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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
◇ 신율 앵커(이하 신율): 역사에 대해 우리가 흔히 이런 이야기 하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들 중에는 과거에 나타났던 일들이 데자뷰처럼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준비한 시간이 바로 History in News 인데요. 오늘 저희가 아침 오프닝에서도 말씀드리고, 그 이후 인터뷰에서도 계속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국회의원 자녀의 취업청탁논란, 이와 관련해서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이 있죠. 이 음서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음서제가 과연 어떤 것인지, 이런 것이 현대에서 다시 재현된다고 표현해도 될지,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 스튜디오에 나와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세요.
◇ 신율: 일단 음서제가 뭔가요?
◆ 전우용: 말을 가져다 붙여서 그런 면이 있는데요. 사실 음서제와 최근 나왔던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의 자녀 취업청탁 의혹과는 다른 이야기이죠. 음서는 신분, 직역이 세습되던 고대부터 중세까지 하나의 사회적 관행이자 법률로서 허용되었던 것이니까요. 최근처럼 불법적으로 청탁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음서나 과거와 같은 중세적인 관리채용 제도가 무너지고, 근대화 과정에서 청탁, 추천, 의뢰와 같은 것들이 19세기 말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일반적인 취업 시스템이었거든요.
◇ 신율: 공채가 없었을 때죠.
◆ 전우용: 그렇죠. 그러니까 이걸 중세적 음서제와 바로 갖다 붙이는 건 맞지 않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이건 신분의 세습을 보장하기 위해서, 고위 관료의 경우 아들 중에 하나까지는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임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였죠.
◇ 신율: 그게 고려시대부터 있었어요?
◆ 전우용: 그렇죠. 과거라는 것이 고려시대에서는 부수적인 관리채용제도였고요.
◇ 신율: 과거가 관리가 되는 주된 통로는 아니었군요?
◆ 전우용: 네, 주변적으로 진행되었고, 중심은 세습, 천거에 의해서 진행되었고요. 지방호족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호족들에게 관직을 주면서 계속 세습시키는 것이죠. 고려가 귀족사회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고요. 조선시대에 들어서 한층 관리임용제도가 세련되고, 공정한 방식으로 전환될 때 과거제를 중심으로 놓게 되고, 오히려 음서제가 부수적인 제도로 취급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 신율: 그러니까 고려시대까지는 음서가 주된 채용 시스템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과거가 생기면서 음서와 같은 것들이 부수적으로 떨어졌지만, 아들 중 한 명은 계속 해 줬다는 거죠?
◆ 전우용: 네, 지금은 개인주의시대니까 훈공, 포상이라는 것이 개인에게 내려가는 것이지만, 가족주의 시대에서는 공을 세우면 가문 자체에 영예가 돌아가고, 그 지위가 유지 될 수 있도록, 공신이라든가 이런 사람에게는 공신전 같은 땅도 세습할 수 있게 해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요즘 이와 관련해서 신경 써서 봐야 할 점은 음서제와 관련해서 한 가문 내에서 관직의 세습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 상피제라는 보완대책을 실현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 신율: 조선시대에요?
◆ 전우용: 네, 예를 들어서 부자지간에, 혹은 숙질간에, 형제간에, 서로 유관한 직위에 오를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가까운 친척끼리 유관부서에 있으면 서로 파당을 형성하거나, 사정을 봐주거나, 선공후사의 원칙을 어기는 경우가 자꾸 생기기 때문에 이걸 막기 위해서 예컨대 아버지가 법원에 있었다. 예조나 형조에 있었다. 그러면 아들에게 벼슬을 준다고 하더라도 의금부, 형조, 포도청처럼 그와 관련된 관서에는 들어갈 수 없게 만든 제도가 있었고요. 설령 행정착오로 그렇게 임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 큰 아버지가 그 부처의 유력자로 계시기 때문에 저는 거기 있으면 안 됩니다’ 하고 상소를 내야 했고요. 만약에 상소를 안 내고 덥석 그 자리를 받아버리면 사간원, 사헌부의 집중적인 탄핵을 받게 되는, 그런 보안장치들이 있었죠.
