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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날짜 : 2020년 1월 3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박위 크리에이터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유명 유튜브 위라클 운영자 된 박위 사연"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누구나 기적을 기다리지만, 기적이 우리 곁에 늘 숨어있다는걸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기적임을 깨닫고 희망을 전하고 있는 남자인데요. 크리에이터 박위십니다. 안녕하세요. 박위씨?
◆ 박위 크리에이터(이하 박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청취자 여러분께 박위는 누구다. 소개 좀 해드리겠습니까?
◆ 박위> 네. 청취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저는 유튜브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박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이성규> 네. 최근에 어떤 방송사에 출연하시면서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도 오르시고.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으셨는데요. 방송 이후에 많이 바빠지셨죠?
◆ 박위> 사실 그 방송이 끝난지가 그렇게 아직 오래되진 않아서. 특별히 더 많이 바빠진건 아니고요. 사실 최근에 계속 바쁘게 지내고 있는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계속 바쁨의 연속인것 같긴 합니다.
◇ 이성규> 아마 이 방송 나가시면 상당히 바빠지실 거예요. 현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소개하셨어요. 그리고 채널 이름이 위라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위라클이 어떤 의미죠?
◆ 박위> 일단 제 이름이 박위입니다. 영어로 we는 우리란 뜻이 있잖아요? 그래서we+미라클. 그래서 제가 만든 합성어인데요. 위라클이라고 “우리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의미를 담은 채널입니다.
◇ 이성규> 그렇군요. 근데 박위할때 위는 무슨 한자예요?
◆ 박위> 저는 위대할 위자.
◇ 이성규> 위대할 위자. 위라클 채널을 보니까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경비행기 조종까지 많은 장면들이 나오는데. 상당히 도전적이었습니다. 최근에도 그렇게 열심히 이것저것 도전하는 마음으로 사시나요?
◆ 박위> 네. 최대한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다만 코로나 때문에 사실 좀 제한적이긴 합니다. 근데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기 전에. 최근에 제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는 도중에 코로나가 격상되는 바람에. 지금 바다에 가기로 한게 취소가 되어가지고. 코로나가 다시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 이성규> 우울하시겠습니다. 바다도 좀 보고. 물에도 들어가시고 그래야되는데. 상당히 지금 마스크 쓰고 계셔서 그런지. 눈매나 이런쪽은 상당히 호기심이 많고 개구져보이시기도 하고 그러신데. 원래 그렇게 열심히 이것저것 좀 하고싶고. 도전하고 싶은 그런 분인거 같아요.
◆ 박위> 제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걸 좋아하는 편인거 같고요. 잘 보신거 같습니다. 저 되게 개구지고 장난치는거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거 좋아합니다.
◇ 이성규> 6년전에 사고를 당하셨다고 그랬어요. 전신마비다 그러셨는데. 지금도 휠체를 몰고는 오시네요. 그때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 박위> 간단히 말씀드리면 6년전에. 제가 28살이었습니다. 그때가 대학교 4학년. 제가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취업난이 굉장히 심했고. 저는 또 학점도 좋지 않아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때였는데.
◇ 이성규> 학점 좋지 않으신걸 보니까 상당히 도전적으로 사신.
◆ 박위> 네. 아까 잘 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취업이 어려울거라고 생각한 와중에.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분야가 패션분야였어요. 그래서 나는 패션관련 분야에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되게 우연한 기회로 외국계 패션기업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근데 거기서 또 운좋게 정직원 제의를 받게돼서 제가 덜컥 취업을 하게 됐어요. 근데 지금 계속 변명을 하고 있는 건데요. 그때 제가 일주일동안 일한 나에게 보상을 주자.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클럽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술에 만취해서 필름이 끊겨서 눈을 딱 떠보니까 중환자실이었어요. 그때 알고보니까 제가 어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낙상사고가 있어서. 목으로 떨어진거죠. 그래서 목이 부러지면서 척주신경이 완전히 손상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 이성규> 그래서 전신마비 진단이 나오셨군요. 그렇죠. 목 밑에 부분이니까. 아까 잠깐 제가 묘사를 해드렸지만 지금의 모습이 상당히 많이 발전한. 그런 모습인거 같은데. 그 과정이 막 눈에 보이는데요?
