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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은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기고문을 올려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태일 재단은 최근 류 교수가 한 월간지에 전태일과 관련한 글을 기고한 것과 관련해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 투성이라며 당장 교수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앞서 류 교수는 기고문에서 전태일이 16살에 '시다'로 일을 시작해 만 3년이 지난 1967년에 '재단사'가 됐고, 월급도 1,500원에서 1만5천 원으로 정확히 10배가 올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3년 후에는 월급이 2만3천 원으로 올라 월급이 6년 동안 무려 15배 이상 상승했는데, 이를 착취라고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태일 재단은 입장문을 내고, 류 교수가 수치만 나열하며 그 이면은 애써 무시하려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재단 측은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적게 잡아도 주당 105시간에 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일요일도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하고도 시다는 일당으로 커피 한 잔 값인 50원을, 재단사는 커피 10잔 값이 5백 원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1만5천 원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도 4만 원에 불과해,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비해 착취라고 볼 수 있을 만큼 턱없이 적은 임금이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김대겸[kimdk1028@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전태일 재단은 최근 류 교수가 한 월간지에 전태일과 관련한 글을 기고한 것과 관련해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 투성이라며 당장 교수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앞서 류 교수는 기고문에서 전태일이 16살에 '시다'로 일을 시작해 만 3년이 지난 1967년에 '재단사'가 됐고, 월급도 1,500원에서 1만5천 원으로 정확히 10배가 올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3년 후에는 월급이 2만3천 원으로 올라 월급이 6년 동안 무려 15배 이상 상승했는데, 이를 착취라고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태일 재단은 입장문을 내고, 류 교수가 수치만 나열하며 그 이면은 애써 무시하려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재단 측은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적게 잡아도 주당 105시간에 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일요일도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하고도 시다는 일당으로 커피 한 잔 값인 50원을, 재단사는 커피 10잔 값이 5백 원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1만5천 원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도 4만 원에 불과해,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비해 착취라고 볼 수 있을 만큼 턱없이 적은 임금이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김대겸[kimdk102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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