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싸움하다 사망했는데, 가해자는 무죄? 살인죄 성립하는 '고의'란 무엇인가

몸싸움하다 사망했는데, 가해자는 무죄? 살인죄 성립하는 '고의'란 무엇인가

2025.05.01. 오후 1:42.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5년 5월 1일 (목)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임흥준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매일같이 우리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곤 합니다. 뉴스만 봐도요. 누가 누구를 때렸다더라, 사기를 쳤다더라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하죠. 그런 소식을 접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나시나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며 놀라곤 하지만 막상 그 사건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은 글쎄요, 하기 쉽진 않겠죠. 내 가족 중 한 명이 갑작스레 싸움에 휘말려 폭행을 당한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그 폭행으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르렀다면 이거 어떻게 되는 걸까요? 물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상황입니다만 그렇다고 주변에서 이런 일이 아예 벌어지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은 게 현실이죠. 만약 여러분이 내 가족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심하게 폭행을 당해 사망하거나 큰 상해를 입게 된다면 법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폭행으로 사람을 죽였으니 당연히 상대방에게 살인죄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칫하면 오히려 상대에게 무죄라는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럼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법정 상식은 뭐가 있을까요? 오늘 사건X파일에서 이 부분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임흥준: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임흥준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살면서 절대 내 주변에선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들이 있는데 오늘 이야기 나눠볼 부분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거든요. 누군가의 폭행으로 사람이 사망하게 되는 경우 그런데 변호사님도 사건 맡아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생각보다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잖아요.

◇임흥준: 맞습니다. 저희 로펌에서도 정말 다양한 사망 사고 관련 케이스들을 다루죠. 꼭 폭행치사죄가 아니더라도 상해치사죄나 과실치사죄, 교특법상 치사죄까지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다양한 케이스들 저도 많이 맡아봤습니다. 잠깐 통계적인 거 말씀드려 볼게요. 2023년 기준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152만 200건이며 그중 살인 범죄의 발생 비율은 801건, 폭행치사를 포함한 폭력 범죄의 발생 비율은 457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원화: 흔히들 누군가한테 맞아서 폭행을 당해서 사망했다라고 하면 당연히 이거 살인 아니냐, 살인죄 적용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시곤 하는데요. 법적으로 따지고 들어가 보면 무 자르듯이 딱 떨어지는 부분은 아니죠?

◇임흥준: 맞습니다. 일반 법 감정에 의해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 살인죄를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근데 생각보다 우리 법이 촘촘하게 형벌을 규정하고 있어서 살인죄와 치사죄는 엄격히 구분됩니다. 살인죄는 처음부터 죽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피해자를 살인한 경우를 의미합니다. 한편 치사죄는 죽일 목적이 없이 특정한 행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이 죽은 결과가 발생한 경우이어야 합니다. 청취자분들도 어려우실 텐데 이게 살인죄나 치사죄 모두 범행의 결과가 사망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도 구분이 어렵습니다. 처음 행위자의 고의 즉 행위자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이원화: 몇몇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더 나눠볼 텐데요. 청취자분들도 사건 들어보시면서 이것을 살인죄로 물을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태어난 지 10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딸을 엄마라는 사람이 때려서 숨지게 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검찰이 살인죄를 적용했습니다. 근데 무죄가 나왔죠?

◇임흥준: 전남 나주에서 2015년 2월에 있었던 일인데 10개월 된 딸을 둔 엄마 김 씨가 남편과 불화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딸의 머리와 배 등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했습니다. 이에 검찰이 살인죄를 적용 적용하여 김 씨를 구속 기소했고요. 검찰은 아이의 복부를 집중적으로 때린 것으로 보이는 점, 또 피해자가 10개월밖에 안 된 아이이기 때문에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점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주지법 제11형사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원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도통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긴 할 것 같거든요. 자기 힘으로 뭘 할 수도 없는 애를 숨질 때까지 때렸는데 그게 살인 아니면 뭐냐. 왜 살인이 무죄가 나왔던 거죠?