◆ 박위> 진짜요? 원래 좀 아는게 없는 사람들이 낙천적인거 같습니다. 저처럼. 저는 굉장히 성격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편이에요. 그래서 사실 처음에 전신마비라는 진단이 내렸을때. 그렇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사실 어떻게 보면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워서 그랬을수도 있을거 같은데. 그런것보다는 단순하게. 아냐. 난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저는 또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일어날거야.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물론 현실은 굉장히 냉혹했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 누워서 누군가 밥을 떠먹여줘야했고. 대소변도 가족이 침대에서 다 받아내야만 했고.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 이성규> 그렇게 한 6년만에 양손으로 휠체어를 미실때까지는 얼마나 걸렸어요?
◆ 박위> 그래도 한 1년 정도는 걸린 것 같아요. 물론 이게 정말 차츰차츰 좋아졌는데. 스스로는 얼마나 좋아졌는지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좋아졌거든요. 1년이 지나면서부터는 굉장히 느리게. 지금까지 이렇게 좋아진거 같습니다.
◇ 이성규> 그 과정에서 1년후. 지금까지 5년이 되네요. 그동안에 가족, 친지, 친구. 이분들과 나름대로 어려운 소통관계가 있었을거 같은데. 그때 어떠한 말씀이 힘이 됐고. 어떤게 좀. 여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박위> 사실 제가 워낙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재활을 할때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제가 전신마비를 겪기 전이랑 대화의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굉장히 일상적이고 희망찬 내용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내용이 딱 떠오르진 않네요. 근데 그런건 있었던거 같아요. 위야 우리 다시 축구하자. 다시 일어나서 여행하자. 이런 말들을 하면 그냥 그런 말들이 저한테 항상 희망이 됐던 것 같아요.
◇ 이성규> 축구하자. 여행가자. 그런 말씀도 들으실때도 있지만. 또 본인이 주변에 하신 말씀도 있었을거 같아요?
◆ 박위> 특히 부모님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왜냐면 제가 그때 경제적으로 스스로 완전히 독립하는 시기였던 것 같은데. 나도 부모님께 효도를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던 시기였는데. 그때 전신마비가 되니까 거의 3살짜리 아이로 돌아가버린거였거든요. 특히 저는 그때 그런 걸 느꼈어요. 침대에서 아버지가 제 대변을 받아주시는 날이 있었는데. 밤에 제가 몰래 울었어요. 이런 상황이 너무 아버지께 죄송해서. 그때는 항상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꼭 재활해서 스스로 돈 벌어서 효도해드릴테니까 걱정하지 말라.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게 실현이 되고 있나요?
◆ 박위> 이뤄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 이성규> YTN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이 주인공은 기적의 사나이. 희망을 전하는 남자 박위씨입니다. 우리가 이쯤에서는 꼭 게스트 분들께서 노래 하나 추천하십니다. 어떤 노래 추천하시겠어요?
◆ 박위> 저는 브라이언 존슨의 LOVE CAME DOWN이라는 노래. 추천드리겠습니다.
◇ 이성규> 사랑이 내려왔다.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 박위> 제가 마음이 좀 어렵거나 지칠때. 제가 운전하는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차 안에서 이 노래를 조금 오버보태서. 천번 들은거 같아요.
◇ 이성규> 네. 그럼 브라이언 존슨의 LOVE CAME DOWN을 듣고 다시 오겠습니다. 네. 방금 듣고 오신 노래는 브라이언 존슨의 LOVE CAME DOWN이었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희망과 기적을 전하는 남자 박위씨입니다. 사고 이후에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이것 저것 있으셨을거 같은데. 새롭게 배우고 했던 것들이 어떤게 있었습니까?
