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렌탈 믿었다가"...고액 할부 주의보

"무료 렌탈 믿었다가"...고액 할부 주의보

2024.02.28. 오후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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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고가의 자동판매기를 무료로 대여해준다며 접근한 한 유통업체가 할부 계약을 맺게 하고 잠적해 자영업자들이 무더기로 빚을 지게 됐습니다.

관련 보도가 나간 이후 비슷한 피해를 봤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내용 취재한 사회부 윤웅성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무료라고 하면 아무래도 혹하기 마련이죠.

먼저 이번 피해, 어떻게 일어난 건지 알려주시죠.

[기자]
네, YTN에 제보가 들어온 사례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키즈카페를 운영하는 유 모 씨는 2년 전에 각종 자동판매기를 유통하는 업체, 편의상 D사로 부르겠습니다.

이 D사로부터 렌탈 사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커피 자판기를 유 씨의 가게에 무상으로 빌려주고, 원두 등 재료까지 무료로 공급해 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신, 유 씨가 자판기를 관리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8 대 2 정도로 나누자는 것이었는데요.

유 씨는 수익 대부분을 D사가 가져가고, 가게 공간도 일부 내어주는 거긴 하지만, 초기 투자비용 없이 인건비도 줄일 수 있겠단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유 씨의 이야기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유 모 씨 / 키즈카페 사장 : 대여료를 페이백 해주겠고, 대신 관리는 사장님이 하시고 매출 나누는 부분을 적게 해서 운영하시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도움이 되겠다.]

문제는 경영난을 호소하던 D사가 갑자기 지난해 말 잠적해버렸다는 겁니다.

D사는 자판기를 유 씨가 할부로 구매하면 매달 돈이 빠져나가기 전에 업체가 '페이백' 형태로 유 씨에게 입금해주고 계약이 끝날 때 다시 기계를 가져간다고 했는데요.

D사가 잠적해버리면서 유 씨를 비롯한 자영업자들이 할부금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지난주 취재를 시작할 때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70여 명이었는데, 보도가 나간 이후 벌써 100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자판기 한 대당 평균 2~3천만 원에 달하고, 한 사람이 여러 대를 설치한 경우도 있어서 피해액은 최소 수십억 원에 달합니다.

[앵커]
아무리 유통업체가 수익을 많이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자판기와 원재료까지 무상으로 공급하면 남는 게 있는 겁니까?

[기자]
그 점이 피해자들도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부분이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D사 제안에 자판기를 3대나 설치한 한 무인 매장은 조용한 주택가에 있습니다.

게다가 유동인구도 적은 곳이어서 큰 매출을 기대하긴 어려운 곳입니다.

실제 자판기 수익은 매달 150만 원 정도 나왔는데, 그와 비슷한 할부금에 재룟값, 자영업자에게 나눠주기로 한 수익까지 배분하고 나면 매달 적자였습니다.

꽤 많은 매장에서 이렇게 적자였는데도 D사는 매달 수십에서 수백만 원의 할부금을 일정 기간 대신 내줬습니다.

자영업자들의 말, 이어서 들어보겠습니다.

[강 모 씨 / 무인 매장 사장 : 지금 생각해 보면 기계를 이만큼 무료로 대여해 주고 그만큼 매출이 발생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설치한 게 이상하다.)]

[연 모 씨 / 전 카페 사장 : 수익이 정말 만 원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그 냉동고로 전기세가 더 많이 나왔던 상황이었는데….]

[앵커]
잠적한 유통업체가 자선단체는 아닐 테고, 적자가 나면서도 이렇게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기자]
렌탈사를 통해 자판기값을 벌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렌탈사는 자동차를 구매할 때 할부를 해주는 캐피탈사나 카드사를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일시불로 차량을 구매하기는 비싸니까 카드사가 대신 자동차 제조사에 대금을 주고, 소비자들은 카드사에 원금과 이자를 매달 내는 방식인데요.

마찬가지로, D사는 자판기를 렌탈사에 판매하고, 동시에 렌탈사와 자영업자들이 할부계약을 맺도록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D 사는 본인들이 구매한 자판기값보다 많게는 두 배 가까이 비싸게 렌탈사에 팔아 차익을 얻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말은 '빌려 쓰는' 렌탈이지만, 실상은 할부 계약이어서

결국, 자영업자들은 살 생각도 없던 자판기를, 렌탈사가 높은 가격을 주고 구매한 대금에 이자까지 더해서 훨씬 더 비싸게 구매한 셈이 된 겁니다.

[앵커]
대여료도 돌려주고 재료비도 대주겠다더니 잠적해버린 유통업체에 1차 책임이 있겠지만,

렌탈사 덕분에 유통업체의 이런 사업구조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책임은 없나요?

[기자]
말씀대로 중간에 렌탈사가 없었다면, 시중 판매가보다 비싸게 할부로 자판기를 들여놓을 자영업자는 없었을 겁니다.

때문에 렌탈사가 자판기를 구매하고, 할부 계약을 진행할 때 가격은 합리적인지, 자영업자들이 실제 구매자가 맞는지 등 꼼꼼히 확인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의 목소리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이승우 / 형사 전문 변호사 : 수요가 많아서 공급이 부족한 그런 기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점들을 본다고 한다면 렌탈사에서도 정상적인 렌탈인지와 관련해서 확인을 좀 해줘야 될 거 같다.]

자영업자들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렌탈사 입장에선 시중가보다 비싸게 자판기를 사들이더라도 계약을 맺는 자영업자들에게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서 받으면 될 거라 생각해 제대로 된 확인 없이 사업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 D 사와 계약했던 한 렌탈사는 규정에 따라서 실제 자판기 설치 여부 확인 등을 거쳤다면서 지금은 D 사와의 거래 중지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할부 계약을 하는 물품의 가격이 너무 높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렌탈사들 역시 D사에게 자판기값을 다 준 상황에서 할부금 연체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완납도 불투명해져 피해가 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앵커]
잠적한 유통업체의 무리한 사업으로 자영업자도 렌탈사도 피해가 발생했는데, 수사는 이뤄지고 있나요?

[기자]
조만간 수사 주체가 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일부 자영업자들이 개별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사기 혐의로 D사에 대해 경찰서로 고소장을 제출하고 있고요.

단체대화방에서 모인 피해자들끼리 집단으로 조만간 검찰에도 고소장을 낼 계획입니다.

렌탈사들도 진상 조사를 진행 중인데, 추후 D 사를 상대로 계약 무효나 손해배상 등 소송전까지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사나 소송으로 가기 전에 피해를 예방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텐데요.

사실, 과거에도 무료 체험을 빙자해서 비싼 헬스 기구 등의 할부 계약을 맺게 하고, 몇 달 동안 대여료를 내주다가 잠적하는 비슷한 피해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납 등 자금 지원을 전제로 한 할부 계약은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승우 / 형사법 전문 변호사 : 직접 내가 렌탈 비용을 부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그 가격이 비싼지, 비싸지 않은지 이런 것들을 객관적으로 따지기 어려운 구조가 되거든요.]

일단, 렌탈비 지원을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지켜지지 않을 때의 피해를 생각해서 자기 명의로 할부 계약을 하는 건 피해야합니다.

또, 의심스럽다면 금융감독원 등에 문의하거나 신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앵커]
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사회부 윤웅성 기자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YTN 윤웅성 (yws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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