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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20년 6월 21일 (일요일)
■ 대담 : 장혜영 정의당 의원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영화감독, 유튜버,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정의당 장혜영 의원
◇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이하 이성규)> 영화감독, 작가, 싱어송라이터, 유튜버, 장애인 운동까지 이 사람의 이력인데요. 최근 그 이력에 국회의원도 추가됐습니다.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이 참 궁금합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21대 국회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하 장혜영)> 안녕하세요.
◇ 이성규> 제가 쭉 말씀드렸는데, 이건 포괄적인 질문일 수밖에 없는데요. 어쨌든 청취자 여러분께 조금 더 자세하게 자기소개를 한 번 해주시죠.
◆ 장혜영> 네. 안녕하세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동생과 같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러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장애인 인권운동에 뛰어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국회의원까지 되어야 해서 국회의원이 된, 21대 국회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장혜영입니다.
◇ 이성규> ‘장혜영’ 하면 많은 분들이 영화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자,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유튜버로서 상당히 활동하는 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국회의원실에서도 얼마 전에 라이브로 ‘장혜영’ 이렇게 바꿔서 하셨죠?
◆ 장혜영> 그전에는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이런저런 사회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면, 이제는 ‘국회의원 장혜영’ 이름으로 매주 한 번씩, 목요일 밤 11시마다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어요.
◇ 이성규> 계속하실 거죠?
◆ 장혜영> 네. 그럼요.
◇ 이성규> 주로 의원회관에서 찍으실 건가요?
◆ 장혜영> 그렇죠. 아무래도 집에 가면 동생도 있고 쉬어야 하니까, 의원실에서 다 끝내고 갈 예정입니다.
◇ 이성규> 네. 제가 ‘장혜영’이라는 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명문대를 졸업하시기 전에, 뭔가 나는 이별을 하겠다. 이러면서 선언문을 남기시고 뜨셨잖아요. 4학년 2학기였던가요?
◆ 장혜영> 그렇죠. 8학기 정도를 다니다가 그만뒀으니까, 대충 그 정도 되겠네요.
◇ 이성규> 왜 그러셨어요?
◆ 장혜영> 학교와의 이별이었는데요.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의식이 있었고,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실 텐데, 이게 정말 학문의 상아탑도 아니고, 어떤 의미의 취업기지로만 전락해 있는 모습도 있었고, 그런 학교생활 안에서 그냥 졸업하면, 소위 말하는 명문대 졸업장이 있으면, 이게 곧 내가 원하는 삶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제 주변에도 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진짜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그래도 졸업장이 있어야 그다음에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라는 불안의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눈앞에 있는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의 관점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일단 멈추자. 그리고 내 시간의 주인이 온전히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 이성규> 네. 그래서 주인이 되시고 나니까 후회는 안 되셨겠네요?
◆ 장혜영> 네. 전혀. 지금도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있어요. 학교를 아예 가지 않았다면 좋았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입학한 것은 후회가 없고, 역시 중간에 그만둔 것도 후회가 없다. 다녀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네. 대학을 나오신 뒤에, 발달 장애를 가진 동생을 시설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셔서, 자취하셨잖아요. 가족들이 그때 걱정은 안 했어요?
◆ 장혜영> 약간 복잡한 얘긴데요. 저의 한 살 어린 여동생.
◇ 이성규> 혜정 씨.
◆ 장혜영> 맞습니다. 이름이 혜정입니다. 중증 발달 장애.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묶어서 발달 장애라고 하는데, 둘 다 중증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형편이 넉넉한 집이 아니어서 12살 때쯤 동생이 집 근처에 있는 장애인 거주 시설로 보내졌어요. 그래서 거기서 무려 햇수로 18년이라는 긴 시간, 서른이 될 때까지 그 시설에서 살았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곧바로 동생의 탈시설. 시설 밖으로 나와서 사는 걸 탈시설이라고 하는데요. 그것을 도왔던 것은 아니고, 저도 제 삶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이 좀 있었지만, 어쨌든 제 동생이, 제가 너무 사랑하는 동생이기 이전에, 우리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이잖아요. 시민으로서 저와 제 동생에게 주어진 삶의 질이, 권리가 너무 다르다. 이것은 평등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같이 살아가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것이 부당하다.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일들을 했던 거고요. 그러한 선택을 제가 함에 있어서, 저의 다른 가족들, 부모님이나, 언니가 있거든요. 다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워낙 제가 마음먹으면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걸.
◇ 이성규> 집에서는 좀 내놓은 딸이었군요.