◆ 박위> 아무래도 모든 것들이 저한테는 새로웠던 거 같아요.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불가능해졌었기 때문에. 예를들어 제가 스스로 숟가락으로 밥을 먹거나. 젓가락질해서 반찬을 집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는 그런 모든 일상들이 저한테는 다시 새롭게 배우게 된거 같아요. 예를들면 대소변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모든 상황을 가족들한테 의존을 했다면. 그런 방법도 몸이 좋아지면서. 재활하면서 새롭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고요. 그렇게 재활이 좀 되고 나서 제가 유튜브라는 것을.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면서는 편집도 처음 제가 배우게된거 같고요. 그리고 저한테 좀 특별한게 있다면. 강연을 나갈 수 있다는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는거? 그런 것들이 저한텐 되게 특별한거 같습니다. 일단 사실은 제가 이런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게 될줄은 사실 생각을 한적이 없었는데요. 제가 재활병원에 입원해있을때. 제가 매일 밤마다 조그만 기도실에 가서 기도를 했어요. 기도제목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일으켜달라. 이렇게 기도를 했었는데. 물론 저만을 위해서 기도를 했었죠. 그런데 어느날 저의 옆에 있는 병실에 다른 환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근데 그때 저는 상대적으로 경중환자였습니다. 다른 분들에 비해서. 그래서 그분들의 어떤 안타까운 상황과. 또 그의 가족들, 지인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제 안에 그런 마음이 생긴거 같아요. 한번은 제가 그분들을 위해서 한시간동안 울면서 기도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 안에 들었던 마음이. 아, 내가 정말 이런 사람들한테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사실 육체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말고도. 요즘 세상에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럼 나는 그분들한테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 라는 어떤 결심을 하게된거 같아요. 그러면서 어느날 이런게 떠올랐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 유튜브다.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그러셨군요. 근데 그렇게 시작하다 보니까 이제 세월도 조금씩 흘러가고 있는데. 궁극적 목표는 뭘까요?
◆ 박위> 저는 처음에 이 채널의 목표는 사람을 살리자였어요. 저는 제가 전신마비가 된 상황이 무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세상 사람들이 봤을때, 전신마비가 됐다는 것은 참 굉장히 극한의 고통의 상황이고. 정말 암울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제가 그냥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제 상황을 이용해서. 이런 모습을 위라클 채널에 노출시켜서. 사람들이 희망과 용기를 받고. 살려는 의지를 갖게되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던거 같아요.
◇ 이성규> 근데 이건 집안얘긴데요. 아버님 피를 좀 받으신 거 같아요? 아버님께서도 드라마를 많이 제작하셨던데. 크리에이션 과정에서 이런 저런 조언을 좀 해주시나요?
◆ 박위> 제가 사실 저희 아버지한테 그런 잔소리 같은걸 듣기 싫어하는 편이어서. 의외로 조언을 잘 안구하는 편이고요. 저는 제가 제 마음대로 하는 편입니다. 근데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버지께 여쭤보는 부분도 있는거 같아요. 요즘에는. 처음에는 관련해서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 이성규> 근데 방송 인터뷰 중에. 어떤 말씀이 기억나요.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사람한테는 자기자신의 희망과 의지.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아들 박위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건 엄청난 울림과 무게가 있는 말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원동력.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박위> 일단 저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저의 신앙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된거 같고요. 또 제가 태생적으로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거 같긴 하지만. 저도 단순히 긍정적이어서 이렇게 희망과 의지를 가지고 사는 건 아닌거 같아요. 저도 긍정적이려고 항상 노력을 하거든요. 항상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긍정적이려고 생각하는 노력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이런 희망과 의지를 갖게 된것 같습니다.
◇ 이성규> 얼마전이에요. 사실은 2019년, 장애인 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이쪽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으셨던데. 그때 제작했던 영상이 어떤거예요?
◆ 박위> 이 영상은 특별한건 아니고요. 이 영상의 제목은 당신의 생각을 제한하는 것이 장애입니다. 라는 이런 제목의 영상이었어요. 진짜 장애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중에. 어떤 육체적인 한계가 장애로 저는 다가오지 않았어요. 우리들의 가지고 있는 생각들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내 삶에, 나의 능력에, 생각에 제한을 둘때. 그게 곧 저는 장애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우리들의 생각을 깨자. 해서 만든 영상이 그런 영상이었고요. 영상의 내용은 그냥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1분 30초짜리 영상이었습니다.
◇ 이성규> 우리 박위씨가 생각하시기에 장애인에 관련된 사회적 인식. 이 부분이 어느 상태라고 생각하세요?
◆ 박위> 솔직히 저도 제가 다치기 전에는 장애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다치고 전신마비가 되니까. 이제야 비로소 이런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제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우리나라 사회가. 이런 장애가 있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아직 따뜻한 시선이 존재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다치고 6년동안 살아보면서 분명히 나아지고 있는 점은 있는거 같아요. 제도적이나 여러가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 이성규> 네. 그래도 조금 더 바뀌어야겠죠?
