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미혼모로 아이를 낳겠다 했더니..."

"15년 전 미혼모로 아이를 낳겠다 했더니..."

2020.12.07. 오후 3:0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15년 전 미혼모로 아이를 낳겠다 했더니..."
AD
[이성규의 행복함 쉼표, 잠시만요]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0년 12월 06일 (일요일)
■ 대담 : 최형숙 미혼모 협회 인트리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이하 이성규)>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렵지만 한 걸음씩 천천히 변화의 발걸음을 이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 협회, 인트리의 최형숙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최대표님, 반갑습니다.

◆ 최형숙 미혼모 협회 인트리 대표(이하 최형숙)>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인사 한 번 하시죠.

◆ 최형숙> 네, 저는 미혼모 협회 인트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형숙이고요. 준서 엄마로 16년, 한 남자의 아내로 6년차 살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렇습니까. 지금 제가 인트리라고 소개를 올렸는데요. 인트리가 어떤 협회입니까?

◆ 최형숙> 저희 인트리는 미혼모 분들이 만드신 당사자 단체고요. 회비를 내시고 단체가 그 회비로 운영이 되고 있는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 이성규> 비영리 민간단체. 인트리 그래서 저는 인트리가 뭔가 했는데요. 찾아보니 사람인자에 나무 트리,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한자와 영어의 조합이던데, 어떤 의도와 뜻을 갖고 이렇게 명명하셨어요?

◆ 최형숙> 인트리라는 이름은, 7년 전에 지을 때 미혼모들이 같이 고민하고 지었는데요. 사람인 자에 나무 트리인데, 한 여성이 엄마가 됨으로써 한 아이를 큰 나무로 성장시키자. 나도 이 아이로 인해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 라고 해서 사람인 자에 나무 트리 해서 인트리로 지었습니다.

◇ 이성규> 사실 족보라는 것도 패밀리 트리잖아요. 그 트리를 생각하신 건가요?

◆ 최형숙> 글쎄요.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했는데요. 저희 진짜 단순하게 지었거든요. 아이와 나. 그리고 성장하자. 어찌 보면 풍성한 나무로 잘 키워내자는 의미가 많이 담긴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러시군요. 현재 협회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7,8년 됐다고 말씀하셨어요.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하시나요?

◆ 최형숙> 맨 먼저, 주 목적이 미혼모 가족의 사회적 인식 변화.

◇ 이성규> 사회적 인식 변화.

◆ 최형숙> 왜냐하면 미혼모 하면.

◇ 이성규> 미혼모 가정에 대한.

◆ 최형숙> 미혼모 하면 안 좋게 생각하시는 분이 너무 많잖아요. 아직까지도. 제가 아이 낳은 15년 전보다는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미혼모 하면 뭔가 잘못 저지른 사람, 어리고 불쌍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일단 미혼모 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을 맨 앞에 세워서 하고 있고 또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우려면 스스로도 역량을 키워야 하잖아요. 그래서 엄마들 함께 모여서 교육도 하고, 위기 지원도 하고.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고 가족이 되어 주기도 하고. 그렇게 주로는 그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사무실도 있고 교육장도 있고, 봄날이라고, 상담소도 운영하고 있어요.

◇ 이성규> 봄날. 사무실은 어디쯤 있습니까?

◆ 최형숙> 저희 사무실은 종로구에 있고요. 창덕궁 바로 건너편에 골목 안에 사무실이 있어요.

◇ 이성규> 봄날이라고 프로그램 이름을 붙이셨는데. 따뜻하다, 그 말씀이시죠?

◆ 최형숙> 엄마들의 삶이 봄날, 그 햇살처럼 따뜻한 삶이 됐으면 좋겠다고 해서 미혼 엄마들이 공모를 통해 엄마들이 지은 이름이에요. 봄날.

◇ 이성규> 원래 협회를 만들거나 비영리 단체를 만들고 이런 분들을 보면 처음에 어떤 계기들이 있어요. 아픔이 있거나 어려움이 있거나. 그걸 풀기 위해서 궁리를 하다가 이런 일들을 하게 되는데, 최대표님 경우는 어떠셨습니까?

◆ 최형숙> 저도 제 문제를 풀기 위해 단체를 만들게 된 거죠. 저는 34살에 임신하고 애를 낳았거든요. 35살에 아이를 낳았는데. 저도 결혼하지 않고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아이를 지금까지 키우고 있으니까.

◇ 이성규> 아이가 몇 살인가요?