◇ 신율: 지금보다 그때가 나은 것 같은데요. 지금은 유관 부서를 피하는 게 아니라 지역구도 물려주잖아요. 그런데요. 사실 음서제가 문제가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공평한 기회에 관한 문제이죠. 계급이라는 게 결국 뭡니까? 실력이 있어도 위로 못 올라가게 하는 게 계급이죠. 어떤 사람은 실력이 별로인데 고속도로로 올라가고, 이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결국 부도 대물림 되고, 자리도 대물림되고, 이런 것들, 고려시대에는 당연히 그랬고, 조선시대에도 아들 중에 한 명이라고 했지만, 폐해는 있었을 것 같아요.
◆ 전우용: 그런데 방금도 그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제가 되는 건 이런 것이거든요. 음서가 상당히 광범위하긴 했지만, 조선시대에도 음서출신에게는 제한된 직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최고급 관료로 올라가려면 청요직이라는 게 있어요. 청직이라는 건 주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이쪽의 언로를 담당하는 관직을 청직이라고 했고요. 요직은 이조나 병조와 같이 인사권과 관련된 직위를 요직이라고 했는데요. 요직이란 말은 요즘도 쓰죠. 이런 자리에는 음서출신이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15, 16살에 아버지 덕에 음서로 벼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출세에 제약이 되기 때문에 과거 시험을 반드시 치곤 했어요. 벼슬을 한 사람이 과거 시험을 또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던 거죠. 이게 오히려 일반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취업 과정에서 부당한 청탁 의혹, 이렇게 되어서 취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출세에 제약이 되기는커녕 취업한 이후에도 고속 승진하는 바탕이 되지 않습니까? 국회의원 지역구 세습뿐만 아니고, 사실 취업자체, 기업 내에서 총수와 가깝거나, 임원과 가깝거나, 이런 쪽은 아예 문제도 안 삼는 분위기 아닙니까?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취업청탁 압력은 문제 삼지만, 실제로 기업 내부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형태의 취업과 관련된 불공정 시스템은 워낙 광범위 한 것 같은데요.
◇ 신율: 대학 사회에서도 특채 교수가 있고 공채 교수가 있는데, 시니어리티라는 건 공채교수가 위입니다. 물론 거기서 보직을 어떻게 하느냐는 건 다른 문제이지만, 시니어리티에서는 특채보다 공채를 앞에 세운다. 이건 아무래도 공채의 중요성, 공정성을 나름대로 높이 산 것 아닌가, 이렇게 볼 수 있거든요.
◆ 전우용: 그런데 문제는 특채든 공채든 마찬가지거든요. 이를테면 조선시대 음서제를 놓고 보면, 음서 같은 경우가 특채이고요. 과거가 공채가 되겠죠. 그래서 공채가 우위라는 것 자체는 형식적으로 맞는 이야기죠. 그런데 조선시대 과거제도가 조선 후기가 되면 심각하게 망가져서, 공채라고 하는 것이 말이 공채이지 공정하게 심사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다산도 그런 이야기를 굉장히 심각하게 비판했지만, 출제자도 사전에 아는 사람이고, 감독관도 알고, 심지어 시험장에 가서 답안지를 쓰지도 않아요. 대리시험을 봐줄 사람을 다 데리고 들어가서 시험을 봐도, 워낙 힘 있는 집안 자식이니까 알면서도 넘어가는 거죠. 이런 형태로 공채 시스템이 망가진 후에는 차라리 특채가 나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조선 후기 인사 고가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과거제 폐지하자는 것이에요. 이런 식의 과거를 뭐 하러 보느냐? 전국 유생들 불러 모아서 헛시험만 치르게 한다.
◇ 신율: 괜히 헛된 희망만 갖게 하는 거죠.
