게 빨리 될 줄 몰랐어요.

◆박귀빈: 네, 너무나 다행입니다. 진짜 오랜 시간 고통 겪으셨거든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그러니까 무려 8개월가량입니다. 그 시간 돌이켜 보면 어떠세요? 그 8개월 어떠셨어요?

◇이완배: 생각하기도 싫죠.

◆박귀빈: 가장 힘든 게 그때 뭐였다고 말씀하셨죠?

◇이완배: 잠을 이렇게 자야 되는데 잠을 못 자니까 시끄러워서 그리고 또 자고 잠을 자야 또 농사일도 또 하잖아요. 잠을 못 자니까 불편한 게 많은 거죠. 고통스러웠죠.

◆박귀빈: 잠도 못 주무셨고 또 시끄러운 것도 시끄러운 건데 많이 불안하셨었죠? 혹시 이거 대남 방송에 이어서 무력 도발까지 하는 거 아닌가 이런 걱정도 하지 않으셨어요?

◇이완배: 그럼요. 그거 다 걱정이 많았지만 지금은 잘 슬기롭게 이렇게 해결이 됐으니까 좋죠.

◆박귀빈: 너무나 다행입니다. 관광객 숫자는 좀 회복이 됐나요? 당시에 그것 때문에 관광객도 많이 급감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완배: 많이 회복이 됐어요. 이제 많이 와요. 외국인분들도 많이 오고 있어요.

◆박귀빈: 원래 하루에 한 몇 분 정도 관광객이 오셨나요?

◇이완배: 그전에는 별로 안 왔는데 지금은 한 2천 명에서 2500명 정도 하루에 외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와요.

◆박귀빈: 하루에 관광객이 한 2천 명대로 올라왔네요? 마을에 많이 좀 활력이 생겼겠어요?

◇이완배: 네

◆박귀빈: 저희 6월에 대선 앞두고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을 이장님이 목소리로 전해 주셨습니다. 기억하시죠?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힘써주면 좋겠다 이런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리고 나서 지금 한 몇 달 지났잖아요. 어떻게 느끼세요?

◇이완배: 평화롭게 사니까 좋죠.

◆박귀빈: 너무 주민들도 많이 반가워하실 것 같습니다.

◇이완배: 주민들이 더 좋아하죠.

◆박귀빈: 접경 지역 주민이기 때문에 사실 이 확성기 방송은 정말 일상이 무너지는 거여서 그 당시에 너무나 급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그 말씀만 해 주시긴 했지만 사실 남북 간에 어떤 변화나 조치나 이런 것들을 좀 바라는 게 있으실 것 같아요. 접경 지역에서는 어쨌든 항상 늘 불안한 마음이 있으시잖아요, 어떠세요?

◇이완배: 항상 불안했는데 이렇게 조금 이제 안정이 돼 갖고 그러니까는 주민들은 이제 좀 인생 편안하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박귀빈: 당시에 대북 대남방송이 시작됐던 계기가 뭐냐면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였거든요, 기억나시죠?

◇이완배: 그렇죠. 그걸 두고 저희 주민들이 가서 농기계 갖고 가서 뿌리지 못하게 막으면 그러면 그쪽에서 몰래 뿌리고...

◆박귀빈: 그러니까요. 새 정부 출범 이후에 납북 피해자 단체가 공식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 중단도 발표를 했는데요, 그 이후에 대북 전단 살포도 없었나요? 이 대북 전단 살포 중단했다는 소식도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겠어요?

◇이완배: 그럼요, 또 살포가 되었으면 우리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다 제쳐두고 임진각까지 나가서 트랙터 끌고 나가서 전단지 뿌리지 못하게 시위하면서 어렵게 생활을 했겠죠.

◆박귀빈: 이장님이 통일촌에서 한 20년간 이장직을 하셨죠? 최장기 이장님 맞으세요?

◇이완배: 그렇죠.

◆박귀빈: 최장기 20년 이장직 하시면서 제일 어려웠던 일 뭐셨어요?

◇이완배: 이번 해가 제일 어려웠죠. 시끄럽고 주민들은 불안하고 이번 사건이 제일 힘들었어요.

◆박귀빈: 기괴한 소리 때문에 너무 힘드셨군요. 이장님이 통일촌에 언제 들어가신 거예요?

◇이완배: 1973년도에 들어갔습니다.

◆박귀빈: 1973년도에 통일촌에 들어가셨고 그 당시에 왜 그쪽으로 향하셨어요?

◇이완배: 지금 통일천이 제 부모님 고향입니다.

◆박귀빈: 부모님 고향이 거기셨어요? 그러면 이장님은 다른 타지에 계시다가 다시 들어가신 거예요?

◇이완배: 여기 통일촌 있는 곳이 휴전 했을 1953년도에 전부 다 강제 이주를 시켰어요. 그러다가 73년도에 통일촌에 마을을 만들어 갖고 시향민들하고 군 출신 80세대를 입주를 시켜 준 거죠.

◆박귀빈: 굉장히 그곳에 오래 계셨네요.

◇이완배: 50년이 넘었습니다.

◆박귀빈: 그러니까요. 50년이 넘으셨으면 좀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 이런 생각도 하실 법한데 왜 거기 계속 계세요?

◇이완배: 저희 부모님 고향이 여기고 또 고향에 돌어왔으니까 여기서 살아야죠.

