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트의 기능을 모두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바스크립트를 활성화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브라우저에서 자바스크립트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참고 하세요.

[김호성의출발새아침] "이수역 폭행 사건, 당사자들 주관적 해석에 불필요한 성대결로 번져"
[김호성의출발새아침] "이수역 폭행 사건, 당사자들 주관적 해석에 불필요한 성대결로 번져"
Posted : 2018-11-16 09:28
YTN라디오(FM 94.5)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8년 11월 16일 (금요일)
□ 출연자 :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 김호성 앵커(이하 김호성): ‘성전’ 하면 성스러운 전쟁이나, 이슬람의 지하드 이런 것 연상하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전 하면 성대결, 남녀 간의 갈등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제 보도된 이수역 주변에서 있었던 주점 남녀 폭행사건. 이것이 단순한 폭행사건이 아니고요. 남녀 간에 성차별적인 상황이 전제된 갈등, 그렇게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요. 34만 명이 넘었습니다. 남혐, 여혐 이런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죠.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설동훈 소장입니다.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이하 설동훈): 안녕하십니까.

◇ 김호성: 이번 사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세요. 일단 이 사건이 갖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설동훈: 예. 저는 세 가지 사건의 복합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화요일 새벽에 발생한 사건이고요. 그 사건에서 여성 두 분하고 남성 세 명하고 이제 말싸움이 있었고 그다음에 몸싸움이 있었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 사건은 그 사건 이후에 당사자들이 각각 이 사건을 놓고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사건의 진실은 지금 잘 모르는 상태이고요. 한쪽에서는 남성혐오다, 한쪽에서는 아니다, 여성혐오다라고 이야기를, 순서야 지금 확인이 안 되는 것이고요. 그다음에 세 번째 사건은 이 사건 이후에 네티즌들이 역시 동일한 사건을 대리전쟁 비슷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객관적 사건이 있고, 그에 대한 당사자들의 주관적 해석 내지는 주장이 있고, 여기에 따른 또 다른 형태의 성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김호성: 그렇다면 점점 확산되어가는 양상을 지금 보이고 있는데요. 이 같은 사회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설동훈: 우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남녀는 대립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서로 공존하는 존재이고요. 모든 인간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난 거라고 보면 불필요한 일종의 성대결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하여튼 이번에 사건의 당사자들로 연루된 사람이 2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고요. 젊은 사람들이 서로 감정을 자극하는, 누가 먼저였든 간에 지금 그 진실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 하에서는 서로 한 사람이 거친 언사를 한 것으로 생각이 되고요. 나머지 한쪽에서는 같은 형태로 혹은 그보다 더 강한 형태로 주고받으면서 이 사건이 증폭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 김호성: 사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용기 있는, 그리고 그 용기를 바탕으로 큰 변화를 이끌고 있는 미투운동. 이 미투운동이 촉발한 젠더 이슈, 성에 대한 이슈가 어떤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성대결로 향하고 있다, 이런 비판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고 계시는지요, 교수님께서도요?