◆ 장혜영> 네. 그렇죠. 일찌감치 저희 가정이 공중분해가 됐달까? 그래서 저 스스로의 결심을 제가 책임지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담아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신 게, ‘어른이 되면’이지 않습니까?
◆ 장혜영> 네. 맞습니다.
◇ 이성규> 그런데 그 영화를 만드시면서 동생과 같이 만든 장면도 있는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 장혜영> 모든 게 어려웠죠. 모든 게 어려웠는데, 다큐멘터리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장편 다큐멘터리인데 돈이 있어야 찍잖아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크라우드 펀딩을 해서 찍었거든요. 제작비를 5천만 원 정도를 목표로 펀딩을 했는데, 펀딩이 사실은 처음에는 안 될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큰 목표니까. 그런데 어쨌든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펀딩이 되어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부터가 도전의 시작이었고, 영상을 찍으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제 동생은 발달 장애 당사자이기 때문에, 촬영 동의서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동의를 얻는 것이 결코 충분한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장 내밀한, 우리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 작업을 동생이 충분히 공감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간이 좀 필요했었습니다.
◇ 이성규> ‘어른이 되면’의 의미가 동생과도 연결되죠?
◆ 장혜영> 네. 맞아요. 제 동생이 시설에 있었을 때, 말버릇이 바로 이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버릇이 있었어요. 이 말을 언제 하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잖아요. 그러면 그런 상황에 혼잣말로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거든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시설에서 다른 거주 시설 종사자분이 제 동생을 대하시는 것을 보면서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는데, 제 동생은 이미 그때는 20대 후반이고, 서른이 가까웠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성인,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안 되는 타이밍에는 ‘어른이 되면 하세요.’ 이렇게 언제까지나 아이처럼 취급하는 그런 속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스스로를 어른이 될 수 없는 미숙한 존재로 느껴왔겠구나. 그것을 너무 잘 담고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을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장 의원님 친구들을 동생과 자꾸 소통을 시키셨더라고요.
◆ 장혜영> 네. 맞아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오랫동안 시설에 살았던 장애인이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올 때 뭐가 필요할까?’라고 하면, 다들 돈, 집 같은 것들을 말씀하실 거예요. 그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관계라고 하는 것에 다들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렇게 오랫동안 고립되어서 사회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직 장애를 가진 손상된 몸. 물리적인 신체로만 여겨지면서 살아오면서, 제 동생이 가장 많이 박탈된 것은 친구를 만날 기회, 나를 아끼고 내 삶에서 같이 평생 관계 맺으면서 살아갈 사람들을 만날 기회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그 모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최대한 제 친구들이라도 엮어서 이 관계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엎치락뒤치락하고 관계라는 게 외과수술 하는 것처럼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주 만나고, 서로 감정적으로 경험하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게 되는 거라서, 이제는 제 친구들 중에서 제 동생 친구인 사람이 꽤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동생도 많이 변했죠?
◆ 장혜영> 변했죠. 훨씬 고집쟁이가 됐죠. 하하하.
◇ 이성규> 네. 자기를 나타내고.
◆ 장혜영> 그렇죠.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구나. 나를 드러내도 좋구나.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깨달으면서, 훨씬 개성이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 이성규> 어른이 됐네요.
◆ 장혜영> 어른이 됐죠. 더 이상 그 말을 안 하거든요. 어른들은 그 말을 안 하잖아요.
◇ 이성규> 네. ‘어른이 되면’에 나오는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한 곡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 장혜영 의원님 자작곡이죠?
◆ 장혜영> 네. 맞아요. 돈이 없어서, 사서 쓰질 못해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하하하.
◇ 이성규> 돈 좀 돼야죠.
◆ 장혜영> 그렇게까지는 안 돼도 좋은데, 많이 들어주시면 좋겠네요. 하하하.
◇ 이성규> 어떤 곡 소개해주실래요?
◆ 장혜영> 우리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니야’라는 곡이 있어요. 그 곡을 청취자 여러분과 같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 이성규>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니야’ 장혜영 의원님의 노래였습니다. 참 노랫말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노랫말을 쓰고, 음악을 만들 때 영감을 어디서 얻으세요?