◆ 박위> 많이 남았죠.
◇ 이성규> 위라클 채널을 통해서 상당히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하고 계신데. 제일 그래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도전. 그게 어떤 것이 있을까요?
◆ 박위> 다치기 전에 스카이 다이빙을 한 적이 있어요. 배낭여행할때. 상징적일 수 있는데. 저는 스카이 다이빙을 한번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 이성규> 스카이 다이빙. 그게 가능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젠가.
◆ 박위> 네. 감사합니다.
◇ 이성규> 그리고 어디서 보니까 방송도 진행하고 싶다. 이런데 관심을 보였는데. 많은 진행자들이 좀 긴장해야되지 않을까. 오늘 방송이 사실 새해들어 첫방송입니다.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한번 밝혀주시죠.
◆ 박위> 어떤 특정한 목표가 있다기 보다는. 제가 이것 저것 하는 일이 많은 거 같아요. 근데 그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제가 예전에는 이 채널이 좀 사람들한테 알려지기전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좀 많이 만났었어요. 어려움에 계신 분들을 직접 만나고 했는데.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여러가지 여건 상 그러지 못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가 좀 잦아들어서 제가 어려운 분들을 시간을 내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시간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 이성규> 기적을 전하는 남자. 박위씨께서 요즘 여러모로 힘든 청취자 여러분들께 한말씀 하시죠. 마지막.
◆ 박위> 저는 제가 다치기 전에는 걷고 뛰고. 내 손으로 밥먹고. 그런 일상들이 저는 감사하다고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다치고 나서. 전신마비가 되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일상들이 불가능해지면서. 이제야 비로소 과거의 나의 일상이 정말 감사하고 기적같은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께서. 내게 없고 부족한 것을 바라보지 마시고. 내게 있는 것.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힘내십시오.
◇ 이성규> 네. 올해 첫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희망을 전하는 남자 박위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박위씨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박위>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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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2020년 1월 3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박위 크리에이터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유명 유튜브 위라클 운영자 된 박위 사연"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누구나 기적을 기다리지만, 기적이 우리 곁에 늘 숨어있다는걸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기적임을 깨닫고 희망을 전하고 있는 남자인데요. 크리에이터 박위십니다. 안녕하세요. 박위씨?
◆ 박위 크리에이터(이하 박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청취자 여러분께 박위는 누구다. 소개 좀 해드리겠습니까?
◆ 박위> 네. 청취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저는 유튜브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박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이성규> 네. 최근에 어떤 방송사에 출연하시면서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도 오르시고.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으셨는데요. 방송 이후에 많이 바빠지셨죠?
◆ 박위> 사실 그 방송이 끝난지가 그렇게 아직 오래되진 않아서. 특별히 더 많이 바빠진건 아니고요. 사실 최근에 계속 바쁘게 지내고 있는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계속 바쁨의 연속인것 같긴 합니다.
◇ 이성규> 아마 이 방송 나가시면 상당히 바빠지실 거예요. 현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소개하셨어요. 그리고 채널 이름이 위라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위라클이 어떤 의미죠?
◆ 박위> 일단 제 이름이 박위입니다. 영어로 we는 우리란 뜻이 있잖아요? 그래서we+미라클. 그래서 제가 만든 합성어인데요. 위라클이라고 “우리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의미를 담은 채널입니다.
◇ 이성규> 그렇군요. 근데 박위할때 위는 무슨 한자예요?
◆ 박위> 저는 위대할 위자.
◇ 이성규> 위대할 위자. 위라클 채널을 보니까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경비행기 조종까지 많은 장면들이 나오는데. 상당히 도전적이었습니다. 최근에도 그렇게 열심히 이것저것 도전하는 마음으로 사시나요?
◆ 박위> 네. 최대한 새로운 도전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요. 다만 코로나 때문에 사실 좀 제한적이긴 합니다. 근데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기 전에. 최근에 제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는 도중에 코로나가 격상되는 바람에. 지금 바다에 가기로 한게 취소가 되어가지고. 코로나가 다시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 이성규> 우울하시겠습니다. 바다도 좀 보고. 물에도 들어가시고 그래야되는데. 상당히 지금 마스크 쓰고 계셔서 그런지. 눈매나 이런쪽은 상당히 호기심이 많고 개구져보이시기도 하고 그러신데. 원래 그렇게 열심히 이것저것 좀 하고싶고. 도전하고 싶은 그런 분인거 같아요.