◆ 설동훈: 미투를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는데 여러 가지 형태의 미투현상이 나타났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검사 한 분, 그다음에 연예인들, 그리고 또 대학가에서도 곳곳에서 발생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미투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렇지 않은 케이스, 조사를 해보니까 아닌 것으로 밝혀진 케이스가 일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일부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체 미투운동을 훼손하는 것은 저는 잘못되었다는 판단이고요. 지금 이번에 발생한 사건이 그와 같은 것인지, 아닌지는 일단 사실관계를 판단이 아직 안 이뤄진 상황이라서. 저도 언론 기사를 계속 추적하고 있는데 조금씩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지금 바뀌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현재는 섣부른 판단보다는 경찰 발표를 좀 기다린 이후에 해석을 하거나 평가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 김호성: 언급하신 객관적 사건에 한 주관적인 해석, 그것을 배경으로 한 조금 더, 제3자들의 대결구도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더욱더 심화시키고 있는 그런 것들이 예를 들어서, 일반인들은 사실 잘 친숙하지 않은 단어들입니다. 메갈이라든가, 한남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해서 뭉쳐져 있는 사람들이 이 사태를 더욱더 큰 싸움의 양상으로 번지게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그런 지적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 설동훈: 예, 정확한 지적입니다. 한남이란 한국 남성을 뜻하는 건데요.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맥락에서 보면 듣는 사람들은 이걸 모욕으로 느낀다는 걸, 메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메갈리안이라는 그 용어라서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집단적으로 한국 사회의 문화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건 괜찮겠지만 개인들 사이에서 상대방 면전에서 그와 같은 표현을 쓰게 되면, 특히 젊은 사람들은 모욕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보고요. 그런 점에서는 개인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용어로는 어떤 경우에도 저는 옳은 표현은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 김호성: 그런데 이 같은 갈등상황에서 어찌 되었든 간에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한다면 이 같은 단순한 폭행에 관련되는 사건사고 처리로 마무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또 다른 사건사고가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잖습니까.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유사한 사례들을 좀 줄여나갈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 설동훈: 예. 우선 1차적 사건이 있었고요. 거기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있었는데, 주관적 해석은 사람들의 기억은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요. 그래서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에서도 사실은 어떤 사건을 놓고 해석을 해보면 제각각의 주장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진실이 경우에 따라서는 안 밝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번 사건에는 쌍방이 휴대폰으로 녹화까지 했고 목격자분도 있으니까 밝혀지리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자신만의 주장을 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판단은 하여튼 하는 것이 옳겠죠. 그다음에 사실판단에 바탕을 두고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가를 바라보는 게 저는 맞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성급한 것 같아요.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원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지레 예단을 하는 거죠. 예단을 해놓고 한쪽에서 또 다른 한 쪽을 비난하는. 그러다 보니까 결국은 근거 없는, 나중에 팩트가 발표되고 난 다음에는 좀 허무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너무 섣불리 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루만 더 기다리면, 언론에 의하면 내일 경찰이 발표한다고 하니까 내일 경찰 발표를 듣고 난 다음에 평가를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면 조금 덜 소모적인 논쟁으로 갈 거라는 생각입니다.

◇ 김호성: 표면에 드러난 이 상황 말고요. 그 이면에 감춰져 있는,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어떤 성적인 차별에 기인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사회적인 여러 가지 불만의 요인들이 참 많이 있을 텐데요. 어떤 이유가 있다고 보시는 건지요?

◆ 설동훈: 참 쉽지 않은데요. 분명히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있습니다. 성차별이 있고, 성차별이 있으니까 그 성차별의 피해자에 해당하는, 대부분 여성이겠죠. 그런데 경우에 따라 권력이 작용하면 여성이 가해자가 되고 남성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의 기준뿐만 아니라 권력이나 재산이나 여러 가지 기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거기에서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은 사실은 말로써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려고 들죠. 이걸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스콧은 ‘약자들이 가지는 무기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자기들끼리 그와 같은 표현을 쓰는 거죠. 그렇지만 면전에다 대놓고 그런 약자들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가령 한국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놈’ 이렇게 부르지 않습니까. 중국, 일본, 미국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이 강대국에 의해서 압박당한 약소국 사람들이 과거에 그렇게 불렀다는 것을 그렇게 설명하는데요. 이번 경우에도 그와 같은 개념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성차별이라든지 여러 가지 차별의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용어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옆에 있는 개인들 사이에서 그와 같은 용어를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죠. 그것도 면전에서,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모욕을 안 느끼겠습니까. 그래서 약자들의 무기라는 것은 자기들끼리 제한된 공간 내에서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들 사이에서 그것도 면전에서 하게 되면 모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과 맥락을 따져가면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김호성: 법과 질서, 그리고 비폭력적인 그런 상황들 감안해서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 설동훈: 감사합니다.

◇ 김호성: 지금까지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이었습니다.
댓글등 이미지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