◆ 최형숙> 16살. 저 혼자 아이를 낳았는데 저는 우리나라에서 미혼모 분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은 다 겪은 것 같아요. 제가 임신했을 때 누구도 제 임신과 출산을 동의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아도 제가 선택할 수 있었는데 누구도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네 맘대로 해라, 라는 소리를 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정말 임신 중단도 생각해봤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했을 때, 제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에 누구도 잘하고 있다거나 도와줄게, 라는 말을 해주지 않아서. 저는 아이를 낳고 입양을 보냈다가 다시 데리고 와서 그런 지난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지금 이 단체를 만들게 된 계기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엄마들이 저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 이성규> 그럼 힘들었던 미혼모 최형숙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몇 분 동안. 2005년이었네요. 말씀하셨듯이. 34살에 미혼모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미혼모가 되는 과정에서, 상당히 힘드시고 그러셨을텐데, 그때 회상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 최형숙> 사실 저는 되게 자신있게 살거든요. 되게. 너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월이 지나면 그때 힘듦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더라고요. 아이가 16살에 이만큼 키워놨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낳지 않으려고 했던 거. 입양 보내려고 했던 거 그 모든 과정이 아이에게 미안함이 있고. 너무 외로웠어요. 가족들도 절 안 봐주셨고. 절친하다는 후배 친구들조차도 단절되고 나니까 임신하기 전과 임신하기 후, 그 삶이 공간이동을 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아무도 없는 데서.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때는 끝없는 깜깜한 터널을 계속 걸어가는 기분? 그러고 다시 햇빛이 드는 길로 나오면 다시 터널이 생기고. 그래서 늘 외롭고 늘 힘들고, 울기도 굉장히 많이 울고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돈 벌어서 아이를 키워야 하니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집 오고. 딱 그거 말고는 나를 돌볼 시간도 없었고. 지금도 엄마들이 그럴 텐데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는.

◇ 이성규> 아까 말씀하셨는데 누구의 아내가 된지 6년차다.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셨다고 봐야 되는 건지요. 지금은 어떠십니까?

◆ 최형숙> 저는 6년 됐고요. 한 4년 연애 하고 만나다가 결혼한지 5년 됐고요. 아이랑 세 식구가 알콩달콩 잘 살고 있어요.

◇ 이성규> 그러시군요. 새로운 이 분 만나셔서 4년 간 지내시고 결혼하실 때도 나름대로 추억거리가 많았겠습니다.

◆ 최형숙> 지금 결혼한 남편이 저희 단체에 봉사활동을 온 분이셨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저희 아이와 더 친했었어요. 사귀게 됐을 때, 사실 결혼이 쉬운 일이 아니고 아이가 있으니 더 어렵죠. 그리고 아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분이기도 하니까 아이에게 먼저 물어봤거든요. 아이가 7살 때 사귀기 시작했으니까. 삼촌이랑 엄마랑 특별한 친구가 되려고 하는데 괜찮겠니? 라고 했을 때 저희 아이의 반응이 오예~ 이거였어요. 그래서 추억도 많고, 서로 굉장히 배려해주는 사람이라.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이성규> 그러시군요. 그런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15년 전에 힘들었던 부분의 일부분인데요. 뭔가 제도적인 지원, 미혼모들에 대한. 이 부분이 상당히 열악하다 못해 척박했지 않아요?

◆ 최형숙> 네, 15년 전에는. 정부 지원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낳는 거는 그때는 낳을 때도 지금은 임신하면 카드를 주거든요. 모든 여성들에게. 그때는 그것조차 없었어요. 제도권 안에서는 아무것도 지원할 수 없는 그런 사회에서 애를 딱 낳은 거죠. 너무 힘들었죠.

◇ 이성규> 제가 90년대에 런던에서 공부했는데요. 그때 그 나라에서 태어나는 그 모든 생명들은 장례에 납세자다, 생각하고 나라에서 열심히 거둬서 키우는 걸 봤었는데. 참. 그런데 우리나라를 보면 답답한 게, 국내외 입양아도 90%가 미혼모 가정의 아동이라고 들었거든요. 입양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결정하시기까지는 말씀하신 어려움이 누적돼서 그러셨겠죠?

