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돌연 "공사비 최대 80% 깎자"...공정위 조사

한전, 돌연 "공사비 최대 80% 깎자"...공정위 조사

2022.10.19. 오후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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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전력이 협력업체들에 공사비를 최대 80%까지 깎는 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소식, YTN이 앞서 전해드렸습니다.

새로운 계산법이 확정되면 그대로 계산해서 지급하겠다면서 반년째 공사비가 묶여 있다는데요.

이 내용 취재한 기자와 자세한 설명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우선 갈등이 있는 협력업체들이 배전 업체들이라고 하는데, 배전이 뭔지부터 설명해주시죠?

[기자]
쉽게 말씀드리면 전국 곳곳에 전신주들이 많은데 이걸 설치하고 정비하고 보수하는 일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발전소나 변전소에서 마지막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단계를 통틀어서 배전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전력은 배전서비스를 독점하지만, 공사업무는 모두 외주를 줍니다.

지역별로 입찰해서 인력이나 장비 같은 기본 자격을 갖춘 업체들과 계약을 맺는데요.

이런 업체가 모두 471개고 종사 노동자는 1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전업체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전이 급작스럽게 공사비 계산법을 바꾸자고 통보해 온 겁니다.

[앵커]
계약 도중인데, 공사비를 결과적으로 깎는 방식이라고요?

[기자]
네 지난 1월이 발단인데요.

한전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해서 안전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전신주 오를 때 사람이 직접 타고 올라가면 떨어질 위험이 있으니까 고소작업 버킷에 타는 방식으로 작업 방식을 전면 교체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4월에 갑자기, 작업 방식이 기계식으로 바뀌었으니 공사비를 계산하는 방식도 새로 만들자고 통보해 왔습니다.

문제는 이 계산법대로 하면 일부 종류 공사비가 대폭 깎인다는 건데요.

전산에 시범 적용한 대로 계산을 해보니 변압기 교체 같은 경우는 평균 76% 깎였습니다.

81만 원짜리 공사가 12만 원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전에서는 일부 종류는 공사비가 줄었지만 다른 종류 공사비는 늘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해마다 600억 원이 추가로 나갈 것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실제 한전 전산을 토대로 보면 공사비가 깎인 공정들이 단가가 더 높거나 더 자주 하는 공정입니다.

그래서 다른 공사비 오른 걸 다 고려해도 전체적으로 10% 정도 공사비가 깎인다는 게 업계의 계산입니다.

당연히 업체들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전국배전전문회사 협의회 관계자 : (계약 변경에) 수반되는 모든 절차를 다 무시하고… 그냥 하라고 하니까 독점적 지위를 악용하는 거죠, 한전은. 그러다 보니까 저희는 계속 반대를 할 수밖에 없는 거고.]

[앵커]
새 계산법 적용을 빌미로 공사비 자체도 지급을 미루고 있다고요?

[기자]
지난 4월에 계산법 변경을 통보했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이때부터 새로운 계산법이 확정되면 그대로 계산해서 주겠다면서 공사비 지급을 미루고 있습니다.

한전이 준공을 승인하면 공사비가 지급되는데 공사를 다 하고, 준공계를 비롯한 서류를 다 내도 승인을 안 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공사비를 안 받는다고 해서 공사는 안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유지보수를 위해서 전신주 공사는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생기겠죠.

그러면 한전에서 시공통보를 하는데, 이때 공사를 안 하면 불이행으로 간주 돼서 쌓이면 계약해지나 다음 입찰을 참여할 수 없는 사유가 됩니다.

결국, 업체 입장에서는 반년째 돈은 못 받으면서 공사는 공사대로 하는 셈이죠.

전체 배전업체에 대해서 이렇게 묶인 돈이 3천억 원대인데요.

한전에서는 필요한 경우 대금을 주고 있다고 하지만, 한전이 지급했다고 밝힌 돈은 700억 원만입니다.

업체들은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배전업체 이사 : (임금 지급이 밀려서) 현장 근로자들의 80∼90%가 40대에서 50대로 한 가정의 가장이신 분들이 많다 보니까 근로자들 가족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에요.]

[앵커]
그런데 계약 도중에 공사비를 일방적으로 바꾸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가요?

[기자]
취재진이 한전이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한 서류를 확보해서 들여다봤는데요.

품셈의 일방적인 변경은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검토 서류에 따르면 작업하는 방식을 바꿨으니까 설계가 변경된 것으로 봅니다.

