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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이거실화냐] 도로 위에 선 벽, 사유재산과 공공재의 딜레마
Posted : 2019-03-2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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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YTN으로 들어온 두 장의 사진. 힘차게 달리고 있어야 할 차량이 뜬금없이 도로 위에 서 있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경북 구미시의 한 마을에서 사유지라는 이유로 주민 모두가 사용하는 도로에 벽이 세워진 것. 주민들은 수십 년을 사용해온 도로가 갑자기 막히자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제보이거실화냐> 제작진 역시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에 카메라를 셔터를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도로를 막은 벽 안에는 우리를 가로막는 또 다른 벽이 숨어있었다.

사유재산권을 행사한다면서 멀쩡한 길을 가로막았다는 뉴스를 종종 볼 수 있다. 모두가 사용하는 도로를 개인이 사용하지 못하게 막다니,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로는 사회간접자본으로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한 공공재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 도로가 내 땅 위에 있다면 어떨까? 내 땅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도로로 이용되는 면적만큼의 토지세를 내야 한다면 땅주인 입장에서는 화가 나지 않을까? 구미의 이 도로에 벽이 세워진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땅주인인 A 씨는 해당 부지에 집을 짓고 20년 이상 거주한 주민이다. 집을 지을 당시 현재 도로선에 맞춰 건축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구미 시청에서는 이를 A 씨가 해당 부지의 도로 사용을 허용했다고 보고 보상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A 씨는 구미시가 해당 땅에 대한 세금감면을 해주거나 시에서 이 땅을 매입해주길 바라고 있지만, 시에서는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상황이다.

문제는 중간에 낀 주민들. 수십 년간 출퇴근길, 시장 가는 길로 쓰였을 길이 막히자 주민들은 큰 불편을 느끼고 있다. 벽이 세워지고 주민들이 시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러하다.
“사유지 내 관습상 도로는 행정법상 규제 대상이 아니다.”

도로를 막는 벽이 생겼는데 그것을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니 이건 무슨 말인가. 관습상 도로란 법으로 규정된 법정도로가 아닌 비법정도로로 관련 법률에 따라 개설된 도로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 도로로써 이용된 도로를 말한다. 즉, 법적으로는 도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경우 벽에 대해 시에서 행정적 조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구미시의 입장이다.

다시 말해, 땅 주인은 도로로 쓰이는 토지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주민들은 생활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철거도 못 하는 상황. 말 그대로 “멘탈붕괴”이다. 법무법인 지현재의 최이로 전문위원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도로에 대한 개념의 충돌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도로법, 사도법, 건축법, 농어촌도로정비법 등 다양한 법률에서 정의하는 도로의 개념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 보니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제23조 3항에 재산권 수용·사용 제한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재산권 제한 규정만 있을 뿐 보상 규정은 미비하다고 말했다.

“연말만 되면 예산 소진해야 된다면서 멀쩡한 보도블록은 다 뒤집어 놓으면서 이런 건 왜 해결을 안 해줘!”
땅주인 A 씨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같은 동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이 아닐까? 도로 위에 선 벽,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법률의 벽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두 벽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마음의 벽만 커져가고 있다.

제작 : YTN PLUS 박태호 PD(ptho@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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