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사살명령...39년 만에 증언

전두환이 사살명령...39년 만에 증언

2019.05.14. 오전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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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씨가 직접 광주로 내려와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미군 정보부대 소속으로 근무하며 관련 정황을 직접 확인했다는 주장인데, 무성했던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취재기자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김태민 기자!

우선 어제 기자회견에서 나온 증언의 주요 내용부터 정리해보죠.

[기자]
네, 한마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장 진압은 모두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취지입니다.

대표적 음모론인 북한군 침투설은 아무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였으며,

여기에는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들기 위한 사복군인들의 개입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울러 전두환 씨가 직접 광주로 내려와 군 지휘부와 회의를 열었고, 이 과정에서 시민에 대한 사살명령이 내려졌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습니다.

[앵커]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인데, 이 증언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기자]
네, 미 정보부대 출신 김용장 씨입니다.

김 씨는 미 육군 정보여단 소속 방첩부대에서 25년간 근무한 정보요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이 광주에 머물면서 상부에 40건 가까운 첩보를 보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씨는 오늘날까지 당시 광주의 진실에 대한 날조가 이어지고 있다며,

39년 만에 진상을 밝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기자회견을 마련했다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김 씨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자회견장에는 당시 보안사령부에서 근무한 허장환 씨도 함께 나와 증언에 힘을 보탰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주장의 근거를 하나씩 짚어보죠.

우선 전두환 씨의 광주 방문은 어떻게 확인된 내용인가요?

[기자]
김 씨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한 지 사흘만인 1980년 5월 21일, 전두환 씨가 직접 광주로 내려왔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전 씨는 정오쯤 헬기를 타고 광주비행장에 내렸는데 곧바로 1시간 정도 회의를 열었고

여기에는 정호영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 보안부대장 등이 참석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회의 직후인 낮 1시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에 대한 발포가 이뤄진 점을 미뤄보면, 이 회의에서 '사살 명령'이 전달됐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씨는 이런 정황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전 씨가 헬기를 이용했기 때문에 공군에는 분명히 비행계획서가 남아있고 이걸 확인하면 규명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앵커]
'북한군 침투설' 역시 조직적인 날조였다는 취지인데 이 근거는 또 무엇인가요?

[기자]
"북한군 600명이 광주로 와서 방화, 총격 등을 하며 시민을 선동했다"

이 주장은 최근까지도 인터넷 극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내용인데요.

이에 대해 김 씨는 당시 한반도 상공에는 주한 미군 첩보 위성 2대가 북한과 광주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있었으며

북한군이 미군의 첨단 감시망을 뚫고 침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북한군 6백 명이 바다 밑으로 침투하기 위해선 잠수함 30척 정도가 필요한데,당시 북한은 그런 전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일축했습니다.

[앵커]
당시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위한 조직이 투입됐다는 주장도 나왔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앞서 북한침투설이 날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바로 김 씨가 직접 목격한 이른바 '편의대'입니다.

김 씨는 5월 20일쯤 시민 행세를 하는 사복군인 30∼40명 이른바 '편의대'가 군 수송기를 타고 광주에 와 시내로 투입된 것을 목격했으며,

앞서 퍼진 북한군 침투설 또한 이들이 꾸민 짓이라는 게 자신의 합리적 추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든 후 강경 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한 공작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앵커]
이외에도 당시 광주의 여러 상황이 미군에 보고됐다고요?

[기자]
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김용장 씨는 미군 상부에 40건 가까운 첩보를 올렸는데,

자신은 직접 확인된 사실만 보고했고 근무하는 25년 동안 보고의 진위에 대해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 전국 11곳 사무실에서 같은 정보가 경찰청과 치안본부 등 여러 곳에서 동시에 올라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도 광주 국군통합병원에서 이뤄진 시신 소각, 헬기 사격, 광주교도소 습격, 공수여단 성폭행 등에 대한 첩보 보고도 이뤄졌는데

특히 이 가운데 일부는 미국 카터 대통령이 직접 읽고 이로 인해 표창장도 받았다며 신빙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 사회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

김태민 [t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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