◆ 최형숙> 네. 그리고 제가 사실 34살이면 사회생활도 해 봤고, 저는 정말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거든요. 언니, 오빠 있고. 부모님 아직 살아계시고. 그런데 입양을 고려하고, 입양을 보내려고 했던 이유가 제가 임신했을 때 누구도 제 임신에 동의라고 해야 하나요. 출산을. 존중해주지 않았어요. 제 선택을. 그런데 제가 입양을 고려한 이유는 돈도 벌 수 있었고.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한테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한국사회에서는 아비가 없는 아이가, 얼마나 불행하게 자랄 거라는 걸 모르고 있느냐. 라고. 그런데 그게 겁이 났어요. 내가 혼자 키우면 아빠가 없는데, 그럼 이 애가 불행해지겠구나. 그냥 그거에 꽂혀서 정말 그 당시에는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양을 고려했었고요. 사실 국내외 입양아동 90%이상이 미혼모 자녀가 맞아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안 사실인데 지난 해에 해외 입양 간 아동 100%가, 100%가 미혼모 자녀래요. 해외 입양이. 되게 충격적이죠.

◇ 이성규> 그런데 그 힘들었을 때 여성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셨더라고요. 원래 전공은 무엇이었어요?

◆ 최형숙> 경영학 전공했죠.

◇ 이성규> 경영학 하셨고. 여성학하고 공부하시면서 약간 어려움에 대한 개념적 해결책, 이런 걸 찾으셨나요?

◆ 최형숙> 제가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제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거든요. 미혼모 다큐 영화. 제가 주인공이었어요. 그게 개봉이 되고 나서 아이가 학교 다니는데 엄마들이 알아보더라고요. 쟤네 엄마 미혼모야. 이런 게 있어서 활동을 잠시 스톱했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정말 열심히 활동하던 사람이 집에서 노니까 할 게 없잖아요. 너무 무기력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여성주의 공부를 하는 스터디 프로그램이 있어서 시작했는데 저하고는 처음에 되게 안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엄마잖아요. 엄마로 삶을 시작하면서 공부도 다시 시작했는데, 엄마의 삶보다 여성인 네 삶이 더 중요하다. 네가 행복해야 한다. 이래야 하니까 뭐지? 이러다가 그래도 하나는 얻을 게 있겠지, 하고 시작했는데. 저는 그 공부를 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거니까.

◇ 이성규> 본인이 달라지기도 했겠네요?

◆ 최형숙> 저 많이 달라졌죠.

◇ 이성규> YTN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미혼모 협회 인트리 대표 최형숙 씨입니다. 아까 인구보건협회에서 실시한 미혼모 관련 조사를 보니까요. 82.7%비율이 사회로부터 부정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을 했어요. 아까 말씀하신 거랑 비슷한데. 미혼모인 분들을 옆에서 봤을 때, 옆에서 봤을 때 본인의 것들을 그쪽에 이입시키지 않더라도 어떤 부분들이 제일 힘들다고 말씀하시던가요?

◆ 최형숙> 오늘 여기 올 때, 합정역까지 어린 청소년 엄마가 같이 타고 왔거든요. 오전에 자기 진로 문제 때문에 오전에 잠깐 저희 사무실 들르겠다 해서 얘기 좀 하자. 방향이 생기겠지, 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그 분의 삶에서 어떤 게 제일 힘든지가 답이 있어요. 이 친구는 16살에 아이를 낳았거든요. 중학교 때. 지금 7살인데 잘 키웠어요. 내년에 학교를 보내는데요. 지금도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 눈물이 먼저 흐르는 친구거든요. 뭐가 제일 힘드냐고 하면 애가 애를 낳았네? 그리고 왜 사고를 쳐서 애를 낳았냐. 쯧쯧, 불쌍하다. 그것이 사실 가장 힘들어서 저희 단체로 인식 개선을 먼저 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미혼모 하면 문란할 것이다. 사고를 쳤을 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들 많이 갖고 계셔서. 그게 제일 힘들어요. 그 부분이.

◇ 이성규> 청소년 엄마들의 경우가, 그게 참 힘들겠군요. 그런데 최근 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신생아를 월 20만 원에 입양보낸다. 이런 게 하나 나왔었죠. 그래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데. 미혼모 영아 유기 문제. 이런 것과 연결이 되면서 말들이 많았어요. 이 사건은 어떻게 보세요?

◆ 최형숙> 일단 20만 원에 아이를 판다는 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200만 원도 아니고 20만 원? 이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에 너무 파장이 컸어요. 당근마켓 20만 원. 이게 미혼모. 너무 컸는데 사실 이 분은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심리적인 문제가 굉장히 컸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는 태어났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 사실 아이를 팔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이렇게 올리지 않았을 거고. 사실 유기, 살해 이런 거 굉장히 많이 나오잖아요. 지금도 여수 사건도 언론에 계속 나오고 있고. 베이비박스 옆에 둬서 아이가 죽었고 하는데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보이는, 당장에 있는 그 사건만 보지 않고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보면, 계획대로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획대로 하면 베이비박스에 갖다 넣었겠죠. 이 분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심리적인 부분, 사회 구조적으로 지원을, 이 사람들이 찾아갈 곳은 없었나. 이런 걸 잘 들여다 봤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고요. 이런 분들을 한 번 만나서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요.