◆ 장혜영> 영감은 역시 일상에서 얻는데, 정확히 말하면 일상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나가고, 그것을 버텨야 할 때, 그럴 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이 노래만 하더라도 제 동생이라고 하는 존재가 굉장히 연약한 존재잖아요.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 연약하다는 것이 꼭 그 자체로 나쁜 것일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연약하다는 건 말 그대로 굉장히 많은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필요한데, 그 조건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아름다운 것. 어쩌면 삶의 본질에 가까운 것을 담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약하다는 것을 좀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 이성규> 연약하다는 것을 용감하다고도 보셨고, 모두가 함께일 때, 외로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혼자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뜻도 있더라고요.
◆ 장혜영> 네.
◇ 이성규> 네. 지금 말씀을 쭉 들어보니까, 영화, 유튜버로서의 활동에 작사, 작곡. 여러 가지 그 외 도서 출판, 그림 전시 등 다방면에 에너지를 쏟고 계셨는데, 어쩌다가 정치를 하게 됐습니까?
◆ 장혜영>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일관된 선택이었는데요. 이런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장애 당사자이거나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비장애 형제, 자매가 아니라면 알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이나 부정의.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것을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알릴 수 있다면 뭐라도 좋다. 노래여도 좋고, 글이어도 좋고, 영화라도 좋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 문제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거든요. 그리고 길거리에 나가서 시위가 있으면 행진도 같이하고, 구호도 같이 외쳤어요. 그러면 이 목소리가 닿으면,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이, 행정 부처에서 일하는 장관과 대통령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바꿔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건 알지만, 빠른 속도로, 충분한 양으로, 우리가 진정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바꿔 달라고 했는데 안 바뀐다면, 내가 직접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정도로 절박하니까. 그래서 올해 총선이 있었고, 작년 가을쯤에 지금 속해있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께서, ‘이제 정치를 시작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주셔서, 고민 끝에 현실 정치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 이성규> 뭔가를 바꾸는 조직이 국회가 되어야 할 텐데, 들어가 보시니까, 국회가 또 좀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 않던가요?
◆ 장혜영> 맞아요. 국회가 바꿔야 하는 것도 많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국회가 저 스스로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국회 내에서 어떤 부분을 좀 바꾸고 싶으세요?
◆ 장혜영> 일단 두 가지 정도가 얼핏 떠오르는데, 첫 번째는 우리가 지금 장애 인권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국회 자체가 장애 친화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하는 소통관이라는 장소가 있는데, 그 소통관에서 최근에 제가 처음으로 법안을 발의하면서,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제도를 발의했는데, 그 상황에서 장애 당사자분들을 모셔서 증언을 들었어요. 그런데 휠체어 이용자분께서 단상에 있는 마이크를 이용할 수 없었어요. 무선 마이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불편하게 이용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 시민들, 국민들 중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시설 자체가 상상력을 거기까지 갖지 못한 거죠. 그런 게 하드웨어적으로 있다면, 이번에 함께 당선되신 의원님 중에서 요즘 말로 꼰대라고 그러죠. 꼰대 기질이 있는 의원님들께서 많이 계십니다. 어쨌든 선수가 다를 수 있고, 정당이 다르고, 연령이 다르고, 성별이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300명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시민들을 대표해서 온 입법기관으로서의 의원인데, 같은 의원이라고 생각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어리니까, 나는 보통 의원, 너는 청년 의원. 나는 보통 의원, 너는 소수정당 의원. 이렇게 생각해서 은연중에 다르게 생각하시는 게 언행에서 많이 느껴지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데 의원님. 반말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세요.
◇ 이성규> 네. 그런 충격을 좀 자주 받아야 국회가 변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동생은 누가 돌봐요?
◆ 장혜영> 할 얘기가 많은데, 일단 활동지원서비스를 제 동생도 받고 있어요.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으니까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라는 것을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데, 가족이 아니라 ‘활동지원사’라는 이름의 사회복지 인력이죠. 그분이 장애 당사자를 서포트하는 인력으로 일을 하시는 건데, 그 일하시는 시간을 정부가 정해서 시간을 매칭하는 거예요. 제가 한 300시간 조금 넘게 필요한데, 현재 받고 있는 시간은 국가에서 120시간, 지자체에서 30시간. 그래서 절반인 150시간 정도라서, 나머지 시간은 제가 사비를 들여서,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동생을 돌보고 있습니다.
◇ 이성규> 네. 그래서 법안을 내셨군요. 경제적인 사정이 법안을 내는 데 상당한 동력이 됐네요. 하하하.
◆ 장혜영> 하하하. 취약계층 당사자로서.
◇ 이성규>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 이것 발의하셨죠?
◆ 장혜영> 네. 맞습니다.
◇ 이성규> 그게 그 내용이군요.
