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큐] 4·3사건 재심...70년 만에 무죄 인정

[뉴스큐] 4·3사건 재심...70년 만에 무죄 인정

2019.01.17. 오후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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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광연 앵커
■ 출연 : 양일화 선생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우리 현대사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주 4.3사건 재심이 오늘 열렸습니다. 당시 군사재판에 의해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수형자 18명에 대해서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기까지 무려 7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인데 당사자 심정이 어땠는지 오늘 퀵터뷰에서는 4.3 수형 피해자 가운데 한 분이신 양일화 선생님 연결해 보도록 할 텐데요.

오늘 재판 내용부터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재판부에서 나온 얘기부터 좀 전해 드릴게요. 피고인 모두 일관되게 어떤 범죄로 재판받았는지 모른다고 진술을 했고 또 공소장도 전달받지 못했다, 짧은 기간에 2500명이 넘는 수형인들이 재판을 받아서 정상적인 재판 절차가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판결이 나왔는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네.

[앵커]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고요. 제가 현장 사진 보니까 나리꽃이라고 무죄 의미를 담은 꽃도 달았던데, 그때 소감 어떠셨습니까?

[인터뷰]
소감이야 반갑지.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그런 꽃을 달아줄지 몰랐는데 그거를 달아주고 무죄 판결을 받으니까 감사할 따름이지 더 할 말이 있나.

[앵커]
주변에서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들도 계시던데, 다른 어르신들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인터뷰]
어르신들도 반갑다, 차마 이럴 줄은 몰랐는데 70년 만에 해소되니까 우리 동네 주민들도 또 주위의 사람들도 다 반가워서 박수로 환영하고 있다 이런 말이죠.

[앵커]
혹시 선생님 가족분들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인터뷰]
가족은 이루 말할 수 없지. 다 잘 됐다고 칭찬해 주는 거지, 다.

[앵커]
가족분들도 얼마나 오랜 시간 70년이라는 오랜시간 동안.

[인터뷰]
몸 졸이고 살다가 이제는 활개치고 다닐 수 있다.

[앵커]
그렇군요. 우리 양일학 할아버님의 경우 어떤 이유로 그때 수감 생활을 하셨나요? 그때 얘기 좀 해 주시죠.

[인터뷰]
어떤 이유는, 이유 없이 잡아갔으니까 안 한 것도 했다, 한 것도 안 했다 하면서 몇 가지 죄목이 돼 있지. 그 사람들 손에 쓰는 게 그러니까 연필 가져와서 무조건 써서 기록해가지고 이걸 죄목으로 만들어서 집어넣어버렸지. 옥방으로.

[앵커]
저희 자막에 나가는데 사상범, 전쟁포로, 한국군. 이런 여러 역사를 거쳐서 오늘 시간까지 흘러왔는데 어떤 얘기 들을 때 가장 억울하셨습니까?

[인터뷰]
어떤 이야기? 판사한테 들을 때?

[앵커]
아니, 평소에 제가 듣기로는 제 입으로 좀 표현하기 거북해서 안 드렸습니다마는 빨갱이라는 오명도 쓰셨고.

[인터뷰]
그게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게 아니고...

[앵커]
평생 이제 범죄자라는 어떤 낙인도 힘드셨을 것 같고요.

[인터뷰]
여기도 두 파거든. 파가 있어서 그 파에서 빨갱이들이 침략까지 안 했느냐. 무슨 큰소리 하느냐. 이런 식으로 또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그러다가 오늘 그런 게 없어짐으로써 내가 큰소리치고... 봐라, 내가 떳떳이 살아나왔다. 그게 진심이냐, 바른소리냐. 너희들 빨갱이라고 했던 사람들 반성해라, 이런 소리 할 수 있지.

[앵커]
제가 조금 더 시청자 여러분들을 위해 설명을 해 드리면 1948년 말에 친척집에 계셨다가 이른바 빨갱이로 내몰리셔서 군법회의를 통해서 내란죄를 적용받아서 무려 징역 5년을 억울하게 옥살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그게 맞아요.

[앵커]
그렇습니다. 선생님 같은 경우는 이런 4. 3사건 겪으신 어떤 그런 아픔들을 책으로도 내셨잖아요. 책으로 내신 어떤 이유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인터뷰]
책으로 낸 거는 그게 이유가 있지. 이것을 묻어두면 안 되겠다, 동네사람이든 남들이든 자식들이든 징역 갔다 온 사람들만 아는 것이지 개인적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살다가 오고 한 거를 내용적으로 몰랐으니까 책으로 내서 이걸 사람들에게 뿌려주면 이 사람은 징역 살다가 나온 억울한 사람이다. 주위의 사람들이 도민들이 다 알게 됐어요. 책을 1000권을 해서 뿌렸거든. 어떻게 살아나온 사람이냐. 그래서 뿌려놓으니까 나를 만나면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어. 이번에 재판을 하면서 우리가 또 큰 소리를 하게 되고.

[앵커]
아마 그런 그때의 아픔을 책과 글을 통해서...

[인터뷰]
아픔이 해소되는 거야, 책을 내니까.

[앵커]
기록을 좀 남기시겠다고 어떤 결심을 하셔서 그런 책까지 내신 것 같고요. 내일 오전에 4. 3평화재단 참배하시기로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앞으로 어떤 또 활동 계속 하실 예정이신지 끝으로 소개해 주시죠.

[인터뷰]
참배를 못 가게 됐어요. 다리가 아파서 똑바로 걷지도 못하니까 병원에 가기로 약속이 된 날이라서 참배를 못 가겠다고 말하고. 건강한 사람만 가는...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판결을 받으신 수형인들 모두 오늘 판결 이후에 기념하기 위해서 내일 재단 참배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국회에서 4.3 특별법 개정에 대한 과제도 남아 있는데 오늘 재판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해 오신 모든 과정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진실을 담은 역사 교과서를 선사할 수 있는 어떤 이정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오늘 고단하신 하루였는데 인터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
네, 고마워요.

[앵커]
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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