◆ 박위> 제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걸 좋아하는 편인거 같고요. 잘 보신거 같습니다. 저 되게 개구지고 장난치는거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거 좋아합니다.
◇ 이성규> 6년전에 사고를 당하셨다고 그랬어요. 전신마비다 그러셨는데. 지금도 휠체를 몰고는 오시네요. 그때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 박위> 간단히 말씀드리면 6년전에. 제가 28살이었습니다. 그때가 대학교 4학년. 제가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취업난이 굉장히 심했고. 저는 또 학점도 좋지 않아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때였는데.
◇ 이성규> 학점 좋지 않으신걸 보니까 상당히 도전적으로 사신.
◆ 박위> 네. 아까 잘 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취업이 어려울거라고 생각한 와중에.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분야가 패션분야였어요. 그래서 나는 패션관련 분야에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되게 우연한 기회로 외국계 패션기업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근데 거기서 또 운좋게 정직원 제의를 받게돼서 제가 덜컥 취업을 하게 됐어요. 근데 지금 계속 변명을 하고 있는 건데요. 그때 제가 일주일동안 일한 나에게 보상을 주자.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클럽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술에 만취해서 필름이 끊겨서 눈을 딱 떠보니까 중환자실이었어요. 그때 알고보니까 제가 어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낙상사고가 있어서. 목으로 떨어진거죠. 그래서 목이 부러지면서 척주신경이 완전히 손상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 이성규> 그래서 전신마비 진단이 나오셨군요. 그렇죠. 목 밑에 부분이니까. 아까 잠깐 제가 묘사를 해드렸지만 지금의 모습이 상당히 많이 발전한. 그런 모습인거 같은데. 그 과정이 막 눈에 보이는데요?
◆ 박위> 진짜요? 원래 좀 아는게 없는 사람들이 낙천적인거 같습니다. 저처럼. 저는 굉장히 성격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편이에요. 그래서 사실 처음에 전신마비라는 진단이 내렸을때. 그렇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사실 어떻게 보면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워서 그랬을수도 있을거 같은데. 그런것보다는 단순하게. 아냐. 난 일어날 수 있어. 그리고 저는 또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일어날거야.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물론 현실은 굉장히 냉혹했죠.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 누워서 누군가 밥을 떠먹여줘야했고. 대소변도 가족이 침대에서 다 받아내야만 했고.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 이성규> 그렇게 한 6년만에 양손으로 휠체어를 미실때까지는 얼마나 걸렸어요?
◆ 박위> 그래도 한 1년 정도는 걸린 것 같아요. 물론 이게 정말 차츰차츰 좋아졌는데. 스스로는 얼마나 좋아졌는지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좋아졌거든요. 1년이 지나면서부터는 굉장히 느리게. 지금까지 이렇게 좋아진거 같습니다.
◇ 이성규> 그 과정에서 1년후. 지금까지 5년이 되네요. 그동안에 가족, 친지, 친구. 이분들과 나름대로 어려운 소통관계가 있었을거 같은데. 그때 어떠한 말씀이 힘이 됐고. 어떤게 좀. 여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박위> 사실 제가 워낙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재활을 할때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제가 전신마비를 겪기 전이랑 대화의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굉장히 일상적이고 희망찬 내용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내용이 딱 떠오르진 않네요. 근데 그런건 있었던거 같아요. 위야 우리 다시 축구하자. 다시 일어나서 여행하자. 이런 말들을 하면 그냥 그런 말들이 저한테 항상 희망이 됐던 것 같아요.
◇ 이성규> 축구하자. 여행가자. 그런 말씀도 들으실때도 있지만. 또 본인이 주변에 하신 말씀도 있었을거 같아요?