◆ 장혜영> 네. 맞습니다. 지금은 24시간을 보장하는 근거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 근거를 만들고, 이 법이 가지고 있는 연령제한이 있어요. 우리의 법적인 체계가 65세가 넘으면 장애인이 아니라 노인으로만 보는 거죠. 거기에서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게 선택권을 주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촘촘한 세부 사항을 담아서 발의한 법안입니다.
◇ 이성규> 그 법안도 있지만, 그동안 강조하셨던 것 중 하나가, ‘약자의 불행을 불행으로 보지 말고, 불평등으로 보자.’라고 하면서,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 하시겠다고요?
◆ 장혜영> 네. 맞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바꿀 수 없잖아요.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이유만으로, 예를 들면 인종일 수 있고요. 학력일 수도 있고, 성별일 수도 있고, 성 정체성일 수도 있고, 장애일 수도 있고. 그 이외의 사회, 경제적인 조건들이 있는데, 그런 조건들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금지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제가 정의당 의원들을 대표해서 대표 발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불평등에 맞서는 그런 평등에 관한 법을 포괄적으로 만드시는데, 그러면 장애인에 관한 차별금지법과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어떻게 가져가실 생각이세요?
◆ 장혜영> 일단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법은 이미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서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굉장히 많은 장애 당사자들이 부당한 차별을 겪었을 때, 이것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하면, 인권위원회에서 시정 권고를 내리고, 실질적으로 그 시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실효성 있게 가동되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물론 장애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외의 다양한 여러 가지 차별 요소들에 대해서 그러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셈이죠.
◇ 이성규> 네. 말씀을 들어보니까, 재능도 많으신 것 같은데, 에너지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어디서 나와요? 많이 읽고, 사색을 많이 하세요? 아니면 많이 드세요?
◆ 장혜영> 책 읽는 건 정말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활동의 원천은 어떤 종류의 분노의 감정 혹은 슬픔의 감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면서 부당하게 겪는 일들이 다들 있잖아요. 그런 때에 느꼈었던 감정을 화내고 분출하기보다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하는 생산적인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 이성규> ‘르쌍띠망(ressentiment)’이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그것을 에너지화시키는 분 같아요.
◆ 장혜영>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하하하.
◇ 이성규> 동생과 함께 평범한 노인이 되고 싶다. 어디선가 그렇게 말씀하셨죠?
◆ 장혜영> 네.
◇ 이성규> 할머니가 되셨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으세요?
◆ 장혜영>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또 다른 노래 제목이,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고 하는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약간 하드보일드(hard-boiled)하게 들으실 수 있는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아. 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 이성규> 그것도 직접 지으신 거죠?
◆ 장혜영> 네.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정말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서 제가 지금 30대 초반인데, 정말로 60세, 70세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 모든 시기를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 해코지당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마지막까지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런 호호 할머니로, 동생과 같이 살아가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 이성규> 네. 동생에게는 언니가 둘 있는 거고요. 그러면 언니와는 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은 거예요?
◆ 장혜영> 언니와 되고 싶기는 한데, 원래 둘째가 첫째와 사이가 안 좋아요. 티격태격하죠. 그런데 함께 그렇게 할머니로 세 자매가 곱게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네. 참 많은 얘기를 더 나누고 싶은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앞으로 정치 계속하실 거예요?
◆ 장혜영> 제가 원하는 세상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계속해야죠.
◇ 이성규> 네. 어떤 정치인으로 남고 싶으세요?
◆ 장혜영> 저는 정치가 되게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주어진 환경이라는 것은 늘 완벽하기보다는 한없이 불완전하게 느껴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늘 뭔가와 타협하게 되는데,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평등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정말 최선을 다한 정치인이라고 기억되고 싶어요.
◇ 이성규> 네. 다음에 나오셔서 그 과정에 관한 자세한 말씀 또 듣기로 하고요. 참 아쉽네요. 그렇지만 청취자 여러분들께 한 말씀 하시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 장혜영> 저는 다른 무엇보다 격려를 드리고 싶어요.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팬데믹(pandemic), 코로나19라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다들 지쳐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물리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거리두기는 거리두기대로 안전하게 하되, 정말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든든한 사회적인 연결이라는 것을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 안전하고, 단단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본인의 경험을, 그때 느낀 르쌍띠망을 불평등을 제거하는 평등의 에너지로 삼고자 하는 정치인.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과 함께했습니다. 의원님 오늘 함께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장혜영> 네. 감사합니다.
