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사라진 방화' 진단과 해법 - 전문가 5인에게 묻다

④ '사라진 방화' 진단과 해법 - 전문가 5인에게 묻다

2018.11.26. 오후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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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취재 : 함형건 기자[hkhahm@ytn.co.kr]
취재 · 기사 : 이승배 기자[sbi@ytn.co.kr]

(기자 註) 방화 의심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국내 화재조사체계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파헤쳐온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관련 내용을 담은 인터랙티브 사이트를 제작해 공개했습니다. 방송과 인터넷 기사와는 별도로 관련 내용을 더 자세히 사진, 데이터와 지도, 차트를 통해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사라진 방화' 사이트 바로 가기'

(포털 기사에서 '바로 가기' 링크가 활성화되지 않을 경우, http://dataj.ytn.co.kr/arson/를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시면 됩니다)

"현행범이나 명확히 CCTV에 정체가 잡힌 경우만 방화범으로 잡죠. 중요하죠.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더 지능한 범행, 교활한 범행을 잡아야 이 나라가 안전해지거든요.그런데 잘 안해요. 실력이 없고, 열심히 해도 진급도 안되고" <최충석 전주대학교 소방안전공학과 교수>

취재진에게 던진 화재 조사 전문가의 말은 날이 서 있었습니다. 그 이면을 파헤치기 위한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탐사보도에 머신러닝 데이터 분석을 접목했습니다.관계 기관을 상대로 200회가 넘는 정보공개청구를 해 조각 조각의 정보를 수집하고 퍼즐을 맞춰갔습니다.

그렇게 보도한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사라진 방화' 연속 보도는 3가지 숫자에 대한 의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 2%에 불과한 방화 비율(소방)
2) 90%에 달하는 방화범 검거율(경찰)
3) 화재 감정으로 방화범을 잡은 성공 사례는 0건이라는 답변 (경찰, 국과수)

소방 통계에는 그 신뢰성이 의심될 정도로 방화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미제 방화 의심 사건으로 남겨놓을 만한 사건도 내사종결 처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국과수의 화재 감정 내역은 있어야 할 세부 통계가 거의 없었습니다. 통계가 없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진실도 묻히기 쉽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수상한 화재' 사례들을 수집하고, 화재 조사 체계의 속살을 들여다 봤습니다.

관계자의 진술을 따져보지 않거나, 전선이 끊어진 흔적만 보고 전기화재라고 속단하기도 했습니다. 화재 감식과 감정의 기본 절차를 제대로 거쳤는지 의심되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충분히 규명되지 않는 방화 의심 사건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해법은 없을까?

취재진은 화재조사의 전문가인 다섯 명 교수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 김광선 교수(한국기술교육대학교 메카트로닉스공학부)
○ 이용재 교수(경민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 이의평 교수(전주대학교 소방안전공학과)
○ 이창우 교수(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 최돈묵 교수(가천대학교 설비·소방공학과)

화재 조사 자체가 여러 변수가 개입된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그 진단과 해법도 전문가마다 다양했습니다.


"결국 구조적인 문제"


교수들은 하나같이 구조적인 문제를 꼽았습니다. 방화 자체가 증거를 없애려 의도적으로 벌이는 짓이기 때문에 화재 원인을 찾는 건 물론이고 범인 잡기는 더욱 어렵다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런 말도 됩니다. 그만큼 시간과 품이 많이 들지만, 다른 사건에 비해 이득이 많지 않다. 그래서 꺼린다는 겁니다.

이창우 교수, "방화범을 잡지 못했을 때 불이익이 더 많으니까, 정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방화 의심이 들어도 내사 종결하는 경우도 있다."

이용재 교수, "현장 경찰들 말을 들어보면 인사 평점에 있어서 방화는 점수가 낮아 다른 사건에 비해 절대적으로 도움이 안 돼 빨리 마무리하고 다른 일 하는 게 낫다는 말을 많이 한다."

원인을 모른다고 미제 사건으로 남겨두면 경찰 입장에선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방화가 아닌 일반 화재로 마무리한다는 건데, 시스템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최돈묵 교수, "경찰이 방화사건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형사 1인당 배당된 사건이 많고, 각 사건마다 점수에서 종결까지 처리해야 하는 기간이 있다. 기간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사건 관계자에게 진정을 받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 증거확보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방화사건 수사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정해진 기간 내에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내사종결’ 또는 ‘미제처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의평 교수, "원인을 제대로 밝혀야 예방 대책을 마련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현재는 제대로 조사했는지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다. 이는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과수와 소방 등 관련 기관 모두 총제적인 문제다."