◇임흥준: 바로 재판부가 김 씨의 혐의를 살인보다 폭행치사나 상해치사에 가깝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씨가 딸을 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살인의 고의를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증명하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며 김 씨가 딸에 대한 직접적인 미움이나 분노보다는 남편과 싸운 뒤 남편에 대한 원망 때문에 딸을 때렸을 뿐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딸을 폭행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했고요. 특히 딸을 때린 뒤 딸의 몸이 이상하자 딸을 깨우거나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설명하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아마 청취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 점이 살인죄가 아니고 폭행치사죄나 상해치사죄면 해당 죄목으로 처벌하면 될 텐데 왜 무죄를 선고했냐일 것 같습니다. 답을 드리자면 법원은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에 관해서만 재판이 가능하고 그 외에 다른 죄명을 판단하려면 검사가 공소장 변경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시 1심 재판부에서도 살인의 고의 입증이 어려울 수 있는 점을 피력하며 검찰 측의 공소장 변경을 권유했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살인죄 기소 입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무죄가 나왔던 것이죠.

◆이원화: 그렇다면 검찰이 1심에서 입증하지 못했던 부분들 살인죄에 해당한다. 재판부를 설득할 만한 내용들이 추가됐어야 했을 것 같은데, 재판부의 권유에도 검찰이 살인죄를 끝까지 포기해야 하지 못한 이유 형량 차이도 있다 싶습니다.

◇임흥준: 살인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상해치사나 폭행치사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기 때문에 형량의 차이가 있습니다. 즉 적용 형량에서 꽤 차이가 나기도 하고요. 또 김 씨의 행위가 치사죄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린 딸을 폭행한 점 때문에 살인이라고 보는 검찰의 고집도 이른 이해가 되긴 합니다. 아마 청취자분들도 김 씨 살인죄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이원화: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임흥준: 이후 항소심에서 검찰이 예비적으로 적용한 상해치사죄가 인정되어 법원이 김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여기서 예비적으로 적용했다는 뜻을 설명드리자면 주의적 예비적 공소제기는 법원이 여러 범죄 사실을 심판할 때 주의적 사실을 먼저 심판하고 유죄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 예비적인 사실을 심판하는 방식입니다. 즉 검사가 주의적인 사실을 유죄로 인정받길 원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비적으로 제시한 사실을 유죄로 인정받기 위한 일종의 소송 전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김 씨가 처벌됐긴 했지만 저나 청취자 분들이 듣기에 징역 5년의 실형이 아주 후련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재판부에서도 피해자가 불과 10개월의 어린 아이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점, 구호 활동을 했다는 게 살인의 고의를 부정할 만한 사유로 고려된 점 등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것 같습니다.

◆이원화: 다른 사건 하나 더 살펴보죠. 운전하다 보면 평상시에 아주 얌전하던 분들도 갑자기 다른 자아가 나오곤 한다 이런 말들 많이 하잖아요. 아무튼 운전하다가 시비 붙는 경우가 제법 많은데요. 이게 실제 몸싸움까지 번지는 경우들도 있잖아요.

◇임흥준: 맞습니다. 저도 거의 20년 가까이 운전했는데 운전하다 보면 평소보다 예민해지는 그런 게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의 가해자 A 씨도 화물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운행하다 피해자 B 씨의 승용차 앞에 끼어들게 되었고 이에 시비가 붙어 몸싸움까지 벌이게 됩니다. 이에 A씨가 B 씨를 화단에 넘어뜨린 뒤 약 30초 동안 몸 위에 올라타 손으로 가슴 부위를 눌렀는데요. 이후 싸움이 종료된 뒤 B 씨가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죠.

◆이원화: 이 피해자가 결국 사망을 했나요?

◇임흥준: 네. B 씨는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로 이송됐는데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검찰은 A 씨를 B 씨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A 씨의 폭행은 사망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었다며 통상 사람의 가슴 부위를 강하게 누르면 사망이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A 씨에겐 피해자 사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원화: 폭행치사죄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앞서 살펴본 앞서 살펴본 사건은 상해치사죄였잖아요. 이건 어떻게 다른 겁니까?