◇ 이성규>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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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장혜영 정의당 의원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영화감독, 유튜버,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정의당 장혜영 의원
◇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이하 이성규)> 영화감독, 작가, 싱어송라이터, 유튜버, 장애인 운동까지 이 사람의 이력인데요. 최근 그 이력에 국회의원도 추가됐습니다.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이 참 궁금합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21대 국회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하 장혜영)> 안녕하세요.
◇ 이성규> 제가 쭉 말씀드렸는데, 이건 포괄적인 질문일 수밖에 없는데요. 어쨌든 청취자 여러분께 조금 더 자세하게 자기소개를 한 번 해주시죠.
◆ 장혜영> 네. 안녕하세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동생과 같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러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장애인 인권운동에 뛰어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국회의원까지 되어야 해서 국회의원이 된, 21대 국회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장혜영입니다.
◇ 이성규> ‘장혜영’ 하면 많은 분들이 영화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자,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유튜버로서 상당히 활동하는 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국회의원실에서도 얼마 전에 라이브로 ‘장혜영’ 이렇게 바꿔서 하셨죠?
◆ 장혜영> 그전에는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이런저런 사회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면, 이제는 ‘국회의원 장혜영’ 이름으로 매주 한 번씩, 목요일 밤 11시마다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어요.
◇ 이성규> 계속하실 거죠?
◆ 장혜영> 네. 그럼요.
◇ 이성규> 주로 의원회관에서 찍으실 건가요?
◆ 장혜영> 그렇죠. 아무래도 집에 가면 동생도 있고 쉬어야 하니까, 의원실에서 다 끝내고 갈 예정입니다.
◇ 이성규> 네. 제가 ‘장혜영’이라는 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명문대를 졸업하시기 전에, 뭔가 나는 이별을 하겠다. 이러면서 선언문을 남기시고 뜨셨잖아요. 4학년 2학기였던가요?
◆ 장혜영> 그렇죠. 8학기 정도를 다니다가 그만뒀으니까, 대충 그 정도 되겠네요.
◇ 이성규> 왜 그러셨어요?
◆ 장혜영> 학교와의 이별이었는데요.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의식이 있었고,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실 텐데, 이게 정말 학문의 상아탑도 아니고, 어떤 의미의 취업기지로만 전락해 있는 모습도 있었고, 그런 학교생활 안에서 그냥 졸업하면, 소위 말하는 명문대 졸업장이 있으면, 이게 곧 내가 원하는 삶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제 주변에도 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진짜 많았는데, 그 친구들이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그래도 졸업장이 있어야 그다음에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라는 불안의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눈앞에 있는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의 관점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일단 멈추자. 그리고 내 시간의 주인이 온전히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 이성규> 네. 그래서 주인이 되시고 나니까 후회는 안 되셨겠네요?
◆ 장혜영> 네. 전혀. 지금도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있어요. 학교를 아예 가지 않았다면 좋았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입학한 것은 후회가 없고, 역시 중간에 그만둔 것도 후회가 없다. 다녀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네. 대학을 나오신 뒤에, 발달 장애를 가진 동생을 시설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셔서, 자취하셨잖아요. 가족들이 그때 걱정은 안 했어요?
◆ 장혜영> 약간 복잡한 얘긴데요. 저의 한 살 어린 여동생.
◇ 이성규> 혜정 씨.
◆ 장혜영> 맞습니다. 이름이 혜정입니다. 중증 발달 장애.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를 묶어서 발달 장애라고 하는데, 둘 다 중증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형편이 넉넉한 집이 아니어서 12살 때쯤 동생이 집 근처에 있는 장애인 거주 시설로 보내졌어요. 그래서 거기서 무려 햇수로 18년이라는 긴 시간, 서른이 될 때까지 그 시설에서 살았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곧바로 동생의 탈시설. 시설 밖으로 나와서 사는 걸 탈시설이라고 하는데요. 그것을 도왔던 것은 아니고, 저도 제 삶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이 좀 있었지만, 어쨌든 제 동생이, 제가 너무 사랑하는 동생이기 이전에, 우리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이잖아요. 시민으로서 저와 제 동생에게 주어진 삶의 질이, 권리가 너무 다르다. 이것은 평등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같이 살아가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이것이 부당하다.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일들을 했던 거고요. 그러한 선택을 제가 함에 있어서, 저의 다른 가족들, 부모님이나, 언니가 있거든요. 다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워낙 제가 마음먹으면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걸.
◇ 이성규> 집에서는 좀 내놓은 딸이었군요.
