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혐오는 인간의 본능 : 감염병과 혐오의 관계

[그런데] 혐오는 인간의 본능 : 감염병과 혐오의 관계

2020.04.12. 오전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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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매번 잊곤 하지만, 인류사는 늘 감염병의 발생과 잦아듦(종식이 없기에)이 반복되던 역사였습니다.

이번에 발병한 것이 코로나19라는 병명일 뿐, 새삼스러운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느 감염병이 그러했듯, 이 몹쓸 병도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낯선 것들이 새로운 표준이 되고, 당연하던 일들은 특별해졌습니다.

코로나19는 건강한 신체만 앗아간 게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잠재돼있던 혐오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버렸습니다.

감염병이 전 세계로 확산하자, 지구촌 곳곳에선 수없이 많은 인종차별과 혐오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피해자는 주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었죠.

피해당사자뿐 아니라, 같은 아시아인이라면 누구나 혐오라는 단어에 적잖은 반감과 분노를 느끼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혐오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본능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누구든 회피하려는 행동과 역겨워하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혐오가 인간의 본능으로 자리잡게 된 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때문이었습니다.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포유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다고 합니다.

병원체가 기생하는 숙주는 일반적으로 병원체를 피하려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이 '혐오'의 시작입니다.

인류사를 통틀어 전쟁 등 다른 죽음을 모두 합한 것보다 감염병으로 인한 죽음이 많았는데

이 때문에 우리 면역계는 감염병 위험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으며

그 결과 감염 가능성이 커지면 행동 영역에선 회피를 감정 영역에선 역겨움을 내비치게 되었습니다.

역겨움은 인간의 기본 감정 중 하나로 상한 음식에 대한 반응에서 시작되었는데

갓난아기도 이상한 걸 맛보면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커가며 그 범위가 넓어진다는데요.

[박한선 / 신경인류학자 겸 정신과 의사 : (그 대상은) 주로 배설물이라든지 더러운 곤충, 小동물 중에서도 설치류, 사람들의 기침이나 구토 이런 것들입니다. 임산부 같은 경우에는 임신 초기에 입덧이라는 반응을 통해 본인이 먹으면 좋은 음식과 좋지 않은 음식에 대해 거의 본능적인 수준에서 행동을 조절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따라서 감염 가능성이 있는 더러운 대상에 대한 역겨움과 같은 혐오 반응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진화적 본능입니다.]

그런데 인류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혐오 본능은 사회적 금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썩은 고기엔 병원체가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동물을 구분하는 엄격한 기준이 나타났고

매독과 같은 성병을 피하려 '올바른' 성문화에 관한 규범이 만들어졌으며

겉모습이 다른 외국인이 미지의 병원체를 퍼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외인을 멀리하는 '자민족 중심주의'가 발현되기도 했습니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이러한 금기들이 세상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고 '비정상'이라 여기는 대상들에게 혐오와 배척을 가해왔던 것입니다.

[박한선 / 신경인류학자 겸 정신과 의사 : 감염병이 한번 유행하게 되면 사람들의 집단적인 심리 반응은 대략 세 단계에 나누어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잘 알지 못하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생명을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 이런 반응이 첫 번째 단계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는 감염원이 될 수 있는 대상들 혹은 집단들에 대한 혐오 반응, 그리고 회피 반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됩니다. 어느 정도 감염이 지역사회에 무르익게 되면, 그러한 원인을 만들었던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분노하고 혹은 책임 전가를 하는 양상의 희생양 찾기 단계에 접어들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도리어 정부라든지 방역 당국, 혹은 의료인에게 희생양 찾기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집단 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라든지 유학생 혹은 불특정 다수인 외국인 전체를 상대로 한 희생양 찾기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지닌 본능엔 혐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적 측면에서 혐오는 인류를 존속게 한 중요한 이유가 되었지만 이것만으로 인간을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숙주인 동물에겐 일반적으로 감염병을 피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혐오는 인간만이 갖는 특성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에겐 나타나지 않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성은 무엇일까요?

[박한선 / 신경인류학자 겸 정신과 의사 : 다른 동물에 비해서 인류는 가장 협력적인 동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은 수렵·채집사회에서 자신이 취득한 음식물을 주변에 있는 非친족들과 나눠 먹는 행위에서 시작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염된 음식물에 대한 혐오 반응이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하나의 중요한 심리적 모듈이었던 것처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음식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행동 자체도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게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혐오나 혹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타심 모두,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한 진화적인 형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원시적인 혐오와 배제의 반응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 세상에 조금 더 걸맞은 연대와 협력, 그리고 이타심으로부터 시작된 같이 만들어 가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할 일이죠.]

이런데도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혐오만을 드러내려 한다면 앞으로도 감염병과 끊임없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버트너/ 이상엽[sylee24@ytn.co.kr], 연진영[yjy1769@ytn.co.kr], 이정택

도움/ 박한선 신경인류학자 겸 정신과 의사, 「전염병은 왜 혐오를 일으키는가」,『SKEPTIC KOREA vo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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