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이거실화냐]"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당사자들이 말하는 '조현병'

[제보이거실화냐]"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당사자들이 말하는 '조현병'

2019.06.27. 오후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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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사람들과 바쁘게 들리는 타닥타닥 인쇄기 소리. 아침볕이 제법 뜨겁던 지난 19일 을지로의 인쇄 골목을 찾았다. 목적지는 정신질환자들의 쉼터이자 정신 장애 인권단체인 '파도손'.

어지러운 인쇄 골목골목을 20여분 헤매다 유리문에 붙어있는 ‘파도손’이라는 세글자를 보자 반가운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목적지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눈앞에 보인 아득한 계단은 작은 절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5층 계단을 겨우겨우 올라 한숨을 돌리려던 차 이정하 대표가 안쓰러워 보인다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올라오느라 힘드셨죠"

이정하 대표 뒤에는 긴 테이블에 앉아 이미 인터뷰 준비를 마친 듯 보이는 당사자4인<미소라(가명),고양이 아줌마(가명),슛돌이(가명),베짱이(가명)>이 보였다. 고양이 아줌마(가명)가 주는 물 한잔을 얻어먹고 나서야 그들의 공간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공간 한쪽, 쉼터로 보이는 작은방에는 어떤 이가 늦은 아침잠을 청하고 있었으며 공간의 벽면 곳곳에는 이정하 대표가 그린 그림들이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옥상이었는데 활동가들이 키우는 작은 텃밭과 노랗고 붉은 다양한 색들의 꽃들이 앙증맞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인터뷰 초반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초면인 이와 곧장 병력에 관해 이야기 나누지 않듯 첫 질문으로 그들의 일상을 물었다. "일주일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등
5인 5색. 그들의 답은 다양했다. 누구는 드라마를 보는걸 즐긴다고 했고 누구는 이번 주에 첫 출근을 하게 됐다며 설레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 대한 첫인상은 인터뷰 장소인 옥상만큼이나 다채로웠다.

"연좌제잖아요. 연좌제"
치료와 일상으로 바쁜 그들이지만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사회적 인식은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병력을 밝히기도 꺼려지며 심지어 언론 노출 이후 '파도손' 홈페이지는 악성 댓글 테러로 2차례나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혐오로 얼룩진 '완전한 타인들' 덕분에 그들은 고통받고 있었다. '조현병 범죄'를 추정하는 뉴스가 쏟아질 때마다 가슴 졸였을 그들. 누구보다 해당 범죄와 사건·사고에 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죄자 프레임'보다 그들이 더 아쉬워하는 건 '재활 치료 환경'이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법학과를 전공한 슛돌이(가명)는 요즘 재활 치료 명목으로 캐릭터 색칠 공부를 한다고 했다. 종종 산수도 한다고 덧붙이면서 멋쩍게 웃는 그의 모습이 어딘지 씁쓸해 보였다. 정신질환자 개인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된 시스템에 그들은 피로해 보였다. 이정하 대표는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이해심 있는 이가 만든 이해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절실히 강조했다. 그들에겐 많은 것들이 부족해 보였다. 공간, 시스템 그리고 사람. 당사자가 빠진 의미 없는 논의를 그만하기 위해 팔 걷어붙인 그들. 그러나 서로를 보듬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인터뷰 말미,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당사자들에게 그들은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베짱이(가명)는 "소설책을 완성하는 것이 꿈"이라며 "정신질환자들이 목표를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미소라(가명)는 당사자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삶을 이어가길 강조했다. 아파도 괜찮은 사회, 살아있을 수 있는 환경. 과연 그들만의 몫일까.

그들과 마주한 후 돌아가는 길 머릿속에 자성이 일었다. 누가 그들에게 낙인을 찍었을까? 우리는 '무심한 타자화'하기에 바빴던 것은 아닐까?

촬영: 정원호PD(gardenho@ytnplus.co.kr)
박태호PD((ptho@ytnplus.co.kr)
유예진PD(gh8767@ytnplus.co.kr)

제작:유예진PD(gh876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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