◇임흥준: 상해치사와 폭행치사 모두 사망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그 행위의 종류와 고의성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상해치사는 신체에 고의적인 상처를 입혀 살해의 고의 없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범죄고요. 폭행치사는 폭행의 고의성이 있지만 살해의 고의성은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범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원화: 폭행치사 사건 같은 경우는 특히 피해자와의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임흥준: 폭행치사 사건은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피해자 유족들과의 합의가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폭행치사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므로 합의만으로는 무조건적으로 처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합의는 형량 감경에 영향을 미치므로 합의를 통해 피해자에게 보상하려는 성의를 보이면 법원이 형량을 참작할 수는 있습니다.

◆이원화: 아무튼 그래서 이 사건 어떻게 됐죠?

◇임흥준: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제1형사부는 지난해 5월 단순 폭행 혐의만을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요. 폭행치사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으며, 2심, 3심 모두 검사의 항소와 상고를 기각해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이원화: 이 방송 듣고 계신 분들 입장에서 도대체 이게 왜 무죄냐 황당하실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겁니까?

◇임흥준: 1심 재판부는 A 씨가 가한 물리적 외력만으로 B 씨가 심장병으로 사망한다는 점은 통상 일반인이 예견할 수 있는 결과라 보기 어렵다며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을 한 것이고요. 2심 재판부도 A씨가 B 씨의 심장을 강하게 누른 행위가 심장 질환을 촉발하게 했다고 볼 수 있을지라도 피해자의 심장 질환을 미리 앓았거나 폭행 당시 피해자가 심장 질환을 호소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은 이상 피고인에게 사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같은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이원화: 사실 참 어려운 게요. 그때 싸움이 없었더라면 피해자가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겠냐, 싸움이 벌어져서 그게 시발점이 된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특히 유가족 입장에서는 가족이 사망했는데 이걸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런 생각이 더 허탈하실 것 같은데 형사는 그렇고 민사에서 손해배상 같은 건 가능한가요?

◇임흥준: 형사적으로 합의금도 받으실 수 있지만요. 별도로 민사적으로 민법 제750조의 불법 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합니다. 해당 소송을 통해서 장례비나 의료비와 같은 물질적 손해, 위자료와 같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고요. 그리고 제 소송 경험상 사망 사건이다 보니 한 5천에서 1억 정도 사이의 금액을 배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원화: 네. 사건 하나 더 살펴볼까 싶은데 살인죄와 상해치사죄 혹은 폭행치사죄를 두고 치열하게 법리를 다퉜던 사건 어떤 사건이 좀 떠오르세요?

◇임흥준: 이 사건은 데이트 폭력 사건인데요. 역시 논란이 많은 사건입니다. 2021년 7월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피해자인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다투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수차례 폭행했고요. 폭행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피해자는 뇌출혈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한 사건입니다. 당시 피해자 유족들은 가해자인 남자친구가 실신한 피해자에게 거듭 폭행을 행사했고, 인명 구조요원 자격이 있음에도 기도 확보나 심폐소생술 같은 대응 조치를 하지 않은 점, 이후 112와 119 신고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축소해 설명한 것을 문제 삼아 가해자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고 가해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피해자 유가족들의 발언과는 달리 가해자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요. 항소심 끝에 7년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재판부는 끝내 가해자가 피해자를 의도적으로 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해치사의 혐의만을 인정한 것인데요. 피해자 유가족들의 입장을 고려하면 상당히 안타까운 판결입니다.

◆이원화: 법 이야기를 하다 보면 국민 감정과는 다른 결과들이 나오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참 어려운 부분이다 싶어요.

◇임흥준: 여론조사 결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법부와 국민 법 감정의 간극에 대한 여론 조사였는데요. 응답자들 중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은 29%에 그쳤고, 응답자의 87%는 법원에서 선고하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이 너무 가볍고 관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보이죠. 우리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 먼저겠지만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꼭 법률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추천드립니다. 전문적인 법조인들의 도움을 받아 쟁점 등을 미리 정리해서 대비하면 피해자의 피해 회복 및 구제에도 조금 수월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원화: 사건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