◆ 전우용: 그렇죠. 나이 60 넘어서, 과거시험이 3년에 한 번이니까, 20번씩 응시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전국에 쌓여 있는데, 대갓집 자제들은 나이 20도 안 되어서 대리시험하고, 말로는 과거 합격자라고 합격하지만, 실제로는 공채 시스템 자체가 망가져있었기 때문에, 이건 오히려 사회적 문제인거죠. 사실 특채가 고려시대처럼 합법화되고, 대신 한 명만 된다는 식으로 단서를 달고 같이 운영되었다면 오히려 나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공채, 투명하다는 이름을 내걸고, 사실 이번 건도 의혹 받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닙니까? 채용규정을 바꿔서 임명하고, 이런 사례들이 생기니까, 공채 시스템의 의심받는 게 문제인거죠.
◇ 신율: 그렇죠. 한 명을 뽑는다고 했다가 두 명을 뽑기도 하고요. 그런데 음서제는 언제까지 남아 있던 건가요?
◆ 전우용: 과거제가 폐지 될 때 전면적으로 다 검토했던 것이 과거에 대응하는 것이 천거였죠. 과거를 폐지하면서 천거를 쓰는 것이 갑오개혁 당시에 과거제 폐지와 관리임용규정 개선이에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칙임관, 주임관, 판임관으로 등급을 나눠서, 판임관은 담당 부서장이 직권으로 임명하게 되고,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해방 후 5~60년까지는 국회의원 추천서 한 장 들고 기업체 찾아가서 취직시켜달라고 하면 취직 시켜주는 것이 굉장히 일반적이고 일상적이었죠. 그래서 ‘빽’으로 취직한다고 보통 이야기하던 시대에, 60년대까지도 우리가 그런 상태였고요. 60년대 이후에 기업체나 사회 전반에서 투명하거나 경쟁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공채라고 하는 것이 생기는 거죠.
◇ 신율: 자꾸 이런 문제제기는 일어나야 합니다. 어쨌든 음서라는 거 오늘 어떤 건지 잘 아셨을 것 같습니다. 현대판 음서, 이런 이야기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끝까지 이 문제의 의혹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 전우용: 네.
◇ 신율: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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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
◇ 신율 앵커(이하 신율): 역사에 대해 우리가 흔히 이런 이야기 하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들 중에는 과거에 나타났던 일들이 데자뷰처럼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준비한 시간이 바로 History in News 인데요. 오늘 저희가 아침 오프닝에서도 말씀드리고, 그 이후 인터뷰에서도 계속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국회의원 자녀의 취업청탁논란, 이와 관련해서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이 있죠. 이 음서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음서제가 과연 어떤 것인지, 이런 것이 현대에서 다시 재현된다고 표현해도 될지,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 스튜디오에 나와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세요.
◇ 신율: 일단 음서제가 뭔가요?
◆ 전우용: 말을 가져다 붙여서 그런 면이 있는데요. 사실 음서제와 최근 나왔던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의 자녀 취업청탁 의혹과는 다른 이야기이죠. 음서는 신분, 직역이 세습되던 고대부터 중세까지 하나의 사회적 관행이자 법률로서 허용되었던 것이니까요. 최근처럼 불법적으로 청탁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음서나 과거와 같은 중세적인 관리채용 제도가 무너지고, 근대화 과정에서 청탁, 추천, 의뢰와 같은 것들이 19세기 말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일반적인 취업 시스템이었거든요.
◇ 신율: 공채가 없었을 때죠.
◆ 전우용: 그렇죠. 그러니까 이걸 중세적 음서제와 바로 갖다 붙이는 건 맞지 않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이건 신분의 세습을 보장하기 위해서, 고위 관료의 경우 아들 중에 하나까지는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에 임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였죠.
◇ 신율: 그게 고려시대부터 있었어요?
◆ 전우용: 그렇죠. 과거라는 것이 고려시대에서는 부수적인 관리채용제도였고요.
◇ 신율: 과거가 관리가 되는 주된 통로는 아니었군요?