◆박귀빈: 이장직 20년 동안 하시면서 이번 일이 제일 어려우셨고, 이장님이 마을 내 민원 해결 이런 거 다 해 주시는데 이번 건은 이장님 선에서 할 수가 없었던 거니까요. 이장님이 그 누구보다 마음의 짐을 많이 더셨을 것 같아요.

◇이완배: 이제 홀가분합니다.

◆박귀빈: 앞으로도 쭉 이장님 계속하시는 거예요?

◇이완배: 2년마다 한 번씩 마을 주민들이 투표로 이장을 뽑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둔대도 그만두지도 못하겠습니다.

◆박귀빈: 이장님 ‘나 이제 그만둘 거야’ 이래도 못 그만두게 하세요? 주민분들이 너무 그동안 통일촌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애써주셨으면 다들 그렇게 원하실까요? 통일촌 주민들 대체로 그러면 어떤 일을 하고 사시는 거예요?

◇이완배: 농업하고 원래는 한강 어업을 우리 마을에서 농산물 판매장을 만들어서 관광객들하고 식당으로 소득을 얻고 살고 있습니다.

◆박귀빈: 지난번에 기괴한 소리 그 현안에 대해서만 저희가 질문만 했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제 그게 좀 해결이 됐고 우리 이장님을 연결한 김에 통일촌 계신 분들이 보통 어떻게 사시나 좀 여쭤보고 싶었어요. 접경 지역에 살지 않는 분들은 그 접경 지역에 계신 분들의 삶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이완배: 그렇죠.

◆박귀빈: 접경 지역이어서 혹시 이런 점은 좀 어렵다 하는 거 뭐 있으세요?

◇이완배: 이제 완화가 됐지만 그전에는 부모가 찾아와도 미리 다 승인을 받아서 들어와야하고 그랬어요. 10시만 되면 버스가 끊어지니까 그냥 외부에서 자고 아침에 들어와야 되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박귀빈: 지금도 그래요?

◇이완배: 지금은 이제 24시간 전부 개방이 됐으니까 그런 불편이 없어졌죠.

◆박귀빈: 그렇군요. 예전에는 통일촌에 들어가시려면 승인을 받았어야 됐고 나오시기도 그러면 나올 때도 승인받고 나오셨어야 됐고요?

◇이완배: 그렇죠.

◆박귀빈: 예전에는 힘드셨겠네요. 그럼 이사도 내가 원하는 대로 못 하셨겠네요?

◇이완배: 그렇죠.

◆박귀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조금 이런 거는 달라졌으면 좋겠다 이런 거는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하는 거 있으세요?

◇이완배: 우리는 여농사가 주업이고 관광업도 합니다만 이제 경기도나 군부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큰 불편 없이 살고 있어요.

◆박귀빈: 통일촌 주민분들 누구보다 남북 간 평화 바라실 것 같아요. 이번 정부의 남북 정책에 대해서 바라는 점 있으시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완배: 바라는 점은, 일단 북한하고 잘 소통을 해서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런 그게 제일 바람이죠.

◆박귀빈: 이 인터뷰 들으시면서 저희 청취자분들이 막 문자도 보내주세요. 청취자님이 ‘통일촌, 이름을 평화 마을로 지칭해야 할 것 같아요. 통일촌부터 평화가 정착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장님’ 이렇게 이장님께 문자 왔어요.

◇이완배: 네 고맙습니다.

◆박귀빈: 이장님 최근에 독일 다녀오셨어요?

◇이완배: 네

◆박귀빈: 독일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맞았잖아요, 옛 동서독 접경마을 초대받으셨다면서요? 그 얘기 좀 짧게 해 주세요.

◇이완배: 거기도 국경선 마을인데 거기서 베를린 장벽을 다 보존을 해놓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마을이 어떤가 하고 갔더니 대우도 잘 받고 볼 것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돼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귀빈: 독일의 접경지 마을 회텐스레벤 마을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오셨는데 어떻게 통일촌이랑 닮은 점이 있던가요?

◇이완배: 우리는 남과 북이 전쟁을 했지만 거기는 이 전쟁을 안 했잖아요. 저희나라끼리는 그 옛날 한 몇백 년 된 건물도 그대로 다 보존해 놓고 베를린 장벽도 보존해 놓고 그렇게 해 놓은 걸 보니까는 참 우리도 앞으로 통일이 되면 그렇게 놔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귀빈: 그렇죠. 과거 역사를 통해서 또 미래 세대가 배우는 게 있으니까요. 나중에라도 통일촌을 그대로 보존해서 후손들이 남북 간 평화가 정말 중요하구나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당시에 새정부에 바라는 점 말씀하시면서 듣고 싶은 곡도 신청하셔가지고 저희가 노래도 들려드리고 했거든요. 그때 노래 들으셨어요? 그때 대통령이 이장님 목소리를 들으신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이장님이 대통령님! 이러시면서 말씀하셨던 것 같아가지고요.

◇이완배: 대통령님이 당선되고 저희 마을에 오셔서 주민들 위로해 주시고 가셨어요.

◆박귀빈: 이장님 직접 대통령 만나셨어요? 그때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완배: 대통령님께 기괴한 소리 안 들리게 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박귀빈: 그러니까 뭐라고 답변을 하시던가요?

◇이완배: 대통령님도 옛날부터 가슴이 아팠다고 하시더라고요.

◆박귀빈: 이번에도 대통령님 하시면서 한 말씀 남겨주세요.

◇이완배: 대통령님, 고맙습니다!

◆박귀빈: 이장님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쓰셨고요. 오늘도 이렇게 연락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파주 통일촌 이완배 이장이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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