◆ 장혜영> 네. 그렇죠. 일찌감치 저희 가정이 공중분해가 됐달까? 그래서 저 스스로의 결심을 제가 책임지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담아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신 게, ‘어른이 되면’이지 않습니까?
◆ 장혜영> 네. 맞습니다.
◇ 이성규> 그런데 그 영화를 만드시면서 동생과 같이 만든 장면도 있는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 장혜영> 모든 게 어려웠죠. 모든 게 어려웠는데, 다큐멘터리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장편 다큐멘터리인데 돈이 있어야 찍잖아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크라우드 펀딩을 해서 찍었거든요. 제작비를 5천만 원 정도를 목표로 펀딩을 했는데, 펀딩이 사실은 처음에는 안 될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큰 목표니까. 그런데 어쨌든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펀딩이 되어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부터가 도전의 시작이었고, 영상을 찍으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제 동생은 발달 장애 당사자이기 때문에, 촬영 동의서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동의를 얻는 것이 결코 충분한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가장 내밀한, 우리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 작업을 동생이 충분히 공감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간이 좀 필요했었습니다.
◇ 이성규> ‘어른이 되면’의 의미가 동생과도 연결되죠?
◆ 장혜영> 네. 맞아요. 제 동생이 시설에 있었을 때, 말버릇이 바로 이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버릇이 있었어요. 이 말을 언제 하나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잖아요. 그러면 그런 상황에 혼잣말로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거든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시설에서 다른 거주 시설 종사자분이 제 동생을 대하시는 것을 보면서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는데, 제 동생은 이미 그때는 20대 후반이고, 서른이 가까웠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성인,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안 되는 타이밍에는 ‘어른이 되면 하세요.’ 이렇게 언제까지나 아이처럼 취급하는 그런 속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스스로를 어른이 될 수 없는 미숙한 존재로 느껴왔겠구나. 그것을 너무 잘 담고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을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장 의원님 친구들을 동생과 자꾸 소통을 시키셨더라고요.
◆ 장혜영> 네. 맞아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오랫동안 시설에 살았던 장애인이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올 때 뭐가 필요할까?’라고 하면, 다들 돈, 집 같은 것들을 말씀하실 거예요. 그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관계라고 하는 것에 다들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렇게 오랫동안 고립되어서 사회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직 장애를 가진 손상된 몸. 물리적인 신체로만 여겨지면서 살아오면서, 제 동생이 가장 많이 박탈된 것은 친구를 만날 기회, 나를 아끼고 내 삶에서 같이 평생 관계 맺으면서 살아갈 사람들을 만날 기회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그 모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최대한 제 친구들이라도 엮어서 이 관계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엎치락뒤치락하고 관계라는 게 외과수술 하는 것처럼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주 만나고, 서로 감정적으로 경험하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게 되는 거라서, 이제는 제 친구들 중에서 제 동생 친구인 사람이 꽤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동생도 많이 변했죠?
◆ 장혜영> 변했죠. 훨씬 고집쟁이가 됐죠. 하하하.
◇ 이성규> 네. 자기를 나타내고.
◆ 장혜영> 그렇죠.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구나. 나를 드러내도 좋구나.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깨달으면서, 훨씬 개성이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 이성규> 어른이 됐네요.
◆ 장혜영> 어른이 됐죠. 더 이상 그 말을 안 하거든요. 어른들은 그 말을 안 하잖아요.
◇ 이성규> 네. ‘어른이 되면’에 나오는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한 곡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 장혜영 의원님 자작곡이죠?
◆ 장혜영> 네. 맞아요. 돈이 없어서, 사서 쓰질 못해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하하하.
◇ 이성규> 돈 좀 돼야죠.
◆ 장혜영> 그렇게까지는 안 돼도 좋은데, 많이 들어주시면 좋겠네요. 하하하.
◇ 이성규> 어떤 곡 소개해주실래요?
◆ 장혜영> 우리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니야’라는 곡이 있어요. 그 곡을 청취자 여러분과 같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 이성규>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니야’ 장혜영 의원님의 노래였습니다. 참 노랫말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 노랫말을 쓰고, 음악을 만들 때 영감을 어디서 얻으세요?