둘로 나뉜 화재 조사, 일원화가 정답?


현상을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현행 국내 화재 조사 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화재 조사권이 경찰과 소방, 두 기관에 있습니다. 양쪽 다 화재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지만, 지향점이 다릅니다. 소방은 화재 예방을 위한 자료 수집, 경찰은 범인 검거가 목적입니다.

소방과 경찰이 모두 조사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화재는 경찰이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최종 결론 역시 경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정해집니다. 소방은 사실상 내부 보고서를 작성하는 의미에 그칩니다. 소방의 조사 결과를 참고할지 말지는 경찰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소방과 경찰 조사 결과가 달라도 대부분 법적 효력을 갖는 건 경찰 보고서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우리와 달리 일본과 미국은 소방이 화재 조사를 주도합니다. 일본은 조사하다 범죄와 연관성이 발견되면 경찰이 수사를 맡습니다. 미국은 수사권마저도 아예 소방이 갖고 있습니다.

화재 조사권을 하나로 합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두 기관이 이중으로 돈 쓰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한 군데서만 맡자는 겁니다. 소방은 화재는 자신들 전공이니 소방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조사권은 물론 수사권까지 달라는 주장도 합니다. 그러나 경찰 수사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일원화에 대한 전문가 생각은 어떨까? 교수들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5명 가운데 3명은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두 명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김광선 교수, "처음 신고를 받을 때부터 시작해, 불이 타들어 가는 모습, 그리고 진압 후 남아있는 화재 현장까지,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두가 화재 조사의 참고 자료가 된다"면서 이는 소방관이 제일 잘 안다"

최돈묵 교수, "소화설비 같은 전문적인 부분은 소방이 훨씬 잘 안다"면서 "현실적으로 당장은 힘들지만 궁극적으로 소방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면서 나아가서 소방이 조사는 물론 수사까지 해야 한다"

이창우 교수, "소방이 화재 조사권과 수사권을 함께 가져야 원인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면서 "특별 사법경찰처럼 소방에 화재 분야만 수사권 일부를 넘기면 된다"


"아직은 시기상조, 견제가 필요"


단일화를 반대하는 쪽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진단합니다. 방화 같은 중대한 화재라면 현장도 중요하지만, 보복이나 원한관계 같은 다른 인과 관계를 따져야 하는데 소방 혼자서는 무리라는 겁니다. 경찰과 소방이 각자 장점을 살려 힘을 합치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이의평 교수, "소방부터 실력을 더 키워야 한다. 소방이 조사권 단일화를 주장하려면 준비가 완벽히 돼야 하는데 아직은 인적 구성이나 시스템 전문성이 경찰 보다 떨어진다"

당장 화재 조사권의 일원화는 어렵더라도 미미한 소방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용재 교수,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소방이 화재 조사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것이다. 경찰과 소방,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금부터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화재 조사는 기피부서입니다"…유인책 늘리자!


화재 조사권 얘기 때마다 '전문성'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입니다. 경찰이든 소방이든 좋으니, 혼자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이 있느냐는 겁니다.

교수들은 전문성을 키우려면 화재 조사에 대한 처우부터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은 노력하는 만큼 평가도 못 받고, 일은 피곤하니 안 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경찰이나 소방할 것 없이 똑같다고 했습니다.

최돈묵 교수, "복잡하고 증거물 얻기도 힘든데, 문제가 생기면 매번 법원에 가서 증인을 서야 하고 승진 유인책도 없다. 스트레스가 많아 단명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누가 조사관을 하려 들겠나?"

이의평 교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조직 내부에서부터 화재 조사 업무를 하고 싶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실제로도 그럴까.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정보공개를 신청해 경찰이 시행하는 '베스트 형사, 수사팀' 포상 점수를 분석했습니다. 일종의 직원들 사기를 높이려고 주는 상입니다.

배점을 살펴봤습니다. 살인이나 강도보다 방화범 검거 점수는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광주광역시와 대전, 전북은 살인은 60점인데, 방화는 3분의 1인 20점에 그쳤습니다. 강원과 경북처럼 똑같은 점수를 주는 곳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 점수가 결정적 변수는 아닙니다. 이 점수 차이 때문에 방화범을 덜 잡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인책이 동기 부여는 될 수 있다고 교수들은 말했습니다.

