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영웅을 만나다⑦] “더 많이 나누고, 행복해지길”…‘올해의 봉사왕’ 송인호 씨

[시민영웅을 만나다⑦] “더 많이 나누고, 행복해지길”…‘올해의 봉사왕’ 송인호 씨

2019.12.13. 오후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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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영웅을 만나다⑦] “더 많이 나누고, 행복해지길”…‘올해의 봉사왕’ 송인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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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영웅을 만나다 일곱 번째 주인공은 바로 34년째 봉사활동을 펼쳐 올해 자원봉사자대회에서 국민훈장 받은 송인호 씨(58)다.

제주도에 사는 송인호 씨의 집에는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자율 방범 봉사를 위한 봉사단원들이 모인다. 송 씨는 단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집수리 등 봉사활동에 필요한 인력을 중심으로 일정과 계획을 논하고는 순찰, 방범 활동에 나선다.

이밖에도 독거노인과 소년가장, 장애인 가정 등 소외된 이웃을 대상으로 주거환경개선, 다문화 가정과 결혼 이민 여성에 대한 지원 봉사 등 송 씨는 쉴 틈 없이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그가 만든 봉사단체만 해도 다문화가족의 안정적인 정착을 도모하는 ‘국제가족제주도연합’, 집수리와 방문 봉사를 실시하는 ‘국제가족자원봉사단’, 자율방범, 교통 질서 등을 위해 봉사하는 ‘폴리스봉사단’, 환경보호 캠페인을 펼치는 ‘제주환경문화시민연대’ 등 굉장히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이들 단체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때로는 서로 간의 연합을 통해 봉사활동을 추진하기도 한다는 송 씨.

송 씨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일, ‘자원봉사자의 날’을 기념해 행정안전부가 개최한 ‘2019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시상식에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시민영웅을 만나다⑦] “더 많이 나누고, 행복해지길”…‘올해의 봉사왕’ 송인호 씨

송 씨는 YTN PLU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봉사활동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제주도 시골집에서 가난하게 태어났는데, 인복이나 운은 타고났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어렸을 때 물놀이를 하다가 이웃 분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 경험이 있고, 좀 더 커서는 밤샘 작업 끝에 차를 몰고 집으로 오던 중 골짜기로 떨어져 자동차를 폐차할 정도로 큰 사고가 났지만, 몸은 멀쩡했다”고 설명했다.

송 씨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게 된 게 이웃을 위해 살라는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고, 그때부터 봉사활동에 힘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30여 년 전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처음 눈길이 갔던 건 바로 청소년 선도 활동이었다.

송 씨는 “당시 외지에서 온 아주 먼 친척뻘 되는 학생을 포함해 학생들 몇 명을 데리고 살면서 학교도 보내고, 돌본 적이 있었다”며 “같이 지내며 대화하다보니 자연스레 청소년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 1985년, 제주시청소년선도협의회 이사를 맡으면서 비행 청소년 선도에 앞장섰고, 늦은 밤 우범지역 순찰, 청소년 유해업소 계도 등의 활동을 도맡았다. 송 씨가 밤길을 배회하던 청소년을 가정으로 돌려 세운 사례는 무려 4천 건이 넘는다.

또, 중증 장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캠페인을 실시하고, 해마다 장애인의 날 행사에 식사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30년째 지속해오고 있고, 일본인을 아내로 맞게 되면서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불식하기 위한 캠페인 활동부터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학습 지원 등에도 힘썼다.

오랜 세월 봉사활동을 해오면서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다.

송 씨는 “재작년에 거동이 불편한 한 독거노인 집수리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부엌이 재래식이라 밥을 지을 때마다 마당에서 수돗물을 퍼와야 하고, 화장실이 마당 구석에 있는 등 집 구조가 굉장히 열악했다”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께서 지내기엔 너무 불편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어 최소한 동선을 줄일 수 있도록 단원들과 합심해 이곳저곳을 손 봐드린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어르신께서 무슨 사정인지 처음엔 계속 도움을 거절하셨다가 수리가 끝난 뒤에는 말도 잇지 못 할 정도로 굉장히 많이 우셨다”며 “지금도 그분을 떠올리면 정말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또 “시간적인 여유와 경제적인 여력만 된다면 잴 것 없이 모든 이들을 돕고 싶지만, 자치단체나 기업에서 지원해주는 게 아닌 만큼 혼자 감당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힘든 점에도 불구하고, 송 씨가 계속 봉사활동을 이어나갔던 원동력은 바로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지지에 있었다.

송 씨의 가족들도 처음엔 그렇게 봉사활동에 힘쓰는 송 씨를 이해해주지 못 했다. 특히 일본인인 아내와는 의사소통이 다소 서툴렀기 때문에 좀 더 어려움을 겪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는 가족들이 먼저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송 씨는 “아내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접할 수 있는 일본어 강좌를 여는 등 스스로 봉사활동을 전개할 정도고, 네 자녀 역시 다문화 가족의 학습지도 봉사활동 등에 관심을 갖고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녀들에게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바르게 잘 자라준 것 역시 결국 봉사활동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그는 “봉사활동이 곧 가족의 행복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며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면서 지금처럼 다 함께 봉사활동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봉사는 혼자서 해도 좋지만, 가족들과 하면 그 기쁨이나 보람을 몇 배 이상 누릴 수 있다”며 “많은 분들이 ‘함께 사는 행복의 가치’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승민 기자(happyjournalist@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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