◆ 전우용: 네, 주변적으로 진행되었고, 중심은 세습, 천거에 의해서 진행되었고요. 지방호족들을 통합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호족들에게 관직을 주면서 계속 세습시키는 것이죠. 고려가 귀족사회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고요. 조선시대에 들어서 한층 관리임용제도가 세련되고, 공정한 방식으로 전환될 때 과거제를 중심으로 놓게 되고, 오히려 음서제가 부수적인 제도로 취급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 신율: 그러니까 고려시대까지는 음서가 주된 채용 시스템이었는데, 조선시대에는 과거가 생기면서 음서와 같은 것들이 부수적으로 떨어졌지만, 아들 중 한 명은 계속 해 줬다는 거죠?
◆ 전우용: 네, 지금은 개인주의시대니까 훈공, 포상이라는 것이 개인에게 내려가는 것이지만, 가족주의 시대에서는 공을 세우면 가문 자체에 영예가 돌아가고, 그 지위가 유지 될 수 있도록, 공신이라든가 이런 사람에게는 공신전 같은 땅도 세습할 수 있게 해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요즘 이와 관련해서 신경 써서 봐야 할 점은 음서제와 관련해서 한 가문 내에서 관직의 세습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 상피제라는 보완대책을 실현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 신율: 조선시대에요?
◆ 전우용: 네, 예를 들어서 부자지간에, 혹은 숙질간에, 형제간에, 서로 유관한 직위에 오를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가까운 친척끼리 유관부서에 있으면 서로 파당을 형성하거나, 사정을 봐주거나, 선공후사의 원칙을 어기는 경우가 자꾸 생기기 때문에 이걸 막기 위해서 예컨대 아버지가 법원에 있었다. 예조나 형조에 있었다. 그러면 아들에게 벼슬을 준다고 하더라도 의금부, 형조, 포도청처럼 그와 관련된 관서에는 들어갈 수 없게 만든 제도가 있었고요. 설령 행정착오로 그렇게 임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 큰 아버지가 그 부처의 유력자로 계시기 때문에 저는 거기 있으면 안 됩니다’ 하고 상소를 내야 했고요. 만약에 상소를 안 내고 덥석 그 자리를 받아버리면 사간원, 사헌부의 집중적인 탄핵을 받게 되는, 그런 보안장치들이 있었죠.
◇ 신율: 지금보다 그때가 나은 것 같은데요. 지금은 유관 부서를 피하는 게 아니라 지역구도 물려주잖아요. 그런데요. 사실 음서제가 문제가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공평한 기회에 관한 문제이죠. 계급이라는 게 결국 뭡니까? 실력이 있어도 위로 못 올라가게 하는 게 계급이죠. 어떤 사람은 실력이 별로인데 고속도로로 올라가고, 이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결국 부도 대물림 되고, 자리도 대물림되고, 이런 것들, 고려시대에는 당연히 그랬고, 조선시대에도 아들 중에 한 명이라고 했지만, 폐해는 있었을 것 같아요.
◆ 전우용: 그런데 방금도 그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제가 되는 건 이런 것이거든요. 음서가 상당히 광범위하긴 했지만, 조선시대에도 음서출신에게는 제한된 직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최고급 관료로 올라가려면 청요직이라는 게 있어요. 청직이라는 건 주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이쪽의 언로를 담당하는 관직을 청직이라고 했고요. 요직은 이조나 병조와 같이 인사권과 관련된 직위를 요직이라고 했는데요. 요직이란 말은 요즘도 쓰죠. 이런 자리에는 음서출신이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15, 16살에 아버지 덕에 음서로 벼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출세에 제약이 되기 때문에 과거 시험을 반드시 치곤 했어요. 벼슬을 한 사람이 과거 시험을 또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던 거죠. 이게 오히려 일반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취업 과정에서 부당한 청탁 의혹, 이렇게 되어서 취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출세에 제약이 되기는커녕 취업한 이후에도 고속 승진하는 바탕이 되지 않습니까? 국회의원 지역구 세습뿐만 아니고, 사실 취업자체, 기업 내에서 총수와 가깝거나, 임원과 가깝거나, 이런 쪽은 아예 문제도 안 삼는 분위기 아닙니까?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의 취업청탁 압력은 문제 삼지만, 실제로 기업 내부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형태의 취업과 관련된 불공정 시스템은 워낙 광범위 한 것 같은데요.