이용재 교수, "다른 사건에 비해 방화범 수사가 어려운데 인사 평점 부분에서 절대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면 빨리 종결해버리고 다른 일 하는 게 낫다. 경찰 입장에서는 애로 사항일 수도 있다"

소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방에서는 화재 조사 관련팀이 '기피부서'로 통합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티는 별로 안 나고, 그래서 승진도 잘 안 되는 그런 곳. 데이터에서도 이런 현상은 어렵지 않게 확인됩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전국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화재 조사관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올해 현재, 전국 화재 조사관의 68.5%(720명)가 5년 차 이하였습니다. 10년 차 이상 베테랑 조사관은 9.3%(98명)에 그쳤습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근무자를 분석했는데, 화재 조사관 천2백12명 가운데 8백67명이 5년 이하로 경력이 짧았습니다. 전체의 71.5%입니다. 10년 이상 근무한 조사관은 모두 61명으로 5% 밖에 안 됐습니다.

수도권과 지방, 그리고 과거와 현재 할 것 없이 베테랑 조사관보다는 신참 직원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화재 조사는 기피 부서라 최대한 근무를 꺼리고, 그러다보니 소수의 하던 사람들만 계속 떠맡는다는 소방관들의 푸념이 통계에서도 확인됩니다.

전문가들은 "화재 조사는 이론 못지 않게 경험도 굉장히 중요해서 제대로 일을 하려면 최소 10년 이상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용재 교수, "인사 평가를 할 때 출동 건수, 구조 건수 이것만 따진다. 화재 조사하는 사람들은 대상이 안 된다"

이창우 교수, "노력하는 만큼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피곤하니까 안 하려고 하는 거다.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니까 실력이 쌓일 수가 없다"


화재 조사도 검증하자!


당근과 함께 채찍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눈길을 끕니다.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줘야 하는데, 제대로 조사했는지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겁니다. 교수들에게 생각을 물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5명 가운데 3명이 검증에 찬성했습니다.

★찬성
이의평 교수, "현재는 제대로 조사했는지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감사원이 감사해야 한다"

김광선 교수, "권한을 주는 대신에 책임 물어야 한다. 감사원 감사에 동의한다"

이창우 교수, "감식 기관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감정 기관은 제대로 감정하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별도의 연구 기관이 필요하다. 국과수처럼 화재만을 전담하는 감정, 연구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반대
이용재 교수, "감사보다는 별도의 연구 기관이 필요하다. 국과수처럼 화재만을 전담하는 감정, 연구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소방도 경찰 과수대처럼 광역 차원의 전담 화재 조사 조직을 꾸려야 한다"

최돈묵 교수, "화재라는 것은 폭행 사건과 달라 복잡하고 증거물을 얻기도 힘들어 검증 자체도 쉽지 않다. 책임을 묻기는 아직 이르다. 전문성부터 키우는 게 좋다"

화재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재난입니다. 뉴스에서도 거의 매일 빠지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할지 몰라 더욱 두렵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대책도 세울텐데, 이상할 리 만큼, 화재 조사 영역은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꼭 있어야 할 데이터가 없었고, 있는 자료는 충분히 검증되고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잿더미 속에 가려진 화재 현장의 진실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려는 사회적 관심과 노력도 부족했습니다.

언론은 당국의 조사 발표 내용을 받아쓰기에 바빴습니다. 문헌과 데이터로 진실을 찾아 실증적으로 추적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도 많지 않았고, 화재 조사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둔 시민단체도 부재했습니다. 국가적인 관리도 관리지만, 화재 조사 문제는 시민사회의 관심권 밖에 있었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사라진 방화' 보도가 마중물이 돼서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조그만 관심이 우리 동네 수상한 화재뿐 아니라 제2의 강호순 사건을 막기 위한 첫걸음일 것입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사라진 방화' 사이트 : '바로 가기 링크'

(포털 기사에서 '바로 가기' 링크가 활성화되지 않을 경우, http://dataj.ytn.co.kr/arson/를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시면 됩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관련 방송 리포트

① 사라진 방화 : 화재 조사의 불편한 진실





② 방화수사 오리무중, 검거율은 90%...화재 수사의 이면





③"화재 원인 판정 불가"...단락흔의 함정





④소방은 '방화' 경찰은 '그냥 불'...헛도는 공조





⑤'석란정 화재' 원인 미궁...여전한 '방화' 의혹





⑥엇갈린 감정 결과..."국과수 결론 이해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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