◆ 박위> 특히 부모님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왜냐면 제가 그때 경제적으로 스스로 완전히 독립하는 시기였던 것 같은데. 나도 부모님께 효도를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던 시기였는데. 그때 전신마비가 되니까 거의 3살짜리 아이로 돌아가버린거였거든요. 특히 저는 그때 그런 걸 느꼈어요. 침대에서 아버지가 제 대변을 받아주시는 날이 있었는데. 밤에 제가 몰래 울었어요. 이런 상황이 너무 아버지께 죄송해서. 그때는 항상 부모님께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꼭 재활해서 스스로 돈 벌어서 효도해드릴테니까 걱정하지 말라.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게 실현이 되고 있나요?
◆ 박위> 이뤄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 이성규> YTN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이 주인공은 기적의 사나이. 희망을 전하는 남자 박위씨입니다. 우리가 이쯤에서는 꼭 게스트 분들께서 노래 하나 추천하십니다. 어떤 노래 추천하시겠어요?
◆ 박위> 저는 브라이언 존슨의 LOVE CAME DOWN이라는 노래. 추천드리겠습니다.
◇ 이성규> 사랑이 내려왔다.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 박위> 제가 마음이 좀 어렵거나 지칠때. 제가 운전하는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차 안에서 이 노래를 조금 오버보태서. 천번 들은거 같아요.
◇ 이성규> 네. 그럼 브라이언 존슨의 LOVE CAME DOWN을 듣고 다시 오겠습니다. 네. 방금 듣고 오신 노래는 브라이언 존슨의 LOVE CAME DOWN이었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희망과 기적을 전하는 남자 박위씨입니다. 사고 이후에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이것 저것 있으셨을거 같은데. 새롭게 배우고 했던 것들이 어떤게 있었습니까?
◆ 박위> 아무래도 모든 것들이 저한테는 새로웠던 거 같아요.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불가능해졌었기 때문에. 예를들어 제가 스스로 숟가락으로 밥을 먹거나. 젓가락질해서 반찬을 집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는 그런 모든 일상들이 저한테는 다시 새롭게 배우게 된거 같아요. 예를들면 대소변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모든 상황을 가족들한테 의존을 했다면. 그런 방법도 몸이 좋아지면서. 재활하면서 새롭게 하는 방법을 터득했고요. 그렇게 재활이 좀 되고 나서 제가 유튜브라는 것을.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면서는 편집도 처음 제가 배우게된거 같고요. 그리고 저한테 좀 특별한게 있다면. 강연을 나갈 수 있다는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는거? 그런 것들이 저한텐 되게 특별한거 같습니다. 일단 사실은 제가 이런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게 될줄은 사실 생각을 한적이 없었는데요. 제가 재활병원에 입원해있을때. 제가 매일 밤마다 조그만 기도실에 가서 기도를 했어요. 기도제목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일으켜달라. 이렇게 기도를 했었는데. 물론 저만을 위해서 기도를 했었죠. 그런데 어느날 저의 옆에 있는 병실에 다른 환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근데 그때 저는 상대적으로 경중환자였습니다. 다른 분들에 비해서. 그래서 그분들의 어떤 안타까운 상황과. 또 그의 가족들, 지인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제 안에 그런 마음이 생긴거 같아요. 한번은 제가 그분들을 위해서 한시간동안 울면서 기도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 안에 들었던 마음이. 아, 내가 정말 이런 사람들한테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사실 육체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말고도. 요즘 세상에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럼 나는 그분들한테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 라는 어떤 결심을 하게된거 같아요. 그러면서 어느날 이런게 떠올랐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 유튜브다.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그러셨군요. 근데 그렇게 시작하다 보니까 이제 세월도 조금씩 흘러가고 있는데. 궁극적 목표는 뭘까요?
◆ 박위> 저는 처음에 이 채널의 목표는 사람을 살리자였어요. 저는 제가 전신마비가 된 상황이 무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세상 사람들이 봤을때, 전신마비가 됐다는 것은 참 굉장히 극한의 고통의 상황이고. 정말 암울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제가 그냥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제 상황을 이용해서. 이런 모습을 위라클 채널에 노출시켜서. 사람들이 희망과 용기를 받고. 살려는 의지를 갖게되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던거 같아요.
◇ 이성규> 근데 이건 집안얘긴데요. 아버님 피를 좀 받으신 거 같아요? 아버님께서도 드라마를 많이 제작하셨던데. 크리에이션 과정에서 이런 저런 조언을 좀 해주시나요?