◇ 이성규> 아까 인식개선 문제, 대단히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서도 친모를 보호하는 입장에서 신상을 가리는, 보호출산제를 앞으로 검토하시겠다고 했죠. 이 제도를 적극 추진하실 생각인가요?

◆ 최형숙> 저희는 보호출산제는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왔는데요. 일단 태어난 아이는 보호가 돼야 하죠. 그런데 태어난 아이가 저희가 보호출산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태어난 아이는 자기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알아야 하는 게 중요한데, 엄마 신상을 가린다든가, 예전에도 미혼모 분들은 출생신고 안하고 입양을 쉽게 보내긴 했잖아요. 입양 촉진법에 의해서였거든요. 저희는 누굴 위한 보호출산제인지 모르겠고. 선행이 아니라 위급하게 임신하고 출산하는 여성들에 대한 지원정책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다 마련됐을 때, 그래도 나는 안 되겠다. 독일에는 이런 보호출산제가 있거든요. 그래도 나는 안 되겠다고 하면 사회의 기본적인 보장 제도가 있고,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죠.

◇ 이성규> 본인들이 선택을 하게. 알겠습니다. 사유리 사건. 정자를 기증받아서 아이를 낳았잖아요. 우리들의 시선으로도 꽂히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 최형숙> 어쨌든 법적으로는 한국에서도 비혼 여성이 인공 수정에 의해서 애를 낳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쨌든 안 되잖아요. 기혼자들만 가능한 거니까. 저는 되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 댓글을 봤거든요. 너무 이기적이다, 아빠 없는 아이. 그런데 왜 우리는 항상 엄마 아빠가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엄마 아빠 없는 가정도 많아요. 엄마 혼자 키우는 가정도 많고, 아빠가 혼자 키우는 가정도 있고 그래서 그거는 그런 부분은, 편협된 생각이라고 하고. 저희가 이 사건 있었을 때 미혼 엄마들끼리 대화를 했거든요. 딱 그거였어요. 왜 아이를 낳아도 이기적이고, 안 낳아도 이기적이라고 하는가. 저는 이 분이 정말 아이를 잘 키우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희도 힘이 날 것 같아요.

◇ 이성규> 미혼모 정책 중에 우리나라에서 좀 아쉬운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이 더 잘됐으면 좋겠다 하는 게 뭐가 있습니까.

◆ 최형숙> 저는 계속 얘기하지만 인식개선인데요. 제가 12년, 현장활동가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미혼모 단체의. 항상 늘 하는 말이 우리도 공익 광고 좀 해 주세요. 미혼모 가정도 애 잘 키우고, 왜 나라에서 그런 공익광고는 안 해 주나요. 하는데 공익 광고는 사회정서상 사람들의 생각들 때문에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저는 어쨌든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족에 대한 포용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촘촘하게 메워져야죠. 임신, 출산의 위기에 놓인 여성들을 긴급하게 찾아가서 상담하고, 지원 받을 수 있는 정책. 지금은 거의 없거든요. 있긴 하지만.

◇ 이성규> 지원을 대폭 확대하면 미혼 출산이 조장되는 거 아니냐, 이런 비판도 있어요. 그런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최형숙> 아니, 뭐 지원을 얼마나 대폭 확대를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애 키우는 게 엄청 힘든 일이잖아요. 낳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잘 키워내긴 너무 힘든 일인데 지원을 해 준다고 해서 애를 낳을까요? 그러면 지금 지원 많이 해 주고, 저출생이라는 이 문제가 지원으로 해결되지 않을까요? 돈 많이 준다고, 지원 많이 한다고 애를 낳지는 않아요. 이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죠.

◇ 이성규> 우리 최형숙 대표님 인식 개선이란 말씀을 참 많이 하셨는데 이 인식개선과 함께 마지막으로 청취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하시죠.

◆ 최형숙> 아, 일단 남들과 다르지 않게 봐 달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합니다. 그래서 이 라디오를 듣고 이 프로그램을 듣고 계시는 분들은 혹시 내 주위에 홀로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있나, 라고 돌아 봤을 때 그런 분이 있다면 아,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해서 잘 키우고 있구나. 라는 그런 생각, 따뜻한 무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미혼 엄마들을 따뜻한 무관심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 협회 인트리, 최형숙 대표와 함께 해 봤습니다. 따뜻한 무관심에 관한 말씀 함께 나눠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최형숙>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