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64] "왜 저만 잡아요"...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 동행해보니

[해보니 시리즈 64] "왜 저만 잡아요"...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 동행해보니

2019.01.12.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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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64] "왜 저만 잡아요"...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 동행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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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길을 걸을 때 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와 누군가가 뱉은 침을 피해 걷는 습관이 생겼다. 각 지자체별로 담배꽁초를 치우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이 모이는 곳엔 담배꽁초도 모인다.

길거리 담배꽁초는 단순히 시민 불편을 초래하거나 도시 환경을 헤치는 문제를 넘어 화재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경기 과천에서 운행 중인 차량 밖으로 던진 담배꽁초로 인해 1t 화물차 짐칸에서 불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보다 앞선 지난해 9월엔 서울 은평구 한 편의점이 버려진 담배꽁초로 인해 불에 탔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는 매년 전국에 6,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해보니 시리즈 64] "왜 저만 잡아요"...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 동행해보니

지난 9일 서울 중구청 청소행정과의 도움을 받아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 업무에 2시간 동행해봤다. 중구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채용해 생활폐기물 무단투기 단속반을 운영하고 있다. (금연구역에서의 흡연 단속은 보건소 소관이다.)

이날은 2호선 을지로입구역 인근 을지로 5길 약 200m되는 구간을 단속하는 날이었다. 금융사, 통신사 등 빌딩이 밀집해 유독 담배꽁초 무단투기에 대한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지역이다. 빌딩에서 흡연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6명이 집중단속에 나섰다.

길 곳곳에 담배꽁초 무단투기 금지 경고문이 붙어있었지만 흡연자들은 담배를 핀 뒤 아무렇지 않게 땅에 버렸다. 지나가는 비흡연자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고, 단속반의 존재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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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에서 고용한 것으로 보이는 관리 직원들이 틈틈이 건물 앞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주워 담아갔다. 빌딩 앞 화단에서 빗자루질하면 담배꽁초가 수두룩하게 나왔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다.

단속반 직원들은 2인 1조로 돌아다니다가 무단투기를 목격하면 시민에게 다가가 신분증과 연락처를 요구하고 적발 사실을 안내한다. 현장에서 단말기를 통해 전용 가상계좌가 발급되고, 문자와 우편으로도 고지서가 발송된다.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담배꽁초 무단투기 과태료는 5만 원이다. 자진 납부 기간인 15일 동안은 과태료의 20%가 감경돼 4만 원을 내면 된다.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77%까지 가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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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적발된 시민들 대부분은 실수를 인정하고 신분증이나 연락처를 제시했다. 하지만 불평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제가 버린 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다 버리는데 왜 저만 잡으시는 거예요?",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같아요", "어휴 오늘은 재수가 없네", "언제부터 여기 계신 거예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한 시민은 적발된 뒤 욕설을 하며 돌아가기도 했다.

물론 이런 비판 나오는 건 단속반 인력 부족 문제 탓이기도 하다. 이들은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을 확실히 목격했을 때만 적발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버려진 담배꽁초를 직접 주워 증거로 제시해야 잘못을 인정하는 시민도 있고, 단속반이 다른 시민에게 적발 안내를 진행하는 동안 꽁초를 버리고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6명이 모든 무단투기자를 다 잡아내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단속반 직원들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자체가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 인력을 계속 늘리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하지 않으면 된다'는 간단하고 상식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해보니 시리즈 64] "왜 저만 잡아요"...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 동행해보니

하지만 흡연자들은 무단투기를 하고 싶지 않아도 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릴 쓰레기통이 없다고 호소한다.

실제 이날 적발된 시민 중에는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없는데 어디 버려요?"라고 묻거나 "그냥 길에 재떨이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쓰레기통을 좀 더 늘릴 수 없냐는 물음에 중구청 관계자는 "종량제 봉투로 정책이 바뀌면서 거리 쓰레기통이 사라졌고, 환경미화원도 줄고 있어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만 설치해둔 상태"라고 설명했다.

특히 "도로에 쓰레기통을 더 놓으면 흡연자들이 주변에 모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반대로 금연구역을 지정해달라거나, 담배꽁초를 치워달라는 민원이 더 들어온다"라고 애로사항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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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에서 지정한 흡연 구역은 단속 구역에서 걸어서 5분쯤 떨어진 곳에 설치돼 있었다. 실제 흡연 구역에 가보니 그곳에도 흡연자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재떨이와 쓰레기통도 여러 개 놓여있었다.

그런데 재떨이가 있다고 해서 무단투기를 하지 않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쓰레기통과 재떨이가 갖춰졌지만, 흡연 구역 바닥은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뒤덮여있었다. 이곳은 무단투기 단속도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이어서인지 재떨이가 있어도 담배꽁초들이 바닥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화단과 벤치를 뒤덮은 담배꽁초는 오롯이 환경미화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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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가량 이 거리에서 단속에 걸린 사람은 32명이었다. 단속반 직원들은 "날이 추워서 오늘은 단속된 이들이 적은 편"이라고 했다. 이날 서울의 기온은 영하 2도였다.

단속반 직원들은 많을 때는 하루에 100여 명까지 적발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실적으로 모든 무단투기자를 적발할 수 없고, 정확한 통계를 낼 수도 없지만 실제 거리에 버려지는 담배꽁초는 이것보다 훨씬 많을 터다.

이날 단속에 나선 한 직원은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항의하며 욕도 많이 했고, 일부는 도망가기도 해서 끝까지 쫓아가기도 했었다"라며 "단속 홍보가 좀 돼서 그런지 요즘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양호해진 편"이라고 말했다. 단속반 직원 중 한 명은 도망가는 적발자를 스치듯 만졌다가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협박을 들었다는 사례도 들려줬다.

4년간 무단투기 단속을 하고 있다는 직원에게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묻자 "'당신이 봤냐', '증거 가져와라'라고 오히려 화를 내는 시민들을 상대하기 어렵다"라고 털어놨다.

적발된 시민이 끝까지 신분을 밝히지 않을 경우, 경찰의 협조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공무원들에게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평균 일주일에 한 번꼴로 신고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

중구청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이 장소에만 담배꽁초 관련 민원이 계속 들어와 단속을 수십 번 나왔다"라며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불특정한 시간에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하다 보니 근절이 안 된다. 단속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구에서 적발된 전체 무단투기 건 중 담배꽁초가 약 80%를 차지했다"라며 "자기 집 앞마당이라고 생각하면 버리지 못할 텐데, 결국 흡연자 개개인의 의식이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라고 강조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YTN PLUS 문지영 기자
(moon@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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