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은 日 전범 기업을 위해 어떻게 움직였나?

김앤장은 日 전범 기업을 위해 어떻게 움직였나?

2019.08.09. 오후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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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강제동원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일본 전범 기업 측을 대리한 김앤장 변호사가 증인으로 섰습니다.

재판에서 김앤장이 과거 대법 판결을 뒤집기 위해 얼마나 조직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움직였는지 보여주는 내부 문건이 무더기로 나왔는데요.

재판의 또 다른 당사자인 피해자들만 제외한 채 청와대와 외교부, 사법부, 그리고 김앤장은 사실상 한몸처럼 움직였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해 자세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강희경 기자!

먼저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외교부, 사법부 사이에 강제동원 재판을 두고 어떤 교감이 있었던 건가요?

[기자]
지난 2012년, 대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민사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이듬해 서울고등법원이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 전범 기업 측에서 재상고하며 같은 해 여름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접수됐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한일 관계 등을 이유로 이 결과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이 같은 분위기를 읽은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 도입 등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협조를 얻기 위해 적극 발 벗고 나섰습니다.

정부 입맛에 맞게 재상고심에서 판결을 뒤집기 위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하고,

명분을 쌓기 위해 외교부가 전범 기업 측에 유리한 의견서를 낼 수 있도록 대법원 규칙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앵커]
이런 분위기를, 전범 기업 측을 대리하는 김앤장에서도 감지했던 거군요?

[기자]
검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애초 김앤장은 재상고심에 가더라도 쟁점 변화가 없기 때문에, 승소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며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하던 중에 외교부가 결과를 뒤집기 위해 손 쓰는 모습이 보이고, 또 법원행정처와도 계속 교감하는 정황을 포착하게 됩니다.

관련 내용은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진행된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의 증인신문에서도 다뤄졌습니다.

지난 14년 11월, 김앤장 소속이던 현홍주 전 주미 대사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이 모인 자리에서 강제동원 재상고 사건에 대한 정부 동향을 들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한 변호사는 그 무렵 정부 동향을 '처음으로'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이 자리에서 현 전 대사는 강제동원 사건 문제를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이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 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희망을 얻은 김앤장은 그 즉시 '징용 사건 대응팀'을 만들었고 적극적으로 판결 뒤집기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앵커]
이때부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전방위로 나섰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대응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기자]
대응팀은 한상호 변호사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현홍주 전 대사, '일본통' 변호사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은 각각 '전담 마크 맨'을 지정해 동향을 집중적으로 파악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상호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당시 행정처 기조실장 등 사법부를 주로 담당했고, 유 전 장관과 현 전 대사는 외교부나 청와대 외교 라인 접촉을 도맡았습니다.

김앤장 출신인 곽병훈 변호사가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이었는데, 곽 비서관을 '관리'하는 것도 한 변호사가 도맡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찰은 재판에서 이렇듯 김앤장이 법원과 외교부, 청와대 등 각종 동향을 파악한 문건을 제시했는데요.

날짜별로 외교부 동향, 법원 동향, 심지어 BH 동향 등의 제목이 적혀 있고, 누구를 언제 만나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눴는지도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문건 중에는 한 변호사가 본인이 직접 자필로 쓴 메모도 있었고, 한 변호사가 확인한 내용을 후배 변호사들을 시켜 작성하게 한 문서도 있었습니다.

[앵커]
먼저 사법부 접촉 문건을 보면, 대법원에서 김앤장에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촉구하라고 요청한 정황이 드러났죠?

[기자]
네, 처음엔 대법원보다 외교부가 한일 관계 악화 등을 우려해 강제동원 소송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하는 입장이 더 강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을 기준으로 이런 분위기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는데요.

2015년 말 위안부 합의 체결을 위해 물밑 작업이 진행되면서부터 외교부가 국민의 반일 감정이 커질 것을 우려해 의견서 제출을 미루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정운영 협력 사안에 강제동원 재판을 포함해야 하는데,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니 애가 타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양승태 사법부에서 전범 기업 측을 대리하는 김앤장을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김앤장에 '외교부 등 정부 의견 요청서'를 내달라고 요구하면서 양측의 손발이 맞은 겁니다.

김앤장 내부 문건을 보면 당시 법원에서 외교부 의견서를 필요로 한다는 정황을 김앤장이 파악하고 있었고, 실제 임종헌 당시 기조실장이 김앤장 측에 의견조회 요청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이와 함께 임종헌 기조실장으로부터 전원합의체 회부 방침도 건네 들은 한 변호사는 앞서 여러 차례 독대를 통해 이미 공감대를 이룬 양 전 대법원장을 거듭 찾아가 재판 관련 논의를 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앵커]
유명환 전 장관 등은 외교부로부터 재판 관련 정보들을 수집했는데 어떤 정보들을 파악한 건가요?

[기자]
재판에서는 유명환 전 장관이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 등을 만나 대화한 내용도 여러 차례 공개됐습니다.

검찰이 공개한 한 변호사의 자필 메모 가운데 지난 2015년 11월 11일 작성된 걸 보면 유명환 전 장관이 조태열 2차관을 만나 나눈 대화를, 한 변호사가 받아 적은 내용인데요.

유 전 장관이 조 차관에게 '혼네', 즉 속마음이라는 일본어를 사용해 가며 대법원과 의사소통에 문제없는지 묻고, 조 차관이 '문제없다'고 답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또 외교부가 의견서 제출을 주저하자 유 전 장관이 청와대가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며 김앤장 출신인 곽병훈 법무비서관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내용 등도 문건에서 드러났습니다.

[앵커]
아무나 알 수 없는 이런 은밀한 정보들을, 김앤장을 통해 전범 기업에선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거군요?

[기자]
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에서 공개하지 말라며 반발했던 서류 중 하나입니다.

김앤장이 전범 기업 측과 통화한 내용인데, '고객 반응'이라는 제목의 김앤장 문건에는 대법원의 심사숙고로 재상고심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돼 있습니다.

또 외교부 등을 통해 대법원을 설득할 필요가 있고, 그런 시기가 무르익었다고도 전했습니다.

이렇듯 김앤장은 자체적으로 파악한 법원이나 청와대, 외교부 동향을 전범 기업 측에 고스란히 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전범 기업까지 이어지는 이 전체적인 '커넥션'에서 또 다른 재판 당사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점입니다.

검찰은 김앤장이 전범 기업 측에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까지 전달했는지 파악하려 했지만, 한상호 변호사는 고객의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며 관련 증언을 모두 거부했습니다.

다음 달 4일에는 다른 김앤장 변호사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는데요.

실제 문건을 작성한 당사자들이기도 한 만큼 이때 추가로 더 구체적인 자료가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YTN 강희경[kanghk@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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