◆ 박위> 제가 사실 저희 아버지한테 그런 잔소리 같은걸 듣기 싫어하는 편이어서. 의외로 조언을 잘 안구하는 편이고요. 저는 제가 제 마음대로 하는 편입니다. 근데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버지께 여쭤보는 부분도 있는거 같아요. 요즘에는. 처음에는 관련해서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 이성규> 근데 방송 인터뷰 중에. 어떤 말씀이 기억나요.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사람한테는 자기자신의 희망과 의지.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아들 박위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건 엄청난 울림과 무게가 있는 말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원동력.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박위> 일단 저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저의 신앙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된거 같고요. 또 제가 태생적으로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거 같긴 하지만. 저도 단순히 긍정적이어서 이렇게 희망과 의지를 가지고 사는 건 아닌거 같아요. 저도 긍정적이려고 항상 노력을 하거든요. 항상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긍정적이려고 생각하는 노력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이런 희망과 의지를 갖게 된것 같습니다.
◇ 이성규> 얼마전이에요. 사실은 2019년, 장애인 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이쪽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으셨던데. 그때 제작했던 영상이 어떤거예요?
◆ 박위> 이 영상은 특별한건 아니고요. 이 영상의 제목은 당신의 생각을 제한하는 것이 장애입니다. 라는 이런 제목의 영상이었어요. 진짜 장애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중에. 어떤 육체적인 한계가 장애로 저는 다가오지 않았어요. 우리들의 가지고 있는 생각들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내 삶에, 나의 능력에, 생각에 제한을 둘때. 그게 곧 저는 장애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우리들의 생각을 깨자. 해서 만든 영상이 그런 영상이었고요. 영상의 내용은 그냥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1분 30초짜리 영상이었습니다.
◇ 이성규> 우리 박위씨가 생각하시기에 장애인에 관련된 사회적 인식. 이 부분이 어느 상태라고 생각하세요?
◆ 박위> 솔직히 저도 제가 다치기 전에는 장애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다치고 전신마비가 되니까. 이제야 비로소 이런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제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우리나라 사회가. 이런 장애가 있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아직 따뜻한 시선이 존재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다치고 6년동안 살아보면서 분명히 나아지고 있는 점은 있는거 같아요. 제도적이나 여러가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 이성규> 네. 그래도 조금 더 바뀌어야겠죠?
◆ 박위> 많이 남았죠.
◇ 이성규> 위라클 채널을 통해서 상당히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하고 계신데. 제일 그래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도전. 그게 어떤 것이 있을까요?
◆ 박위> 다치기 전에 스카이 다이빙을 한 적이 있어요. 배낭여행할때. 상징적일 수 있는데. 저는 스카이 다이빙을 한번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 이성규> 스카이 다이빙. 그게 가능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젠가.
◆ 박위> 네. 감사합니다.
◇ 이성규> 그리고 어디서 보니까 방송도 진행하고 싶다. 이런데 관심을 보였는데. 많은 진행자들이 좀 긴장해야되지 않을까. 오늘 방송이 사실 새해들어 첫방송입니다. 올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한번 밝혀주시죠.
◆ 박위> 어떤 특정한 목표가 있다기 보다는. 제가 이것 저것 하는 일이 많은 거 같아요. 근데 그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제가 예전에는 이 채널이 좀 사람들한테 알려지기전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좀 많이 만났었어요. 어려움에 계신 분들을 직접 만나고 했는데.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여러가지 여건 상 그러지 못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가 좀 잦아들어서 제가 어려운 분들을 시간을 내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시간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 이성규> 기적을 전하는 남자. 박위씨께서 요즘 여러모로 힘든 청취자 여러분들께 한말씀 하시죠. 마지막.
◆ 박위> 저는 제가 다치기 전에는 걷고 뛰고. 내 손으로 밥먹고. 그런 일상들이 저는 감사하다고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다치고 나서. 전신마비가 되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일상들이 불가능해지면서. 이제야 비로소 과거의 나의 일상이 정말 감사하고 기적같은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께서. 내게 없고 부족한 것을 바라보지 마시고. 내게 있는 것.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힘내십시오.
◇ 이성규> 네. 올해 첫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희망을 전하는 남자 박위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박위씨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박위>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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