◆ 장혜영> 영감은 역시 일상에서 얻는데, 정확히 말하면 일상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나가고, 그것을 버텨야 할 때, 그럴 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이 노래만 하더라도 제 동생이라고 하는 존재가 굉장히 연약한 존재잖아요.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 연약하다는 것이 꼭 그 자체로 나쁜 것일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연약하다는 건 말 그대로 굉장히 많은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필요한데, 그 조건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아름다운 것. 어쩌면 삶의 본질에 가까운 것을 담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약하다는 것을 좀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 이성규> 연약하다는 것을 용감하다고도 보셨고, 모두가 함께일 때, 외로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혼자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뜻도 있더라고요.
◆ 장혜영> 네.
◇ 이성규> 네. 지금 말씀을 쭉 들어보니까, 영화, 유튜버로서의 활동에 작사, 작곡. 여러 가지 그 외 도서 출판, 그림 전시 등 다방면에 에너지를 쏟고 계셨는데, 어쩌다가 정치를 하게 됐습니까?
◆ 장혜영> 사실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일관된 선택이었는데요. 이런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장애 당사자이거나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비장애 형제, 자매가 아니라면 알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이나 부정의.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것을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알릴 수 있다면 뭐라도 좋다. 노래여도 좋고, 글이어도 좋고, 영화라도 좋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 문제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노력했거든요. 그리고 길거리에 나가서 시위가 있으면 행진도 같이하고, 구호도 같이 외쳤어요. 그러면 이 목소리가 닿으면,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이, 행정 부처에서 일하는 장관과 대통령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바꿔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건 알지만, 빠른 속도로, 충분한 양으로, 우리가 진정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바꿔 달라고 했는데 안 바뀐다면, 내가 직접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정도로 절박하니까. 그래서 올해 총선이 있었고, 작년 가을쯤에 지금 속해있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께서, ‘이제 정치를 시작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주셔서, 고민 끝에 현실 정치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 이성규> 뭔가를 바꾸는 조직이 국회가 되어야 할 텐데, 들어가 보시니까, 국회가 또 좀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 않던가요?
◆ 장혜영> 맞아요. 국회가 바꿔야 하는 것도 많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국회가 저 스스로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국회 내에서 어떤 부분을 좀 바꾸고 싶으세요?
◆ 장혜영> 일단 두 가지 정도가 얼핏 떠오르는데, 첫 번째는 우리가 지금 장애 인권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국회 자체가 장애 친화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하는 소통관이라는 장소가 있는데, 그 소통관에서 최근에 제가 처음으로 법안을 발의하면서, 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제도를 발의했는데, 그 상황에서 장애 당사자분들을 모셔서 증언을 들었어요. 그런데 휠체어 이용자분께서 단상에 있는 마이크를 이용할 수 없었어요. 무선 마이크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불편하게 이용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 시민들, 국민들 중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시설 자체가 상상력을 거기까지 갖지 못한 거죠. 그런 게 하드웨어적으로 있다면, 이번에 함께 당선되신 의원님 중에서 요즘 말로 꼰대라고 그러죠. 꼰대 기질이 있는 의원님들께서 많이 계십니다. 어쨌든 선수가 다를 수 있고, 정당이 다르고, 연령이 다르고, 성별이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300명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시민들을 대표해서 온 입법기관으로서의 의원인데, 같은 의원이라고 생각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어리니까, 나는 보통 의원, 너는 청년 의원. 나는 보통 의원, 너는 소수정당 의원. 이렇게 생각해서 은연중에 다르게 생각하시는 게 언행에서 많이 느껴지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데 의원님. 반말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세요.
◇ 이성규> 네. 그런 충격을 좀 자주 받아야 국회가 변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동생은 누가 돌봐요?
◆ 장혜영> 할 얘기가 많은데, 일단 활동지원서비스를 제 동생도 받고 있어요.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으니까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라는 것을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데, 가족이 아니라 ‘활동지원사’라는 이름의 사회복지 인력이죠. 그분이 장애 당사자를 서포트하는 인력으로 일을 하시는 건데, 그 일하시는 시간을 정부가 정해서 시간을 매칭하는 거예요. 제가 한 300시간 조금 넘게 필요한데, 현재 받고 있는 시간은 국가에서 120시간, 지자체에서 30시간. 그래서 절반인 150시간 정도라서, 나머지 시간은 제가 사비를 들여서,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동생을 돌보고 있습니다.
◇ 이성규> 네. 그래서 법안을 내셨군요. 경제적인 사정이 법안을 내는 데 상당한 동력이 됐네요. 하하하.
◆ 장혜영> 하하하. 취약계층 당사자로서.
◇ 이성규>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 이것 발의하셨죠?
◆ 장혜영> 네. 맞습니다.
◇ 이성규> 그게 그 내용이군요.