또 설계를 바꾼 건 한전 일방적인 사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계약을 바꾸려면 상대와 의사 합치를 봐야 합니다.

그런데 회사들이 민원제기하는 마당에 설계를 바꾸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결과서를 받아들고도 한전은 계산법을 바꾸고 소급적용하자는 방침을 꺾지 않고 있습니다.

건 별로 공사를 새로 통보하고 있으니까 4월에 계산법 변경을 알린 뒤 낸 계약은
모두 '새로운 계약'이지, '계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업체들은 시공 통보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앵커]
이른바 갑질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인데 한전은 뭐라고 해명하고 있습니까?

[기자]
한전은 새 품셈을 적용하면 공사비가 늘어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또 공사업계와 새로운 계산법에 대해 모두 협의했다고 해명하고 있는데요.

우선 지금 한전과 배전업체들이 사용하는 전산에 등록된 바에 따라 계산하면 전체 공사비는 줄어듭니다.

또 한전 주장대로라면 계약 도중에 공사비를 돌연 '올려주겠다'라고 통보했다는 것인데, 업체들이 굳이 반발할 이유가 없겠죠.

한전이 업체들과 개별 협의하는 대신 협회와 협의했다고 해서 협회에도 확인했는데요.

취재 결과 한국전기공사협회에서는 지난 9월 말 한전이 업계 의견은 듣지 않고 일방적인 개정안을 강행하려 하자 협의를 모두 중단했습니다.

또 의사 합치가 안 되는데도 단독으로 계산법을 개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묻는 공문도 어제(18일) 감사실에 보낸 것을 확인했습니다.

[앵커]
이런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게 한전의 안전대책 때문이잖아요.

더 안전해지는 건 맞는 건가요?

[기자]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공사비가 줄었는데 더 안전해지기가 쉽지 않겠죠.

일단 노동자가 직접 전신주를 오르는 것보다 기계로 올라가는 방식이 추락 위험이 낮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원래 계산법에는 변압기를 들어 올리기 위한 크레인 비용이 따로 있었는데요.

한전이 전산에 올린 계산법에 따르면 이 비용은 빠져 있었습니다.

노동자가 탄 고소작업차가 있으니 거기에 매달아 올리면 되지 않느냐는 건데요.

실제로 취재진이 시연해 봤더니 무거운 변압기 때문에 크레인이 휘청이거나 경고음이 울려 작업이 중단되는 등 안전사고 위험이 드러났습니다.

고소작업차 운영 자체도 일괄적으로 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요.

서울 시내 골목길 곳곳에 있는 전신주를 예로 들자면 고소작업차 두 대 이상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지금 화면으로 보고 계시는 작업은 연습용 전신주에서 촬영된 건데요.

실제로는 전선이 서너 층으로 복잡하게 엮여 있는 곳이 많은데, 그 전선들 사이로 고소작업 버킷이 들어가서 하려면 감전 등 우려도 있습니다.

노동자들 반응을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A 씨 / 현장소장급 활선 노동자 : 작업 여건상 (전신주와 크레인 사이가) 먼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지지대와 보조 지지대가 상당히 위험하고….]

심지어 한전은 오히려 안전규제 완화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고소작업차를 최소 3년 이상 숙련공들이 타 왔습니다.

그런데 미숙련공도 20시간 교육과 시험만 거쳐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겁니다.

참고로 당장 지금도 갓 자격을 따는 배전 노동자들은 고소작업차량이 아니라 인력으로 전신주를 오르는 방식으로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있습니다.

[앵커]
법률 검토에서도 그렇고 안전 면에서도 급하게 추진하기에는 무리한 면이 있는데 이렇게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자]
일단 한전에서는 안전 때문에 작업방식을 바꿨고 계산법도 따라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업체들은 다급한 추진의 배경에 올해 30조로 예상되는 역대 최대 적자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배전 설비 예산이 2천억 원 줄었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은 배전 사업에서 1조 원 이상을 절감하기로 했습니다.

발주량이 줄어들거나 대금 지급이 미뤄지는 일도 지난 몇 년 동안 조금씩 늘어났다는 게 업계의 설명입니다.

협력업체들은 이러한 부담을 일방적으로 떠안을 수 없다는 입장인데요.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거래행위 신고를 접수해,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 4일 한전 측도 조사를 받았고 업체들도 신고보완 요청을 받아 추가 자료를 제출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조사결과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이준엽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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