◇ 신율: 대학 사회에서도 특채 교수가 있고 공채 교수가 있는데, 시니어리티라는 건 공채교수가 위입니다. 물론 거기서 보직을 어떻게 하느냐는 건 다른 문제이지만, 시니어리티에서는 특채보다 공채를 앞에 세운다. 이건 아무래도 공채의 중요성, 공정성을 나름대로 높이 산 것 아닌가, 이렇게 볼 수 있거든요.
◆ 전우용: 그런데 문제는 특채든 공채든 마찬가지거든요. 이를테면 조선시대 음서제를 놓고 보면, 음서 같은 경우가 특채이고요. 과거가 공채가 되겠죠. 그래서 공채가 우위라는 것 자체는 형식적으로 맞는 이야기죠. 그런데 조선시대 과거제도가 조선 후기가 되면 심각하게 망가져서, 공채라고 하는 것이 말이 공채이지 공정하게 심사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다산도 그런 이야기를 굉장히 심각하게 비판했지만, 출제자도 사전에 아는 사람이고, 감독관도 알고, 심지어 시험장에 가서 답안지를 쓰지도 않아요. 대리시험을 봐줄 사람을 다 데리고 들어가서 시험을 봐도, 워낙 힘 있는 집안 자식이니까 알면서도 넘어가는 거죠. 이런 형태로 공채 시스템이 망가진 후에는 차라리 특채가 나을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조선 후기 인사 고가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과거제 폐지하자는 것이에요. 이런 식의 과거를 뭐 하러 보느냐? 전국 유생들 불러 모아서 헛시험만 치르게 한다.
◇ 신율: 괜히 헛된 희망만 갖게 하는 거죠.
◆ 전우용: 그렇죠. 나이 60 넘어서, 과거시험이 3년에 한 번이니까, 20번씩 응시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전국에 쌓여 있는데, 대갓집 자제들은 나이 20도 안 되어서 대리시험하고, 말로는 과거 합격자라고 합격하지만, 실제로는 공채 시스템 자체가 망가져있었기 때문에, 이건 오히려 사회적 문제인거죠. 사실 특채가 고려시대처럼 합법화되고, 대신 한 명만 된다는 식으로 단서를 달고 같이 운영되었다면 오히려 나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공채, 투명하다는 이름을 내걸고, 사실 이번 건도 의혹 받는 이유가 그런 것 아닙니까? 채용규정을 바꿔서 임명하고, 이런 사례들이 생기니까, 공채 시스템의 의심받는 게 문제인거죠.
◇ 신율: 그렇죠. 한 명을 뽑는다고 했다가 두 명을 뽑기도 하고요. 그런데 음서제는 언제까지 남아 있던 건가요?
◆ 전우용: 과거제가 폐지 될 때 전면적으로 다 검토했던 것이 과거에 대응하는 것이 천거였죠. 과거를 폐지하면서 천거를 쓰는 것이 갑오개혁 당시에 과거제 폐지와 관리임용규정 개선이에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칙임관, 주임관, 판임관으로 등급을 나눠서, 판임관은 담당 부서장이 직권으로 임명하게 되고,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해방 후 5~60년까지는 국회의원 추천서 한 장 들고 기업체 찾아가서 취직시켜달라고 하면 취직 시켜주는 것이 굉장히 일반적이고 일상적이었죠. 그래서 ‘빽’으로 취직한다고 보통 이야기하던 시대에, 60년대까지도 우리가 그런 상태였고요. 60년대 이후에 기업체나 사회 전반에서 투명하거나 경쟁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공채라고 하는 것이 생기는 거죠.
◇ 신율: 자꾸 이런 문제제기는 일어나야 합니다. 어쨌든 음서라는 거 오늘 어떤 건지 잘 아셨을 것 같습니다. 현대판 음서, 이런 이야기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끝까지 이 문제의 의혹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 전우용: 네.
◇ 신율: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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