◆ 장혜영> 네. 맞습니다. 지금은 24시간을 보장하는 근거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 근거를 만들고, 이 법이 가지고 있는 연령제한이 있어요. 우리의 법적인 체계가 65세가 넘으면 장애인이 아니라 노인으로만 보는 거죠. 거기에서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게 선택권을 주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촘촘한 세부 사항을 담아서 발의한 법안입니다.
◇ 이성규> 그 법안도 있지만, 그동안 강조하셨던 것 중 하나가, ‘약자의 불행을 불행으로 보지 말고, 불평등으로 보자.’라고 하면서,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 하시겠다고요?
◆ 장혜영> 네. 맞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바꿀 수 없잖아요.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이유만으로, 예를 들면 인종일 수 있고요. 학력일 수도 있고, 성별일 수도 있고, 성 정체성일 수도 있고, 장애일 수도 있고. 그 이외의 사회, 경제적인 조건들이 있는데, 그런 조건들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금지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제가 정의당 의원들을 대표해서 대표 발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불평등에 맞서는 그런 평등에 관한 법을 포괄적으로 만드시는데, 그러면 장애인에 관한 차별금지법과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어떻게 가져가실 생각이세요?
◆ 장혜영> 일단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법은 이미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서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굉장히 많은 장애 당사자들이 부당한 차별을 겪었을 때, 이것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하면, 인권위원회에서 시정 권고를 내리고, 실질적으로 그 시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실효성 있게 가동되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물론 장애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외의 다양한 여러 가지 차별 요소들에 대해서 그러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셈이죠.
◇ 이성규> 네. 말씀을 들어보니까, 재능도 많으신 것 같은데, 에너지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어디서 나와요? 많이 읽고, 사색을 많이 하세요? 아니면 많이 드세요?
◆ 장혜영> 책 읽는 건 정말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활동의 원천은 어떤 종류의 분노의 감정 혹은 슬픔의 감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면서 부당하게 겪는 일들이 다들 있잖아요. 그런 때에 느꼈었던 감정을 화내고 분출하기보다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하는 생산적인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 이성규> ‘르쌍띠망(ressentiment)’이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그것을 에너지화시키는 분 같아요.
◆ 장혜영>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하하하.
◇ 이성규> 동생과 함께 평범한 노인이 되고 싶다. 어디선가 그렇게 말씀하셨죠?
◆ 장혜영> 네.
◇ 이성규> 할머니가 되셨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으세요?
◆ 장혜영>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또 다른 노래 제목이,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고 하는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약간 하드보일드(hard-boiled)하게 들으실 수 있는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아. 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 이성규> 그것도 직접 지으신 거죠?
◆ 장혜영> 네.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정말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서 제가 지금 30대 초반인데, 정말로 60세, 70세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 모든 시기를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 해코지당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마지막까지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런 호호 할머니로, 동생과 같이 살아가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 이성규> 네. 동생에게는 언니가 둘 있는 거고요. 그러면 언니와는 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은 거예요?
◆ 장혜영> 언니와 되고 싶기는 한데, 원래 둘째가 첫째와 사이가 안 좋아요. 티격태격하죠. 그런데 함께 그렇게 할머니로 세 자매가 곱게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네. 참 많은 얘기를 더 나누고 싶은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앞으로 정치 계속하실 거예요?
◆ 장혜영> 제가 원하는 세상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계속해야죠.
◇ 이성규> 네. 어떤 정치인으로 남고 싶으세요?
◆ 장혜영> 저는 정치가 되게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주어진 환경이라는 것은 늘 완벽하기보다는 한없이 불완전하게 느껴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늘 뭔가와 타협하게 되는데,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평등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정말 최선을 다한 정치인이라고 기억되고 싶어요.
◇ 이성규> 네. 다음에 나오셔서 그 과정에 관한 자세한 말씀 또 듣기로 하고요. 참 아쉽네요. 그렇지만 청취자 여러분들께 한 말씀 하시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 장혜영> 저는 다른 무엇보다 격려를 드리고 싶어요.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팬데믹(pandemic), 코로나19라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다들 지쳐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물리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거리두기는 거리두기대로 안전하게 하되, 정말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든든한 사회적인 연결이라는 것을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 안전하고, 단단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본인의 경험을, 그때 느낀 르쌍띠망을 불평등을 제거하는 평등의 에너지로 삼고자 하는 정치인.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과 함께했습니다. 의원님 오늘 함께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장혜영> 네. 감사합니다.
◇ 이성규>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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